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요

people 2021년 02월호 괜찮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요 배우 정애리


흔히 축복은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삶,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삶,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행복한 삶. 어쩌면 축복이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 삶에 밑줄을 그으라고 한다면 정답이 될 법한 문장들이다. 물론 그것도 맞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감사한 축복의 조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힘들다. 내가 겪고 있는 가장 힘든 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은 일이 아흔아홉 가지이고 힘든 일이 하나라면, 우리는 힘들다고 한다. 내가 힘들면 타인이 얼마나 힘든지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루한 하루가 가장 축복받은 삶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무사히 잠자리에 들 수 있으니까. 만약 힘들어하는 타인이 보인다면 당신은 결코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 삶의 고비를 제법 넘었으면서도 여전히 괜찮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위로와 희망, 나눔과 봉사가 삶 자체가 되어 버린 배우, 힘들어도 삶에 스며든 축복을 먼저 헤아리는 정애리 권사의 나눔 인생을 지금 공감한다.
취재 김재원 정리 이승연 사진 한치문 

 


요즘 삶을 날씨나 계절에 비유해 주시겠습니까?
그냥, 괜찮은 날이에요. 겨울이든, 봄이든, 가을이든, 여름이든, 사실 그날그날 날씨는 다르잖아요.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 바람이 엄청 많이 부는 날, 너무 뜨거운 날도 아니고, 눈부시게 화려한 날도 아니고, 너무 가라앉은 날도 아닌 괜찮은 나날을 요즘 보내고 있어요.

일과 가정과 신앙에서 느끼시는 행복감, 혹은 만족도를 동그라미, 세모, 가위로 표시해 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O, X 중 하나 고르는 걸 잘 못해요. 하하. 코로나19로 1년이 어찌어찌 지나갔어요. 처음에는 뭐지? 하면서 상황에 밀려갔는데요. 점점 어떻게 될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오히려 왜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걸까? 질문해요. 하나님께 더 집중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앙, 일, 가정, 각각의 영역에서 괜찮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신앙인은 세 영역을 구분할 수 없어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저는 동그라미로 가는 화살표라고 하고 싶어요.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는 화살표군요. 요즘은 주로 어떤 묵상을 하세요?
너나 할 것 없이 힘들 때잖아요. 크리스천들도 힘들고요. 다 같이 힘들다고 한다면 지금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그런 질문을 늘 하고 있어요.

그 질문의 대답일까요? 최근에 삶을 나누는 책을 내셨어요.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제목이 참 좋네요. 일상의 작은 발견을 사진과 함께 정리하셨어요.
이 책은 일상에서 굴려 온 눈덩이 같은 결과물이에요. 눈뭉치가 눈사람이 되듯, 글 뭉치가 책이 됐죠. 어느새 7년 만이더라고요. 인터뷰할 때마다 적절한 시기에 책이 나왔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딱히 의도한 건 아니고요. 워낙 일상에 관심이 많아서 사진을 많이 찍어요. 제가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말씀 한 구절씩 보내 드리는데요. 매달 1일은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보내 드려요. 그런 글들을 모은 거죠.

사진을 보면 주변에 분명히 있지만 우리가 쉽게 찍지 않는 대상들이에요. 그 사진에서 발견하는 묵상도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이고요.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맞아요. 사실 우리가 못 보고 지나가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뭔지 보여 줘야 보이는 것들이죠. 개미가 짐을 지고 가는 것도 보이지 않잖아요. 저는 그런 것들이 잘 보여요. 물론 보인다고 해서 날마다 사진으로 담지는 않지만 어떤 날은 정말 그 장면들이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 사진을 찍고 그 말과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가 글로 옮기는 거죠.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자신의 삶을 관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바쁘게 살면 내 삶을 들여다보지 않잖아요. 사진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삶을 늘 관찰하며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하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해요. 그것이 묵상이고, 말씀을 접목하면 경건의 시간이 되는 거죠. 살면서 이런저런 일이 많잖아요. 큰 산이든 낮은 언덕이든 높은 파도든 깊은 계곡이든 일이 있으면, 이건 뭐지? 하고 생각해요. 평소에 훈련이 되어야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죠. 내가 나무만 보고 있다 싶으면 두어 걸음 물러서서 숲을 보려고 해요. 또 숲에서 헤맨다는 생각이 들면 나무를 기억하면서 길을 찾아요. 일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묻어 있어요. 그건 대부분 채우려 하지 않아도 제 삶에 이미 스며든 축복이죠. 아침에도 잠깐 산책하면서 이 순간이 그냥 좋다고 느꼈어요. 물론 주변 상황은 힘들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감사한 거죠.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받지 못한 것들에 연연하기 때문에 힘든 거지, 이미 받은 것들이 많잖아요. 어린 시절은 어떠셨어요? 사랑 많이 받으셨을 거 같은데요.
육남매 중에 막내라 사랑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커서는 오히려 맏딸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워낙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었거든요. 예쁨 받겠다고 뛰어가서 안기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어요. 배우를 꿈꾼 건 아니고요. 무용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을 때 셋째 오빠가 KBS 주연급 탤런트를 뽑는다는데 상금도 많다더라, 재미 삼아 한번 해 보라고 권유해서 얼떨결에 탤런트가 되었어요. 열아홉 살이었죠.

어린 나이에 배우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이었어요?
어린 날의 치기가 있었어요. 살면서 지금도 나눔의 현장을 그렇게 가기를 원하는 것처럼, 수술하고도 어떻게든 잡힌 녹화 일정은 하려고 했던 것처럼,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요. 준비하고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제게는 공부였어요. 경험이 없으니까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보고, 역할이 주어지면 관련 작품들 모니터하고 공부하듯이 연기했죠. 몇 년 열심히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일이 잘 되고 있는데도, 이 일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만둔다고도 했다가 유명 작가가 저를 설득해서 방송국 옮겨서 일을 이어가기도 했죠. 미국에 잠시 머물다 온 후에는 신앙이 자리를 잡으면서 스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어요.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만들어 주신 걸 보면 하나님께서 이때에 원하시는 일이 있겠다 싶어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사명감으로 나눔 단체 홍보대사를 맡게 되었고요. 원래 나서는 것 자체가 싫었거든요.

갈수록 하나님의 그림이 선명해지네요. 하나님을 처음 만난 건 언제였나요?
우리 집은 기독교와 상관이 없었어요. 여전히 기도 제목이죠. 언니, 오빠들이 다 착해서 제가 기도하면 따라 하고, 교회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서는데, 하나님이 온전히 그들의 마음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아요. 저는 초등학교 때 친구 따라서 여름성경학교를 다녔고, 또 제가 다닌 금란여고가 기독교 학교였어요. 신앙이 서서히 스며들었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열심히는 사는데, 이게 전부인건가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채플 시간이 편안했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 모자 푹 눌러 쓰고 동네에 있는 큰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고 신앙이 서서히 자리를 잡았죠. 저는 이슬비 신앙이라고 하는데요. 주변에 기독교인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그때는 이미 성로원에 봉사를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기독교 채널에서 방송을 시작했어요. CTS가 개국하면서 선교사님들 이야기 듣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요. 그 프로그램은 <내가 매일 기쁘게>로 발전했죠. 신앙인이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정적으로 CBS 라디오 <새롭게 하소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엄청난 신앙의 대선배들이 하셨던 거고, 매일 프로그램이라 스케줄 조정도 어렵고, 소속사는 출연료 얘기도 하고, 그런데 거절을 못 하겠는 거예요. 고민 끝에 하겠다고 하고 6년을 했어요. 그때 간증 들으면서 훈련을 받은 셈이죠. 저는 하나님이 손을 내미신 결정적인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기독교 방송 사역을 한 연예인 1세대시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하셨어요?
내 일이다 싶으면 열심히 한다고 했잖아요. 하하. 모든 일정을 기독교 채널에 맞췄어요. 요리 프로그램 진행할 때는 기독교 채널 다 끝나고 밤에 가서 찍기도 하고, 드라마도 기독교 채널과 스케줄이 겹치면 절대로 촬영 못 한다고 했죠.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한 제가 하나님을 더 많이 알 수밖에 없도록 시간마다 큰 은혜를 주셨어요. 그때까지는 성로원만 다녔는데, 내가 섬겨야 할 이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 여러 인생 만나면서 연기자로도 큰 도움을 받았어요. 하나님이 다 훈련시키신 거죠.

인생을 돌이켜 보면 연기자로서의 한 축과 봉사로서의 한 축이 있어요. 그 시작은 말씀하신 노량진에 있는 성로원인 거죠?
제가 자발적으로 간 첫걸음이죠. 1989년에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엄마 역할을 촬영하러 갔었어요. 다음 촬영지로 이동하는데 이상하게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어 달 지나서 촬영을 갔는데 근처더군요. 그래서 촬영 마치고 찾아갔어요. 그분들도 놀라셨죠. 하하. 한 번 가니까 또 가게 되더라고요. 서서히 아이들이 또 오는 아줌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을 열고, 저도 틈만 나면 그냥 봉사자로 갔어요. 바빠서 못 가면 전화하고, 1백 명 아이들 이름 다 외워서 개성에 맞는 옷 따로 사서 선물하고 하니까 나중에는 저를 정어리 아줌마로 부르더라고요. 하하. 처음에는 알리지 않았어요. 그렇게 사는 게 좋았으니까요. 8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봉사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이것도 선한 영향력이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32년을 다녔네요.

반평생 넘게 하셨으면 아기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겠어요.
아이들은 정말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그냥 눈 마주친 아이가 안아 달라고 하면 안아 줬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구석에 있는 아이나 아픈 아이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아이들에게 이리 와서 같이 놀자고 했어요. 나중에는 외로운 아이에게, 구석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찾아가게 되더군요.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느꼈어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되 내가 힘들고 아프고 외로울 때, 나한테 먼저 찾아오셔서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 괜찮아지고 나면 저기 가서 같이 놀까, 하시는 분이구나,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깨닫게 되었어요.

2000년대 초반부터 ‘월드비전’ 친선 홍보대사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하셨어요. 일부러 짬을 내서 아프리카도 자주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다른 느낌이었나요?
저한테는 같은 아이였어요. 물론 절대적, 상대적 빈곤도 이야기하고, 우리나라도 힘든 아이들이 많은데, 라고도 이야기들 하죠. 그럼에도 그 아이들은 지금 당장 봐 주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죠. 지금 죽어 가는 사람 앞에서는 너 이러면 안 돼, 라는 이야기도 살려 놓은 다음에 해야 하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일단 우리 어른들이 도울 수 있지만, 그곳 아이들은 그곳 어른들도 도울 수 없어요. 정말 아무도 없어요.

그러네요. 어떤 사람들은 한 달에 3만 원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말하기도 하거든요. 
오래전 일인데요. 월드비전에서 제가 후원하던 아이 중에 조슈아가 있었어요. 저녁 때 드라마 촬영 중에 월드비전에서 연락이 왔어요. 가나의 조슈아가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났다고요. 장례비로 50달러를 지원했다고요. 그 아이는 본 적이 없었고, 결연한 지도 얼마 안 된 아이였어요. 그래서 더 마음을 쓰는 아이였죠. 무엇보다 결연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깜짝 놀랐지만 마음 다스리고 녹화를 마쳤어요. 그날 밤에 기도하는데, 내 아이가 죽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게 사랑이 없다고 느꼈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똑같은 아이인데 말이죠. 충격이었어요. 다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사랑이 없어요. 예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부어 주시지 않으면 저 이 일을 못 해요. 저한테 그 사랑을 끊임없이 부어 주세요.’ 참 많이 울었어요. 아이들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죠. 조슈아는 결연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말라리아 약을 먹었는데도 영양실조가 심해서 병을 못 견딘 거예요. 상황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을 때 더 해야겠다 싶어서 다음날 바로 월드비전에 1백 명을 더 후원하겠다고 했어요. 그때 이미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하더군요. 제가 할 수 없을 때는 못하겠다고 하겠지만, 지금은 그래도 할 수 있다고 하고 시작했어요. 그 이후로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10년 가까이 계속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서 이 일을 하셔요. 물론 남들보다 조금 더 긍휼의 은사를 받았겠죠. 저는 끊임없이 기도해요. 주님 사랑을 부어 달라고요. 제 생각에는 한 달에 3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에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누군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제가 조사를 좀 해 봤어요. 나눔 활동이 참 많으세요. ‘생명의 전화’ 사역을 20년 하셨고, ‘연탄은행’을 17년 하셨어요. ‘다일공동체’ 밥퍼 사역과 영등포 광야교회 사역, 지라니 합창단 사역도 꽤 열심히 하셨더라고요.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동안 공동체 그룹홈을 운영하셨더군요. 2000년대 초반에는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룹홈이 많지만 대부분 성인 장애인 중심이에요. 저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가족과 같이 사는 경험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어요. 누군가와 같이 사는 건 즐거움도 있지만 불편함도 있거든요. 아기부터 어르신까지 3대가 모여 사는 보통의 가족을 꾸려 드렸죠. 집을 구해 드리고 생활비를 드렸어요. 중년 부부가 아이들을 키우고 어르신들을 모셔야 하니까요. 꽤 오래 했어요. 좋은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죠. 결국은 다들 더 좋은 길로 가셨어요. 어린 아이는 입양되었고, 청소년은 대학을 가면서 독립했고, 혼자 살고 싶다는 분은 보내 드리고, 양로원 가고 싶은 어르신도 계시고 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했죠. 사역을 위한 사역보다는 사람을 위한 사역이 맞다 싶어서 결국은 멈췄어요. 언젠가 해야 한다면 하나님이 하게 하실 것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끼워 맞추면 내가 하고 싶은 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 관여하셨던 단체가 워낙 많아서 다 언급을 할 수 없네요. 그분들이 서운해 하시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더 투게더> 얘기는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이사장이시죠? 
젊었을 때부터 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 사명은 옆에서 돕는 자라고 생각했거든요. <더 투게더>는 하나님이 저를 이끌어 내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느 선교사님의 제안으로 준비가 시작됐는데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이 다른 그림을 그려 내시더라고요.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제게 사역이 주어졌죠. 작은 단체예요. 인체에도 정맥과 동맥이 있고, 모세혈관이 있듯이 나눔 단체도 큰 기관에서 할 일이 있고, 작은 단체가 할 일이 있거든요. 큰 단체는 절차가 있어서 시간이 좀 필요해요. 저희는 긴급 지원이 필요하면 이사 몇 사람이 논의하면 되니까 바로 가능하죠. 저희에게 맡겨진 사역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벌써 6년이 됐네요. 탄자니아에 병원선 만들었고, 남수단 보육원에 구호 컨테이너 보내기도 하면서 여러 기적을 많이 체험했어요. 요즘은 한국에 있는 아프리카 유학생들이 코로나19로 힘들어졌어요.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일도 못 하잖아요. 긴급 생계 지원을 했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선교사님들이 코로나19에 걸렸는데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있다고 해서 이사들과 논의해서 바로 지원했죠. 사실 회원 수도 많지 않아요. 내 자식 도와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어디 가서도
<더 투게더> 얘기는 오히려 못 해요. 그럼에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몇몇 분들이 마음 모아 주셔서 모세혈관 역할을 기적처럼 감당하고 있어요. 참 감사하죠.

봉사 인생 살아오시면서 수 년 전에 암 투병도 하시고, 1년 전에 교통사고로 힘든 시간도 보내셨잖아요. 
그렇죠. 지금은 건강해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건강하구나 싶어서 열심히 다녔거든요. 그럼에도 누구나 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놓치고 살았던 거죠. 그런 시간이 있어서 나를 돌보게 되었어요. 사실 너무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고. 코로나19 겪으면서 힘드신 분들도 많잖아요. 아프리카에도 대충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정말 열심히 살아요. 다 열심히 사는데 힘드니까 한편 슬프기도 하죠. 그래서 저도 더 열심히 살게 되는데요. 물론 인생에서 힘든 일도 많았어요.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죠. 교통사고도 당했고, 암도 겪었지만 어쨌든 살아 있잖아요. 힘드신 분들께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될 거예요. 그때는 괜찮지 않아요. 하지만 지나고 보면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요, 지금은 도저히 저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실 거예요. 괜찮아요.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잘 인도하셨잖아요.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한다면 정애리 인생 책의 다음 챕터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만 아시겠죠. 저는 몰라요. 그냥 준비만 하고 있을 뿐이죠. 제가 지금 하는 일에 바람이 있다면 책 잘 팔려서 좀 더 좋은 일에 쓰였으면 좋겠고, 드라마 할 때 연기도 잘하고 싶어요. 이런 마음은 있지만 그 다음은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처럼 잘 인도하실 거예요. 저는 주어진 일 충실히 잘 감당하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빛과소금」 독자들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질문 하나 해 주세요.

인생 길, 잘 가고 계십니까? 

 

people의 다른 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