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만들었습니다

people 2020년 12월호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만들었습니다 강석우


신앙인은 ‘교회 같은 가정’을 원하고, 목회자는 ‘가정 같은 교회’를 소망한다. 그만큼 가정과 교회는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았다. 고전의 문장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불행한 가정의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행복한 가정의 이유는 엇비슷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의 열쇠는 의외로 기본을 지키는 것에 있다. 평생 자신의 일만큼 가정을 소중하게 여겨 온 배우가 있다. 청춘스타에서 반듯한 아버지로 우리 곁에 머무는, 요즘은 매일 아침 클래식 음악으로 세상을 위로하는 배우 강석우를 지금 공감한다.
취재 김재원 정리 이승연 사진 한치문 

 

 


요즘 삶을 날씨나 계절로 비유해 주세요. 다른 사람이 저의 인생을 보는 시점과 내가 보는 인생의 시점이 다르겠죠. 젊은 사람들은 저를 늦가을로 볼 텐데요. 물론 여름은 지났으니 가을이 맞겠죠. 가을의 어느 지점일까 생각해 보면, 저야 초입이면 좋겠지만, 이번 가을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아, 내 인생 같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하.

화려한 가을을 즐기셨으면 좋겠네요. 신앙인의 3대 영역이 일, 신앙, 가정이라고 할 때, 각 영역의 만족도를 동그라미, 세모, 가위로 표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은 참 많이 했어요.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게는 충분합니다. 지금도 하고 있으니 감사한 동그라미지요. 신앙도 모태신앙으로 시작해서 큰 굴곡이 없는 거 같아요. 주님이 축복 가운데 지켜 주신 거지요. 하지만 가끔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체된 느낌은 있어요. 코로나19 탓에 아무래도 교회의 접근성이 떨어졌잖아요. 지금도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으니 흔들리는 동그라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가정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만큼 고맙고 감사해요. 제가 이룬 것이 아니니 자랑할 수 없는 동그라미지요.

요즘은 어떤 생각 많이 하세요?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얼마 전에 네 번째 가곡을 냈어요. 다섯 번째 가곡도 시는 완성됐고, 곡도 거의 완성됐어요.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자들과 한 약속인지라 부지런히 작업하고 있어요. 일곱 곡의 가곡을 내기로 약속했거든요.

음악을 통해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정말 꿈만 같은 축복이죠. 정규 교육은 물론이고, 피아노조차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어요. 시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고요.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꿈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평생 배우로 살아왔는데 가곡을 쓴다는 걸 어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오래전에 송승환, 김수철, 그리고 CF 감독 한 분과 함께 송년 모임을 하고 있던 중에 김수철 씨가 우리도 그룹사운드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어요. 저보고는 색소폰을 맡고, 키보드도 연습해 두래요. 바로 낙원상가에 가서 키보드를 샀어요. 물론 그 이후 아무도 그룹사운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요. 하하. 그런데 어느 날, 20년을 불어 온 색소폰이 싫증 나서 키보드를 한번 쳐 봤어요. 이리저리 찾아서 코드 찾고 누르다 보니 연주가 되더군요. 그러고는 시간이 흘러 급기야 작곡까지 한 거죠. 농담처럼 시작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때 일이 저를 이렇게 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일곱 곡을 쓰고 나면 왠지 하나님이 영감을 거두시지 않을까 싶어요.

하나님이 정말 큰 선물을 주셨네요. 저는 평생을 하나님 주신 선물 속에서 살았어요.


그래요? 그러면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해 볼게요. 주일학교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친구도 교회 친구들이 더 많아요. 지금도 그때의 기억과 추억과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죠. 부모님도 모태신앙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3대째고, 아이들이 4대째죠. 부모님은 북쪽이 고향이셔서 생존하기 바쁘셨어요. 남들에게 저를 자랑하거나 그러시지 않고, 늘 저를 위해 기도하셨어요. 그 기도 덕에 제가 오늘날 이렇게 살고 있다는 감사의 확신이 있어요.

제일 확실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셨군요.  그게 최고죠. 또한 저에게 주어진 가장 무거운 짐이기도 해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을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줘야 하잖아요. 신앙의 유산이 끝까지 이어지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언젠가 이화여자대학교 채플 시간에 특강을 하면서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이 가정예배와 온전한 십일조라고 말했어요. 나중에 교목실 목사님이 그때 학생들이 많이 놀랐다고 하시더군요. 요즘은 십일조 얘기를 잘 안 하는구나 싶었죠. 저는 아이들에게 늘 이야기해요. “엄마, 아빠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 가정예배와 십일조가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이다. 너희도 세상 누가 어떠한 이론을 달고, 현대적인 해석을 해도 십일조만큼은 지켜 주기 바란다.” 딸아이가 첫 월급을 받고 십일조를 하더군요. 품안에 자식도 떠나면 자신의 신앙을 찾아야 하잖아요. 이제 자녀들이 자기들 신앙을 찾아가는 거 같아서 참 감사해요.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꾸셨나요? 우리 때에는 배우는 말 그대로 스타죠. 저는 근처에도 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다닐 때 보면 배우의 세계는 다른 세상이었어요. 내가 이 일을 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그야말로 하나님의 선물로 배우가 됐어요. 1978년 영화진흥공사 배우 공모에서 남자 배우로는 혼자 뽑혔어요. 정부 기관에서 처음으로 배우를 선발해서 상금 주고, 교육시켜 주고, 해외 영화제 참여시켜 주는 등 특전이 엄청 났죠. 그런데 그 이후 공모가 없어졌어요. 생각 없이 지내다가 5년 전쯤에 갑자기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아, 그러고 보니 그 대회는 날 위해서 만들어진 셈이구나. 이런 것이 인생의 선물 아니겠어요?

그 당시 배우가 되는 길은 방송사 공채 탤런트가 유일한 길이었죠? 그렇죠. 방송사 TV 탤런트 기수로 뽑히면 주연으로 올라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죠. 저는 영화진흥공사에서 배우로 선발되고 바로 영화에서 주연을 맡고 나니까, 방송 3사에서 다 특채가 됐어요. 감사하게도 주인공으로 시작한 거였죠. 단역을 거쳐서 조연, 주연으로 올라간 게 아니니까 알고 보면 정말 엄청난 선물이에요.

그리고는 계속 승승장구하셨어요.  80년대를 주름잡는 청춘스타셨잖아요. 영화는 첫 작품에서 그해 흥행 10위에 들어갔어요. KBS 일일드라마 〈보통 사람들〉을 하면서 제 인생에 놀라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죠. 영화 〈겨울 나그네〉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요. 그 이후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연기를 할 수 있었죠. 그 당시에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축복의 선물이고 감사의 조건이에요.

어떻게 보면 평탄한 인생을 살아 오셨어요. 승승장구하던 42년 배우 인생에 과연 고비가 있었을까 싶어요. 평탄한 인생을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결과가 평탄하게 보이니까 과정 속에 있던 수많은 파도들이 보이지 않는 것뿐이죠. 저도 IMF 외환위기 때 무척 힘들었어요. 사업을 시작했다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어요. 자존감이 바닥을 쳤죠. 다른 배우들처럼 방송사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텃새들이 있었고요. 말로 옮길 수 없는 애로가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죠.

그런 위기의 순간을 버텨 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나요? 물론 어머니의 기도였죠. 어머니는 기도 많이 하신 권사님으로 유명하셨어요. 주변 사람들은 강석우가 잘된 것은 어머니의 기도 덕분임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제가 스스로 자랑할 수 없어요. 어머니는 매일 새벽기도를 가셨고, 금요일에는 매주 철야기도를 하셨어요. 집에서는 햇볕 잘 드는 창가에서 성경책 보시고 기도하시는 것이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에요. 늘 깨어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기도가 저를 허튼 길로 가지 못하게 했고, 지금의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신다고 봐요. 저도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의 시간을 쌓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인생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어머니의 기도네요. 그럼요. 감사하게도 제 아내의 기도가 어머니의 기도를 많이 닮았어요. 예배드리고 묵상하는 모습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을 많이 보곤 하죠. 결혼 전, 아내는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었는데요. 제가 결혼하면서 간곡하게 부탁했죠. 아무래도 작은 불편도 미리 예방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어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은 신앙으로 이겨 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내는 당시 제 부탁을 흔쾌히 들어줬고, 저희 어머니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어요. 지금은 아내의 기도가 저희 가정을 지탱하고 있어요. 그래서 또 제가 더 기도하게 되고요.

그러면 아내의 기도 또한 인생의 큰 선물이네요. 그럼요. 처음에는 내가 아내에게 큰 선물인 줄 알았어요. 하하. 그런데 살다 보니 아내가 저에게 정말 큰 선물이더라고요. 그 사실을 저만 아는 줄 알았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알더라고요. 하하. 아내는 우리 가정의 소통의 통로이기도 해요. 아이들은 아버지가 아무리 편안하게 해도,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감이 있어서 불편해할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아내가 중간 역할을 아주 잘해요. 제가 아이들한테 엄하게 하고 싶은 순간이나 화가 날 때, 아내가 수위 조절을 잘해 줘요. 일단 저는 화가 나면 자리를 피해요. 그러고 있다가 아이들 문제를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아내가 아이들에게 조용히 저의 생각을 전해요. 다음 날 아이들이 와서 저에게 사과하거나 반성하죠. 그러면 저는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면서 너그러운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하하. 아내가 이렇게나 지혜로워요. 

아이들 교육할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을 쓰시나요? 아이들은 절대로 말로 교육하는 게 아니에요. 부모의 사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죠. 저도 어머니의 기도를 보고 자란 것처럼 저희 부부도 아이들에게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거죠. 저도 아이들 덕분에 제 삶을 절제할 수 있어요. 이를 테면 운전 중 험하게 운전하는 상대 운전자를 봐도 아이들이 있으면 심한 말을 할 수 없게 돼요. 식사할 때 기도하는 것, 자기 전에 기도하는 것,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 각자 가정을 꾸렸을 때 부모와 같은 행동을 할 거라고 확신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예배드리자고 하면 귀찮았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제가 아이들 데리고 예배드리고 있더군요. 저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되려고 해요. 친구 같은 아버지는 아버지들의 착각이에요. 아버지다움이 뭔가 생각하고 그 역할을 잘하면 됩니다. 아들아이가 대학 졸업할 때 그랬어요. 세상 살다가 어려운 일 생기면 친구하고 선배들과 이야기해라. 그러고도 해결이 안 되면 아버지에게 오거라. 사실 우리도 그렇게 살았잖아요.

아이들이 성장하면 어느 정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저는 무조건 부부 위주예요. 장성한 자녀들은 이미 분기점에서 자기 갈 길로 빠져나갔어요. 어느 시점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달릴 수도 있겠지만, 길 자체는 다른 거죠. 자녀들은 자녀들 길을 가는 거예요. 요즘 어머니들이 힘든 이유가 자녀들이 같이 가지 않는다고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야지요.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궁극적으로 독립시키는 거예요. 이제 그 아이들은 자신의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야죠. 내년에 장가가는 아들아이가 얼마 전에 생일이었어요.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마지막 생일이라고 하면서 축하해 줬어요. 이제 진정한 독립이니까요. 자녀 독립 이후에 허전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부가 잘 지내야 해요. 그래서 평소에도 부부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거죠.

연기뿐 아니라 CGNTV에서 〈하늘빛 향기〉를 꽤 오래 진행하셨어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죠. 그 기회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에요. 초대 손님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거룩한 제사요, 살아 있는 예배였어요. 하나님이 제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했죠. 하나님이 수많은 인생의 삶을 일일이 감찰하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또 다른 선물은 요즘 진행하시는 CBS 라디오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가 아닐까요? 벌써 5년이 넘었어요. 제 인생이 마치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좋은 일도 겪고 나쁜 일도 겪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든 일도 겪어 봤고, 자존감이 바닥을 친 순간도 있는데, 이 모든 경험들이 이 프로그램의 DJ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울러 학교 다닐 때부터 즐겨 가던 음악회, 발레, 판소리, 전시회, 영화, 연극 등 모든 문화 활동이 지금은 큰 재산이죠. 저는 하나님의 바둑알 같아요. 처음에는 ‘나를 왜 여기 두셨지’ 생각하다가 주변에 돌들이 차고 보면 ‘아, 그래서 여기 두셨구나’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바둑알로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 세상의 아침을 위로하고 계시잖아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들은 음악 위주였는데, 저희 프로그램은 사연을 통해 많은 분들이 위로받아요. 제가 한마디 위로를 덧붙일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인생의 숱한 파도들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고 느낄 만큼 저에게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매일 아침 저를 기다려 주시는 청취자 여러분이 고마울 뿐이죠.

인생의 희로애락을 여쭤 볼게요.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이에요. 속에서 다양한 감정이 요동쳐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끔 드러날 때면 아내가 적절하게 조절해 주죠. 이런 아내가 있다는 것, 또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에요. 가족이 함께 둘러앉은 시간이 가장 기쁘죠.

인생에서 가장 화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경우에 없는 일을 보거나 당하면 무척 화가 나요. 물론 일일이 표현하지 않고 그 상황을 피할 때도 있죠. 경우에 없는 일을 겪을 때, 생각이 많아져요. 내가 지적하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냥 피해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남산에 산책 갔을 때, 산책로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만 봐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역지사지와 측은지심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이 일로 피해를 입고 아픔을 느낄 사람이 보이니까 그렇게 반응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만 힘들죠. 하하.

인생에서 가장 슬펐을 때는 언제였나요?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였죠. 그때가 제일 슬펐어요.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느라 평생을 다 바치신 어머니가 제 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은 슬픔 그 자체였죠. 지금도 그리워요.

인생에서 가장 즐거울 때는 언제일까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 제일 즐거워요.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많이 비웃어요. 하하. 그래도 사실이에요. 부부는 같이 살기 위해서 만난 사람이고, 인생의 정말 소중한 부분까지도 서로를 위해서 다 줄 수 있다, 포기할 수 있다, 당신만 행복할 수 있다면 어디든 함께 간다는 마음으로 살아요. 그래서 항상 동행해요. 즐겁거든요.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한다면 강석우 인생 책의 다음 챕터는 어떻게 될까요? 라디오를 언제 그만두느냐를 가지고 아내와 가장 많이 이야기해요. 청취자들 문자 생각하면 그만둘 수가 없어요. 하지만 5년 후든, 10년 후든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해요. 아울러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도시를 떠나서 살고 싶어요. 아내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 하고, 저는 음악을 계속 하고 싶어요. 아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선물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그 선물로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남아 있겠죠. 이미 받은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지요. 이제는 우리가 선물이 되어 하나님께 돌려드려야지요.

저를 비롯한 「빛과소금」 독자들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질문 하나 해 주세요.  저도 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게 너무 많아요. 신앙 문제도 그렇고요. 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와 불편, 언젠가부터 그 원인이 내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나이 들면서 상대방보다는 내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되더군요. 이런 질문 드릴게요. “당신이 느끼는 불편, 그 원인이 혹시 당신에게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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