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부르시면 모르는 척하고 그냥 따라갑니다

people 2021년 10월호 하나님 부르시면 모르는 척하고 그냥 따라갑니다 이무송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겠다는 찬양은 어려서부터 부담스러웠다. 아골 골짜기 빈들에도, 멸시천대 십자가마저 지고 가야 하는 길이라면 부르심은 제발 사양하고 싶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누구든지 이렇게 헌신적인 열정으로 순종했던 것일까? 아브라함도 아비 집을 떠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요셉의 부르심은 따지고 보면 형들에 의한 강제 송환이었고, 모세도 떨기나무 불꽃에서 만난 여호와 앞에서 어떻게든 안 가보려고 버티기도 했다. 알고 보면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심지어 다윗도 평신도였고, 바울도 직업이 있는 일터 선교사였으며, 바울에게는 숱한 평신도 동역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목회자, 선교사들만을 위한 것일까? 평신도에게도 늘 부르심은 있다. 따라나서는 사역자와 머무는 성도가 있을 뿐이다. 30년 전 사는 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고 노래하던 가수가
지금은 자신의 인생을 부르심의 연속이라고 고백한다. 가수 이무송 집사의 인생을 지금 공감한다.
취재 김재원 정리 이승연 사진 한치문


요즘 삶을 계절로 비유하신다면 어떨까요?
깊은 가을이라고 할까요. 수확의 계절이죠. <사는 게 뭔지> 이후에 틈틈이 앨범을 냈지만 음악적으로 완성된 것은 없었어요. 기도로 준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사랑합니다>와 <0순위> 두 곡을 발표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비전을 담은 곡으로 준비했어요. 전 세계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때에 특별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도 녹음을 했어요. 일본어와 중국어는 급히 준비해서 했는데, 현지인들의 반응이 괜찮더라고요. 하하. 큰 사랑을 받은 <사는 게 뭔지>도 30년이 다 되어서 새롭게 편곡을 했어요.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된 거죠. 이렇게 새로운 결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목 디스크로 오래 고생해서 수술을 받기로 했거든요. 이후에 펼쳐질 새로운 삶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목 디스크는 심각한 상황인가요?
의사들은 심각하다고 해요. 수술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들 해서요. 아프고 심한 저림이 있어야 하는데, 감사하게도 통증은 거의 없어요. 의사들도 의아해할 정도에요. 하나님이 만지시는가 싶어서 감사하게 음악 작업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고요. 미루고 미루다 결국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몸도 아프고 그러신데, 나이 든다는 것을 느끼시나요?
물론 아침에 일어날 때 ‘어이쿠!’ 그러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날 때 뭔가 짚고 일어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요즘 자전거 열심히 타거든요. 운동으로 몸을 챙기다 보니까 살도 좀 빠지고 그래서 아주 좋습니다. 몸뿐 아니라 생각도 나이가 드는데요. 아내의 노래 <바램> 가사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고 하잖아요. 실제는 노래만큼 그렇게 멋지지는 않네요. 하하.

삶의 조화는 가정, 일, 신앙의 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이루어지잖아요. 말씀 따라 잘 지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신앙은 말씀대로 살면 흐름이 잡히고, 일도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따라가면 신앙의 원칙이 적용되더라고요. 그런데 가정은 달라요. 30년 가까이 살다 보니까 서로를 잘 알고, 믿음의 실체도 잘 알고, 허물없다 보니까 선을 지키기도, 거리 두기도 쉽지 않아요. 집에서는 마음이 풀어지면 괜한 오해가 생기기도 하죠. 그래도 감사한 것이 믿음의 가정이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가 늘 있다는 겁니다. 신앙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하하.

좋은 남편 되기가 더 힘드세요? 좋은 아버지 되기가 더 힘드세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려다 보면 오히려 더 힘들어져요. 남과 여는 확실히 달라요. 남편은 이미 잊힌 상처가 아내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고, 남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내에게는 사소한 문제일 수 있어요. 남편의 이슈와 아내의 이슈가 다르니까 갈등이 생기는 거죠. 신앙이라는 공통부분이 없으면 정말 힘들 겁니다. 자식도 그래요. 친구 같은 아빠가 좋다고 하지만 아빠가 친구는 아니거든요. 분별력이 흐려지면 미묘한 긴장감이 생겨요. 부자간에도 코드는 다르기 마련이고, 아버지가 기대하는 아들의 역할과 아들이 기대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사뭇 다르면 힘들어지잖아요. 교육에도 엄마, 아빠가 생각과 노선이 다르면 자칫 2:1의 판세가 만들어져요. 결국 부모가 되는 건 죄인이 되는 거구나,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진다는 거구나 생각하면서 참고 넘어가야지요. 내 뜻 내려놓고 하나님이 가정을 통치하시도록 맡기지 않으면 가장 힘든 공동체일 거예요.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모두 기도 없이는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것이, 또 믿음의 가정이라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군요.
그건 맞아요. 신앙적으로 풀어 가려다가 어느 순간 보면 너무 인간적인 내 모습을 보게 되죠. 그럼에도 회개할 수 있어서 감사한 거예요.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새벽예배 시간에 그런 기도를 많이 해요. 그 시간에 정말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떠올리면서 회개하죠. 수년 전부터 새벽예배 드리면서 마음이 많이 다스려졌어요. 삶을 바라보는 관대함도 생겼고요. 진즉 시작할 걸 그랬어요.

신곡 <사랑합니다>는 어떤 마음으로 쓴 건가요?
사랑은 허물을 다 덮는다고 했잖아요. 아무래도 대중가요이다 보니 재밌게 쓰려고 했어요. <사는 게 뭔지>에서 “몇 년이 지난 후에 후회하지는 않겠지, 알 수 없는 거잖아”라고 했는데, 30년 지나고 보니 이제 애달픈 잔소리까지도 사랑하게 되더라, 사실 그동안 당신에게 사랑 한 번 안 준 거 같더라는 자기 고백 같은 노래예요. 노래 사이사이에 시편에 나오는 ‘셀라’를 추임새로 넣었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거리 두기’ 하다 보니까 사랑조차 표현할 수 없는 세상에서 노래로라도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으면 좋겠어요.

어린 시절부터 사랑 많이 받고 자라셨죠?
저희가 4남매예요. 막내는 늦둥이고, 셋이 나란히 태어나다 보니까 둘째인 저는 할머니 댁에 맡겨졌었어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긴 했는데, 한편으로는 엄마가 늘 그리웠죠.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부모님과 살았어요. 아버지께서 경찰공무원도 하시고, 고등학교 선생님도 하시다가 외항선을 타셨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오실 때마다 외국에서 엄청난 선물들을 갖고 오셨어요. 이른바 도너츠 판이라고 작은 엘피판을 100개씩 묶어서 사오기도 하셨죠. 당시 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들이어서 음악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밴드로 활동했어요. UFO라고 ‘United For Orchestra’의 약자예요. 밴드에서 저는 드럼을 맡게 되었어요. 종로에서 3개월 과정 등록해서 드럼을 배우는데 한 달 반 만에 다 가르쳤다고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때 워낙 저렴한 드럼을 사서 여름에는 다 누그러지고 그랬어요.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 같은 데에 초대받아 공연하면서 나름대로 팬들도 꽤 많았어요.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손수건 깔고 방송국 바닥에 앉아서 보고 그랬죠. YWCA에서 공연하면 수천 명씩 오고 그랬어요. 그때부터 음악 인생이 시작된 거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어요.

한창 즐겁게 음악 하던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삶의 터전이 바뀐 셈이네요.
지금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어요. 이민 사회는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의 종교를 따라가잖아요. 저희는 감리교 목사님이 데리러 나오셨어요. 토요일에 도착해서 다음날부터 예배를 드렸고요. 자연스럽게 이민 생활과 교회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믿음보다는 놀기 바빴어요.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을 갔어야 했는데, 언어에 어려움이 많아서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기로 했죠. 지금 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어요. 1년쯤 다니니까 그냥 대학에 가라고 하는데, 저는 계속 다니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수영부에 들어갔어요. 사실 수영을 전혀 못 했어요. 코치 할아버지께서 잘 가르쳐 주셨는데, 신체 조건을 따라갈 수가 없잖아요. 유심히 보다가 많이 안 하는 접영을 시작했어요. 밤늦게까지 혼자 남아서 진짜 열심히 하니까 결국 학교 대표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학교에서도 인정해 주고 늦게나마 3년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수영부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민 생활이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그럼요. 부모님이 편의점을 하셨는데요. 저도 당연히 일을 도왔죠. 하루는 손님이 한 명 있는데, 누가 갑자기 권총을 들고 들어와서 그 손님을 쏘고 나가는 거예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갔던 그 사람이 다시 들어오는 거예요. 이제 내 차례구나 싶었는데, 쓰러진 사람이 죽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나가더라고요. 또 한번은 마약에 취한 사람이 총을 들고 와서 난동을 부리는 거예요. 저희도 비상용 총기가 있어서 잡고 그 사람을 겨냥했는데, 아무리 정당방위라고 해도 쏘지는 못 하겠더군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마침 경찰이 와서 해결됐어요. 그때부터 제 삶을 다시 보게 되고, 하나님이 내게 새로운 인생을 주시나 보다 생각했어요.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저의 작은 행동 하나도 주관하셨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사실 교민들의 삶이 많이 힘들어요. 위로가 필요해요. 늘 기회만 되면 그분들을 위로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19가 물러나면 합창단과 함께 그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드리러 갈 기회가 오리라 믿으며 기도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텐데 한국에 와서 가수의 길을 걷는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겠는데요?
그렇죠. 지금으로 말하면 의예과를 다니고 있었어요. 음악을 워낙 좋아했으니까 대학가요제 뉴욕 대회에 나가게 됐죠. 그날도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비가 많이 내리는데, 밴드라 장비는 많지, 1등 한다는 보장도 없지, 그런데 뉴욕까지 먼 길을 갈 상황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갔어요. 공교롭게 1등을 했죠. 그때 안 갔으면 인생이 달라졌겠죠. 한국에 가야하는데, 항공료가 자비 부담이었어요. 또 고민하다가 오기가 생겨서 출전했는데, 동상을 받게 된 거예요. 대학가요제 끝나고 제가 고등학교 때 활동했던 것을 김창완 선배님이 기억하시고 음반을 만들자고 하셔서 음반까지 냈죠.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홍보가 안 되고, 미국에서는 공부가 부족한 상황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사는 게 뭔지>가 엄청난 사랑을 받고, 또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 결국 한국에서 가수 인생을 살게 됐죠. 그때 인기는 정말 상상초월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불법 유통도 심했거든요. 심지어 불반음반협회 회장이라는 분이 전화하셔서 고맙다고 우리를 살렸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하하. <사는 게 뭔지>와 아내가 저를 한국에 주저앉힌 셈이 됐죠.

하나님이 때마다 인생의 항로를 바꾸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고요. 또 저를 드러내셨어요. 또 저를 잠잠하게도 하셨고요. 때로는 공황장애로 오래 아프게도 하셨고, 또 다시 살아나게도 하셔서 돕는 인생에 눈을 뜨게도 하셨죠. 특히 최근 10년 동안 저를 많이 바꾸셨어요. 10년 전쯤 봄에 불을 보는 꿈을 꿨어요.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해요. 그런데 꿈을 꾸고 나서는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밥도 못 먹을 정도였죠. 며칠 지나서 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웃으시며 “하나님이 너를 성령의 불로 정금 같이 새롭게 만드시는 꿈이네”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 듣고 편안해졌어요.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과 함께 그때부터 인생의 흐름이 바뀌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목회자요 신앙인이고, 하는 일마다 사역으로 연결됐어요. 하나님이 계속 비전과 계획을 심어 주시는 거예요. 꿈 이야기를 친한 장로님께 말씀드렸더니 “이제 하나님 부르시면 모른 척하고 따라가세요” 하시는 거예요. 무조건 헌신하라는 말씀보다 그 말이 그렇게 힘이 되고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그 뒤로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여러 모임에서 예배할 기회가 많아졌어요. 그러던 중에 연예인 연합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연예인 합창단을 만들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심지어 당장 나가서 선포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머뭇거리고 있는데, 마침 이성미 집사님이 광고를 하다가 갑자기 저를 부르면서 함께 나눌 말씀 있으면 나누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 깜짝 놀랐죠. 모른 척하고 나가서 그날 주신 마음을 나눴어요. 그랬더니 다들 좋아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30명이 순종하더라고요. 그래서 연예인 합창단 ‘ACTS 29’가 탄생하고 제가 단장으로 섬기게 된 거예요. 온누리교회 사역을 함께하면서 미자립교회를 섬기고, 큰 교회에서도 공연하고, 정기 공연하고, 앨범 내고, 몽골 선교도 가고 아이티도 섬겼어요. 하나님이 풍성한 기회를 주신 거죠. ACTS 29는 제게 가장 소중한 사역이 됐어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역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시는군요.
그렇죠. 목회자나 선교사뿐 아니라 평신도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맡기실 사역이 있다고 생각해요. 부르심에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물론 그 사이에 참 마음 아픈 일들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소천하시고, 다음 해에 바로 아버지도 돌아가셨어요. 지난해 10월에는 형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부모님 떠나시고, 형님마저 잃고 나니 몸의 반쪽이 잘려 나가는 느낌이더군요. 게다가 석 달 후에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저보다 10살 아래 막냇동생이 코로나19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어요. 막내는 정말 신실하게 남을 도우며 살았고, 제게는 믿음의 동역자였거든요. 동생마저 떠나고 나니 제 온몸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교인과 목사님들이 오셔서 천국 환송에 함께해 주셨어요. 갑자기 형제 둘을 잃고 나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새벽예배를 떠날 수가 없었어요. 새벽예배를 드리는데 평소와 달리 2층에 앉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1층에 형이 예배 때마다 늘 앉던 자리가 있어요. 그 자리에만 빛줄기가 비추는 거예요. 너무 깜짝 놀라서 사진을 찍었어요. 천국 가는 길이 열리듯 빛줄기가 비추는데 하나님이 위로하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동생하고 이야기하면서 많이 울었죠. 합창단 형제들, 교회에서 제가 멘토로 섬기는 청년들, 그들이 제가 슬퍼할 틈도 없이 위로하고 기도해 주었어요. 어찌나 힘이 되던지요. 그 이후로 저도 슬픔을 겪는 친구들에게 항상 가서 위로해 주고 그래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사역이 내 평생의 사역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의 희로애락을 들어볼게요.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자식을 낳았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어요. 처음 아들을 보는데, 눈이 깊더라고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손님처럼 느껴졌어요. 손님을 잘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물론 그 마음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저에게 주신 선물, 아들을 처음 본 순간은 제 인생 최고의 기쁨이에요.

인생에서 화가 나고 억울했던 순간은? 그럴 때가 있으세요?
즐거움도 가족에게서 오고 속상한 것도 가족에게서 오는 것 같아요.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는 공들인 만큼 거두기 마련인데, 가족은 그런 공식이 성립하지 않잖아요. 무엇보다 가족과 오해가 생겼을 때, 그로 인해 힘들어 하는 제 자신에게 화가 나죠. 부모형제가 제 곁을 떠나고 나니 더 그런 것 같아요. 누구 하나 내 편이 없는 것 같고, 내가 뭘 잘해도 칭찬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제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제가 먼저 인정해 주고 나도 위로받는 그런 가정이 되어야 하는데, 제 마음을 몰라주고, 저도 식구들의 마음을 몰라준다 싶으면 그런 저한테 좀 화가 나네요. 하하.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부모님과 형제들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던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에요. 심지어 막냇동생까지 보내려니 정말 이래서 정신을 놓는구나 싶었어요. 그때 새벽기도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주셨어요. “너는 혼자만 천년만년 살 것처럼 왜 그렇게 슬퍼하니? 너도 곧 여기로 올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라. 가족과 친구들과 허락된 시간 동안 내가 준 기쁨으로 재미있게 살다가 마음 편히 오너라.” 그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천국은 정말 좋겠죠?”라고 고백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미국에 사는 여동생하고 자주 나눠요.

내 인생에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하나님께 찬양할 때가 가장 즐겁죠. 목 놓아 부르는데, 이게 울음인지, 찬양인지 모를 때가 있어요. 온전히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릴 때가 가장 행복해요. 남김없이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가 가장 즐거워요. 함께 노래할 ACTS 29 합창단이 있어서 참 감사하죠.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본다면 ‘이무송’이라는 인생 책의 다음 챕터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요즘은 제주도를 보며 기도하고 있어요. 제주도에 크리스천 예배 음악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음악적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그런 가르침을 주는 곳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번에 <사랑합니다> 신곡 작업을 하면서 절실히 느꼈어요. 공연장도 열어서 제주도에서 쉼과 안식을 주는 공간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이번에 받는 목 디스크 수술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건강 되찾아서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쓰실지 기대하면서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과 함께한 60년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나 같은 죄인마저 쓰시는 하나님! 정말 이 땅에 하찮은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라도 사랑하고, 누구라도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시기 원하세요.

저를 비롯한 「빛과소금」 독자들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질문 하나 해 주세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주님은 도적같이 오십니다. 내가 떠나는 마지막 자리, 마지막 모습 어떻게 남기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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