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빛으로 향한 출구가 있다

issue 2020년 08월호 어디든 빛으로 향한 출구가 있다 글 이주연

인류가

팬데믹의 동굴에 갇히다

안녕하시느냐는 인사가 그저 지나치는 인사가 아닌 때를 맞았다. 제4차 산업혁명과 고령화 사회와 코로나19의 팬데믹이 다층적으로 오늘의 인류를 위기와 혼돈 속에 빠뜨리고 있다. 특별히 갑자기 닥친 코로나19는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현대 사회를 단절 속에 빠뜨렸다. 코로나19의 위세는 확진자 1천만 명을 넘기고, 전염성이 4배나 되는 변종 바이러스로 악성화되었다. 기어코 인류사를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어떤 정권도 문을 닫게 할 수 없던 교회의 주일성수를 무력화하고, UN도 중재 못 한 지역 간, 종족 간 분쟁마저도 종식시켰다. 사람의 이동을 막고, 학교 문을 닫게 하고, 경제 활동도 위축시키거나 지형을 바꾸어 놓고 있다. 심지어 입에 마스크로 재갈을 물리고 단절과 불편함 속에 빠뜨렸다. 이미 세계적 항공사가 부도를 맞고, 해외여행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뜨겁게 달구던 공연도, 불야성을 이루던 백화점 쇼핑은 물론, 산책도 자유롭지 못하다. 단절, 비대면, 답답함, 고독, 우울의 우물이 깊어만 간다. 21세기 현대 문명이 비대면의 단절과 고독과 우울함의 성(城)에 갇히는 형국이다. 21세기 지구화된 세상을 동굴 속에 멈추어 세운 것이다.


동굴에
갇힌 중산층 부부

얼마 전, 현장 예배가 허용된 첫 예배! 오전 7시 30분에 진행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예배(노숙인과 쪽방촌 독거노인 등을 위한 예배)에 말쑥한 차림의 지성과 믿음을 갖춘 이미지의 부부가 눈에 띄었다. 나는 이따금씩 이러한 믿음의 방문자들이 있기에 그러한 분 중의 하나로 여겼다. 그런데 인사를 나누고 보니, 우울증의 위기를 맞은 부부였다. 아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벗어나, 정신과에 입원을 고민할 정도였다. 그분들은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고, 고학력에, 대기업의 직장인 생활도 하였다. 사회적으로는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며, 해외 진출도 해 보았고, 자녀들도 잘 자라서 해외에서 자기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을 놓고 퇴직했다. 심지어 갈등 속에 놓인 동기간의 관계도 끊었다. 불안, 초조, 불면증이 심하여 치료제에 의존한 채 간신히 삶을 지내게 되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자신들도 모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에 CGNTV 방송 설교를 듣고, 예배에 찾아온 것이었다. 삶의 후반기를 이렇게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한국인의
삶의 마지막은 무엇인가

한국인의 삶의 마지막은 무엇으로 마감하게 될까? 1위는 암이고, 2, 3위가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그리고 4위가 자살이다. 이는 남성들의 경우이나 여성들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성 자살 사망도 6위나 된다. 그렇게 흔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는 9위에 해당한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은 교통사고보다 인생 사고가 더 큰 것이다. 육체적 충격보다 사회적, 내적 충격을 더 많이 받고 살고 있는 것이다. 몸 이상으로 마음이 아픈 것이다. 아니 몸이야 자연히 쇠약하게 되는 것이니 자연스런 면도 있으나, 마음의 아픔은 험악한 세상의 풍조로 인함이니 한이 되는 일이다.


상처
입은 마음의 증상들

상처 입은 마음의 증상들은 어떠한가? 텅 빈 가슴, 초조, 안절부절, 무기력, 피로, 불면의 밤, 알코올 중독, 비난의 소리, 쓰라린 가슴앓이, 폭식…. 심지어 본능 중의 본능인 밥맛조차 끊어진다. 생명의 활력이 잦아들고 마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지으신 근원으로 가라

출구는 없는 것일까? 인간의 도시를 떠나 창조주께서 지으신 대자연으로 나가라. 그곳이 출구이다. 대자연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은총의 자리이다. 예수께서도 습관을 따라(눅 22:39) 물러가서 한적한 곳(막 1:35, 6:32; 눅 4:42, 5:16), 대자연 속에서 쉬시고 기도하셨다. 대자연은 생명의 근원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모든 생명은 숨을 쉰다. 그중 인간은 생명을 위해서 산소를 마시며 숨을 쉰다. 창조의 첫날 우리에게 주신 그 신선한 산소와 싱그러운 기운은 나무숲을 통해서 오늘날에도 계속 공급되고 있다. 여기엔 코로나19가 없다.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에덴에서 흐르던 물이 여전히 샘솟는다. 생명수인 것이다.

빛으로
나가라

생명체는 빛을 받아야 한다. 식물은 빛을 받아 광합성으로 뭇 생명을 먹여 살린다. 인간도 빛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영혼과 육신이 강건해진다. 대자연 속엔 미세먼지나 스모그가 없다. 창조 원형의 눈부신 햇살이 살아 있다. 빛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축축함을 증발시키고 갈무리한다.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는 창조로부터 지금까지도 숲과 산과 골짜기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 은총을 자연은총 혹은 일반은총이라고 한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면서 이 창조주의 은총을 단절시켰다. 이 은총 속으로 다시 들어가 창조주께서 친히 주시는 생명의 기운을 받아야 한다.

동산지기로
단순히 노동하라

나는 찾아온 부부를 공동체로 초대했다. 공동체는 평창군 대화면 수백만 평 하늘 푸른 국유림 속에 있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 아래로 초대한 것이다. 다행히도 초대에 응해 주셨다. 나는 그분들께 잡초를 캐고, 꽃을 옮겨 심도록 했다. 하지 않던 일이고, 심신이 지쳐 있는 터라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열심히 참여하셨다. 새벽 동 트는 시간, 산안개 속에서 새벽을 맞으며 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하고, 뜨거운 계절임에도 산언덕을 오르내리며 부부가 힘을 합하여 노동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정신과를 다녀왔다. 정신과에서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감탄했다. 정신병동으로 격리가 필요한 수준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태로 급 호전된 것이다. 정신과로부터 단순노동이 좋으니 계속하라는 처방을 받고 왔다. 단순노동은 단순히 경제 활동이 아니다. 단순노동은 피조물로서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동산지기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연함이 안식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는 길은 섭리를 따르는 것이요, 생명을 부요케 하는 길이다! 5주가 되자, 약을 먹어도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이젠 밤에 먹는 약을 끊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는 불면의 밤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주님께
뭉친 덩어리를 토해 내라

새벽마다 맑은 공기를 쐬며 새벽 묵상을 한다. 방문 첫 주에 새벽 묵상 후 고통 중에 기도하는 자매님께 안수기도로 중보했다. 그러자 일상의 목소리가 아닌 깊은 울음으로, 고통을 토해 내며 회개의 기도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두 자리를 비우라 하여, 혼자 주님을 대하게 했다. 비로소 그는 주님 앞에서의 진심에 도달한 것이다. 그는 회개하라는 설교를 듣고 찾아왔던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첫 주간 공동체에 머무는 기간에 주님을 새롭게 만난 것이었다. 그는 영혼의 무거운 짐을 토해 내며 가벼워지고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백했다. “다시는 찾아들지 않을 줄 알았던 주님의 빛이 제게 다시 찾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성도님들이 사랑으로 지어 주시는 밥을 먹으며 힘을 얻었습니다!”

어두운
바벨탑의 지하에서 나오라

어두운 마음의 고통을 겪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이 시대 너무도 많은 이들이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 나만 어렵다고 하지 말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선 아픔을 인간들이 홀로 당하도록 내버려둔 것이 아니다. 창조주께선 이를 이기도록 이미 창조의 날에 치유의 능력을 섭리 속에 숨겨 두셨다. 누구나 다 은혜를 입도록! 다만 우리가 그분의 은총의 빛을 피하여 동굴 속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로 찾아오신 주님의 손을 잡고 동굴 밖으로 나가, 대자연의 밝은 은총 속에서 안식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인간이 만든 대도시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경쟁과 탐욕과 쾌락의 질서! 이 바벨탑의 지하에서 나오기만 하면 된다. 누구든 주의 얼굴의 빛을 보게 되리라!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 80:3).  

이주연은 산마루교회, 산마루예수공동체 대표다. 저서로는 「둥둥 영혼을 깨우는 소리」, 「산마루 묵상」, 「주님처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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