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러짐"을 위한 마음 내어주기

issue 2023년 01월호 "어우러짐"을 위한 마음 내어주기 글 장다나

“MZ들이 다 이영지는 아니에요.”
얼마 전 동료가 들은 말이다. 당시 그녀는 20대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발상과 남다른 열정, 심지어 뻔뻔할 정도의 ‘쿨’한 태도까지 언급하며 ‘이는 젊은이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움츠리지 말고 저질러라’의 맥락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있었다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격려’라기 보다 일장연설이었을 것 같긴 하다.) 이윽고 이를 조용히 듣고 있던
한 청년이 ‘우리 또래들이 모두 이영지인 건 아니에요’라며 볼멘소리를 냈고, 그 말에 동료는 지금까지 생각해 온 무언가가 파사삭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심지어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고. 나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래 맞네. 그 청년도 이영지가 아닌 거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효리는 아닌 거지. 혹시 우리 세대를 쿨내 풀풀 풍기는 멋진 언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들이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거 이미 알고는 있다. 뭔가 더 처량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10대 시절 기억 몇 가지가 떠올랐다. 그 시기 나와 내 친구들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대라며 소위 ‘X세대’로 불리고 있었다. 이전 세대보다 개성이 존중되는 분위기 속에 신문물을 빠르게 습득했던 우리들은 뭔가 미스터리한 세대처럼 불렸지만, 오히려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한 세대였다.
이 모습은 아마도 윗세대에게 생각보다 큰 파장으로 감지되었던 것 같다. 무턱대고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태도를 위선으로 보기 시작한 청소년기 즈음, 단지 내 생각을 잘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부모님, 목사님 할 것 없이 내가 입을 열기만 하면 한숨은 기본이요, ‘요즘 애들 참 버릇없다’라며 그렇게나 당황해 하셨다. 그 당황함이 묘하게 즐거웠던 나는 역시나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엄마, 방금 그 말은 우리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반복하며 다음 세대에게 건네주고 또 건네준다는 그 말 맞지?”

버릇없는 요즘 애들, 특히 전학 온 노랑머리의 아이를 껄끄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이발사 요시노 씨다. 영화 <요시노 이발관>은 오래된 마을 전통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두 세대의 이야기를 담는다. 일본의 작은 마을. 여느 곳과 다름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조금은 독특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바로 마을 전체에 퍼져 있는 ‘요시노가리’ 풍경! 소위 바가지 머리 혹은 버섯 머리라고 하는 이 스타일은 이 마을에 사는 모든 남자아이들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전통이다. 요시노 이발관은 몇 대째 이 마을의 요시노가리를 책임지고 있는 전통 있는 이발관이며, 요시노 씨 또한 이 마을의 유일한 이발사이다. 사실 이 마을이 요시노가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오래된 전설 때문이다. 질투가 많은 여성 수호신 때문에 무조건 남자아이들이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수호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합창을 하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모두들 같은 스타일을 한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을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며 호시탐탐 남자아이들의 머리 스타일을 주시한다. 그렇게 어느 누구도 요시노가리에 토를 달지 않던 평화롭던 어느 날, 도쿄에서 염색 머리를 한 사카가미가 전학을 오게 되면서 학교뿐만 아니라 마을도 서서히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한다. 사카가미의 세련된 스타일에 빠진 여자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와 친해지려 하는 반면 마을 어른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치 주기 바쁘다. 특히 요시노 씨에게는 더더욱 해결해야 할 막중한 미션이다. 등교 시간마다 사카가미에게 머리를 자르러 오라며 회유하지만 그럴수록 반항하는 아이를 보며 그는 결국 큰 결단을 하기에 이른다.

<요시노 이발관>이 그리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요시노가리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들의 변화일 것이다. 요시노 씨의 아들 케이타는 친구들과 성인잡지를 몰래 뒤적거리거나 속옷 차림의 누나를 보고 당황해 하는 등 이제 슬슬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시기이다. 어느 날부터 같은 반 인기녀 우에스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케이타. 이전까지 한 번도 요시노가리에 대해 불만을 가져 본 적 없던 케이타는 전학생의 등장으로 인해 처음으로 획일화된 머리 스타일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는 기존 세대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수용하기에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는 새로운 세대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전통의 답습을 강조할 뿐 답습의 이유를 정확히 짚어 주는 어른들은 없기에 느끼는 답답함 같은 것들이랄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곳의 어른들도 그 답을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보다 그것을 행위로 반복하는 것에 익숙한 듯 보인다. 극 중 한 어르신은 거의 탈모에 가까운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버릇처럼 요시노가리를 하러 온다. 이 장면은 무슨 콩트의 한 장면 같다. 허공에 대고 한참동안 진지하게 가위질을 하는 요시노 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카락이 나에게만 안 보이는 걸까 싶을 정도이다. 머리카락도 없는데 왜 자르느냐고 묻는 케이타의 질문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던 어린아이처럼 오래된 무언의 약속을, 혹은 규칙과 금기를 깨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규칙을 깨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전 세대의 시선으로 보면 전통을 지키는 것은 규칙을 깨는 것 이상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요시노가리를 반복하여 지키는 것은 살아온 오랜 세월 속에 그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그런 삶을 성실하게 살아 온 결과가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으니 말이다. 이는 케이타의 아빠 역시 중년의 나이가 되어도 우스꽝스럽지만 여전히 요시노가리를 하고 있는 이유와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각 세대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반드시 잘라야만 해. 다른 스타일은 안 돼!” 라고 외치는 요시노 씨의 대사는 각 세대 간의 거리를 더욱 멀게만 만들 뿐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이 마을의 전통인 요시노가리 합창단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한 남자 아이들이 같은 옷을 입고 헨델의 할렐루야를 완벽하게 부른다. 이 모습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형형색색의 염색을 한 채 자유와 개성의 존중을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과도 대조된다. 왜 할렐루야를 부르냐며, 전통을 고수한다면서 왜 서구의 노래를 부르냐며 반항하는 아이들. 문득 그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케이타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 윗세대들은 할렐루야가 아닌 다른 곡을 부르며 전통을 지키지 않았을까. 혹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과연 케이타와 친구들은 이 산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될까. 중요한 것은 이전 세대의 이야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 다음 세대의 변화와 어우러져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발관 역시 변화를 경험하더라도 머리카락이 자라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케이타 아빠의 말처럼, 꾸준히 흘러가는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변화의 순간 일부분이라도 곁에 놓아둔다면, 그렇게 세대와 세대가 함께 마음 한 켠을 내어 주다 보면 어느 순간 전통은 전설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청소년기에 스스로를 X세대라고 부른 적이 없다. 단지 ‘너희들은 X세대니까 이렇고 저래’ 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을 뿐이다. 이는 지금 세대들이 스스로를 MZ세대라고 부르지 않는 맥락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한 세대는 스스로를 결정짓지 않는다. 여전히 그 세대의 문화는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변화하고 부산히 움직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결국 세대를 바라보는 태도의 근간에는 나의 세대가 흐려지는 빈 공간에 침범하는 새로운 세대의 감각을 수용하기 위한, 나름의 진지한 고찰이 있다.
다만 세대론을 정치 혹은 자본의 용도에 맞게 이슈화시켜 분쟁과 배타적 태도를 종용하는 작금의 시기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장다나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외래교수, 영화진흥위원회 객원연구원으로 영화 교육 및 비평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 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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