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준 가족 용서하기

story 2022년 05월호 상처 준 가족 용서하기 글 이재훈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한 아버지와 십대 아들이 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래서 아들이 집에서 뛰쳐나갔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를 찾기 위한 최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신문에 광고를 냈다. 그 광고의 문구는 이랬다. “사랑하는 파코, 정오에 신문사 정문 앞에서 만나자. 모든 것을 용서한다. 사랑한다. -아버지” (여기서 파코는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인 프랜시스코라는 이름을 집에서 쉽게 부르는 명칭이라고 한다.) 다음 날 정오, 신문사 앞에는 8백 명의 파코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들 모두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 중 가장 치명적인 건 대부분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이다. 행복해야 할 가정에서 불행을 경험하고,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끔찍한 일을 경험했을 때 그 상처는 매우 깊고 오래간다. 구약 인물 중 요셉의 용서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도전은 그 대상이 깊은 상처를 준 가족이었다는 것이다. 요셉의 생애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생애로 해석되는 이유는 바로 이 형들에 대한 용서 때문이다. 요셉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나타난 용서를 예표하며, 십자가의 용서가 가정 안에서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 준다.
가족 간에 주고받은 깊은 상처에 대한 용서는 서두른다고 되지 않는다. 용서는 일종의 여행과 같아서 상처가 깊을수록 그 여행도 길어진다. 사소한 말다툼 정도는 쉽게 용서하고 빨리 처리될 수 있지만 심각한 상처는 도리어 천천히 해야 한다. 용서를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손쉬운 용서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다. 손쉽고 즉각적인 용서는 어쩌면 고통을 대면하기 싫어서 하는 외식적인 행동일 수 있다. 그런 즉각적인 용서는 상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지나치게 빨리 용서하는 것이 위험하다면 지나치게 오래 기다리는 것은 훨씬 더 위험하다. 용서하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린다면 분노가 우리의 영혼에 불법 거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가 우리 영혼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 정체성을 상실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에는 적당한 때가 있다. 우리는 그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으며 그때가 되었을 때 용서할 준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때는 오직 상처 입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알 수 있을 것이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발명하신 선물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풀러신학교 교수이자 용서에 대한 전문적인 책을 여러 권 저술한 루이스 스미디즈라는 분은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것은 하나님 당신 자신에 대한 치료책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누가복음 15장의 비유에서 집을 나간 탕자는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었고 부당한 일을 행하였다. 히브리 문화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여 나간다는 것은 아버지를 죽이는 것과 동급의 죄를 짓는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먼 나라에서 방탕하게 지낸 것도 핵심이 아니다.
이 아들의 행동은 아버지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의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치유할 능력은 없었지만 자기 자신을 치유할 능력은 있었다. 그것은 아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아들을 용서하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것이다. 용서함으로 우리는 포로된 자를 풀어주는데 그 풀어준 포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자신을 자유케 하는 선물인 용서를 행하는데 몇 번인지 따지는 사람은 없다.

용서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용서한 만큼 얼마나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누리고 있는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용서하는 정도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인 정도이고 복음의 능력을 누리는 정도이다.
상처 준 가족을 용서하는 일은 진정 자신과 가족을 포로에서 자유케 하고 축복하는 선물이다. 최고의 선물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에 대가를 요구한다. 용서를 잘 하도록 타고난 사람은 없다. 용서가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용서를 계속 실천할 수 있다. 
용서는 망각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선택하는 것이다. 용서는 우리가 바꿀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용서는 고통을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방법이다. 아픈 기억을 감사의 기억으로, 두려운 기억을 용기 있는 기억으로, 얽매였던 기억을 자유로운 기억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용서는 과거의 망상을 부서뜨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태어나게 한다. 고통스러운 과거로 닫힌 미래의 문을 열게 한다. 

 

 

이재훈은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이다. CGNTV 이사장, 한동대학교 이사장, 한국로잔위원회 의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 「나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은혜가 이긴다」, 「생각을 생각한다」 등이 있다.

story의 다른 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