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기억

issue 2020년 01월호 소통의 기억 빛과소금

목회자의 아웃풋과 인풋
글 강산

목회자는 특별한 소통의 위치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방향의 통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내려오는 통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며, 두 번째 올라가는 통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님께 전달하는 것이다. 내려가는 통로는 그 대표적인 것이 설교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것을 목회자의 아웃풋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올라가는 통로는
그 대표적인 것이 기도로서 이것을 위해서 목회자는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받는 인풋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서 성도들에게 잘 내려보내는 아웃풋과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께 올려보내기 위한 인풋이라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나누고 싶은 것은 목회자가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를 위해, 어떻게 성도들과 소통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한 사람, 한 사람과 자주 만나고 식사도 하고 삶을 나누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목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 부딪치고, 설사 그렇게 시간의 양적인 부분에서 많이 만나더라도 질적인 수준으로 깊은 내용을 듣는 것은 다른 문제며, 개인적으로 만날 경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성적인 유혹이나 위험도 상당히 크다.
그래서 나는 ‘셀 보고서’라는 특별한 통로를 목회자의 인풋으로 사용하고 있다. 셀 보고서는 주일에 성도들이 주일 말씀을 듣고 나서 셀별로 모여 각자 깨달아지고 찔린 것을 정리하고 궁금한 것이나 기도 제목을 정리해서 담임목사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일어난 소소한 삶을 나누게 되지만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오늘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로 비추어서 깨달아진 것과 고쳐야 할 것과 적용해야 할 것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담임목사에게 전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런 흐름에 맞춘 기도 제목을 담아 목회자에게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그 보고서를 꼼꼼하게 읽고 주중에 더 궁금한 내용은 전화를 하고, 긴 글이 될 것 같으면 메일이나 문자를 보낸다. 필요하다면 만나서 상담을 하고, 도움이 될 책이 있으면 구입해서 선물하며, 무엇보다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목회자의 시간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변화의 방향으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도 꼼꼼히 적힌 셀 보고서가 하나 가득 책상 위로 올라왔다. 나는 천천히 기록된 성도들의 삶과 고백과 기도 제목을 읽으며 만나야 할 사람과 연락해야 할 내용을 정리하고, 구입해서 선물할 책이나 물건을 찾아보고, 무엇보다 기도 제목에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다시 정리해서 기도 노트에 적은 후 중보하며 한 주간을 보낸다. 그래서 다음 주 주일 아침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워진 나눔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강산은 십자가교회 담임 목회자이다. 국내 여러 출판사와 함께 성경 번역 및 감수 작업을 해왔다. 저서로는 「이사야서 풀어쓴 성경」, 「나는 진짜인가」, 「기도를 시작하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나를 먼저 열어 보이는 대화
글 홍문희

A는 내가 일하던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촉망받던 고등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다. 하지만 1년 휴직 후 돌아오니 A는 왜인지 대입을 앞둔 답 없는 게으름뱅이가 돼 있었다.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나서서 대입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 줘도 A는 대답만 할 뿐 하나도 제대로 행하지 않았다. 입에 떠먹여 주는 것만 받아먹어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건만 씹을 생각도 않는 A를 선생님들은 안타까워했다. 같은 일들이 반복되자 안타까움은 답답함으로 변했다.
결국 선생님들은 A를 부르기에 이르렀다. 네 문제가 뭐냐고. 그걸 알아야 선생님들이 널 도와줄 수 있다고 얼러도 보고 물어도 보며 A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애썼다. 하지만 A는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말뿐 시원한 답을 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A의 굳게 닫힌 입매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리깐 시선에서 난 두려움과 회피의 마음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때까지의 삶에서 몇 번의 실패를 겪으며 내가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내가 어려움을 만날 때 씩씩하게 싸우기보다는 회피하는 사람이란 것이었다. 이런 내가 나도 너무 싫어 몸살을 겪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나도 나인 것을. 나는 덜 씩씩한 사람인 것을.
너도 혹시 이런 마음인 것이냐 조심스레 물었더니 A는 이내 눈물을 쏟으며 마음속 이야기도 쏟아냈다. 그간은 공부며 관계며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대입을 앞두니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생각에 어려워졌다고. 한 몸에 받는 기대가 엄청나다 보니 실패가 더욱 두려워졌다고. ‘열심히 했는데도 실패했다’라고 하게 될 상황을 무엇보다 피하고 싶었다고.
예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여 아시기에 우리가 언제나 담대히 그 앞에 나아갈 수 있다. 내가 그리도 지우고 싶던 약함과 실패의 기억이 다른 이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양분이 되었다. 소통의 결과는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이지만, 소통의 전제는 나 자신을 알고 열어 보이는 것이었다.  

홍문희는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독서 지도교사로 섬기다 지금은 두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교사가 되기 전 출판사 편집자, 잡지사 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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