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힘을 보았다

issue 2019년 07월호 비움의 힘을 보았다 빛과소금

비움의 힘을 보았다
예수원 탐방기


글 장경식 사진 정종갑

강원도는 힘이 세다. 강원도의 힘은 비움에도 있다. 비움을 통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힘을 나는 강원도의 한 골짜기에서 발견했다.

강원도 태백시 하사미동 산 7번지.

주소를 보면서 떠올랐던 기억은 오래전 청년 시절 목격했던 태백, 사북, 철암의 풍경이었다. 내 기억 속의 그곳 풍경은 무채색이다. 친구들과 함께 청량리역에서 8시 20분에 출발하는 태백선 보통 급행열차를 탔다. 이 열차는 이름처럼 아주 급하지는 않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겨울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영월과 증산을 지나 지금의 태백시에 포함되는 철암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이른 시간이었고, 날은 어두웠으며, 새벽안개가 골짜기를 덮고 있었다. 길을 찾을 수 없어 대합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산바람에 흩어지는 안개 사이로 작은 읍내가 보였는데, 해가 떠오른 후에도 그곳은 무채색이었다. 탄전에서 나온 석탄가루가 역두의 저탄장뿐 아니라 읍내를 관통하는 비포장도로와,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작은 하천과, 산기슭에 나란히 누워 있는 광업소 관사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곳 역에서 구내원으로 일하던 친구의 숙소인, 하천 위에 기둥을 세워 판자로 얽은 골방으로 몰려가, 밤새 일한 친구가 퇴근하기를 기다리면서 부실한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빈속에 부은 낮술에 이윽고 모두들 취했으며, 누군가는 바닥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주먹으로 다른 친구를 후려쳤다. “정신 차려, 이 자식아!” 누군가는 축축한 이불을 끌어안고 침을 흘리면서 졸고 있었고, 나는 손수건만 한 창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겨울 찬바람에 얼굴을 식히면서 한낮의 어둠 속을 흘러가는 검은 냇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시 내게 태백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었고, 미래는 암울했으며, 함께 있었으나 모두 외로웠다.

취재라는 명분으로 그 오랜 기억 속의 태백에 다시 도착하니 한밤중이었다. 읍내에서 저녁을 먹고 일박을 했다. 새벽 5시에 숙소에서 출발했다. 여전히 태백의 새벽 국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안개를 헤치고 산길을 오르자, 문득 그곳이 나타났다. 태백시 하사미동 산 7번지, 예수원. 처음엔 몹시 서먹했지만, 우리는 곧 아침 6시 예배인 조도에 참석하면서 예수원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예수원의 일과는 아침 6시 정각, 종 대신 트럭 바퀴의 통쇠를 타종하는 소리로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한 시간 동안, 시편, 구약, 신약을 한 장씩 읽고 묵상했다. 인도자는 돌아가면서 맡았으며, 은혜받거나 깨달은 말씀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점심 예배인 대도는 12시에 시작해 30분 동안 중보 기도로 드렸다. 저녁 예배인 만도는 7시 30분에 시작하는데, 요일에 따라 찬양 예배, 구역 예배, 강의 등으로 드렸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2시간 30분 이상을, 시간의 십일조로 주님께 올렸다. 예수원 가족과 손님들은 예배에는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예수원 일과 가운데 또 다른 중요한 원칙 두 가지는, 노동과 침묵이었다. “노동하는 것은 기도요, 기도하는 것은 노동이다”라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이 붓글씨로 대기도실과 도서실에 붙여져 있었다. 이날 형제들은 밭고랑을 보수하고 제초 작업을 했으며, 자매들은 침구 세탁을 했다. 이와 함께 예수원에서는 특별히 침묵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점심 후 1시에서 2시까지는 중보 기도인 개인 대도를 위한 침묵 시간이고, 소침묵 시간인 밤 9시에서 10시까지는 작은 목소리로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으며, 10시부터 아침까지는 온전한 침묵 가운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안식했다.
예배와 노동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곳, 예수원은 중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대천덕 신부와 가족, 그리고 뜻을 같이한 성 미가엘 신학원 학생들, 항동교회 신자들, 건축 노동자들에 의해 1965년에 설립되었다. 노동과 기도의 삶을 영위하되, 기도의 실제적인 능력을 시험해 보는 실험실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고, 신자 생활의 세 가지 실험을 위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었다. 하나님과 개인의 인격적 관계,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의 신자 상호 간의 관계,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와 비기독교 사회와의 관계를 실험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실험적 공간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예수원’이라 지었다.
예수원의 건물들은, 마치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가 되듯, 숲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개울에서 골라 모은 돌로 벽을 올리고 나무와 마른 억새로 지붕을 얹은 예수원의 건물 풍경은 그림책에 나오는 숲속 오두막처럼 보였다. 아마도 처음에는 산비탈에 의지해서 한 채를 올렸고, 그 건물 옆에 이어서 다른 한 채를 올렸을 것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계단과 통로가 있었고,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산세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또 한 채가 들어서 있었다. 이 건물들은, 하나도 그저 비워진 곳 없이, 알뜰하고 야무지게 설계되어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빈 곳엔 방이 있고, 벽장을 열고 올라가면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숲속 잔잔한 햇볕 아래 따뜻하고 정갈했다. 돌 틈에 자란 들꽃과, 벽을 함부로 타고 오른 담쟁이와, 가구와 문짝에 오래 묵어 지워지지 않는 손때마저도 정갈했다.
그 정갈함을 따라 건물들 옆으로 이어진 숲길로 접어들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쓰여 있는 십자가가 고즈넉이 우리를 맞았다. 고개를 젖히니, 하늘 향해 가지런히 자란 소나무의 푸른 잎이 눈부셨다. 숲 사이의 작은 공간마다 옥수수며 상추며 열무가 소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숲길을 좀 더 따라가자, 바위에 흰 글씨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레 25:23)”는 말씀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비문에는 “토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것은 하늘이 명령하신 인간의 기본 권리이고, 토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대천덕 신부의 말이 적혀 있었다. 예수원은 오직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헌신하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사회의 본보기를 만들자는 꿈의 실험장이었다.
이 정갈한 실험은 지금도 살아서 이어지고 있었다. 예수원에는 멀리는 30년이나 생활을 같이해 온 가족부터, 공동체 생활을 체험해 보고자 단기 수련을 들어온 젊은 학생까지, 10여 가족이 살고 있었다. 어떤 형제는 인근 산야에 자라고 있는 다름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었고, 어떤 자매는 흙으로 작은 소품을 빚어 도자기를 구웠다. 다른 형제는 삼수령 고지 위에 조성한 목장에서 1백여 마리의 소를 방목하고 있었고, 또 어떤 형제는 아내와 함께 ‘생명의 강’ 대안학교의 살림을 맡고 있었다. “예수원은 나의 전부입니다. 예수원에서 결혼을 했고, 예수원에서 아이 다섯을 낳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이 형제는, 이 모든 것의 뿌리를 태백의 척박한 골짜기에 내린 대천덕 신부의 일화를 끝도 없이 털어놓았다. “신부님은 하나님 품 안에서 위아래가 있을 수 없다며, 모든 이의 호칭을 ‘형제’와 ‘자매’로 부르자고 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가슴에 ‘아처 형제’라는 이름표를 붙이시더니, 제가 ‘신부님’이라고 부르자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이름표를 가리키며 ‘아처 형제’라고 부를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원의 구성원에겐 모두 동등한 권리가 주어졌고, 의견도 평등하게 반영되었다. “비록 잘못된 판단이라 생각되더라도, 공동회에서 통과된 의견을 대천덕 신부님은 존중했습니다. 때로,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그것을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주장하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니, 그분께 맡길 일이라는 것이었지요.” 하나님에게 기도로 모든 것을 의탁하는 그들의 얼굴은 맑고 평안해 보였다. “양식이나 돈이 떨어져 갈 때면 대천덕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시면 그저 순종하고 신뢰하면서 그분이 기적을 행하시길 기다려라.’”
우리의 속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비워야 머물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예수원이었다. 그래야 그 비워진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오실 수 있음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곳. 예수원. 청년 시절 태백에서 발견한 것이 노동의 고통과 외로움의 절망이었다면, 이날 태백 예수원에서 발견한 것은 노동의 기쁨과 공동체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나를 전율하게 한 것은, 그동안 내 눈을 가리고 있었던 세속적 욕망의 허망한 실체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예수원은 그 모든 것을 비우고도 이 땅에서 평화롭고 은혜로운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로 내게 각인되었다. 강원도에는, 예수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비움의 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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