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인도자세미나
  • 2022.07.07(목)

위로의 하나님고린도후서 1:1-11

묵상하기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아버지와 예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빌고 있다. 예수는 주이시다. 그리스도이시다. 은혜와 평강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한다. 우리 교회와 또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다.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가 위로를 받음으로 우리가 또 다른 환난 당하는 자들을 능히 위로할 수 있게 하시는 이시다. 위로도 받아본 사람이 잘 위로할 수 있다. 하나님께 위로를 받으면 내가 회복 되고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실로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어떠한 환난을 당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신다.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다. 나는 이러한 환난을 당해본 적이 없다. 평탄한 인생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환난을 당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께서 환난을 겪게 하신다면 주의 위로 받기를 소망한다. 또 하나님은 위로하실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게 받은 위로로 또한 환난 당한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너무나 은혜로운 고백이다. 고난이 넘쳤지만 위로도 넘쳤다. 능히 고난을 견디게 하는 위로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환난을 당하는 것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를 위한 것이다. 바울과 형제 디모데의 영적 성장을 위한게 아니라 말이다. 또 위로를 받는 것도 이들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위로로 이들이 같은 고난에서 견딜 수 있다. 개인적인 고난과 위로의 체험이 공동체의 위로와 인내를 위한 것이 된다.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자신 밖에 모르는데 교회 공동체는 서로 섬겨야 한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또 다른 사람을 돌아보아야 한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소망이 견고하다. 고난에도 참여하고 위로에도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보통 환난 당한 것을 모르길 원하지 않나? 싶은데 고난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고 또 위로가 얼마나 풍성했는지 알려면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 아는게 필요하다. 살 소망이 끊어지다니 이보다 더한 고난이 있을까? 이토록 극심한 고난을 겪게 하신 것이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다. 나는 의존적인 성격이라 하나님이 아닌 의지할만한 사람을 항상 찾는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의지할만한 사람을 내 인생에서 치워주셨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럼에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려고 찾는 내 모습을 본다. 하나님만 의지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인생은 어차피 먼지와 같고 풀과 같아서 지나면 그 난 자리도 기억됨이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이 모든 걸 알고도 주만 의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인생을 의지하려고 하니 말이다. 좀 지혜로워졌으면 좋겠다. 바울과 형제 디모데와 같이 극심한 고난을 겪으면 더욱 주를 의지하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러기 전에 주만 잘 의지하는게 좋지 않나 싶다. 아니 좋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다. 또 건지실 것이다. 건지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적용하기

바울과 형제 디모데의 초첨은 공동체에 맞춰져 있다. 고난도 위로도 다 공동체의 위로와 인내과 성숙을 위한 것이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나에게 맞춰져 있다. 나에게만 맞춰져 있는 관심을 공동체로 돌려야겠다.

기도하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 보게 하시고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공동체의 성숙과 위로에 관심을 갖는 제가 되게 하소서. 감사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허슬기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하루 되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