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페 벨에포크>

issue 2023년 02월호 영화 <카페 벨에포크> 글 장다나

당신이 기억하는 낭만의 시기는 언제였나요?

 

레트로를 넘어선 뉴트로, 즉 ‘신(新)복고’의 유행은 언젠가부터 거부할 수 없는 낭만의 상징이 됐다. 한때 눈앞에 있는 것에 정신없이 끌려가느라 홀대했던 주변의 흔적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와르르 내 안으로 쏟아질 때 느끼는 그리움, 애틋함, 아련함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낭만적 정서에 생각을 지배당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서서히 각자의 기억이 마련한 시간 여행의 궤도에 오른다. 최종 목적지는 기억 속 흔적들이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노스텔지어는 꽤 믿고 맡길 만한 방향키가 된다. 마치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말이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지만 최근 뉴트로의 유행 속에 애정을 갖게 된 프로그램이 하나 있으니, 바로 90년대 가요들을 테마에 따라 순위별로 소개하는 <이십세기 힛-트송>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집안일을 할 때 노동요 용도로 TV를 켜 놓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본다’라기 보다는 ‘듣는다’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흐름을 집중해서 따라가야 하는 토크쇼나 드라마보다는 음악 프로그램을 주로 틀어놓는다. 그중 <이십세기 힛-트송>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청소년기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익숙한 곡들 혹은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가던 곡들이 소환될 때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반가움이 있고, 무엇보다 소개되는 모든 곡을 내가 막힘없이 따라 부를 수 있다는 것에 매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너무나도 신나는 시간이랄까. 요즘 시대 가요에 대해서는 완전 백지상태에 가깝지만 저 시기에는 정말 열심히 가요를 들었구나, 라는 생각에 그리움의 농도는 더욱 배가 된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을 정도로 좋아했던 곡들. 그 곡을 함께 부르며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을 함께 거닐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일찻집에서 듀스 춤을 추던 오빠에게 반한 나머지 옆 학교에 몰래 침입해 교실로 선물을 밀어 넣었던, 그날의 용맹하던 여중생은 과연 지금의 내가 맞을까. 인기 절정의 만화 ‘슬램덩크’의 단행본, 너른 햇빛 속 뽀얀 먼지를 내뿜던 뜀틀, 삐삐를 쥐고 공중전화로 달려가던 친구의 표정과 주일 예배당 입구에서 피어오르던 백합 향기까지. 지나간 시간이 새긴 감각 그리고 마주하면 뭉클해지는 그리움의 얼룩들. 하지만 입시 준비로 피폐했던 몸과 마음을 생각하면 또 그렇게 행복하기만 했던 시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항상 버릇처럼 중얼거린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라고. 가장 그립고 찬란했던 시기, 우리의 화양연화, ‘벨에포크’의 시기로 말이다. 

1974년 프랑스의 어느 카페. 지금 빅토르는 가장 그리워하던 시기 한복판에 와 있다. 이곳은 그의 기억 속 장소를 완벽하게 복원해 놓았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네온사인과 자욱한 담배연기. 부츠컷 팬츠와 헤어밴드가 잘 어울리는 웨이터가 그를 맞이한다. 다이얼 방식의 전화기, 동전을 넣으면 서서히 돌아가는 주크박스까지 영락없는 70년대 카페 같지만 실은 특정 역할극을 하고 싶은 고객을 위해 마련된 세트장이다. (옆 세트장에는 히틀러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대기 중이다.) 한마디로 고객 맞춤 시간여행 사업장인 것이고, 지금 빅토르는 자신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셈이다. 실상은 이러하다. 빅토르는 한때 만화가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였지만 지금은 구박덩이 신세이다. 아내 마리안의 눈에 빅토르는 과거에 얽매인 채, 평생 작품 구상만 하는 고루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OTT와 VOD서비스, 태블릿PC에 난색을 표하며 자신은 여전히 종이와 연필이 좋다고 말하는 빅토르. 마리안은 과거에 갇혀 새로운 생활 방식을 거부하는 그의 태도에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결국 만년 취업 준비생인 남편을 보다 못한 그녀는 그를 집에서 내쫓아 버린다. 순식간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빅토르는 아들의 친구 앙투안으로부터 그가 운영하는 ‘맞춤형 재현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게 되고, 빅토르는 아내를 처음 만났던 1974년 한 카페의 재현을 요청한다. 바로 ‘카페 벨에포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사실 ‘벨에포크’라는 말은 19세기말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유럽의 특정 시기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철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낭만을 이야기했던 이 시기는 서구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롭던 때로 꼽힌다. 그러나 대개는 그리운 정서를 담은, 돌아가고픈 시기의 의미로 활용된다.

빅토르는 지금 이 재현된 추억의 한복판에서 설렘을 만끽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짜’임을 알면서도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자신만의 벨에포크를 즐기는 빅토르. 그는 이곳에서 젊은 모습의 마리안과의 가슴 벅찬 조우를 경험한다. 물론 마리안의 역할을 해 주는 배우 마고 덕분이지만 말이다. 마고의 완벽한 연기는 빅토르에게 마리안에 대한 그리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한편 마고만의 새로운 마리안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리안과 비슷하지만 무언가 자유분방한 모습을 가진 마고는 지금껏 어떠한 것에도 의욕을 가질 수 없었던 빅토르에게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불어 넣는다. 빅토르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카페는 그에게 무엇을 선사한 것일까? 혹시 그의 마음 깊이 잠들어 있는 낭만을 깨운 것은 아닐까? 비록 육체는 노쇠해졌고 외모 역시 젊은 시절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내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날의 열정과 재회하게 하는 낭만의 시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은 더 이상 추억팔이에만 머무르는 곳이 아닌 잠시 무뎌진 현재의 감각을 일깨우고 다시금 활력을 찾게 하는 장소임을 알 수 있다. 빅토르는 말한다. “맞아, 74년은 낭만이 있고 자유로움이 있었어.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기였어.” 하지만 마리안은 시큰둥하게 말한다. “글쎄, 그 당시는 성범죄에 한없이 너그러웠고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짓누르던 때였어.” 매 시간 우리의 경험과 기억이 제각각이듯, 같은 시대를 살아 온 두 사람의 기억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지금 빅토르의 70년대를 기획하고 그를 지켜보는 앙투안, 그리고 배우로 참여하는 마고 역시 각자의 시선과 마음을 통해 서로 다른 70년대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카페 벨에포크에서 70년대의 낭만에 빠진 사람이 결코 빅토르뿐만은 아니라는 점은 연신 놀라움을 안겨 준다. 앙투안은 완벽주의자이지만 사랑에 서투른 인물이다. 빅토르와 마고의 역할놀이를 보며 희미한 질투를 느끼는 앙투안은 진심어린 연기로 마리안이 되어 가는 마고의 모습을 보며 진정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점점 삶의 활기를 찾아가는 빅토르의 변화를 바라보던 마리안 역시 스스로 앙투안의 역할극에 참여하게 되면서 둘은 처음 만난 70년대 그곳에서 다시 한번 재회하는 새로운 순간을 경험한다. 그 순간 카페 벨에포크는 세대, 성별을 떠나 서로에게 보여 준 그들의 진심이 이끈 ‘낭만의 자리’로 변화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중학교 시절을 내내 설레게 한, 무려 30년도 더 된 작품이다. 원작자가 직접 감독으로 참여한 애니메이션이라 더더욱 기대가 커지면서 동시에 ‘30년 전 작품을 과연 젊은 세대들이 재미있어 할까?’, ‘슬램덩크를 알기는 할까?’ 등등의 생각도 함께 모락모락 올라왔다.
뭐, 괜한 생각이었다. 내 왼편에 앉은 10대로 보이는 두 학생은 자리에 앉자마자 쉴 새 없이 만화 속 주요 경기 하이라이트를 줄줄 읊어댄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순간, 내 10대의 소중한 추억 하나가 긴 터널을 통과해 지금 막 2023년에 도착한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변치 않고 정겨운 그 느낌, 한없이 반갑다.
아, 이렇게 나의 추억과 그리움은 어느 덧 우리들의 낭만이 되었구나! 

장다나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외래교수, 영화진흥위원회 객원연구원으로 영화 교육 및 비평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 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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