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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명랑권사(?) 이희경, 그녀는 뼛속까지 개그우먼
개그우먼 이희경 | 2011년 08월호
  • ‘큰빛교회 이희경 권사님’, ‘<우리 성광 씨가 달라졌어요>의 훈육 선생님’. 개그우먼 이희경을 설명하자면 이 몇 가지 코너가 떠오른다. 아이디어 싸움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코미디 방송계에서 이제 1년 조금 넘은 신인이 이런 이름값을 가지게 되다니. 얼마나 노력했을까? 얼마나 고민했을까? 안 봐도 뻔할 것 같은데,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순간 그 노력과 고민 뒤에 슬픔, 은혜, 감사, 간증이 숨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취재/ 한경진 기자·사진/ 한치문 기자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저는요. 중, 고등학교 때가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어요. 초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러고 나서 집의 물건들이 다 차압되고, 저희 식구는 빚만 엄청 껴안은 채로 거리에 나앉게 됐죠. 

    그때부터 최근 3-4년 전까지 10년 넘게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신문 배달, 족발 써는 일 등 안 해 본 일이 없이요. 그래도 감사한 건, 하나님께서 저에게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주셨다는 점이에요. 저는 완전 ‘캔디 스타일’이었거든요. 정말 친한 몇몇 친구들을 빼고는 제가 그렇게 어려운 환경인 줄 모를 정도였어요. 심지어 사람을 좋아하고, 쾌활한 성격이라 중학교 때는 전교 학생회장도 했었죠.

    그때 엄마가 김밥을 말아서 파셨는데요. 사생대회나 소풍 같은 찬스만 있으면 1반부터 끝반까지 다니면서 “우리 엄마 김밥 하는 거 알지? 원래 1,300원인데, 너희는 특별히 1,000원에 해 줄게!”그러면서 장사에 한몫하기도 했죠. 그 정도로 명랑한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남몰래 교회에서 울던 어린 희경이

    “사실은 저도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더구나 집안 사정이 점점 더 안 좋아져서 손바닥만한 가게에서 의자를 붙여놓고 잠자면서 생활할 정도였거든요. 그때부터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 교회 지하에 있는 학생부 예배실에 가서 펑펑 울었어요. “하나님!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요.”하면서요. 그게 어떤 눈물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서러움과 원망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축복 중에 하나가 ‘울어도 티가 안 나는 것’이에요. 막 펑펑 울어도 5분만 있으면 부었던 눈이 원상복귀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다시 엄마 가게로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엄마~ 오늘 학교에서 있잖아~”하면서 수다를 떨었죠. 엄마도 힘드신데 자식들 바라보고 사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에서 임원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수련회, 그녀 인생의 터닝 포인트

    중 3때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게 됐어요. 가기 전에 가족들한테 일일이 기도제목을 받고 A4 한 장에 가득 적어서 전투하듯이 갔죠. 그런데 수련회 주제 말씀이 ‘회개’에 대한 내용이더라고요. 제가 듣고 싶은 건 ‘위로’, ‘평안’ 뭐 그런 말씀들인데 말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말씀을 들을수록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계속 떨어지더니 ‘아~ 하나님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말씀이 끝나고 다같이 통성기도를 하는데, 그동안 기도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방언도 터지고, 그동안 착하게 사는데도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드시냐고 원망했던 것들, 그리고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이 보이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연약한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졌죠. 그 시간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수련회가 끝나고 돌아왔는데, 여전히 제 현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지만 세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너무 밝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는 정말 두려운 게 없었죠. 고등학교 때는 가정형편이 더 나빠졌어도 그저 행복했고, 기뻤어요. 그때도 역시 교회에서 매일 펑펑 울었지만, 그 울음은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 다시 일어서겠다는 확신의 눈물이었죠.”

     

    약자를 위한 일, 그리고 웃음을 주는 일

    원래 제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개그우먼’이었어요. 그런데 가정형편이 나빠지면서 사회의 약자들, 그리고 사회 부조리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꿈이 ‘언론인’, ‘변호사’ 등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관련된 학과에 입학하고, 사회단체 등에서 열심히 활동했죠. 그런데 그 일들을 열심히 할수록 제 안에 공허함과 고민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신앙의 슬럼프였어요. 회복되는데 3-4년이 걸릴 정도였거든요. 그 즈음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나는 네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길로 널 인도할 거야. 네가 왜 나를 단정짓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음성을 듣고는 제가 하고 싶던 것, 하던 것을 다 내려놓고 학교도 휴학한 채로 하나님이 무엇을 시키시든 하겠다고 기도했었어요. 

    그러던 중에 어떤 분께서 “개그에 관심 없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 꿈이 개그우먼이었던 게 생각나서 ‘혹시 하나님의 뜻일까’하는 마음에 극단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하게 됐죠. 막상 시작했을 때는 돈 한 푼 못 받고 힘들었지만, 저의 아무것도 아닌 말, 행동 하나하나에 웃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기쁨이 생기더라고요. ‘아. 이거구나!’ 싶었죠. 

     

    명랑소녀 이희경, 개그우먼 되다!

    극단 생활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개그맨 오디션을 봤는데요. 될 듯 될 듯 안 되더니 결국은 삼수생이 되었죠. 오기가 나서 하나님께 “서른 살 될 때까지 할 거예요!”라고 투정을 부렸어요. 개그맨 시험은 서른 살까지만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결국 삼수 끝에 합격하게 됐죠. 

    그런데요. 합격하기 전에는 개그맨만 되면 제 삶의 또 다른 행복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프로의 세계를 맛보니 또 다른 좌절이 생기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저는 얼굴이 특별히 예쁘거나 못생기지도 않았고, 몸매도 뚱뚱하거나 날씬하지도 않고, 개성이 없어 보여서요(그래서 지금은 살을 12~13kg 정도 찌운 상태라고). 계속 남과 나를 비교하며 좌절도 많이 했죠. 그러다 <슈퍼스타 KBS>의 권사님 캐릭터를 우연히 하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어요. 기독교를 비하한다는 질타도 있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요. 

    그 이후로 하나님은 제가 쉬지 않고 지금까지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어요. 좌절했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렇게 쉼 없이 방송에 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꿈만같고 감사한 일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기도하면서 큰 역할이든 작은 역할이든 쉬지 않고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그녀는 ‘미래의 오프라 윈프리’ 

    최근에는 ‘주님을 위한 나의 목표가 결국엔 나 자신을 위한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어느 순간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바뀌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무대 뒤에서 “NG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이젠 “NG가 나도 좋아요. 기쁜 마음으로 할 테니 무대 위에서 저와 함께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요. 

    저는 훗날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분도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있잖아요. 저도 아직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지만 어렵고 약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는 ‘희망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제가 방심하는 사이에, 혹은 제가 모르는 사이에 악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늘 깨어 있게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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