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prologue 2021년 05월호 걷기는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빛과소금

출근 열차가 서는 역에서 회사까지 가려면 버스로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편의점을 들르거나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걸어서 10분 거리의 그 길을 굳이 버스를 타고 간다. 업무 시작 전에 힘을 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버스 환승이라는 편리한 제도가 만들어 낸 일종의 부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자동차의 보편화와 교통 시스템의 발달은 우리에게 크나큰 편의와 효율을 선사했지만, 귀중한 어떤 것들을 그 대가로 가져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전히 찻길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넘쳐나지만, 요즘에는 그래도 눈에 띄게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출퇴근할 때 자동차를 타고 갈지언정, 집 앞 마트에 차를 몰고 갈지언정, 우리는 다른 때에 다른 목적으로 ‘걷기’를 선택한다. 직장 동료 누군가는 심란한 마음을 잊기 위해 걷는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허리 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살을 빼기 위해, 근육을 키우기 위해, 아이디어 구상을 위해, 계절을 느끼기 위해, 그리고 기도하기 위해….
대부분의 유행은 어지간히 번성하다가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등산이 그랬고, 자전거가 그랬으며, 캠핑도 그럴 것이다. 고가의 장비 앞에 기죽은 일반인(?)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소수 마니아들이 그 자리를 지키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걷기의 열기는 쉽사리 가시지 않는 것 같다. 걷기는 두 다리와 의지만 있으면 장소, 시간 불문 가능하며, 단점과 부작용도 크게 없다. 비용도 안 든다. 거기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해지니 말이다.
걷기의 본래 기능인 ‘보행’을 자동차가 대신한 지 오래지만, 다른 수많은 것들을 걷기가 대신하고 있다. 모르는 사이에 걷기는 개인적 즐거움과 유익을 넘어서 예찬의 대상이 되고, 인문학의 한 범주로 끼어들더니,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 도구로까지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힘을 일으키는 데 반해 걷는 행위 자체는 너무나 보편적이고 무해하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선택적 ‘걷기’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리라.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알기에 ‘걷기의 미학’은 지나치지 않다.


글  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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