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심는다

issue 2019년 07월호 희망을 심는다 빛과소금

산불이 남긴 절망의 자리에서
교회는 희망을 심는다


취재 유영 사진 정화영
 


어둡게 깔린 구름, 금세 비가 내릴 것 같다. 두 달 전, 강원도 북동부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고성 산불 진원지와 멀지 않은 인흥리를 찾은 6월 6일, 한 동네 주민은 “차라리 그날 이런 하늘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며 아쉬워했다. 동네를 두른 산등성이는 검게 그을린 나무들이 즐비했다. 동네 곳곳에서 전소된 창고가 철거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집을 잃은 이재민을 위한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공사도 한창이다.
지난 4월 4일 밤에 시작된 고성 산불은 인근 속초시와 강릉시에까지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산불로 2명이 숨졌고, 11명이 부상했다. 고성군과 속초시, 강릉시 주민 4천여 명이 대피했다. 산림 1,757ha와 주택, 시설물 총 916곳이 전소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지역 교회도 피해가 컸다. 밀알교회, 임마누엘기도원, 이스라엘교회, 속초농아인교회, 원암감리교회 등은 예배당이 전소됐다. 인흥침례교회 등 10여 교회는 사택이 전소됐거나, 교회당이 불길에 여기저기 그을렸다. 화마에 교인들의 집과 사업체, 농가 등이 소실된 교회도 많다.
침통한 마음이 고성군과 속초시 등 피해 지역에 가득하다. 지나는 거리 곳곳에 한국전력공사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즐비하다. 전선에서 튄 불꽃이 이번 산불의 원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지역 한 목회자는 “원상 복구가 되기도 힘들겠지만, 복구가 된다고 해도 이재민의 상심을 달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이뤄 온 터전이 한순간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는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실제 피해 지역 복구는 최선을 다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이재민들의 가옥을 중심으로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전소되지는 않았지만, 가스와 그을음 등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가옥들도 많으니, 이재민을 위한 거처 마련은 중요한 사업이다. 속초 IC를 지나 고성으로 가는 길 곳곳에 컨테이너형 조립 주택이 계속 보였다. 간이 주택이 들어설 자리에는 임시로 사용할 상하수도, 정화조, 전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동네에 있던 탄 나무들과 가옥, 창고 등은 모두 철거됐다. 이런 사업은 주로 강원도와 시, 군에서 진행 중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회복되는 피해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한 민간 지원 사업도 한창이다.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감리회, 침례교 등 대표적 교단들은 피해 교회와 교인들을 위한 성금을 모아 전달하고, 피해 지역을 방문해 기도하며 이재민을 위로했다. 한국교회봉사단은 산불로 피해를 입은 교회에 냉난방 시설을 지원하기로 했다. 해비타트는 이동식 목조 주택 2개 동을 긴급 지원했다. 여러 교계 단체들이 연합한 나눔 프로젝트 ‘만개’도 이동식 임시 주택 2개 동을 지원했다. 만개는 고성, 속초 지역 이재민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로 ‘희망 집 만개’를 진행하고 있다.
만개의 첫 임시 주택 지원은 인흥침례교회에서 이뤄졌다. 인흥침례교회는 창립 60년이 넘은 역사 깊은 교회다. 하지만 이번 산불로 목조로 지은 사택이 전소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사택은 교회 교육관 및 식당으로도 사용했던 터라 교회를 담임하는 이만익 목사와 교인들은 상심이 컸다. 이런 시기, 사택으로 지원된 임시 주택은 교회에 큰 힘이 됐다. 이 목사는 “당장 문제가 됐던 화장실과 교육관이 임시 주택으로 해결되어 크게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흥침례교회는 인흥리 주민들을 돕는 민간단체 창구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6월 6일에는 강원도침례교회협의회, 만개 등과 함께 지역 주민들의 관계와 마음을 함께 회복하기 위한 식탁을 마련했다. 강원도침례교회협의회 회장 김용철 목사는 인흥침례교회와 함께 주민들이 회복하는 밥상을 준비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방에는 마을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피해를 입은 마을의 회복도 교회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1~2년 사이면 피해는 많이 복구될 것입니다. 이 시기 교회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교회는 우리가 힘들 때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을까요? 교회는 이재민들의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외형적 피해는 복구될 수 있지만, 상실된 마음과 그로 인한 영적 문제는 자력으로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주변 교회와 여러 교계 단체들의 도움은 김용철 목사 말처럼 피해 지역 교회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인흥침례교회 이만익 목사는 “큰 아픔을 당했지만, 하나님께 감사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역 주민들에게 교회와 목회자가 하나님의 몸으로, 그 모습을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산불에 인흥리 주민 대부분이 간신히 몸만 피한 상황이었다. 이만익 목사도 성경과 몇 가지 교회 자료가 담긴 USB만 들고 간신히 화마를 피했다. 순식간에 이재민이 된 지역 주민들에게, 이 목사는 마음을 담아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인근 지역 교회들과 교계 단체가 보낸 여러 물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모든 추억과 재산이 상실되는 모습을 본 주민들 간에 관계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작은 일로도 서로 예민해져서 다투는 일도 생기지요. 그럴 때, 마을 주민들이 목사인 제게 중재 역할을 맡깁니다. 다투던 당사자들도 제 말을 더 신뢰해 주고, 귀 기울이며 잘 들어 줍니다. 힘든 상황에서 함께해 준 많은 분의 도움을 받은 것이지요. 마을 밥상을 통해 주민들을 위로하자는 오늘 자리도, 교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꿈을 꾸다

그러고 보니, 교회 앞마당 분위기가 무척 밝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며 웃는 소리가 참으로 정겹다. 마을 방송이 오늘 잔치를 다시 주민들에게 상기한다. “인흥리 주민 여러분, 오늘 인흥교회에서 주민들을 위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으니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인데도, 잔치를 준비한 이들과 참여하는 이들의 인사는 활기찼다. 주민 70여 명이 정성스럽게 준비된 식탁에 둘러앉았다. 지역 교회에서 인흥침례교회를 찾은 목회자들까지 합하면 100여 명 가까운 이들이 모인 것이다. 한 동네 할머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참 오랜만”이라며 웃었다.
화재는 강원도에 큰 상처를 남겼다.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는 남는다. 그렇기에 어쩌면 오랫동안, 어쩌면 이번 세대가 지날 때까지 화마가 준 상처는 흉터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만익 목사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고 말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입니다.” 60대인 이 목사는 젊은 목회자 시절, 청소년과 어린이 사역을 오래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시골에 있는 교회이기에 다음 세대 사역은 어렵고 멀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로 도전했지만, 무언가 이어가기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이 지역을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힘겹기도 했다. 교회에서 자라도 떠나면 무엇이든 쉽지 않다.
“지금 교회에 어린아이 9명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떻게 도울까 계속 고민하게 됐습니다. 공부 말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도울 것을 찾아야 하니까요. 현재 40대 교인들 모두 어린 시절 인흥교회에서 자랐습니다.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교인들이지요. 교회에서 받은 여러 추억과 교육이 어려운 순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순간을 만나도 신앙으로 잘 설 수 있는 다음 세대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역에 있는 모든 논에 모내기가 되어 있었다. 상심이 큰 이 순간에도, 해야 하니까 모내기를 하고, 할 수 있는 게 모내기밖에 없어서 모내기를 한 사람도 있다. 그래도 모는 잘 익은 벼로 자랄 것이다. 산불이 남기고 간 절망의 자리에서 교회는 희망을 심고 있었다. 

issue의 다른 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