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구독
  • 로그인
  • 회원가입

MagazineContents

[인터뷰] 하나님의 대표선수로 마운드에 서고 싶다.
야구선수 봉중근 | 2009년 02월호


  • 지난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이야기 하려면, 봉중근 선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맞수 일본을 격침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봉중근 의사’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영광은 한 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다. 18세라는 이른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그곳에서 부상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그는 ‘고난을 통해 강하게 된다’는 말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었다. 지난 일을 회상하며 “이제 하나님의 대표선수로 마운드에 서고 싶다”는 그의 리얼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취재/ 이요한, 사진/ 한치문 기자


     


    봉중근 선수는 ‘기도하는 선수’로 유명한데,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미션스쿨에 다녔는데요. 그곳에서 우연히 크리스천이신 코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분 덕분(?)에 입학과 동시에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했는데요. ‘주일날 운동장에서 운동을 할 것이냐, 아니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 것이냐?’하는 것이었죠. 저는 당연히 교회 쪽을 선택했고,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었어요.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 그렇게 시작된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배를 드릴 때마다 제 왼쪽 어께에 누가 손을 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무언지 모를 강한 이끌림 같은 걸 느끼게 됐죠. 그때부터 저는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이 분이라면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부터 야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나요? 


    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동네 운동장에서 형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요. 그때 뭐 얼마나 운동장이 잘 되어있었겠어요? 그런데도 그냥 흙덩이에서 뒹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어요. 그리고 저를 지저분한 사람으로 보실 수도 있지만 저는 야구모자의 땀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 없더라구요. 그때부터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었죠.


     


    18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하셨는데요. 외국에서의 야구생활은 어땠나요?


    고등학교 2학때 미국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기쁘긴 했지만 주변에서는 어린 나이에 학교를 자퇴하고 가는 게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참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결심을 하고 미국행을 선택했죠. 그때는 어디서 그런 결단력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생각보다 참 어렵더라구요. 정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죠.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과의 싸움이었어요.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생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오죽하면 벽하고 이야기를 했겠어요? 거짓말 같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 벽을 벗 삼아 지냈었어요.


     


    그래도 그런 고난의 시간이 올림픽 금메달과 WBC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만든 것 아닌가요? 


    그럼요. 그 시절이 제 선수생활에 큰 밑거름이 된 건 사실이에요.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메달은 제가 한창 어려운 시절에 받은 것이라 그런지 아직도 집에 걸린 메달만 봐도 울컥해요. 뭐, 이번에 WBC는 아쉽게 일본에 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족해요. 


    특히, WBC에서 만난 이치로 선수는 사실 제가 너무나 좋아했던 선수예요. 그래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도 투수가 아닌 타자로 선수생활을 했죠. 제가 얼마나 이치로 선수를 만나고 싶었냐면, 2003년도에 씨애틀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그 당시 일본 기자한테 직접 찾아가 이치로 선수를 꼭 만나게 해달라고 할 정도였죠. 그리고 제 등번호를 봐도 이치로와 같은 번호인 51번이잖아요.


     


    그런 이치로 선수에게 ‘위치로’라는 별명을 갖게 만들었는데요?


    좀 우습지만 제가 견제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거든요. 원래 그런 상황을 만들려고 한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이치로가 명성이 있다보니 원래 슬라이딩을 잘 안하는 선수로 유명한데, 제가 견제구를 던지는 척 하다가 말았더니 놀라며 슬라이딩을 하더라구요. 사실 저도 흠칫 놀랐죠. 이 장면이 인터넷 상에서 재미있는 동영상으로 제작되어서 돌아다니기도 하더라구요. 저도 ‘봉중근 의사’라는 별명까지 얻었구요. 그래서 그런지 두 번째로 이치로 선수를 대할 때는 엄청난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어쨌거나 모든 승부는 하나님께 있으니 저야 늘 감사할 뿐이죠.


     


    많은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기 원하지만, 대표선수로 뛰는 것이 상당히 부담되는 일일 것 같아요.


    부담이 커도 많은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싶어하죠. 그런데 놀라운 건,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임할 때는 나도 모르게 애국심이 불타오른다는 점이에요. 이번 WBC 경기를 할 때에도 제 글러브에 새겨진 태극마크를 보면서 ‘국가대표인 동시에 하나님의 대표선수’라는 마음으로 공을 던졌어요. 전 공을 던지면서도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던지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으로 던져요. 그래서 제가 어떤 볼을 던지게 되어도, 또 혹은 경기에 지더라도 그저 감사하게 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돼요. 그리고 사실, 경기에 임할 때 제 생각대로 던지면 경직될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저를 위해 기도하는 몇 백 명의 교회 식구들을 생각하면 부담감을 떨칠 수가 있어요.


     


    야구선수 활동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주신 또 다른 비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야구라는 달란트를 가지고 선교를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얼마 전에는 제 미니홈피에 교회에 다니지 않았는데 봉중근 선수를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계셨어요. 그런 글을 읽으면 사실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나중에는 스포츠 선교 재단을 만들어서 돈이 없어 야구를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지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능력이 있는데도 환경이 어려워 못하는 건 참 애석한 일이잖아요.


     


    요즘 꿈이 없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많은데, 그런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제가 2004년 9월에 어깨 부상을 입고 2년 정도 재활을 하면서 선수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재활기간 중 경기를 하다가 손등에 공을 맞아서 금이 갔어요. 정말 암담한 시절이었는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까?’하며 어떻게 할줄 모르고 주저앉아 울기만 했는데요. 그때 장모님께서 “하나님이 만드신 길이니 그분이 인도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의아했지만 나중에는 그 일이 나의 약한 모습을 점점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알게 되었죠.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분명 어려운 일이 있을 거예요. 그때마다 좌절하지 말고 ‘나는 하나님나라의 대표’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믿으세요. 그럼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여러분 힘내세요!


     

     


  • url 복사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여러분의 댓글은 힘이 됩니다^^
등록

저작권자 ⓒ 새벽나라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