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시원하고 청량한 세 편의 ‘여름 맛’ 영화, 만나 보셨나요?

issue 2021년 08월호 이토록 시원하고 청량한 세 편의 ‘여름 맛’ 영화, 만나 보셨나요? 글 장다나

지긋지긋한 여름이 돌아왔다. 적어도 나에게는.
8월 태생인, 그러나 유난히 더위를 잘 먹는 나는 매년 여름이면 연중행사처럼 한두 번씩 풀썩 쓰러지는 경험을 한다. 회의하러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휴갓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다가 스르르 꼬꾸라져 버리는 잔인한 여름.
누군가는 가장 활기 넘치고 신나는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더위에 취약하고 활동적이지 않으며 습기와 모기에 스트레스 받는 나에게 있어 최고의 피서지는 단연코 ‘극장’이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대부분 홈시어터에 의존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와 같은 ‘프로 집구석러’들을 위한 여름 영화 세 편을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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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가족 사랑을 만나는 여름
태풍이 지나가고

동시대 가족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주는 감독이라면 단연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꼽는다. 사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국내 제목이고, 일본어 원제를 직역하면 ‘바다보다 더 깊은’ 이다. 영문 제목이 ‘after storm’임을 생각할 때, 제목처럼 영화는 태풍이 치는 어느 날 다시 모이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사려 깊은 일상의 언어로 차분하게 담아낸다. 전작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을 통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궤적을 담아 온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도 반복되는 사소한 풍경을 앞세워 관계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태풍이 지나간 후 왠지 맑아진 듯한 길거리의 모습을 떠올린 감독은 계속해서 찾아올 다툼과 역경에서도 그 시기를 넘기면 찾아오는 평온과 고요함을 기억하며 오늘도 함께하는 ‘가족’의 모습을 떠올린 듯하다.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언제 이렇게 인생이 꼬였나 답답해하는 못난 아버지이면서도 항상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은 인물이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고 아빠와의 관계는 날로 어색해진다. 영화는 싱고를 바라보는 료타로 하여금 그 옛날, 어린 자신을 바라봤을 죽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한다. 그렇게 닮기 싫어했던 아버지이지만 어느 덧 아버지를 닮아 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자신이 아들에게 가진 미안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이 자신의 아버지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의 시간을 마주한다. 특히 이 영화는 폭풍이 내리치는 동안 잃어버린 복권을 찾기 위해 온 가족이 비를 맞으며 아파트를 뛰어다니는 장면이 압권이다. 아무리 다투고 멀어졌다 하더라도 역경 속에 함께 폭우를 기꺼이 맞아 줄 수 있는 가족이라니. 폭풍이 지나고 다시 이들은 좀 전처럼 어색한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또 다른 폭풍이 다가오겠지만 그때도 역시 함께 비를 맞고 뛰어 주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가족이란 이름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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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지키는 청량한 여름 메뉴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는 단연코 필자의 영혼을 살찌우는 최고의 영화이다. 서울로 올라와 취업에 연이어 실패하고 편의점 음식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혜원(김태리)이 이끌리듯 돌아가게 된 곳은 예전 엄마와 함께 살던 시골집이다. 엄마는 혜원이 성인이 된 후 홀연히 집을 떠났다. 엄마와의 기억을 순간순간 떠올리며 혜원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이 집에 머무른다. 하는 일이 많지 않아 보여도 꽤나 고되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농작물을 기르고, 한 끼를 만드는 데 수고와 노력을 아낌없이 붓다 보면 하루가 지난다. ‘다시 서울로
안 가냐?’라는 주위의 말에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지만 이미 이곳은 회색 도시의 어디에서도 줄 수 없는 치유와 회복이 있다.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누이고 작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나는 매시간은 혜원에게 가장 큰 위로로 다가온다. 특히 차가워 보이지만 맑고 투명한 계곡물과 툇마루에서 느끼는 선선한 여름 밤바람의 정취 그리고 자욱하게 깔리는 듯한 풀벌레 울음소리까지. 하지만 이 영화 최고의 압권은 단연코 혜원이 펼치는 건강하고 정성 가득한 음식들의 향연일 것이다. 정겨운 알배추 전, 시원한 콩국수, 포근포근 수제비, 고소한 아카시아 튀김, 달콤 바삭한 크림브륄레, 그리고 청량한 식혜 한 모금까지. (갑자기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이 음식들은 눈과 입을 호강시켜 줄 뿐만 아니라 무더운 마음까지 식혀 주고, 다투고 토라진 친구 관계를 이어 주며 음식을 통해 진심어린 마음을 나누는 훌륭한 도구로 등장한다. 진심을 담은 음식 그리고 마음. 이는 어딘가에 있을 혜원의 엄마에게도 전해지지 않았을까?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순간을 통해,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막 지은 따끈한 위로 한 술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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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을 떠올리게 하는 여름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이토록 아름답고 투명한 여름 영화가 또 있을까?
찬란한 기억을 그린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일본의 작은 마을 고조시의 푸른 하늘과 여름빛을 하나 가득 담고 있다. 한국과 일본 합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일본이 자랑하는 씨네아스트 가와세 나오미가 제작으로 참여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두 파트로 나뉜다. 1부는 고조시의 흘러간 이야기를 영화감독 태훈(임형국)의 시점을 따라가며 담고 있고, 2부는 감 농장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와 여행자 혜정(김새벽)의 설레는 감정으로 채워진다. 이 두 챕터는 서사적으로 서로 관계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각 인물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 묘하게 겹치거나 인근의 공간을 서로 스쳐 지나가는 등, 마치 두 이야기 세계가 각각의 시간과 공간을 통과해 공존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배경이 되는 고조시는 일본 나라현 남서부에 위치한 소도시이다. 장건재 감독은 이 당시를 생각하며 “마을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편하게 촬영했다”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곤 했는데, 실제 이런 고요함은 대다수의 인구가 삶을 위해 모두 도시로 떠나 버리고 적막함만 감도는 고조시의 쓸쓸한 이면을 느끼게 한다. 사람이 없는 마을. 그리고 사라져 가는 도시의 이야기. 극 중 태훈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곳의 흘러간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 같은 옛 이야기는 어느 덧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가는 한 마을의 찬란한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 그에 비해 2부는 두 남녀의 설레는 정서가 다채로운 감각으로 쌓여 가며 사라져 가고 있는 이 도시에 새로운 기억과 추억을 선물한다. 고조시의 기억을 소환하고자 한 태훈이 있다면, 그 기억을 재현하는 ‘무대’로 고조시를 채워 가는 두 남녀가 있다. 과거와 현재, 젊음과 노쇠함, 떠난 이와 남아 있는 이, 소멸과 생성 그리고 생과 사.
이는 극중 유기적인 방식으로 공존하는 태훈과 두 남녀처럼 결코 다른 의미가 아닐 것이다. 결국 영화는 잊히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들을 한 여름 따사로운 정취를 입은 시선으로 고요하게, 그저 바라만 본다. 
아. 찬란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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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나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외래교수, 영화진흥위원회 객원연구원으로 영화교육 및 비평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 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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