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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온 세계에 하나님이 드러나는 시간, 하나님의 Show Time
2011 미스코리아 진 이성혜 | 2012년 11월호
  • “이 모든 영광을 저를 이 자리에 세우신 저의 하나님께 돌립니다”. 작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진’에 당선된 그녀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침착하게 내뱉은 한 마디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지금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또 다른 ‘쇼 타임’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저 예쁘기만 한 미스코리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단련된 후 ‘정금같이 나온’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이다. 

    글/ 한경진 기자

     

    말씀 한 구절 암송에 천 원씩

    저희 집은 신앙적으로 엄격한 집안이에요. 저희 조부모님은 선교사이셨고, 아빠는 의사이신데, 전국 곳곳에서 간증을 하시며 청년 사역을 하고 계세요. 그 아래서 저는 5대째 신앙을 물려받았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아빠는 저보다 도와야 할 청년들에게 더 관심이 있으셨어요. 제가 크레용을 사 달라고 해도 “이 돈으로 언니한테 장학금 주자.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거야”라고 말씀하셨죠.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그걸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그때 사실 저는 크레용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빠를 빼앗긴 기분에 더 떼를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매일 말씀을 한 구절씩 암송할 때마다 1,000원 씩 주셨죠. 그걸로 용돈을 모아서 쓰곤 했고요. 그렇게 신앙적으로 엄격하게 자랐기 때문에 저에게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라기보다는 ‘딱딱한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일뿐이었어요.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할 때, 찾아오신 하나님

    그렇게 지내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혼자 유학을 갔어요. 아빠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실 거다’ 하시며 저를 보내셨지만, 저는 내심 해방된 기분이었죠. 말씀 암송을 할 필요도 없고, 예배에 빠지고 친구랑 놀러가기도 하고, 가정 예배도 안 드리니까 24시간이 제 시간이더라고요. 그렇지만 유학 생활이 쉽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치이고, 외롭고 힘들었죠. 그때 제가 찾은 건 ‘친구’였어요. 제가 힘들 때, 아플 때, 옆에 있는 건 가족이 아니라 ‘친구’더라고요. 친구한테 목숨을 걸다 보니 하나님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정말 부모님이 뿌리신 기도의 힘은 무서워요. 하나님은 저를 그렇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시더라고요. 어느 날 믿었던 친구들이 배신하고, 가장 친했던 친구가 저를 무시하고, 험담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제 공허함과 외로움을 친구로부터 채웠는데, 오히려 그 친구들 때문에 더 마음에 큰 구멍이 생긴 거예요. 그 일로 울던 와중에 찾은 게 바로 ‘하나님’이었어요. 묵상을 하던 중에 어릴 때 외운 말씀들이 하나씩 생각나면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만져주셨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 사람에게 소망을 두는 게 아니구나.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은 아니야.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두어야 하는 거구나’

     

    고3 때 진로를  바꾸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에는 제가 하던 공부에 정말 열심을 냈어요. 저는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었고, 미국에서 정말 좋다는 예술중학교와 예술고등학교에 다녔어요. 그런데 연주자들은 무대에 선 5분 동안 모든 걸 평가받기 때문에 실수에 민감해지죠. 그러면서 제 안에 ‘이 순간에 완벽해야만 소중할 수 있어. 이렇게 보여야만 내가 가치가 있어’라는 강박관념과 완벽주의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남들이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1등을 하지 못하면 들어가서 울었고, 제 안에 점점 감사가 사라졌죠. 무대에서 연주자가 아닌 예배자로 서겠다는 제 결심은 온데간데없어진 거예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부모님께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부모님도 황당하시죠. 음악을 하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희생을 하셨는데, 대학 문 앞에서 안 하겠다고 하니까요. 처음에는 엄청 반대하셨는데, 결국 설득당하셨어요.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할 수 없어요. 감사할 수 없고, 찬양할 수 없는데 어떻게 바이올린으로 영광을 돌리겠어요”라고 하는 말에 “그래, 네 말이 옳다. 네가 원하는 걸 해”라고 하시더라고요. 

     

    “열심히 했는데... 결국 안 되더라고요”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제가 찾은 진로는 ‘의사’였어요. 평소에 아빠가 의료 사역 하시는 걸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은 바로 저거다’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4살 때부터 음악만 하느라 공부해 본 적이 없지만 정말 악착같이 1년 동안 공부를 했어요. 결과는 의대를 갈 수는 있지만, 소위 말하는 ‘아이비리그’에 갈 만한 수준은 아니었죠. 또 만족하지 못하고 저는 다시 기도했어요. ‘하나님, 남들보다는 늦었지만 1년 동안 정직한 땀과 노력을 다 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겠습니다’라고요. 그 날부터 매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도서관에서 편입 공부만 했어요. 그리고 결국에는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만들고 말았죠. 교수님들도 걱정 말라고 하실 정도로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학교에 떨어졌어요. 저보다 성적이 안 좋은 친구는 붙었는데, 저는 지원하는 학교마다 다 떨어진 거예요. 

     

    “하나님이 어떻게 제 뒤통수를 때리실 수가 있어요!”

    하나님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곧바로 다 관두고 짐을 싸서 한국에 있는 기도원에 들어갔죠. ‘하나님이 이 상황을 이해시켜 주실 때까지 산에서 안 내려가겠다!’고 땡깡을 부렸어요. ‘다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저한테 그러실 수가 있어요!’ 하면서요. 그런데 야속하게도 기도원에 있는 내내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은 “딸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였어요. 그런 말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요. “알아요. 아는데, 그래도 이건 이해시켜 주셔야 해요. 아니면 보상을 해 주시든지요”라고 울부짖었죠. 그래도 하나님은 그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만 계속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괴로운 몇 주일을 지내면서 제 안에 작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내가 행복하지 않나?’,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나?’라는 생각이요. 돌이켜 보니 그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했지만, 더 가치 있게 살려고 아등바등 살아왔던 거예요. 그때, 모든 걸 내려놓고 제 진로를 다시 생각했어요. ‘내가 행복한 것, 하나님 안에서 기쁘게 찬양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말이에요. 그건 누군가를 꾸며 주는 일이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꾸며 주면서 좋아하던 제 모습이 생각난 거죠. 그래서 무작정 디자인학교 입시를 준비했어요. 이번 1년은 지난번처럼 공부하지도 않았고, 학교도 미국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3곳에 지원했어요. 아마도 ‘이번에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 보세요’라는 조금 심술 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엄두도 못 낼 그 세 학교에 모두 합격시켜 주신 거 있죠.

     

    웬 미스코리아? 저 아빠가 내 아빠 맞나?

    디자인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너무 행복했어요. 그동안은 저 자신을 죽이면서 열심히 노력해 왔다면, 이제는 제가 피어나는 시간이었어요. 교수님이 제 작품을 찢으며 무시해도 전혀 상처받지 않았어요. 제 안에 완벽해지려는 강박관념들이 하나씩 치유되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행복하게 공부하던 저에게 어느 날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딸아, 이제 하나님의 때다. 미스코리아에 나가 봐라” 저는 너무 이해가 안 됐어요. 그동안 보이는 것에 대한 상처 때문에 힘들었던 저에게 수영복 입고 사람들 앞에서 걸어 다니고, 외모로 평가받아야 되는 자리에 가라고 아빠가 권하다니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 사람들과 말씀을 통해 제게 ‘순종’에 대한 말씀을 주시더라고요. 결국 순종하는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기로 했죠. 그런데 ‘미스 서울’ 대회는 막상 4월인데, 1월까지만 해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거예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한창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전도서 3장 11절 말씀을 주셨어요. 하나님의 때에 대한 말씀이었죠. 그 말씀을 받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으니 하나님께서는 몇 주 사이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고, 좋은 곳을 알게 해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나간 미스 서울 대회에서 ‘진’이 될 수 있었죠. 저는 ‘미스 서울’ 왕관이 미스코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서울 후보들 중에서 제가 진이 될만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미스코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믿지 못하고 흔들리던 저에게 주신 약속이었죠. 그때부터 하나님이 하시는 이 일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어요.

     

    ‘모든 영광을 저를 이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미스코리아 합숙 기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하루에 2시간만 자고 14시간 동안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고, 몇 시간 씩 워킹을 하는 고된 생활을 하면서도 늘 웃고 있어야 했죠. 너무 힘들어서 우는 사람들도 정말 많은데, 그 힘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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