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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북한이 주민의 친구 조명숙 선생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 | 2007년 01월호
  • 지난 1월, Passion 2007 집회의 강사 중 단연 돋보이는 주제와 내용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던 강사는 북한이주민을 위한 자유터학교의 교장이자, 북한이주청소년을 위한 학교인 여명학교의 교감인 조명숙 선생이었다. 아침부터 금식을 하면서 여섯 시간 동안 계속되었던 이날 집회의 마지막 강사로 나선 그녀의 북한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우리 민족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그리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 모두 한 끼 금식 가지고 감히 생색을 내기 민망하게 만들었다.                                  

    취재 | 김형민 ·사진 | 정화영 기자

     

    북한이주민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세요?

    사실 조금 무거운 주제잖아요. 그래서 시작 전에 걱정도 많이 했지만, 잘 끝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따분해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미리 준비한 화면과 동족인 북한 사람들의 참혹한 현실이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할수 있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도 통하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의 청소년시절이 궁금합니다.

    청소년 시절은 한마디로 발버둥치면서 보냈어요. 어렸을 때 너무 어려웠거든요. 세끼 밥을 다 먹고 자라지 못했죠. 사실, 학교에 들어가서야 사람들이 세끼를 먹고 산다는 걸 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시골에서 상경한 저희 가족은 옛 의정부와 상계동의 경계선 쯤에 자리잡은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에 정착했지만,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웠어요. 

     

    나이가 그렇게 많으신 것 같지 않은데, 그런 어려운 생활을 하셨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도시빈민이었다고 봐야죠. 그런 환경이 저를 ‘날나리’로 만들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어른들이 가던 나이트 같은 데에서 놀기도 했어요. 게다가 아버지가 워낙 완고하셔서 술을 드시고 가족들을 괴롭히기도 하셨죠. 그때 동네 뚝방에 앉아서 울면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살아계시다면 그리고 저를 사랑하신다면 비를 내려주세요”라고요. 그땐 하나님을 잘 몰랐던 때였는데, 너무 힘드니까 기도가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기적같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비가 내리는 거예요. 그 때 그 사건은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 같아요. 

     

    놀라운 이야기네요. 그런 고난의 경험들이 지금 사역에 큰 도움이 되었겠네요.

    네. 북한이주민들을 보면 바로 그들의 처지가 이해되고, 눈빛만 봐도 어떤 상태인지 알 것 같아요. 문제를 낼 것 같은 친구들은 제 예감대로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죠. 그래서 저희 학교 선생님들은 제가 무슨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농담처럼 말해요. 어렸을 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나 어릴 때의 기억이 온통 잿빛인 사람은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늘 힘들게 살죠. 그런 그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도 많지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제 어린 시절의 고난이 그들을 이해하고 돕는데 많이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죠. 

     

    우연히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대학생 때, 우연히 외국인노동자들을 돕게 되었어요. 정말 우연이었는데, 당시에 그분이 도움받을 사람이 너무 없으니까 평범한 여대생에 영어도 잘 못하는 한문교육과 학생인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것 같아요.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건너 건너 북한이주민 사역까지 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우연같은 하나님의 인도였죠.

     

    사역을 시작할 당시는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어요. 93년도에 혼자서 시작을 했는데요, 집이 가난한 데다가 집안의 유일한 대학생이었던 저는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죠. 그런데 외국인노동자 사역을 한다니까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멈출 수 없었어요. 그래서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하다보니 오늘날까지 오게 됐죠. 

     

    믿는 사람으로서 사역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하나님 없이도 물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지만 그 끝은 허무하죠. 저는 93년도부터 외국인노동자 사역을 시작해서 97년도부터는 북한이주민 사역을 해왔는데요. 하면 할수록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사랑을 나눈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이 일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남을 돕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경우도 많고, 우월감을 가지고 이주민들을 대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또, 분노와 정의감만으로 이 일에 뛰어드는 분들도 있지만 10년 이상 일을 하다보면 중요한 것이 뭔지를 깨닫게 되죠. 성경말씀에 나와 있는 ‘친구가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랑’, 즉 동등한 입장에서의 사랑이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하죠.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랑 같은 것 말이에요.

     

    선생님이 쓰신 책 「꿈꾸는 땅끝」에 보니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셨다고 나오던데요?

    96년 말에 탈북한 북한 사람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일을 했는데, 정말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어요. 국경을 넘으면서 늘 발각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죠.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긴박했던 상황 때문에 지금도 가슴이 떨려요. 그 일로 다시는 중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한 일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선생님은 꼭 사역을 위해 태어나신 분 같으세요.

    저는 그냥 남을 돕는 일, 사람을 살리는 일, 그 일이 좋아요.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사람을 돕는 일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운영하고 계신 자유터학교와 여명학교를 소개해 주세요.

    자유터학교는 북한에서 나오신 어른들을 위한 학교에요. 그리고 여명학교는 북한에서 온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이구요. 원래는 자유터학교가 먼저 시작되었지만, 이미 생각과 머리가 굳어진 어른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서 시작한 것이 여명학교죠.

     

    여명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교육받고 있나요?

    여명학교는 각계의 뜻있는 분들과 교계, 교회의 도움으로 세워진 학교입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며 신앙을 갖게된 학생들은 대부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일을 이루는 일꾼으로 이곳에 보냈다는 고백을 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성령으로 이 땅이 통일될 그날을 준비하며 기도하고 공부하고 있죠.

     

    북한에서 온 청소년들을 한국의 청소년 친구들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은 그들을 친구로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북한 사람, 외국인이 아닌 그저 내 친구로 봐주는 것이 중요하죠. 지금도 전국의 각 학교에 여러분들 모르게 북한에서 온 친구들이 한국의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친구로 대해 주세요. 그것이 그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처럼 북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제가 이 사역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어떤 자료나 사례들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은 자료와 기관들이 있어서 조금만 공부하고 경험하면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같은 시간 저 북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에서는 돈을 내고 살을 빼고 있는 실정이죠. 

    한국교회와 사회도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이 될 거라 생각해요. 우리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은 그때를 대비해야 해요. 북한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고, 저희 여명학교를 위해서도 많이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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