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공존하며, 지역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를 꽃피우는 ‘아름다운 교회’들이 있다. 그중 폐역인 경춘선 금곡역을 새롭게 단장해 예배당으로 거듭난 성시교회를 가장 먼저 찾았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 ‘금곡리역’으로 철로를 연 유서 깊은 장소이고, 2010년 수도권 광역전철이 개통되어 이전하기까지 남양주시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시민의 발이 매일 거쳐 갔던 정겨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름다운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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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길 나서고 싶은 때가 있다. 단순한 동작인 걸음걸이에 집중하다 보면 복잡하던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곳이든 걷기만 하면 다는 아니다. 어떤 길을 걷느냐가 사유의 질을 결정한다. 혼잡한 도시에서 차를 피하며 걷다 보면 생명의 위협만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이름난 산과 바다를 찾아가 걸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 길은 시간도 돈도 많지 않은 필부에게 요원하기만 하다.
잠실 또는 강남에서 광역버스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남양주시의 성시교회 가는 길은 그런 면에서 최적의 여정이다.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 걷기 여행에 제격이다. 아득히 보이는 기찻길 옆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니,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를 나선 기분마저 들었다.
성시교회 외관은 옛 금곡역 건물 형태 그대로다. 역명판 아래 ‘타는 곳’이라는 표지 대신 교회 간판을 달았을 뿐이다. 승차장이 있었을 자리에는 긴 의자가 달린 나무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절실히 공감하게 된다. 힘겨운 걸음을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고맙다.
철로가 있던 길에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날씨가 추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라이더들은 어김없이 교회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교회 안으로 들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씩을 받아 들고 나와 앉는다.

궁금증을 품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박영환(59) 목사와 김숙희 사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맑은 얼굴을 가진 목사님과 사모님이었다. 목사님은 금방 간 커피를 내렸고, 사모님은 사과를 깎았다. 생면부지의 사람도 넘치게 환대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었다. 
시골학교 교실 분위기의 예배당 안을 둘러보면서 절로 마음이 평안해졌다. 의자와 강대상 위의 나무 십자가를 목사님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예배당 한쪽 벽 큰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하다. 평일에도 새벽예배 후에 교회 문을 열어 두고, 누구나 와서 책을 읽고 묵상할 수 있게 북카페처럼 꾸몄다.
난로에 구워낸 고구마를 먹으며 한참 동안 대화를 했다. 4대째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가 된 경위, “하나님 이제 목회를 그만두겠습니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상가 건물 개척교회 시절, 오리고기를 파는 식당이 들어올 뻔했지만 시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 기적적으로  교회로 임대가 되기까지의 사정 등등 수많은 간증 거리가 있었다.
“주민들이 추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도록 옛 역사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원래 역사였기 때문에 교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고, 출퇴근길에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주말에 산책하다가도 교회에 들를 수 있죠. 나라와 민족을 성시화(聖市化)한다는 의미의 교회 이름과도 맞닿는 면이 있어요. 마을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함께하는 교회를 지향해 왔는데, 나이 예순이 다 되어서 평생 꿈꾸던 교회의 터전을 발견했어요.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열린 교회가 또 없죠.”
연 임대료만 4천만 원을 역사의 소유주인 철도공사에 내야 하는 현실적인 부담도 있다. 하지만 목사님에게는 돈키호테 같은 추진력이 있었고, 사모님에게는 남편을 존경하고 따르는 순수함이 있었다.
“화장실을 개방해 두니까 금방금방 떨어지는 화장지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교회 앞 벤치와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 가는 사람이 많은데, 청소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쓰레기봉투 값이 엄청나게 들었고요. 그런데 계속 열심히 청소하니까 동네 주민들이 알아줬어요. 동네 분들이 남양주 시장님에게 교회에 종량제 봉투를 지원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어요. 목사님이 청소를 다 하는데 그 정도는 지원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박 목사를 지지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박 목사가 비행 청소년들의 선도에 앞장섰던 일이 결정적이었다.
“교회가 생기기 전에 담배 피우는 아이들을 꾸짖던 아주머니 한 분이 폭행을 당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어른들도 동네 비행 청소년 무리에게 접근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들을 가만히 보니까 배가 고플 것 같더라고요. 대부분 부모님이 이혼해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결손 가정 아이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교회에 컵라면을 갖다 놓고 원하는 대로 먹게 했습니다. 불러서 고민도 들어주고…. 다만 5분이라도 말씀을 듣게 하려고 같이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중에는 이전에 사고를 친 일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 아이가 있었는데, 제가 매주 면회를 다녔어요. 2년 형을 받았는데 1년 만에 나와서, 이제는 건실하게 지냅니다. 몰려다니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완전히 없어졌어요. 지역 주민들이 밤에도 마음 놓고 동네를 다닐 수 있게 됐죠.”
박 목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서울 중심에 살다가 실패해서 집값이 싼 곳을 찾아 이 지역에 온 주민들도 많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갈 곳 없는 분들이 교회 근처를 서성이고 있으면, 제가 다가가서 말벗이 되어 드렸습니다.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교제가 이루어지고, 믿지 않는 분들이 점차 교회에 친숙해지는 거죠.”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봉사 사역도 펼치고 있다. 
“지역 특성상 다문화 가정이 많습니다. 현재는 부교역자로 사역하는 전도사님이 지역의 주부들을 위한 ‘무료 영어교실’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외에도 주중에 다문화 가정주부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많이 열려고 합니다. 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사는 부부들을 위해, 교회를 결혼식장으로 제공하고 싶습니다. 지나다가 우리 교회에 들르는 커플 중에 이런 곳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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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린 아버지의 집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교회가 아닌 ‘고마운 교회’가 되었으면 해요. 교회에 온 분들이, 고마움과 기쁨을 느낀다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겠죠.”
무엇보다 이 말이 귀에 남았다. 어디나 우리 하나님 집이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의 기도 제목은 성시교회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철도공사에서 교회 부지를 매각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간절한 기도를 해서 매번 응답을 받아왔습니다. 교회가 정말로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고 사랑하는 곳이 되면 하나님께서 계속 존재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성시교회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나는 기도했다.

혼자서 걷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슬프고 기쁜 감정, 도움과 감사를 주고받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폐 역사를 사랑의 동산으로 만든, 하나님의 일하심이 충만한 아름다운 교회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