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융복합의 시대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저 기술만 있다면,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예술적 느낌을 주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감성이 없는 기술은, 그저 특이한 물건 취급받기 십상이란 말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를 받는 애플의 아이폰을 생각해 보자. 아이폰 이전에도 스마트폰은 있었다. 윈도우 모바일 OS를 이용한 휴대전화나, 블랙베리 등이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했다. 물론 시장 점유율은 미미했다.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은 그저 특별한 사람들이 쓰는 특이한 물건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이폰은 휴대전화 시장 판도를 뒤집었다. 스마트폰이 일반 휴대전화 시장을 압도하게 했다. 터치스크린, 감각적인 화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 아름다운 디자인 등이 이뤄낸 파란이었다. 기술과 예술적 감각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아이폰의 등장이 '기술과 감성이 융합해 만들어 낸 혁신'이라고 지금도 평가받는 이유다.

한국 사회도 융합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기회가 융합 기술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융합 기술은 단순히 스마트폰 제작을 넘어선다.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조미나 연구원은 음향과 뇌, 심리를 복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시대를 열어갈 조미나 연구원의 일과 신앙, 꿈꾸는 미래를 들어보았다.

취재 경소영 / 사진 김주경

 

​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인지신경과학 박사 과정에 있는 조미나 연구원입니다.

 

-인지신경과학이라니 너무 어렵고 멀게 느껴지네요. 지금 연구하고 계신 분야를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인지신경과학 중에서 청각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어요. 인지신경과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대부분 시각과 뇌 활동을 연구하는데, 저는 소리에 관심이 많아서 청각 분야를 선택했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그런 장면이 나오잖아요. 뇌전도를 확인할 수 있게 머리에 무언가 쓴 사람이 나오고, 과학자들이 뇌파 등을 확인하는 모습. 쉽게 상상하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소리가 뇌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신다고 하니, 왠지 신선한데요. ‘우울할 때 들으면 더 우울해지는 노래’ 같은 노래가 생각나네요.

맞아요. 청각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청각에 관련한 재미있는 현상도 많아요. 심리학에서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는 용어가 있는데요. 파티의 참석자들이 시끄러운 주변 소음이 있는 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자와의 이야기를 선택적으로 집중하여 잘 받아들이는 현상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와 같이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 또는 ‘선택적 주의’라고 하는데, 이런 선택적 지각이나 주의가 청각에서도 일어나는 것이죠.

또 다른 예로, 누군가와 이별한 후에 괜찮아진 줄 알았던 마음이 어떤 소리나 음악을 들으면 다시 이별할 때 감정이 살아나기도 하잖아요. 제가 연구하는 일은 이렇게 소리 자극을 들었을 때 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것이죠. 이별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소리에 따라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하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뇌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되었나요?

아버지께서 목회를 하셔서 교회에서 자랐어요. 그 안에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찬양을 듣다가 영적인 경험을 한 것이 마음에 많이 남았어요. 소리로서 찬양을 듣고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잖아요. 이런 일이 너무 신기했어요. 음악과 소리에 친숙해진 이유기도 하고요. 지금도 음악을 매우 좋아해요. 작곡도 하고, 다른 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런 토양은 다 교회에서 쌓인 것이죠.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요. 그 시절 저도,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연애하다 이별을 했어요. 그런데 헤어진 연인과 함께 듣던 음악을 들으면 당시 정서, 냄새 등 감정적 질감이 되살아나는 게 신기하더군요. 청각이라는 자극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죠. 심리 현상은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배워서, 뇌 연구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리학에서 배운 뇌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거든요.

 

-인문계열인 심리학에서 융합과학기술 분야로 오기까지 진로 선택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문과, 이과를 두고 고민이 컸어요. 언어 과목과 수학을 모두 좋아했거든요. 문과를 선택한 건 과학 과목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결국 인문계열로 대학에 진학했죠. 대학에서 뇌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것도 과학 수업이 아닌 영문학 수업에서 말이죠. 어학 교과서에 ‘언어는 뇌 활동’이란 설명이 나오는데요. 언어를 처리하는 뇌 부분을 설명한 그림을 봤는데, 마음이 확 끌리더군요.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운명적 만남이었죠. 하하. 그 뒤로 진로를 두고 생각을 많이 하긴 했어요. 방황도 많이 했고요. 중간에는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두고 고민하기도 해서 시험 준비도 했죠.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했던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인문대 졸업생인데 생물, 화학 등을 공부할 수 있었거든요. 작은 지식들이 차츰차츰 쌓이자, 내가 궁금해 했던 주제를 과학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현재 대학원에 진학한 거죠. 청각으로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곳이 한국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지 않아요. 제가 스스로 이곳을 찾아서 공부하러 왔다고 할 수 있어요.

 

-교회에서 쌓은 예술, 대학에서 배운 인문,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과학이 융합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정서에 관심이 많아요. 정서는 연구 주제로 관심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실제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청각이 지각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요. 같은 소리도 정서에 따라 뇌가 다르게 인지할 수 있어요. 음악도 템포나 음의 높낮이로 뇌가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잖아요. 저는 단순하게 ‘그냥 그렇게 느낀다’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뇌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에 따라 변한 정서가 뇌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려고 해요. 문제는 어떻게 과학적으로 측정해 낼 수 있느냐는 것이죠.

 

-여성이 공학을 전공하는 일이 드물 것 같은데요. 어려움은 없었나요?

하고 싶은 걸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있었어요. 사실 대학원에 진학할 때, 가족 반대가 심했어요. 나이도 많고, 결혼해야 한다고 말렸던 거죠. 어머니와 오빠들 모두 반대했어요. 아버지만 빼고요. 아버지는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지지해 주셨어요. 마음으로는 반대하고 싶었겠지만, 사랑하는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공학 연구실이라 남성이 많아요. 연구실에 30명 정도 있는데, 여성은 4명 정도. 물론 자유로운 분위기의 연구실이지만, 여성으로서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어쩔 수 없는 남성 문화 중심이다 보니 적응이 안 되는 부분도 더러 있죠. 여성 공학인을 대하는 편견을 마주할 때도 있고요.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부분에서도 여성이라 느끼는 어려움이 있어요. 사실 교수(특히 공학 교수)는 성별 영향도 크거든요. 일상에서 이런 일을 대할 때면 신앙이 발동해요. 약자에게 하나님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지, 하나님이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는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이런 상황을 통해 나도 약자이고, 다른 약자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요. 약자와 함께하는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 거죠.

 

-여성 공학인의 길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의미에서 여성은 ‘자아실현을 해도 될까?’ 고민하는 일이 무척 큰 게 사실이잖아요. 내 직업을 갖고, 하고 싶은 꿈을 이루는 일이 당연해야 하는데, 아직도 여성들에게 당연하지 않게 다가올 때가 많아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안정적 가정을 꾸리고, 남편 보필하고, 아이 잘 키우는 가치만 요구하기도 하거든요. 남성이나 여성이나 한 인간이고,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에게는 모두 달란트를 주셨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죄책감 느끼는 건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여성이 꿈을 찾아 나서면 이기적이란 소리를 많이 들어요. 남성에게는 그런 이야기 잘 안 하잖아요. 여성이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는데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잘 개발한다는 의미에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궁금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죠. 9월에 있는 시험에서 떨어지면 안 될 것이고, 시험에 합격하면 논문도 써야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잘 진행하고, 연구 성과가 잘 나오면 좋겠어요. 장기적으로는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소리와 정서의 관계를 뇌 연구를 통해 규명했으면 좋겠어요. 미국만 아니라 한국에도 소리 연구자가 거의 없는데, 이 분야에 지평을 넓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요. 후배 연구자들도 잘 끌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이루는 일에도 계속 관심을 두고 싶어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일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