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나는 ‘홈, 스위트 홈’

issue 2021년 07월호 길 위에서 만나는 ‘홈, 스위트 홈’ 글 장다나

내가 지인들과 공동주택을 짓고 산지도 벌써 6년이나 되었다. 그 시작에는 당시 내가 몸담았던 교회가 있었고 지금은 공중분해 되었다. 모두 어중간하게 흩어진 채로 말이다. 


공동주택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 동안 멤버들이 고민하던, 일종의 공동체성에 대한 실현이었다. 청년 시기부터 다양한 기독교 문화 사역에 함께 힘써 온 멤버들이 결혼이나 학업, 육아로 인해 열정을 내기 힘든 난곡의 시기를 통과할 무렵, 한 멤버가 집을 지어 보자는 제안을 했다. 고된 일상의 한 켠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공동 육아 및 지역 문화 확장에도 이바지하는 삶이라는 빅 플랜을 제안했을 때, 이 교회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는 같은 무게를 가진 두 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하나는 ‘의미 있는 삶의 실현’이 가져다주는 설렘이었고, 또 하나는 ‘더 이상 전세살이로 떠돌며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커다란 안도감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집을 가져 본 적 없는 노마드 40년 인생에 주거 안정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와의 이상적 소통의 삶이 가능하다니. 그날 멤버의 제안은 눈물 날 정도로 내 맘을 흔들었고 평생 가져 보지 못한 안정과 정착이라는 이름이 눈앞에 형체를 드러낸 것만 같았다. 물론 집을 짓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말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어쨌든 온갖 사건·사고를 거친 후 집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안 가 교회는 분열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토록 외치던 공동체의 삶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시점과 정확히 마주하는 균열인 것이다. 사실 이 균열은 집의 문제와는 별개로 오랜 시간 동안 멤버들 사이에 존재하던 서운함과 안타까움, 실망 같은 감정들이 적당한 시기에 폭발한 것뿐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꿈꿔 왔던 모든 이상들도 떠나가는 멤버들과 함께 하나둘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집에 남아 있는 멤버들은 어떠한 꿈도 예전처럼 다시 이야기할 수 없었다. 꿈을 꾸는 순간 무너져 내릴 것을 두려워했고 자칫, 마지막 남은 이 집마저도 사라져 다시 전세살이, 아니 월세살이로 떠돌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나는 며칠 간격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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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논픽션 소설 <노마드랜드>에서 시작하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는 삶의 터전을 잃은 펀(프랜시스 맥도먼드)과 길 위의 삶을 선택한 유랑인들의 이야기이다. 감독은 펀을 연기한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브 역의 데이비드 스트러세언을 제외하고 실제 노마드의 삶을 사는 이들을 등장시키며 영화의 정체성을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올려놓는다. 이는 현실 속 노마드 라이프의 리얼함을 최대한 정교하게 묘사하기 위한 감독의 의지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는데 극중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도 이런 집요함을 발견할 수 있다. 

 

때가 되면 계절성 일거리를 찾아 아마존 물류창고, 테마파크, 캠핑존을 돌며, 끊임없이 떠도는 미국 중서부 노마드들의 일상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계획 없이 무작정 떠도는 삶이 아닌, 그들 나름의 규칙과 목적 그리고 정해진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더불어 노마드들의 발길이 닿는 대자연의 숭고함을 조망하는 시점을 제외하면 일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차를 고치는 등 특별한 사건·사고랄 것도 없는 그들의 일상과 다양한 생각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소박하게 재현되는 이들의 생활상과는 달리 <노매드랜드>가 노마드, 즉 유랑의 삶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극중 <노매드랜드>가 품고 있는 세계는 크게 두 줄기로 나뉜다. 하나는 2011년 US석고 네바다 엠파이어 공장이 88년 만에 폐쇄된 후 그 지역 우편번호 ‘89405’가 폐지된 실제 사건으로부터 시작하는 세계이다. 미국 내 경제 위기로 한 순간에 실직자가 되어 버리는 사건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08년 리먼브라더스 금융사태, 극중 언급되는 부동산 투기와 관련된 대화만 떠올리더라도 약자들을 위한 어떠한 보호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는 사회구조 저변에는 강제적 노마드로 떠밀려진 사람들이 실존함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는 이런 미국의 실상에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3대째 제네럴모터스 플린트 지부에서 일하는 감독의 가족은 어느 날 공장 폐쇄 통보를 받는다. 지역민들을 앞세워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겠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영화는 전 지역민이 해고되고 쑥대밭이 된 상황에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제네럴모터스의 회장 로저 스미스를 찾아 나서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는다. 

 

결국 이 모든 배경을 흡수하고 시작하는 <노매드랜드>는 ‘과연 이 시대의 정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관객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인류의 시작부터 정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전쟁과 살육의 자리 그 끝에는 땅을 차지하는 자와 쫓겨나는 자가 있다. 극중 펀의 언니는 말한다 “미국의 전통을 잇는다는 점에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랑민들은 같다고 믿어.” 실상 이는 미국의 건국신화 이면에 존재한 참혹함에 대한 씁쓸한 은유로 들린다.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죽음 위에 세워진 미국의 정체성 안에는 내쫓긴 이들의 유령이 여전히 떠도는 것일까. 이는 21세기 강제적 노마드의 삶을 살게 된 우리의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터전, 보금자리, 안식처나 고향이라는 의미 대신 부동산, 땅값, 건물주, 투기 등으로 2021년을 통과하는 대한민국, 그리고 그 너머 존재하는 무수한 위협과 죽음, 슬픔으로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노마드 라이프를 향해 연민의 시선을 던지거나 혹은 그들의 자유를 찬사하는 여유는 보여 주지 않는다. 이것이 <노매드랜드>가 품은 두 번째 세계이다. 오히려 이 세계는 진정한 집,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는 우리의 만남과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품는다. 길 위의 삶을 선택한 펀은 왜 집이 없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벤에 살고 있어. 집이 없는 게 아니야. 집이 없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집 자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공간이자 자본주의의 이기심으로 변질된 집(house)이 아닌 내면의 안식처로써의 집(Home)이 된 그녀의 벤은 완벽하게 합일된 집의 의미, 그 자체가 된다. 물론 어느 누구도 ‘집’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끊임없이 유랑하는 벤은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며 점차 진정한 집으로 변화하고, 이별한 남편에 대한 상실감을 붙들고 있던 펀은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게 되는 길 위의 삶을 통해 영원한 이별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펀은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마지막 남은 그녀의 살림살이들을 홀가분하게 처분한다. 그저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터. 이는 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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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나는 그렇게 집에 대한 희미한 불안의 감정에 휘둘려 3년을 지냈다. 마음 둘 곳 없이 이리저리 유랑하던 어느 날, 시간이 어렴풋이 다른 세상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고 느낀 건 힘든 일과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만난 어떤 생경한 풍경 때문이었다. 서로 섞여 나뒹굴고 있는 신발, 그리고 빗물을 말리기 위해 펼쳐 둔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바쁜 일상으로 인사조차 하기 버겁지만, 여전히 이곳에 함께 남아 힘든 몸을 함께 누이는 멤버들의 흔적. 그리고 떠오르는 얼굴들. 


아, 나는 이 ‘집’에 사는 것이 아닌, 지금껏 ‘이들’에 살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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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나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외래교수, 영화진흥위원회 객원연구원으로 영화교육 및 비평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 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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