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미래다

issue 2021년 03월호 어린이가 미래다 글 고정욱

“이런 축제라면 곧 없어지고 말 겁니다.”
지방의 모 축제 기획회의에 참가한 나는 참다못해 결연히 말하고 말았다. 담당자가 당황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잖습니까? 부스도 어른용이고, 부모 따라온 아이들 보호시설이나 놀이시설도 눈을 씻고 봐도 없고.”
관계자들은 미처 생각 못했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니, 이건 토산품 판매 축제인데 애들이 뭐 먹을 게 있을까요?”
“어린이들이 부모 따라와서 어른들 잔치에 개밥에 도토리처럼 떠돌다 가면 이 축제는 단언컨대 오랫동안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기획위원들에게 배포한 행사장 배치도에 어른들을 위한 부스만 예정해 놓고 있는 걸 보고 내가 지적한 사항이다.

어린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다. 분명히 지금 세상은 20~30년 뒤에 그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끌 곳이다. 우리를 대신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을 테니까. 사람들은 세상은 어른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계속 이어져 나이를 먹은 뒤에도 바뀌지 않으면 꼰대 소리나 듣고 ‘라떼는 말이야~’라며 겉도는 이야기만 하는 거다. 

어려서 소아마비 장애를 앓은 나는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삶의 가장 중요한 고비마다 장애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학 진학에서도 장애인이라고 차별을 받았고, 직업을 가질 때도 편견에 의해 제대로 된 직장을 얻을 수 없었다. 결혼할 때 역시 마찬가지로 처가의 반대로 힘들고 어려웠다. 모든 원인은 나의 부족함에 있었겠지만 근원적인 것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었다.
뒤늦게 작가가 되고 난 뒤 작품을 쓰면서 이런 차별과 편견을 후세에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받고 슬픔을 겪는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다. 내 뒤에 오는 후배 장애인들은 좀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게 해 줘야 한다. 차별이나 편견으로 눈물짓게 하면 안 된다. 이제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나 영아들을 보면 그들이 살아갈, 길고 긴 미래 세상과 장애의 고통을 떠올려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을 위해 나는 소명을 발견했다. 다가올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는 목표. 그래서 동화를 쓰게 되었다. 아무리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고 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살자고 이야기해도 어른들은 이야기를 들을 때뿐이다. 끄덕이지만 그들의 머리는 이미 굳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이나 여유가 부족하다.
그래서 나의 작품에는 항상 장애인 친구와 장애인 동료들이 등장한다. 「가방 들어 주는 아이」는 장애인 친구의 가방을 들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 나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이때 같은 반의 문석우라는 친구가 등하교 때 우리 집에 들러 내 가방을 들어 주었다. 아무 대가 없이 그 어려운 일을 매일 해 준 거다. 두고두고 나는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은 장애가 있지만 능력을 가진 종식이라는 뇌병변 장애인의 이야기다. 태어나면서 장애를 가진 아들 종식을 부모는 시골의 할머니에게 맡겨 두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돌볼 사람이 없어졌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형의 존재를 모르던 종민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애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종민이와 종식이가 지역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작품을 읽고 재미를 느끼는 어린이들은 커서 성인이 되더라도 장애인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읽은 작품들이 또렷이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동화를 쓰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미래의 주인공이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어린이들, 그 어린이들에게 장애인에 대해 미리 알려 주고 싶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마음속에 각인시켜 주어야 한다. 이는 마치 아무런 낙서도 되어 있지 않은 흰 도화지에 먼저 곱고 반듯한 스케치를 해 주는 것과 같다.
이게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40대에 비로소 나는 왜 장애인이 되었나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소명으로 삼아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죽는 날까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장애 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이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장애인이 차별을 받지 않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틀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가면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고 한다. 홈런 공을 멋지게 받아 낸 관객은 반드시 관중들의 이런 함성을 듣는다.
“아주라! 아주라!”
이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아이에게 그 공을 주라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공을 받는 사람 옆에는 아이들이 벌써 몰려와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그 공을 갈망하고 있다. 그 시선을 이겨 낼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자기가 받은 공을 누구에게 주라고 강요할 일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의사 결정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야구장 갔다가 홈런 공을 넘겨준 어른에게서 추억을 쌓은 아이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야구장에 갈 것이고, 그 역시 공을 받으면 아이에게 넘겨주면서 프로야구 애호의 맥을 이어 가리라.  프로야구나 프로축구가 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유소년 구단이나 서포터들을 유지할까? 각종 문화 행사에 왜 꼭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이나 프로그램이 있을까? 각종 종교 단체에서 주일학교나 어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이유는 뭔가? 모두 다 자신들의 이념이나 사업이나 비전이 다음 세대로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 사회에는 앞으로도 ‘가방 들어 주는 아이’가 많이 나와야 한다. 장애인과 함께 공부하고 장애인을 장애로 여기지 않으며,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함께 놀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우리는 어린이에게 집중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사업, 어린이를 위한 정책, 어린이를 위한 교육 등. 어린이 그들은 어른과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이런 선각적 사고방식은 바로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이 부르짖었던 정신이기도 하다. 방정환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 모든 분야에서 팽배했던 어린이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계몽하려 노력했다. 가부장제 아래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없었던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강력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어린이」 등 여러 아동 잡지에 창작 작품은 물론, 해외 아동문학 작품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사회 교화와 어린이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선생은 최선을 다했다. 그건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독립운동이었다. 미래의 독립운동꾼을 길러내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그 노력의 결과가 오늘날 어린이들의 지위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남산 외곽의 소파길을 다닐 때면 항상 그가 유언으로 남긴 이 땅의 어린이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우리가 잘 지키고 있나 반성하게 된다.

나의 직언으로 인해 축제 위원회는 부랴부랴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구성하였다. 축제를 즐긴 어린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다시 찾아오는 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고정욱은 아동문학가이다. 성균관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이다. 대표 저서로 「가방 들어 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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