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점에 굳이, 집에 대한 담론

prologue 2021년 10월호 지금 이 시점에 굳이, 집에 대한 담론 빛과소금

누군가 나에게 ‘집’의 의미를 물으면, 적어도 ‘재산’이라고 답하지는 않습니다. 고귀하다거나 고결한 성품이어서가 아니라, 부동산 광풍에 휩쓸릴 배포도, 능력도 갖추지 못해서요. 어떤 이는 이런 저를 안타깝게 바라보겠지만, 저는 이런 저의 무능이 원망스럽기보다는 감사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남편은 한술 더 떠서 우린 그냥 끝까지 ‘바보’로 살잡니다. 본인만이라도 좀 똑똑하게 살면 안 되겠니?
나에게 ‘집’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다섯 살로부터 지금까지, ‘나의 역사’를 만들어 준 터전입니다. 과거 기억의 단편들을 떠올리다 보면 으레 살던 집부터 그려지니까요. 나의 왼쪽 눈두덩에 남은 흉터는 다섯 살 때 살던 서민아파트 계단 난간에서 떨어져 생긴 것이고, 일곱 살 때 잠깐 살았던 시골집에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중학교 1학년 때 쟁취한 첫 독립은 장충동 집의 다락방이었어요. 작고 어두웠지만, 앉은뱅이책상에서 밤늦도록 라디오를 듣던 그곳은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공간으로 남았습니다. 부평의 신혼집에서 첫아이를 만났고, 서울의 아파트 최고층에서 둘째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나의 집은 나의 성장과 성숙을 지켜보았으며,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아픔을 함께했습니다. 가끔 옛날로 돌아가고 싶을 때면 그 집들을 떠올리거나 홀연히 그곳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집’이 ‘재산’이거나 ‘노후 보장’, ‘유산’이라고 말하는 의견도 매우 존중하고 공감합니다. 시아버지께서 평생 일하신 땀의 결과는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로 남았습니다. 나날이 치솟는 집값 덕분에 그 집으로 적지 않은 주택 연금을 받고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자식들이 해야 할 효도를 집이 대신하고 있으니 새삼 집의 위력에 놀랄 따름입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3요소, 의식주 가운데 ‘집’에 대해서는 유독 할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몇 번이나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으니 말입니다. 굳이 ‘담론’이라 수식해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겠지요. 빛과소금 10월호에 저마다의 집 이야기를 풀어 보았습니다. 모두 집에 살고 계시므로 충분히 공감하실 거라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집을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소장하고 있으니까요. 
소유(所有) : 가지고 있음.
소장(所藏) : 자기의 것으로 지니어 간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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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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