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명답을 주고, 성경은 정답을 알려줍니다
2020.02.11 | 350 읽음

1. 우리는 인문학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복음을 듣습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묵상을 합니다. 전도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신앙인의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은 인본주의의 표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문학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인문학의 언어로 말씀하셨고, 성경은 인문학의 원형이라고 말합니다.

 

매거진 《빛과소금》기사 읽기

 

 

2. 제2의 로마서,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은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소망하고 싶어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해지고 밤이 되어도 변한 건 없지. 우리에겐 그날이 그날일 뿐 산다는 것은  싸움과 투쟁뿐이야. 내일이 와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쟁과 아픔, 억압과 폭력이 가득한 이 세상에 과연 내일이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그 내일을 소망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참했던, 감히 내일을 바라래야 바랄 수 없었던 장발장이다.

 

책 《불편한 믿음》중에서

 

 

3. 인문학적 과제의 완성

자유가 없는 개인, 인간애가 배제된 사회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유물사관을 바탕으로 삼는 공산 이데올로기는 휴머니즘을 거부했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 의미를 정치이념의 제물로 삼았던 것이다. 휴머니즘을 거부했다는 것도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문학은 휴머니즘의 뿌리에서 자랐고 인문학을 배제한다는 것은 사상의 자유와 사회의 인륜적 가치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책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중에서

 

 

4. 인문과 영성

인문적 주제들과 기독교 영성 전통과의 대화를 통해 깊은 생각과 깊은 기도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살펴보며, "지식으로 풍성해지는 사랑"(빌 1:9)의 길을 모색합니다.​

 

  • 나의 이야기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_ 이강학 교수
  • 말씀(Logos)으로 창조된 세계를 경이(wonder)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성_ 이종태 박사
  • 현대 영상 미디어(영화/드라마/판타지)를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읽을 수 있는지 나누는 시간_박형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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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죽음이라는 낯선 세계, 나에게 말을 걸다

죽음은 삶의 끝이거나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항상 우리와 함께, 여기 삶의 일부로서 언제나 존재한다. 죽음은 삶 속에 있고, 삶은 죽음 안에 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요, 변화의 관념에 근거한다. 죽음은 삶의 다른 편이자 삶의 연장이요, 삶은 죽음의 다른 편이고 연장이 되는 이유다.

 

책 《죽음의 인문학》중에서 

 

 

6. 인문학은 인본주의와 다르다

설교자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설교자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선행 지식이다. 문제는 설교자가 인문학을 강조하면 인본주의자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편협한 시각이다. 인문학과 인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인문학은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인본주의는 하나님보다 인간에게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사상이다. 반면에 신학과 인문학은 같은 색을 띤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인간이 보이고, 인간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이 답이라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신학과 인문학은 하나다.

 

책 《설교는 인문학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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