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매가 손잡고 걷는 길

issue 2024년 01월호 두 자매가 손잡고 걷는 길 글 권혁일

대부분의 교회 안에는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아도 교회의 직분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 안에서 직분이 마치 계급과 같이 되어서 교인들이 직분에 따라 서열화되고, 요직에 있는 직분자들이 자신의 뜻대로 교회 일을 좌지우지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비판들은 솔직히 뼈아프다. 실제로 교회들 안에는 그런 모습들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이후로 2천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교회에 직분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교회에는 직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 사도는 교회의 직분자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물론 각 직분의 명칭과 역할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전통(교파)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 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직분을 맡아서 그 일을 감당할 직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 직분자를 세우셨다. 그리고 직분자는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다는 이 사실로 인해,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영성이다. 

‘영성’은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그 의미는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국어사전에서는 영성(靈性)이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로 정의되어 있는데, 아마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성의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영성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영성(spirituality)을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체험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영성을 신령한 성품이나 자질로 설명하는 국어사전의 정의가 인간이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면, 영성을 체험으로 보는 영성학적 이해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의 직분자에게 필요한 영성을 생각해 보면, 단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 임직식에서 흔히 언급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눅 10:38~42)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나,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하게 일하는 마르다, 모두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 둘의 차이는 마리아는 예수님께 집중하여 주님과의 관계 속에 머물러 있지만, 마르다는 일을 성취하려는 목적을 추구하느라 주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다는 자신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잘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다가, 주님께는 정작 불평과 원망만 터뜨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마리아가 아니라, 동생에게 언니를 도와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께 불평한다. 이러한 마르다의 모습에서, 마르다는 마리아보다 예수님께 무척 서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마르다와 예수님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바른길을 알려 주시며 다독거리심으로 마르다와의 관계를 다시 다잡으신다. 

기독교 영성 전통에서 마리아는 기도의 삶을 대표하고, 마르다는 활동(봉사, 사역)의 삶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영성 고전들을 살펴보면, 적지 않은 작가들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매로서 한집에 살았음에 주목하며, 마리아와 마르다, 곧 기도와 활동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코 기도가 일보다 우월하거나, 반대로 기도보다 일이 더 우선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다”(Laborare est orare)라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유명한 모토는 수도 생활에서 기도와 노동을 균형 있게 조화하여 통합시키려고 한 그들의 이상을 잘 보여 준다. 또한, 수도원 주방에서 프라이팬의 작은 달걀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었던 로렌스 수사의 이야기(「하나님의 임재 연습」)는 우리가 일상생활 가운데 일과 기도를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좋은 교훈과 도전을 제공해 준다. 이 유명하고 유용한 책을 아직도 읽지 않은 직분자가 있다면, 반드시 읽고 직접 훈련해 보기를 권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리아의 ‘좋은 선택’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기도를 하든지, 활동을 하든지 주님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 관계 안에 머무르기로 선택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이 정말 좋은 선택인 이유는 기도는 물론이고, 활동을 통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고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실에서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음을 체험한 이들은, 또한 봉사의 자리, 사역의 현장, 일터에서도 내 안에 계신 주님과의 일치감을 느끼며 주님과 함께 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관계로 인해 맺어지는 사역의 열매는 덤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7~8).

‘예수님의 제자’, 이것이 그리스도에 의해 세움을 받은 직분자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기를 지향해야 하지만, 직분자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에서 따르며 섬기는 제자이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거나 인간적 시스템의 부속으로 전락하여 활동 자체 속에서 하나님과 멀어지고 자신의 참모습을 상실하기 쉽다. 분주한 마르다가 그랬듯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 ‘교회 일’을 한다고 하여 주님과 가까운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이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데에 어떤 장애물들이 있고, 또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다. 

사막 교부 폰티쿠스의 에바그리우스(Evagrius Ponticus, 345~399)는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 온전히 하나가 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로 여덟 가지 악한 생각들(logismoi)을 꼽았다. 그는 사람의 영혼은 ‘이성’과 ‘마음’과 ‘육체’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악령은 그 여덟 가지 악한 생각들을 통해서 영혼의 각 부분을 공격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가장 낮은 차원에서 육체를 공격하는 악한 생각들은 ①탐욕과 ②음욕과 ③탐식이며, 다음으로 마음을 공격하는 것들은 ④태만과 ⑤분노와 ⑥슬픔(우울)이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차원인 이성을 공격하는 것들은 ⑦허영(헛된 영광)과 ⑧교만이다. 이 중에서 허영과 교만은 영적으로 어느 정도 진보한 사람, 또는 삶을 잘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침투한다. 그래서 육체적 정욕들과 마음의 악한 생각들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의 평정심을 얻은 영혼도, 허영이나 교만을 넘지 못하면 다시 아래로 떨어져 분노나 슬픔, 탐식이나 음욕에 빠질 수도 있다.

이것은 에바그리우스가 그가 살고 있던 4세기 이집트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한 것이지만, 이러한 악한 생각들은 보편적으로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괴롭히는 것들이며, 특별히 교회나 공동체에서 직분을 맡은 이들이 매우 주의해야 하는 것들이다. 에바그리우스에 의하면 이 악한 생각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각각의 악한 생각들과 반대되는 성경 말씀들을 반복적으로 읽고 묵상해야 한다. 그러면 그 말씀이 치료제가 되어 악한 생각들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특히 직분자들은 이러한 악한 생각들이 자신 안에 자라나서 마음을 뒤덮지 않도록 종종 내면을 성찰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일의 주도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나 금식이나 고행을 엄격하게 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치료하지 않으신다면, 오히려 자신의 육체적 자랑만 더 쌓게 되어 그 영혼의 질병이 더욱 심각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모든 악한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은 그가 처음 직분을 맡기 시작했을 때 어느 수준에 있었든지 그때로부터 영적 성장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여 그 길을 평생 걸어가기로 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 길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길이며, 그분과 더욱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사는 길이다. 또한 그 길은 개인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걷는 길이어서, 형제자매들과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돌보면서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 이것이 직분자가 걸어가야 할 영성의 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빌 2:1~4, 새번역). 

 

 

 

권혁일은 영락수련원 지도목사다. 저서로는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훈련」, 「문화목회를 디자인하다」, 「백투더클래식: 영성 고전으로 오늘을 읽다」(공저) 등이 있다.​ 

issue의 다른 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