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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꿈틀꿈틀거리는 십대들에게 공개하는 꿈트리의 성장 일기
꿈트리 김은진 대표 | 2014년 01월호
  • sena 앞으로 매달 오는 문자들을 보면 꼭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비전’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혹은 과연 이 길이 맞는지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번 달 casting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마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저 공연과 무대밖에 모르는 연극 배우였던 그녀를 <꿈트리(아동 청소년을 위한 예술 단체)>의 대표로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실시하신 탁월한 트레이닝법을 sena castin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취재 / 한경진 기자·사진 / 한치문 기자, 김은진 대표 

     

    은진이의 7살 데뷔 무대

    나의 데뷔 무대는 7살 때 군인 교회에서였다. 아빠가 군인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때만 되면 언니는 노래를, 나는 인사말을 시키셨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무대에 서는 것이 익숙했고 또 좋았다. 그렇게 군인교회 무대는 나를 연극, 무대라는 꿈으로 조금씩 안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회 연극에서 시각장애인인 ‘바디메오’ 역할을 맡아 연기했는데, 그때 연기를 하면서 무언가 내 속에서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저 무대에 서는 것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그날 이후부터 내 꿈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고등학교 진학 시기가 되자 나는 잡지에 실린 예술고등학교 입학 공고를 보고 무작정 지원해 예술고에 입학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사는 자취 생활이 시작된 거다. 사실, 내가 이 꿈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부모님은 썩 기뻐하지 않으셨다. 걱정이 많이 되셨을 거다. 하지만 그게 더 나를 채찍질하고 더 기도하게 했던 것 같다. 

     

    저는 공연하는 게 좋은데요?

    아마 아기 때부터 받은 ‘스파르타’식 신앙교육이 아니었다면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더구나 세상 문화와 가까워지기 쉬운 예술분야 안에서 한없이 망가지고 말았을 거다.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쳐 연극 극단에 소속 돼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항상 ‘바른생활 걸(girl)"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매일 말씀 보고 기도하던 습관 덕분이었다. 항상 나의 생활은 교회, 집, 연습실이 전부였다. 남들 다 하는 연애도 한번 안 하고 말이다.

    그렇게 공연이 좋아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던 어느 날, 하나님은 나에게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마음을 주셨다. 그 마음으로 나는 선교단체에서 하는 청소년 사역자 훈련을 받기 위해 그 전 단계인 DTS라는 훈련을 시작했게 됐다. 그런데 웬걸? 하나님은 그 훈련에 들어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연극, 공연, 예술 같은 것들을 다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너무 힘들어서 3-4일 동안은 울기만 한 것 같다. 내가 그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울고 있다는 건 하나님보다 공연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서이겠지? 하나님께 너무 죄송했다. 

     

    하나님, 저 어떡해야 되죠?

    DTS 훈련이 끝나고 청소년 사역자 훈련까지 모든 과정이 끝나자 마치 나를 유혹이라도 하듯이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유명 작품에 출연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공연이고 연극이고 다 내려놓았던 내게 그 제안은 큰 고민거리였다. 아직도 나에게 공연과 무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것이다. 기도 끝에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낮은울타리>라는 문화선교단체의 간사 일이었다. 나는 연극배우라는 사실을 숨긴 채 행정을 담당하는 간사로, 책을 만드는 기자로 새로운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동안 일에 빠져 살던 나에게 또 같은 제안이 들어왔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일까?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테스트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섬기던 주일학교 아웃리치와 공연일이 겹쳤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주일학교 전체 리더여서 빠질 수 없는 상황. 결국 또다시 공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울고 또 울면서 그때 정말로 연극에 대한 내 미련을 모조리 닫아버리고 말았다.

     

    다시 무대로!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은 내가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다시 나를 무대로 부르셨다. 이전에 속해있던 선교단체에서 뮤지컬 팀을 만드는데 그 팀의 리더를 맡게 된 것이다. 비록 무대 위가 아닌 기획과 연출이었지만, 다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라도 된 것처럼.

    하지만 다시 나를 무대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바로 이전에 주셨던 마음 그대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일에 나를 쓰고자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보육원’이라는 곳으로 이끄셨다. 동네에 있는 작은 보육원으로 처음 봉사를 하러 갔던 날, 아이들 중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아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갈 때마다 울 정도로 너무 힘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 관심도, 흥미도, 소망도 없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싶어 젖 먹던 힘까지 모든 힘을 쏟았다. 꿈에 대해 묻고,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같이 놀고 활동하면서... 그리고 1년 후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과 내가 사람들 앞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뮤지컬을 하게 된 것이다.

     

    행복한 모습을 보게 해줘서 고마워요

    뮤지컬은 성공적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보육원의 원장 선생님께서 오시더니 손을 잡아주시며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오늘 그 모습을 보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고. 고맙다고...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말씀을 하셨던 원장님은 이틀 뒤인 새벽에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말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돌아가셨으니까.

    보육원에서 봉사했던 1년 간의 기억은 아이들에 대한 나의 마음을 더 뜨겁게 만들어 주었고, 그것이 지금의 ‘꿈트리(꿈을 주는 나무)’로 이어졌다. 꿈을 꾸지만 현실에 가로막혀 있는 저소득층 아이들, 한국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다문화 아이들에게 ‘예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때로는 예술 강사가 되어 학생들이 스스로 공연을 연출하게 해주고, 예술캠프를 열기도 하고, 공연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기도 하는 등 꿈트리의 예술 사업은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다. 

     

    꿈틀거리는 청소년 시기, 꿈을 꾸세요!

    나는 요즘 ‘조지 카버’라는 공연에 흠뻑 빠져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인종차별을 받으며 살던 한 소년이 미국 최초의 흑인 농학자이자 과학자가 되었다는 실화는 내가 우리 자녀들에게 자주 들려주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를 보고 많은 친구들이 꿈을 꾸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한 가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길에 와 있다. 물론 그 꿈이 하나님보다 우선시 된다면, 나처럼 포기하고 내려놓는 훈련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볼 때 모든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 하나님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나를 사용하시는 분이고, 그 비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해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자리에도 있게 하시며 훈련을 시키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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