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면 열 배의 기쁨이 넘칩니다

issue 2019년 04월호 함께하면 열 배의 기쁨이 넘칩니다 박민수 목사

마흔일곱 명이 한 가족으로 사는 집이 있다. 그 집에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도서관, 음악실, 공동 식당, 어린이집, 학교가 있다. 옥상정원에는 히노키탕과 바비큐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그뿐인가. 그곳은 마흔일곱 명이 사는 집이자 구십여 명이 예배드리는 교회이다. 믿음으로 만나 사랑으로 뭉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은혜공동체’다.
이곳에선 매일이 축제다. 와글와글, 시끌벅적, 하하 호호, 울고 웃는 은혜의 잔치가 쉬지 않고 벌어진다. 그 중심에 박민수 목사가 있다. 대형교회 부목사직을 내려놓고 선택한 공동체 목회의 길은 쉽지 않았으나, 결코 놓을 수 없이 넘치는 은혜의 길이었음을 고백한다. 도봉산 만장봉이 눈 앞에 펼쳐지는 안골마을 은혜공동체에서 박민수 목사를 만났다.
취재 서진아 사진 정화영


신앙과 삶이 하나 된 은혜공동체를 섬기고 계신데,
어떤 계기로 공동체적 목회를 하게 되셨고 공동체적 삶을 누리게 되셨나요?

큰 교회에서 하던 청년부 사역을 내려놓고 2000년에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교회를 개척했어요. 그때 20대 청년을 중심으로 질문을 통해서 답을 찾아가는 귀납적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정해진 답은 없고 본문이 정해지면 여러 질문을 하면서 다양한 채널로 답을 찾아가는 방법이었죠. 그런 식으로 10년 가까이 심도 깊은 토론식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질문들이 소그룹 성경공부 시간에 제기되었고 답을 찾아가면서 점차 성경의 본질과 핵심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예수님의 삶과 가치로 귀결되었어요.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라는 답을 얻게 된 것이죠.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서도 이루어내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공동체 내에서 나누고 섬기고 존중하는 훈련을 하는 시기가 있었고, 그런 훈련을 통해서 예수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작게나마 하나님 나라를 일구고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몇 팀이 실제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혈육 공동체가 아닌 보편 공동체 형태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치가 쌓여 지금의 은혜공동체를 이루는 모판이 되었습니다.


공동체 건물이 여느 건축물 못지않게 빼어나고 내부도 훌륭합니다.
건축 과정과 건물의 특징을 들려주세요.

2016년부터 건물을 짓기 시작해 그 이듬해 완공하고 들어와 산 지 1년 7개월 되었습니다.
총 건축비는 49억 원이 들었어요. 전체 5층 구조인데 각 층마다 4개 부족별로 공유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부족 구성원들의 취향과 특성에 맞게 공유 공간을 꾸미도록 했습니다. 책을 읽는 공간도 있고, 영화 감상이나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서 차를 마시고 교제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일반 가정의 거실 같은 개념이죠. 독립된 공간은 최소화하여 침대와 붙박이장만 들어갑니다. 그러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여 각 방마다 화장실은 따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서 그런지 요즘은 방문객이 꽤 많습니다. 개인적 방문도 있고 단체 방문도 많아요. 교회에서도 많이 오시고, 지역 사회 분들도 오세요. 우리 건물이 서울시 건축대상 최우수상과 특별상을 받아서 그런지 건축과 학생들, 건축 종사자 분들이 견학 삼아 오시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이렇게 모여 사는 것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시선은 없었나요?

처음 개척할 때 우리끼리 모여서 살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사람을 세우고 성장시켜서 크든 작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작은 예수로 살자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공동체 내 관계가 좋고 건강하다 보니 안에만 있고 싶은 마음이 점차 생겨났어요. 밖으로 향하면 힘드니까요. 개신교회가 밖으로 향하면 무슨 ‘흑심’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시선으로 바라봐요. 큰 교회보다 작은 개척교회에 대해 더 심해요. 처음엔 움츠러들었죠.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망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아무리 좋은 모임이라도 고이게 되면 더러워지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배워 갈수록 안에만 머물 수 없게 되었어요. 예수님 자체가 그렇게 살지 않으셨거든요. 예수님의 정신은 항상 밖으로 향해 있잖아요. 예수님을 버리면 그렇게 살 수 있는데 예수님을 잡고 있는 한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세요. 계속 밖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찾아가서 함께 교제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조작간첩 희생자분들, 콜트콜텍, 쌍용자동차, 코오롱 해고 노동자 등 우리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함께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작간첩 희생자 중에 한 분이 우리 공동체 주변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집들이 파티를 공동체에서 열어 드렸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알려지면서 우리 공동체가 사회 활동을 하는 단체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예장 통합 소속 교회인데, 그런 사회 참여가 교단의 정통성에서 벗어난다는
우려의 시선은 없나요?

저에게 대놓고 이상하다고 말한 분은 없어요. 하하. 부정적으로 보면 약간 이상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예수 정신에 기초를 두고 그 바탕에서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니까, 약간 다르다고 여기는 부분은 있지만 틀린 것은 아니니까 어느 정도는 수용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근래 7~8년 동안은 사회 참여보다 공동체 운동에 대해 연구하고 몰두하면서 그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잡고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밖에서도 우리 공동체를 그렇게 인식해 주시는 것 같고요. 우리가 시도한 실험들을 다양한 공동체 운동의 흐름 중에 하나로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원이 47명이라고 하셨죠. 연령과 직업, 성품 등이 전부 다를 텐데
갈등이나 다툼은 없나요?

소소한 수준의 갈등은 늘 있지만, 교회가 쪼개질 만큼의 갈등은 없었습니다. 이 건물에 입주하기 전에 10년 동안 실험적으로 몇몇 가족이 함께 살았어요. 크게 세 팀이 소그룹 형태로 비혈육 공동체를 꾸렸죠. 그중에 한 팀은 미혼 여성 그룹, 한 팀은 미혼 남성 그룹, 한 팀은 한부모 가정 엄마와 자녀가 사는 그룹이었어요. 처음에는 미혼 여성들이 사는 집에 문제가 많았어요. 성격적으로 안 맞는 사람들끼리 삐거덕대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죠. 여성들더러 남성 그룹에 가서 좀 배우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2년 정도 지나니까 좀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성격이 안 맞아서 문제가 많았던 여성 그룹이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를 통해 조심하고 성격을 고치기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서로를 품어주는 듯했던 남성들에게 문제가 슬슬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품어준 게 아니라 여성들보다 덜 예민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였죠. 2년쯤 함께 살다 보니 부정적인 행동들이 서서히 눈에 보이게 된 거죠. 누구는 청소하고 누구는 손도 안 대고, 누구는 먹기만 하고 누구는 치우고, 이런 일로 한쪽에서 욕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여태껏 통 크게 누군가 그 일을 해오다가 결국은 폭발한 거죠. 어떻게 보면 진짜 사소한 일인 거 같은데, 사실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던 거예요. 결국 남성 그룹이 깨졌어요.

심각한 결과가 벌어졌네요. 그 일로 인해 공동체 내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을 것 같아요.

심각하긴 했어요. 관계가 거의 결딴났으니까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것이 우리에게 엄청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섬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인간이 추구하는 권력과 높임의 삶이 아닌, 예수님이 추구하는 섬김과 낮아짐의 가치를 보게 된 거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섬김은 고차원적인 게 아니에요. 빗자루 들고 청소하고, 음식 만들고, 빨래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위해 청소하고 빨래하고 음식 준비하는 게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세요.
공동체 깨어짐을 계기로 다 함께 깨달았어요. 섬김이 안 되면 어느 한쪽이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예수님이 말한 섬김이 작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 일을 통해서 깨우쳤죠. 이런 실험의 결과가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 안에 들어가서 깊이 내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각자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모든 구성원이 ‘섬김’을 행할 수 있게 되었어요. 보시다시피 언제나 공간이 깨끗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공동체 실험 때 깨어졌던 남성 그룹의 구성원들도 지금 다시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꾸리는 일은 지속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사명을 동반하는 일입니다.
예배 공동체에서는 크게 문제가 안 돼요. 예배만 드리고 가면 되니까요. 그 예배 공동체가 생활 공동체로 넘어가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철저화되지 않으면 힘들어요. 이게 기본이고 그 위에 심리학적인 접근들이 도입되기도 합니다. 우리도 멘토링을 통해 그 부분을 보완해 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는 멘토가 있어서 다른 누구에게 하기 어려운 문제를 상담하게 됩니다. 성격 차이로 인한 문제나 가정 문제, 개인적 고민 등이 멘토링을 통해 많이 해결됩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토지 구입비나 건축비가 적지 않게 들었을 텐데,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재정이 넉넉한 건 아니었을 거 같아요. 갈등 없이 재정 문제가 잘 해결되었나요?

어느 공동체보다 자랑스러운 부분이 재정적인 부분이에요. 개인적으로 구약의 핵심은 희년 사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년 사상은 무소유 사상이며 나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죠. 50년마다 가진 것을 모두 한 통에 넣고 n분의 1로 나누는 것이니까요. 초대교회에서도 행했던 계산법이죠. 요즘 많은 목사님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말씀들을 하세요. 성령에 대해서는 강조하는데 성령의 결과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요. 그런 의미에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상이 어느 정도 우리 안에 들어왔어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래도 해 보려는 노력은 하자고 했어요. 그런 마음이 우리 안에 10년 정도 쌓여 왔어요. 집을 짓기로 하고 일단 일반 교회에서 말하는 건축 헌금을 모았는데 ‘새 발의 피’였어요. 필요한 건축비는
49억 원이었는데 모아진 건 2억 원 정도였으니까요.
49억 원에 입주자가 47명이니까 대략 1명당 1억 원씩 내면 간단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많은 입주자들이 재정 능력이 없었어요. 통장에 돈이 없으니까 신용도 낮아서 대출도 안 되고요.
토지 비용에서 7억 원 정도는 은행에서 담보 대출받고, 서울시에서 사회적 기업 형태로 10억 원 정도 융자 지원을 받았어요. 그것을 합해도 32억 원을 공동체 내에서 만들어야 했어요.
하는 수 없이 셰어하우스에 입주하지 않는 사람을 포함한 공동체 전체(약 90명) 명의로 희년 정신에 따라 돈을 맡기라고 선언했어요. 잠시 맡겨 놓는 것으로 생각하고 운영할 테니 지원해 달라고요. 그랬더니 재정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각자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3억, 4억 원의 건축비를 냈어요. 계약서 한 장 없이 각자 가진 것을 다 내어 주셨어요. 피붙이가 5천만 원 빌려 달라고 해도 안 주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공동체 내에서는 그게 돼요. 그것이 바로 희년 사상이죠. 부족하긴 하지만 조금은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실천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것들의 바탕에서 큰 재정적 어려움 없이 이 집을 짓고 많은 분들이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공동체에 사는 분들 중에 가장 크게 수혜를 누리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누구를 딱 꼬집기 어렵지만 그래도 미세한 차이로 가장 큰 수혜자는 역시 아이 엄마들입니다. 이전의 삶과 차이가 너무 극명해요. 신혼부부가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다가 아이를 낳으면 그곳이 창살 없는 감옥이 된다고 해요. 특히 엄마에게 더요.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는데 데리고 갈 데가 없어요. 영화도 보고 싶고, 카페도 가고 싶고, 나만의 시간을 잠시라도 갖고 싶은데 나갈 수가 없어요. 하루 종일 아이만 보고 있으면 점점 고립감이 쌓이죠. 아이가 커 갈수록 활동량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놀아 주기도 힘에 부치고요.
그렇게 살다가 이 집에 들어오면 다른 세상을 만나요. 아이도 행복하지만 본인도 행복해지죠. 밖에서는 아이를 떼어놓으면 방임이 되지만 여기서는 떼어놓으면 아이에게 천국이 됩니다. 부모도 잃어버렸던 청춘을 다시 찾는 느낌이랄까요. 여기서는 부모들이 팀을 꾸려 순번제로 아이 돌봄을 합니다. 어른 20명이 2인 1조로 돌아가면서 10명의 아이들을 돌봅니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만 하다가 이제는 함께 사는 싱글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열흘에 한 번 정도 아이와 함께 놀고 나머지 날에는 시간 여유가 생겨서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합니다. 아이들은 또래들과 놀고 생활하고 잠도 같이 자는데, 부모와 지낼 때보다 더 자율적으로 성장합니다. 여기서는 사춘기 같은 거 아예 찾아볼 수가 없어요.


한국교회에 전하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으실 것 같아요.

사회가 다변화, 다양화되면서 각자도생의 삶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혼밥, 혼술 같은 문화가 보편화되고 타인과의 교제가 단절되면서 정서적 고립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급부로 개인은 더불어 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고 사회적으로는 공동체적인 삶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 공동체가 좋은 모델을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갔더니 모든 사람들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깊이 있는 나눔을 하고, 사도행전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교회 밖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요. 교회가 정말 아름답고 건강한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면 교회에서 가능성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가 아닐까요. 모든 교회가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이 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역할을 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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