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어른 vs. 어쩌라고 꼰대 & 어리석은 어린이

issue 2019년 06월호 어쩌다가 어른 vs. 어쩌라고 꼰대 & 어리석은 어린이 글 곽상학(새롬중학교 교사)

“저도 어른이 처음인데요?” 계획하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다. 입시, 취업, 연애, 결혼, 생계, 육아에 치여 살다 보니 ‘어쩌다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조금 더 ‘괜찮은 어른’으로 도약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한 방송사의 초밀착형 토크쇼가 많은 이들에게 각광을 받는 것은 어쩌면 진짜 어른을 갈망하는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겠다.
쓸데없는 권위를 부리거나 자신의 경험을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가짜 어른을 명명(命名)하는 단어의 유래가 다소 이채롭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완용 등 친일파들은 일본으로부터 작위(爵位)를 수여받으면서 스스로를 백작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콩테(Comte)’로 자칭했는데, 그들의 매국노 행태를 비난(非難)하는 사람들은 일본식 발음으로 그들을 ‘꼰대’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꼰대 짓’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꼰대 감별 육하원칙이 있단다. “내가 누군지 알아?(who), 뭘 안다고?(what), 어딜 감히(where), 내가 왕년에는(when), 어떻게 감히(how), 내가 그걸 왜?(why)” 새 물결이 일렁이는 새로운 시대에 여전히 꼰대로 머물러 있는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삼강오륜식의 어른 공경을 강요할 수 없다. 당최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 답답한 꼰대는 어쩌다가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당연한 공식을 자인(自認)해버리고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부인, 내가 왜 호가 ‘소파’인지 아시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소. 이 물결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오. 훗날에 큰 물결 대파가 되어 출렁일 테니 부인은 오래오래 살아서 그 물결을 꼭 지켜봐 주시오.” 1899년에 태어난 방정환이 33년의 짧은 생애를 마치면서 아내에게 자신의 호가 왜 소파(小派)인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5월 5일은 무시와 천대가 당연시되던 조선의 아이들이 어린이로서의 인권(人權)이 세워지는 작은 물결이 시작된 날이다.
전통(傳統)과 인습(因襲)을 구별한 용기와 오만(傲慢)을 걷어낸 겸손함,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몸에 밴 유연함은 그 시대의 작은 물결로 시작했지만 이 시대를 큰 물결로 뒤덮는 큰 힘으로 응축되어 있었다.
꼰대 방지 5계명이 있다고 한다. ①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②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③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④ 말하지 않고 들어라, 답하지 말고 물어라. ⑤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다.
어쩌다가 어른이 된 우리가 어쩌라고 배 째라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차라리 어린이로 남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적어도 아이들은 자신이 어린이(17세기 중세 국어에서 어린이는 ‘어리석은(遇) 사람’이라는 뜻임)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는 어른은 어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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