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항상 저에게 좋은 선물을 주셨어요

people 2020년 09월호 하나님은 항상 저에게 좋은 선물을 주셨어요 한혜진

배우의 일은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배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다양한 정체성 뒤로 자신을 숨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은 비단 배우뿐만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다양한 정체성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딸 혹은 아들로 태어나, 누군가의 아내 혹은 남편이 되고, 또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빠가 되어 가는 과정은 인생의 큰 숙제이다. 직업인으로, 친구로, 선배로, 후배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다양한 얼굴을 선물로 주셨다. 선물이자 사명인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을 우리는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을까? 

 

여기 짧지 않은 인생을 배우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녀는 딸로서, 배우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가게 된 모든 순간이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중에 가장 소중한 선물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된 신앙인의 정체성을 받은 순간이란다. 배우 한혜진의 인생을 지금 공감한다.

 

취재 김재원 / 정리 이승연 / 사진 한치문​ 

 

 

 

요즘 삶을 계절에 비유해 주세요. 제 삶은 늘 봄을 기다린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는 특히 그랬죠. 신앙생활하면서 나의 봄은 언제 올까, 언제쯤 회복의 때가 올까, 치유의 때가 오긴 할까? 점점 그때를 많이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미 봄이더군요. 모르고 있었던 거죠.​

 

신앙인의 세 가지 영역은 일, 가정, 신앙입니다. 스스로 느끼는 만족도를 동그라미, 세모, 가위로 평가하신다면? 가정은 동그라미. 하나님께서 평안과 행복을 많이 허락해 주셨어요. 감사하죠. 신앙은 아직도 많이 부족해서 세모이고, 일은 여전히 제게 벅차고 어려운 부분인데, 그렇지만 하나님 은혜로 잘 감당하고 있어서 세모로 할게요.​

 

20년 가까이 배우로 일하셨는데 아직도 벅차신가요? 아직도 어려워요. 원래 연기 자체가 힘들었는데, 결혼 후에는 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힘들어요. 아이 돌보고, 남편 도우면서, 어느 선까지 일을 해야 할까? 항상 생각해요. 좀 더 해도 될까,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요. 수위 조절은 참 어려운 일이죠. 우선순위는 항상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외국 생활 중에 한국에서 일하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많이 그립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조급한 마음도 들었나 봐요. 그래도 신앙과 가정이 우선이다 보니까, 하나님 안에서 내려놓으려고 노력하죠. 하나님은 항상 저에게 좋은 선물을 주셨어요. 받을 때는 그렇게 좋은 선물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면 최고의 선물일 때가 많아요.​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숫기가 없어서 엄마 뒤에서 숨어 지냈어요, 유치원 가는 것도 힘들어했죠. 말은 없고, 겁은 많은 아이였어요. 워낙 내성적이었는데, 가정환경 영향도 받았던 거 같아요. 다섯 살 때 형편이 어려워졌어요. 아빠의 건축업이 잘 안 되다 보니, 부모님이 자주 다투셨어요.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주눅 들고 숫기 없이 자랐죠.​

 

그럼 교회는 언제 처음 나가셨어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엄마가 동네 교회 새벽예배에 나가셨어요. 자연스럽게 언니 둘과 저도 교회를 다녔고, 아버지도 나가셨죠. 초등학교 때는 교회에 매일 갔어요. 교회 마당에서 고무줄도 하고, 기도실에 누워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그랬죠. 유년부 회장, 성가대, 찬양 팀도 했어요. 소풍 갈 때도 교회에 들러서 “하나님 저 소풍 가요. 다녀올게요!” 기도하고 가고, 집으로 오다가 또 교회에 들르곤 했죠. 편안한 놀이터였어요.​

 

청소년기에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이어가셨나요? 사춘기 시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하나님이 계시면 왜 우리 집은 점점 어려워지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세례도 받았는데, 언니들이 교회를 떠나고 저도 서서히 멀어졌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우리 집만 안 도와주셔?’ 이런 의문이 생기다 보니까 교회에 나가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연기 전공하고 배우의 길로 접어들면서 하나님과는 더 멀어지셨나요? 22살에 데뷔해서 24살에 하나님을 다시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무명의 시기는 길지 않았는데, 아침드라마 할 때 소속사에서 제 출연료를 전부 들고 도망을 갔어요. 그때는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사회가 겁이 나더라고요. 사람에 대해서 실망하고, 그래도 버티려고 해도 앞은 안 보이고, 일이 없으니까 막막했죠. 그때 한 연극에서 섭외가 왔어요. 연출가를 만나러 나갔는데, 술에 만취해 있더군요. “너, 이거 공짜로 하려면 해. 나는 출연료를 줄 수가 없어”라고 무례하게 이야기하는데, 회사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 이상은 못 버티겠더라고요.​

 

아무리 신인 배우라도 어떻게 그렇게 얘기를 했을까요? 많이 놀라셨겠네요. 세상이 두렵고, 사람들이 무섭고, 이렇게까지 연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포기하고 싶더라고요. 밤에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숨이 막히더군요. 누워서 울다 보니 어린 시절에 만났던 하나님이 떠올랐어요. 하나님한테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무작정 택시타고 새벽예배에 나갔죠. 그때 목사님이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사야 53장 말씀으로 설교하셨는데, 너무 죄송해서 눈물만 나왔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셨고, 내가 떠나도 여전히 함께하셨다는 것을,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고난을 통해서 깨달은 거죠. 매일 새벽마다 찾아가서 예배드리면서 버텼어요. 처음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이 선물을 많이 주시잖아요, 그때 저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큰 선물을 받았죠.​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통해 다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셨군요.  그때 오디션을 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마음 추스르고 오디션을 봤는데, 흡족하지는 않았어요. 정말 쟁쟁한 연기자들이 많아서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합격이 되었어요. 〈굳세어라 금순아〉였어요. 감독님이 KBS에서 신인상을 받은 사실을 알고 연락을 주셨고, 제 눈이 딱 금순이 같아서 뽑으셨대요. 하하. 그때 드라마가 잘 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시기였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결정적인 시기였어요. 그때 비로소 배우가 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의 선물이었죠.

 

〈굳세어라 금순아〉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주몽〉으로 자연스럽게 스타가 되셨어요. 그때 배우라는 정체성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다 보니 충분히 감사하고,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 어딘가 숨고 싶다.’ 자존감이 많이 낮았죠. 시상식으로 상 받으러 오라는데, 부끄럽더라고요. 도저히 못 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어요. 그래도 배우는 되고 싶었어요. 카메라 앞에 설 때 평소와 다른 제 모습이 좋더라고요. 주변에서 아무도 제가 연기자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도, 내 안에는 열정이 있고, 간절함이 있었어요. 그때 확실히 알았어요. 연기 자체는 좋은데 외부에서 주는 관심은 원하지 않았던 거죠.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되니까 더 부담스러웠어요. 제 부족함을 사람들이 알까 봐 두려웠나 봐요.​

 

그래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신앙의 토대를 닦기 시작한 뒤라 오히려 그 부담을 신앙인의 정체성으로 이겨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때 한참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방송하는 동료들과 함께 성경공부도 하고, 봉사도 많이 다녔죠. 어느 날은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이 전화하셔서 병원으로 부르셨어요. 갔더니 투석을 받으시면서 일본 선교의 비전을 말씀하시고, ‘러브 소나타’에 함께하자고 하셨어요. 거절할 수 없는 자리였던지라 ‘러브 소나타’를 몇 번 다녀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신앙의 기쁨만으로 천방지축으로 다녔어요. 하나님에 대한 열정만으로 일하던 시절이었죠.​

 

그 즈음에 인생의 반려자인 기성용 선수를 만났던 건가요? 네, 우연히 축구 관련 행사에서 옆자리에 앉게 되고, 누나, 동생으로 알고 지냈어요. 가끔 만나서 피자 먹는 사이였죠. 꽤 오래 알고 지냈어요. 해외에서도 가끔 전화하던 사이였는데요. 마침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아침에 안부 전화가 온 거예요. 울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죠. 위로해 주고, 친구들을 장례식장에 보내서 도와주고 그랬어요. 그때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고 느꼈나 봐요. 남편이 먼저 고백해서 길지 않은 연애를 시작했죠. 워낙에 선한 성품인 것을 알았고, 신앙 이야기도 많이 했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마음을 놓았던 것 같아요. 그때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도했어요. 음성을 잘 못 듣잖아요. 저는 예배에서 응답을 받으려고 노력해요. 목사님 설교나 큐티 말씀을 통해서 메시지를 들으려고 하다 보니까, 일정만 맞으면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등 모든 예배에 다 나갔어요.​

 

확실히 인생 최대의 결정이니까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던 모양이군요. 남편과의 결혼은 곧 떠남이었으니까요. 제가 하던 일도 두고, 진행하던 프로그램도 내려놓고, 결혼하면 해외로 나가야 하니까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설교가 항상 “내가 너한테 말한 땅으로 가라”, 그런 말씀들을 주시는 거예요. 저는 가족에게 책임감을 크게 가지는 편이라 가족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그때 마침 알고 지내는 선교사님을 만나러 병원에 갔어요. 선교사님께서 “이용규 선교사님 입원 중이신데 인사하실래요?” 하시더라고요. 저도 워낙 「내려놓음」을 재밌게 읽은 터라 인사드리러 갔어요. 이용규 선교사님께서 기도해 주시고, 책 한 권을 사인해서 주셨는데, 그 책 제목이 「떠남」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떠나야 하는구나, 결정적으로 받아들였죠. 그리고 결혼을 진행했어요. 남편은 더 단순하게 말하더라고요. “나 오늘 교회 갔었는데 두려워하지 말래.”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가 〈힐링캠프〉 진행하실 때잖아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치유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셨어요. 어떤 목사님이 〈힐링캠프〉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선물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게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는데, 영감도 많이 받고, 반성도 많이 했어요. 출연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저에게 바라시는 모습을 깨달았죠. 당시만 해도 배우들이 예능은 잘 안 할 때고, 출연자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니까, 저는 망가지기도 해야 해서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낮아질 때 출연자들이 더 편안하게 자신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걸 보면서 더 들어주는 사람, 낮아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명이면서 사역으로 감당했던 일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았겠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널 위해 기도할게.” 그랬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기성용 선수 위해 기도할게”, 목사님들도 “자매, 기 선수 위해 기도할게요.” 하시더라고요. ‘어? 왜 남편만 기도해 주시지? 남편이 하는 일이 사람들한테는 훨씬 더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섭섭하기도 했어요. 한국에서 결혼했다면 모든 것 놓지 않고 잘 했을 텐데, 일단 다 내려놓고 가야 하니, 아쉬움이 많았죠. 막상 사는 곳이 대도시도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한인도 거의 없는 조용한 곳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광야에 보내셨구나, 싶었어요. 또 적응할 만하면 도시를 옮겨야 했으니까요. 지루하고 외롭고 오로지 하나님과의 교제가 전부인 시간들이었죠.​

 

그래서 신앙도 깊어지고, 남편과의 관계도 돈독해지고, 오롯이 엄마가 되는 준비도 가능했던 게 아닐까요? 맞아요, 하나님이 한가한 시간을 주시더라고요. 들떠 있던 모든 것들을 가라앉히시고, 말씀도 보게 하시고, 개인 기도 시간도 갖게 하시고, 저뿐 아니라 남편도 많이 다듬어 주셨어요. 하나님이 남편을 다듬어 가시는 과정이 보이더라고요. 때로는 과정이 너무 길어지니까 낙심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회복의 하나님과 치유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셔서 저희 신앙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떠남조차도 선물이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늘 봄을 기다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실제로 기성용 선수가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어요.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세 번을 기도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끔 하나님이 상황을 만들어 주셨어요. 좀 쉬고 싶다, 기도도 놓고 쉬고 싶다, 할 때도 여유를 안 주셨어요. 계속 일이 생기고,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게끔 하셔서 저희가 많이 겸손해진 거죠. 그때도 저희는 겸손하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우월감 속에 있었던 것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 낮아지고 겸손하게 되었어요. 부모가 되고 보니까 더 겸손해지더라고요

 

아이에게는 어떤 엄마세요?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지치고, 힘든 마음들이 있었죠. 딸아이가 워낙 활동적이에요. 힘도 세고요. 감당할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안 되니까 혼도 내고 그랬어요. 아이가 다섯 살 되면서 하나님이 아이를 대하는 제 모습을 많이 돌아보게 하셔서, 지금은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해 주는 엄마가 되게 하셨어요. 육아를 하다 보면 거의 바닥을 보게 되잖아요. 엄마로서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지 알게 됐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힘든 일인데, 운동선수의 아내는 또 다르잖아요. 맞아요. 저는 경기에 나서고, 안 나서고,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 못 했었어요. 부상은 누구나 다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예민하고 섬세하게 도와줘야 하는 일이 많아요. 옆에서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이런 위로도 한두 번이죠. 그러다가 비난이라도 받으면 부담감에 잠을 쉽게 못 자더라고요. 그 시간을 큐티하면서 이겨 냈어요. 밤마다 아이 재우고 같이 큐티했어요.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면서 응답을 그때 많이 받았어요. 서로 고백하면서 많이 이겨 냈어요.

 

이제 가정에 봄이 왔습니다. 기성용 선수가 서울로 돌아왔어요. 일단 남편 마음이 편안해져서 저도 같이 편해졌어요. 한국에 정착하면서 마음도 밝아지고, 겸손히 내려놓은 부분도 있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도 보면서 우리가 많이 성장했구나 생각하며 감사했어요. 지켜보시면서 많이 응원해 주세요.​

 

인생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볼게요.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喜)은 언제였나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장 기쁘고 감사했어요. 1년을 기도하면서 기다렸던 아이라서 더 기뻤죠. 하나님께서 쉽게 안 주시네, 하면서 기도했거든요.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저도 남편도, 감동과 감격이 컸어요. 하나의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맡기셨구나 하는 은혜가 몰려오면서 그때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기뻤어요.

 

인생에서 가장 화나고 억울했던 순간(怒)은 언제인가요? 일하면서 송사에도 많이 휘말렸어요. 출연료를 받지 못했던 때도 있었고요. 그때는 정말 분하고 억울했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일도 다 있지, 고난이 왔구나, 하면서 조금은 떨어져서 받아들이게 됐어요. 예전에는 그 안에서 분노하고, 억울해서 눈물 흘리고 그랬거든요. 해결할 수 없는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지금도 억울한 일을 마주하면 당황스럽고 두렵지만, 그래도 나는 하나님이 계시니 이 마음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는 구석이 생겼어요. 가장 큰 선물이죠.

 

그러면 가장 슬펐던 때(哀)는 언제였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어요. 이제는 아빠한테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살아계실 때 잘 하라고 그러는데, 저는 또 엄마한테 짜증만 내고 그래요. 아빠가 마음이 따뜻하고, 신앙도 좋으셨어요. 항상 아침마다 기도하시고, 찬양하고 그러셨어요. 몸이 안 좋으실 때도, 아버지는 누구 만나면 항상 돈을 내시고, 빌려주시고, 손해 보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아버지한테 큰돈을 못 드렸어요. 넉넉하게 용돈도 드리고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금방 하나님께서 부르실 줄 몰랐어요. 후회가 되죠.

 

그럼 가장 즐겁고 신나는 때(樂)는 언제이신가요? 식구가 모여 있을 때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아서 좋아요. 정말 감사해요. 가정이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고, 아이도 남편도 항상 밝고, 저도 가정에서 즐거운 엄마가 되려고 노력해요. 어렸을 때 가정 형편으로 인해 어둡고 주눅 들었던 저를 하나님은 이 가정을 통해 바꿔 주셨어요. 제게는 가장 큰 선물이죠. 그게 제일 감사해요.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본다면 한혜진 씨의 다음 챕터는 어떻게 될까요? 저희가 영국 뉴캐슬에 있을 때 집사 직분을 받았어요. 교회 안에서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나눠야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저희 집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가지면서 섬기는 게 이런 거구나, 조금 맛보고 왔어요. 저희 부부가 교회 안에서 일꾼으로 섬기는 일들을 감당하고 싶어요. 이렇게 「빛과소금」에서 연락 주셔서 정말 부족하지만 삶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고요. 작은 사역자로 부부가 같이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섬겼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저를 비롯한 「빛과소금」 독자들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질문을 해 주세요. 요새 제가 많이 듣는 말씀이 ‘믿음은 어떤 걸까’라는 거예요. 스스로 질문을 해요. 하나님이 미리 보여 주시지 않을 때, 믿음을 어떻게 붙들까? 히브리서 믿음 장을 보면서 묵상해요. 현재 소속사도 없고,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내 삶이 어떻게 될지 보이지 않지만,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면 내가 바라고 믿는 그날이 오리라 믿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이들 힘드실 텐데, 이런 질문 드릴게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당신이 붙들고 있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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