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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ccm 싱어송라이터 김도현 | 2022년 07월호
  •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성령이 오셨네> 중에서

     

     

    20대 중반, 막 하나님을 믿고 뜨겁게 예배하던 시절, 기자는 한 찬양을 통해 성령체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성령이 오셨네’란 찬양이다. 그 곡을 만든 사람이 궁금해 공연도 찾아가고 사인도 받았다. 무려 15년 전 이야기다. 그런데 웬 걸? 그분이 매주 수요일마다 드리는 직원 예배에 강사로 오신다는 게 아닌가? 이건 운명이었다. 그렇게 15년 만에 ccm 싱어송라이터 김도현 씨와 일대일 팬미팅을 갖게 되었다. 

     

    취재│김용미 기자 · 사진│한치문 기자 

     

     

    모태신앙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청소년기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고 숫기가 없는 편이었어요. 크게 엇나가거나 일탈을 하지도 않았 고 사춘기도 조용하게 지나간 편이었다고 해요.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이 되 어서였어요. 그 시절 어느 작은 개척교회에 다녔는데, 요즘 말로 ‘인싸’라 불리는 형, 누나들이 속한 공동체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새롭게 부임하신 전도사님께서 ‘기도학교’라는 이름으로 수련회를 여셨고, 그 인 싸그룹이 거기서 성령체험을 한 거예요. 날라리 같기만 하던 선배들이 기도학교 후에 180도로 변한 모습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더랬죠. 모이기만 하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 저 도 기도학교 2기에 참여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성령체험을 하고, 그 이후부터 교회 찬양팀도 하면서 적극적 으로 봉사하는 학생으로 바뀌게 되었죠. 

     

    이미지대로 굉장히 바르고 성실한 청소년기를 보내셨네요. 

    음악은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신 건가요? 김도현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어머니가 청년 시절 다니던 교회에 어느 날 지휘 자 정명훈 씨가 오셔서 피아노 연주를 하신 적이 있대요. 그때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시곤 나중에 아들을 낳게 되면 꼭 교회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대요. 그리곤 제가 태어났고, 유치원 때부터 피 아노를 배우게 되었죠. 비록 정명훈 씨처럼 된 건 아니지만요.(웃음). 

     

    어머님의 기도가 강력하셨네요. 그런데 찬양을 만들고 부르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어떤 특 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쳐왔고,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사실 음악을 전문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함께 기도모임을 하던 한 친구가 찬양 테이프를 생일선물로 줬는데, 그게 ‘주찬양 선교단’ 1집 <그 이름>과 ‘예수전도단’의 <보라 하나님은>이었어요. 엄청나게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때부터 ‘아, 나도 이런 노 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꿈을 꾸게 되었어요. 특히 당시 ‘주찬양 선교단’의 단장이셨던 ‘최덕신’ 씨는 제 롤모델이었고요. 다행히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음악이 좋으면 전공을 해 보라고 하셔서 본격 적으로 음악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레슨에 돌입했고, 성악과에 입학하게 되었죠. 

     

    노래를 잘 하시는 건 알았지만, 성악과 출신이라니 좀 의외인데요? 대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현 찬양을 만들고 싶어서 작곡과에 가려고 했지만, 레슨을 받으면서 많은 고민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성악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는데요. 마침 제가 성악과에 입학하던 해에 ‘주찬양 선교단’의 신규 단원 모집 오디션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결과는 합격이었죠. 제가 롤모델로 생각했던 분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대학에 합격한 것보다 더 기뻤어요. 단장님 작업실에서 악보를 보며 습작하고, ccm 음반, 악보, 뮤직 비디오들을 접하고, 음악적 기질이 비슷한 분들과 교류하면서 오히려 학교에서보다도 더 제대로 음악을 배 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선교단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학교는 제가 하고 싶던 일과 괴리감이 있어서 자퇴를 하게 되었고요. 그러던 중 군 복무 때 만들었던 <봄>이라는 곡이 좋은 반응을 얻게 되면서, 찬양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봄>이라는 곡 제목처럼, 찬양 사역의 시작이 봄과 같으셨나요? 

    당시 90년대 중 후반은 ccm이 최고 전성기를 맞던 시기였어요. 그런 시기에 맨 처음에 프로듀싱을 맡게 된 크리스천 음악 앨범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선배 사역자들에게도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재능이 많다고 자부하던 저는 하나님이 분명 저를 크게 들어 쓰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 는 일에 헌신해 왔었고, 제가 찬양을 하는 이유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가 하는 일은 뭐든 도와주실 거라고 믿었던 거죠. 그런데 그렇게 호기롭게 영혼을 갈아 넣고, 음악적으로 가장 힘을 줘서 만든 1집 앨범이 예상과 달리 망하고 말았어요. 그 일로 ‘왜 하나님은 나를 안 쓰실까?’ 하는 원망과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 지내게 되었죠. 

     

    실망감이 엄청 크셨을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사실 그땐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나님을 위해서 했던 노력이 모조리 무시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습관처럼 작업실에 나갔고, 아마도 토요일 오후 어느 날이었을 거예요. 아직 쌀쌀한 초봄이라 난로를 틀어놓고 혼자 우두커니 있는데, 갑자기 성경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번 뜩 드는 거예요. 요한복음 14장 말씀을 소리 내어 읽으라는 명령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고, 곧바로 성경 을 펴서 읽었죠.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마치 고아와 같이 갈팡질팡하 며 살아가던 제게 “도현아, 내가 너를 다 보고 있어!”라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그때 펑펑 울면서 기도하고 만들었던 곡이 바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던 “성령이 오셨네”예요. 

     

    저 개인적으로도 이 곡을 통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도 했고,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이 곡은 작곡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이전처럼 제가 이렇게 저렇게 공들여서 만든 곡이 아니라 정말 ‘성령님’이 임하셔서, 성령님이 주신 지혜로 만든 곡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계획해 놓으신 걸 저를 통해 보여 주신 거랄까요? 그래서 사실 이 곡이 맨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저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주변 지인들은 “정 말 네가 이 곡을 만들었다고?”, “네가 이런 고백을 할 정도면 성령님께서 살아 계시는 게 맞네!”라고 말할 정 도로 다들 놀라셨어요. 예를 들어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같은 표현들은 진부하고 상투적이라고 생각하던 저였거든요. 그런데 성령님께서 찾아오셔서 직접 가르쳐주시니 그 고백이 절로 나오지 뭐예요. 그리고 무엇 보다 제 삶의 태도가 가장 많이 바뀌었어요. 그동안은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제 영광이지 하나님의 영광은 아니더라고요. 저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 의 일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성령님을 많이 의지하게 되었죠.

     

    찬양을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적도 있고, 그렇지 못한 시기도 있으셨는데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신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실까요? 

    “성령이 오셨네”라는 곡으로 속칭 ‘잘 나가는 찬양 사역자’로 불리면서 사람들 앞에 설 기회가 많아졌 어요. 찬양 한 곡으로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집회의 강사로 서게 되면서 ‘이 정도면 하나님 나 라를 위해 크게 일하고 있는 거겠지?’ 하며 좀 우쭐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허무한 마음이 밀려들더라고요. 찬양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처음의 사명감보다는 더 유명해져야겠다는 욕 심과 다음 앨범에 대한 부담감들이 저를 짓눌렀죠.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쯤, 난생 처음 이스라엘 에 가게 되었고, 갈릴리 호수 위를 건너는 배 위에서 확실한 마음의 음성을 듣게 되었어요. “내니 두려워 말아 라.” 풍랑 가운데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물 위를 걸어오시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었어요. 그 감격 스러운 순간을 담은 곡이 3집 앨범의 이란 곡이에요. 그렇게 이스라엘 방문 이후로 하나님께서 96 97 제게 성경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부어주셨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말씀을 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찬양을 만들 때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공부해서 만드는 곡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죠. 


    최근에 공연도 하셨고, 작년에는 데뷔 30주년 앨범도 내셔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들이 있으신가요? 

    코시국이 길어지면서 집에 혼자 지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쓴 곡 들을 모아 작년에 30주년 앨범을 내면서 ‘아, 내가 작곡가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사실 그동안에는 제 정체성이 굉장히 불분명했거든요. 제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사람들 앞에서 찬양을 하 는 사람이 되기보다, 단지 ‘내가 만든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거든요. 그런 데 저는 기질적으로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것이 잘 맞지 않는 데다, ‘찬양사역자’라는 위치가 제가 고백하고 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어떤 한계를 만드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제가 ‘작곡가’라는 정체성을 인지하고 부터는 ‘나는 그냥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았는데, 내가 만든 찬양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준다는 게 어마어마하게 큰 축복이구나!’를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제가 만든 곡들을 모아서 ‘합창곡집’을 내고, 또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을 하고 싶은 꿈도 있는데요. 그 전에 가깝 게는 올해 더 많은 분들과 더 다양한 곳에서 제가 만든 곡들로 만나 뵐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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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황민구(증평제일교회)  2022-07-23
가장 좋아하는 사역자 김도현님의 인터뷰를 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새롭게 나날이 발전하며 쓰임받는 새나되시길 기도해요! 3년째 학생들 전체가 함께 나눕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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