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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장 쓸모없는 것을 가장 쓸모 있는 것으로!
모어댄 최이현 대표 | 2021년 06월호
  • 자동차는 어떻게 가방이 되었을까?

     

    재활용조차 안 돼 버려질 뿐인, 폐차된 자동차의 가죽 시트에 주목한 이가 있었다. 응원은커녕 악담만 한가득 듣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이가 있었다. ‘가장 쓸모없는 것을 가장 쓸모 있는 것이 되게 하리라’는 사명이 그때마다 그를 붙들어주었고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도전은 BTS, 레드벨벳, 개그맨 강호동, SK 최태원 회장, 스웨덴 국왕 등 사회 각계각층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고,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의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환경의 달, 이토록 적절한 기업이 또 있을까. 그 중심에는 최이현 대표가 있다.

     

    취재│김지혜 기자 · 사진│정화영 기자 

     

     

    폐차에서 나온 가죽으로 만든,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제품이라니! 이런 제품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오래도록 꿈에 그리던 ‘드림카’를 몰게 되었는데, 어느 날 뺑소니를 당한 거예요. 앞뒤가 다 찌그러져 폐차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소중한 친구(?)를 이렇게 보낼 수 없다 생각했어요. 거기서 의자를 하나 빼왔죠. 좁은 방을 죄다 차지하고 앉아서 때때로 발에 채여 발톱을 부러뜨리는(?) 의자를 보며 한 친구가 의자는 치우고 차라리 이 가죽으로 가방이라도 만들어 간직하라는 거예요. 듣는데 솔깃했어요! 알아보니 자동차에서 나오는 폐기물 중에서 의자 가죽은 품질은 좋지만 에어백 등과 함께 재활용이 안 되는 유일한 품목이라 하더라고요. 새로 가죽을 생산하려면 물 소비도 상당하고, 동물을 죽여야 하는 등 여러 환경 문제를 야기하거든요. 또, 기업에서는 공해를 줄이기 위해 전기차, 수소차 개발에는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폐차할 때 나오는 폐기물에 대해서는 그만큼 관심이 덜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것들을 버리지 말고 다시 쓰면 되지!’ 하는 아이디어로 시작했어요.

     

    아픔(?)에서 온 단순한 아이디어가 이제는 주목받는 아이템이 되었어요!

    네. 이게 가능한 아이디어인지 알아보기 위해 1년 동안 폐차장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괜찮은 아이템인지 객관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정부에서 진행하는 창업경진대회에 출품하기도 했어요. 꼭 일등이 아니어도 부족함을 보완할 좋은 피드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요. 정말 가능성이 없다면 아무 피드백도 얻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마침 장려상을 받은 거예요. 큰 상은 아니었지만, 이 상은 제게 확신을 줬어요. 이 길이 맞구나!

     

    2015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창업하셨다니 정체성이 아주 뚜렷하네요! 지금이야 많은 셀럽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을 텐데요.

    다른 것보다 부정적인 시선이 참 힘들었어요. 멘토링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는 ‘이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는 말을 들었고요, 정부지원금을 받아 제품개발을 할 때는 ‘차라리 그 돈으로 중국에서 가방 같은 거나 떼서 팔아’라는 말도 들었어요. 사실 새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면 보통 1개월 반 정도 걸리지만, 폐차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려면 수거부터 시작해서 세척, 냄새 제거, 항균 등 가죽 손질까지 손수 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4달이 걸려요. 이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왜 돈을 받냐, 도둑놈이다” 이런 말을 듣기도 했어요. ‘난 차에서 방귀를 많이 뀌는데 가방에서 방귀 냄새 날 것 같다’, ‘그래도 더러울 것 같다’라는 선입견과 마주할 때도 있었고요. 처음에는 응원을 받을 거라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상처와의 싸움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그런 시선들을 극복하고 7년차 기업이 될 때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걸까요?

    힘들 때면 말씀을 꺼내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예비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에 대한 기대감으로 버티고 또 버텼어요.

     

    하나님께서 모어댄을 위해 일하시는 것을 느끼실 때가 있었나요?

    한두 번이 아니었죠. 매번 그래요. 저는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보곤 하는데, 아픈 일보다는 감사한 일이 더 많았고, 나무가 성장해서 열매를 점점 더 크게 맺듯이 하나님께서도 매 순간 그렇게 역사하셨더라고요. BTS나 레드벨벳, 강호동 씨, 스웨덴 국왕 등 직접 만나본 적도, 마케팅 부탁을 드린 적도 없는 분들이 모어댄의 스토리에 공감해주시고, 자발적으로 모어댄 제품을 사용해주셨어요. 그 기회가 또 다른 기회를 가져오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더 많은 분들께 알려져 사랑받게 됐어요. 이런 것을 볼 때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느낄 수밖에요! 제 역량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니까요. 이런 일들을 보면서 늘 마음을 다잡곤 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는 없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귀감이 된다면, 또 이 일이 사회적으로 극복해야 될 문제를 해결할 단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하자!’

     

    그래서 모어댄을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가고 계신 거군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전공한 분답게 전공을 제대로 실천하고 계시네요. 이런 면들은 어디서 영향을 받으신 걸까요?

    아무래도 자라난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늦게 신학을 공부하시고 시골에서 개척교회를 하셨어요. 일곱 명의 대가족이 늘 부족하게 살았지만, 나누고 돕는 것이 자연스러웠죠. 무엇이 있어서 돕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도울 수 있는 것을 찾아 도움을 주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를 돕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사실 바쁘면 마음은 있어도 못하게 되는 게 봉사잖아요. 그래서 ‘지속가능성’도 함께 고민하게 되었고요. 나중에 다른 나라의 문화들이 궁금해서 가게 된 영국에서 NGO 단체인 ‘옥스팜’을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답을 찾았어요. 기부금에 의지하지 않고, 기부받은 물품을 팔아서 번 돈으로 후원도 하고 매장도 운영하는,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사회공헌 시스템인 거예요! 그렇게 ‘사회공헌’과 ‘지속성’에 대해서 했던 고민들을 더 구체화하고자 리즈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전공하게 됐고, 그때 한 공부의 결실이 지금의 모어댄이 되었죠.

     

    그래서 모든 스카우트 제의도 다 거절하고 모어댄을 창업하신 거군요.

    영국 현지에서 채용되는 경우, 보통 현지인과 한국에서 파견나간 사람 사이에서 통역이나 번역 등의 일을 하며 중간다리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십 년 뒤의 저를 상상해봤을 때 달라질 게 없더라고요. 안정을 추구하기보다는 우여곡절은 많겠지만 ‘잘 걸어온 십 년이다’ 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어디에 취업할까?’보다는 ‘지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뭘까?’를 고민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제가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 즉 자동차 폐기물 문제와 사회 공헌 등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라는 결론까지 가게 된 것이죠.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지만, 개인은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을 통해 실현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탄생한 모어댄의 비전이 궁금해요.

    ‘가장 쓸모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만드는 게 모어댄의 비전이자 목표예요. 그런데 여기에는 단순히 폐기물을 소재 삼아 쓸모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이 안에는 사람이 있거든요. 고용 중단 여성, 취약계층, 북한이탈주민 등 그동안 일자리 시장에서 쓸모없다 소외되었던 분들이 모어댄을 통해 가장 쓸모 있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에요. 아주 적은 양으로도 반죽 전체에 영향을 주는 누룩처럼, 모어댄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쓰임 받도록 많이 기도해주세요!

     

    끝으로 sena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케냐와 소말리아에서 활동하시던 한 선교사님을 뵙게 됐어요. 칠순이 넘으신 여성 분이셨고 싱글이셨어요. 소말리아에서는 집에 도둑이 들어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기억을 잃은 적도 있고, 케냐에서는 얼마나 돈이 없었던지 심지어 거지가 돈을 주고 간 적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여자 혼자 그 힘든 삶을 감당했을까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중에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위험할 수는 있지만, 그 누구보다 기쁘게 사는 나인데 왜 위로를 받아야 하나요?” 그때 깨달았죠.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직접 경험해봐야 안다! 사실 지금의 여러분은 수십 번 수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한 게 더 크게 남을 나이예요. 더 많은 경험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고요. 그 작은 쉼표가 분명 좋은 느낌표로 돌아올 거예요. ‘빨리빨리’보다는 무엇을 위해 달려갈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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