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입니다

issue 2018년 05월호 나는 아버지입니다 글 김성묵

아버지의 자리 

 

한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어린 학생 둘이 나와서 상담을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 어린이가 자기보다 조금 고학년인 여학생 어린이에게 상담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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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 고민이 뭐야?
남학생 : 우리 아빠가 엄마한테 꼼짝도 못해. 그런데 아빠 모습을 보면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가 엄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여학생 : 너희 아빠가 어떻게 꼼짝을 못하니?
남학생 : 음…, 얘기할 때도 밀리고, 음…, 뭐든지 다 밀리는데.
여학생 : 그럼 언제 가장 불쌍해 보여, 아빠가?
남학생 : 아빠는 만날 불쌍해 보여.
여학생 : 해강아(남학생 이름), 엄마가 이겨야 가정에 평화가 와. 원래 엄마들은 괴물이라서 그 누구도 엄마를 이길 순 없어.
남학생 : 너무 불쌍한데 아빠가….
여학생 : 우리 엄마는 우리 집 일기예보야. 엄마 기분이 좋으면 우리 집은 햇볕이 쨍쨍하고 엄마 기분이 안 좋으면 우리 집은 소나기가 와. 너는 아빠가 이겨서 너희 집에 소나기가 오면 좋겠니?”
남학생 : 싫은데!
여학생 : 싫으니까…, (‘엄마가 이기게’라는 말은 하려다 말고) 그냥 내버려 둬. 이제 해결 됐니?
남학생 : 누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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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락 프로그램이라 재미있게 구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가정의 실상, 아버지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그런 내용으로 생각되어 가슴 한 구석이 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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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위에 군림한 아버지

한때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던 대한민국, 그 한국인의 삶을 이끌어 왔던 철학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황금률이었습니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입니다. 강(綱)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1. 벼리(그물코를 꿴 굵은 줄,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
2. 사물을 총괄하여 규제하는 것.
3. 대강(동류의 사물을 구별한 유별).
4. 줄(무엇을 묶거나 동이는 데에 쓸 수 있는 가늘고 긴 물건).

다시 말하면 삼강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내와 남편의 관계의 기본 덕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일방적인 관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왕은 신하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신하는 왕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삶을 책임지고 자녀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하며, 자녀들은 아버지를 따르고 존경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돌보고 아내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따르고 존경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륜은 첫째 군신유의(君臣有義), 둘째 부자유친(父子有親), 셋째 부부유별(夫婦有別), 넷째 장유유서(長幼有序), 마지막으로 붕우유신(朋友有信)입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관계에 대한 원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부 관계의 규례 중 하나로 ‘7거지악’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아내가 시부모를 잘 섬기지 않거나,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질투가 심하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렸거나, 말이 많거나, 도둑질을 하는 경우에는  쫓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강오륜은 훌륭한 관계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그 원리를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적용하게 되면서 결국 부부 관계는 힘의 논리에 의해 명령과 복종, 군림과 순종의 관계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남성 위주의 문화들로 인해 아버지들은 지나치게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가족 위에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결과, 가정 안에 아버지들로 인한 언어적 폭력, 육체적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부재한 아버지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지독한 가난과 전쟁의 후유증 속에서 오직 먹고 사는 데만 몰두해야 했던 아버지들! 그러나 많은 아버지들은 좌절된 꿈과 삶의 고단함으로 분노와 상처로 일그러진 삶을 살았습니다. 가정 경제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의 권위만 주장하는 그런 ‘폭군’ 아버지가 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 상처 속에서 자란 아들들은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심 속에 어머니의 헌신적인 돌봄으로 공부하고 산업전선에 나섰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아내와 연합하라(창 2:24)는 하나님의 명령과 달리, 그 아들들은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와 함께 아내한테 가는, 그래서 온전한 부부 연합을 이루지 못하는 그런 아픔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가정 경제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잘 살기 위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남성 문화들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했습니다. 가정을 등한시하는 일 중심의 문화, 남 눈치를 보고, 남을 우선시 하고,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가족들과 거리를 두는 체면 문화, 잘못된 성 문화, 술을 마셔야 남자라는 술 문화, 남성 위주의 레저 문화, 언어와 육체적 폭력 문화 등, 그런 문화적 DNA가 흘러 내려갔던 것입니다. 늘 산업 현장에 나가 있는 아버지, 가정에서의 역할 부재로 밖으로만 나도는 아버지,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아버지, 그래서 ‘부재’의 아버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이 불평을 이야기하려 하면, ‘뭣이 부족해서 그래? 난 어떻게 자란 줄 알아? 너희들 복에 겨워서 그러지. 가난이 뭔지나 알아? 내가 너희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라고 윽박지르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불통’의 아버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모든 가정의 중심은 어머니에게로 이동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나이 들어 은퇴할 때가 되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화, 정보화가 계속되면서 1960년대부터 개성,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주의로 인해 종교다원론 등 다양한 이념이 대두가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 운동, 제3세계 운동을 촉진시켰습니다.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되었고 그에 따라 한국의 가정 시스템에도 급속한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눌려 지내 왔던 아내들은 그 상처와 분노를 표출하며 가정 내에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고, 여성의 사회 진출도 활발해졌습니다. 가정 경제 주도권도 서서히 분산되거나 이동되어 갔습니다. 연속극, 뉴스 등 매스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부정적 아버지의 모습으로 인한 가정 문제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가정 경제를 통해서 절대적이었던 아버지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고개 숙인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쯤 “아버지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자각 운동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 바로 ‘두란노아버지학교’ 운동이 있었습니다.

 


IMF 시대의 아버지

1995년 아버지학교가 시작되던 때만 해도 아직 아버지하면, 가부장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곧 가정의 법”이라고 주장하며 사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그들을 ‘라스트 카우보이’ 혹은 ‘라스트 사무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고개 숙이는 아버지들이 많아졌습니다. 1996년 평범한 50대 아버지가 친구 병원에 들렀다가 췌장암으로 5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가정 내에서 아버지가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룬,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라는 소설이 많은 아버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어떤 아버지들은 이 책을 눈물로 읽으며 책을 사서 아내와 자녀들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이어 1997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IMF 사태의 아픔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가계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아버지들, 그런데 직장에서 내몰리는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게 되었고, 그 거리에서 비틀거렸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아버지학교를 찾았고, 그들은 집(House)이 아니라 가정(Home)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습니다. 넓은 평수, 좋은 가구 등 하드웨어(Hardware)적인 것에만 신경 쓰고, 사람과 관계 등 소프트웨어(Software)를 도외시했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찾아서

요즘 ‘프랜디’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영어 단어 친구(Friend)와 아버지(Daddy)의 합성어입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이제는 예전의 아버지들처럼 그렇게 폭군, 부재, 불통의 아버지로 살지 않고 친구 같은 아버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네 가지 요소, 즉 왕, 전사, 스승, 친구 같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왕같이 권위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하고,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하고, 지식과 삶으로 가르쳐야 하고 진실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어진 왕, 위대한 전사, 참된 스승, 진실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한 문화인류학자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의미가 왜곡되고, 아버지의 이미지가 훼손되면서 이 세상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 좋은 아버지가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좋은 남편이 되십시오! 좋은 남편이 되지 않고,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값진 최고의 선물은 그들의 어머니인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공감입니다. 공감하는 남편이 되십시오. 둘째,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는 가정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시고, 가장으로서 목자로서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아버지의 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울타리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성공도 아버지로서의 실패는 보상할 수 없습니다. 셋째, 아버지로서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아버지는 자녀들의 거울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통해 세상을 보며,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자녀들에게 늘 미소를 지으십시오. 세상이 알 수 없는 사랑과 평안으로 가득 찬 미소를 보이시고, 어떠한 어려움이 몰려와도 그 미소를 잊지 마십시오. 자녀들은 고난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높은 자존감과 자부심을 갖고 험한 세상을 이겨 나갈 것입니다. 넷째, 깊은 영성으로 아내와 자녀를 이끌어 가십시오! 영성의 다른 이름은 관계이며 소통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며 자녀들과 소통하십시오.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이며, 영적인 권위입니다. 아버지가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 아버지를 자녀가 경험하고 그들의 인생의 인도자로 믿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아버지가 되는 길은 남성으로 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최고의 기쁨입니다. 다섯째, 남자로 태어나서 남성이 되고, 남편이 되며, 아버지가 되는 길을 배우셔야 합니다! 배운 만큼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일 이 땅의 아버지들이 가정을 경영하듯 기업을 경영했다면 이 땅의 거의 모든 기업들이 부도가 났을 것이다.” 아버지 당신은 관계이며 영향력입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잠 17:6).

 

 


김성묵은 (사)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이사장이다. 전 세계 66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버지학교를 이끌고 있다. 저서로 「아버지 사랑합니다」, 「좋은 아빠되기 프로젝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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