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 생활

story 2020년 07월호 슬기로운 의사 생활 글 백소영

거룩에 관하여

아무리 신앙심이 깊은 집안이라도 그렇지. 중세 유럽도 아니고 한 집안 네 자녀가 모두 신부요 수녀인데 의사인 막내마저 신부가 될까 심각히 고민 중이라니! 어느 집인지 어머니의 심경이 걱정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실제가 아닌 드라마 속 상황이니까. 얼마 전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설정이다. 


‘문제의 막내아들’은 극 중 99학번 다섯 동기 중 한 명인 ‘정원’이라는 인물이다. 서울대 99학번 의사들, 대학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다섯 모두가 빠짐없이 대학병원 교수라는 것, 더구나 같은 병원에서 점심 같이 먹고 저녁에는 밴드 동아리도 함께한다는 자체가 이미 판타지이다. 하지만 ‘신원호’ 표가 아닌가. 그는 대한민국에서 있을 법한 과거를 환상적으로 포장해서 아련미와 설득력을 잘 버무려 드라마를 만드는 귀재이다. 하여 중간중간 익숙한 추억에 마음이 뭉클해지는 어른들, 꼰대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소환되는 과거의 낯설고 매력적인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들 모두를 텔레비전 앞으로 모으는 힘이 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도 딱 그랬다.


정원은 소아외과 전문의인데, 동기 다섯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사기캐’(믿기 어렵게 장점만 모두 가진 캐릭터)이다. 일단 이구동성 입을 모아 말하듯 의사의 비주얼이 아니다. 물론 잘생긴 탤런트가 연기하니 그렇겠지만 다섯 동기 중 가장 빛난다. 어디 얼굴만 그러한가? 성품도 다섯 중 으뜸이다. 물론 개신교 대표이며 다섯 동기 중 홍일점인 ‘송화’도 밀리지 않는 인성의 소유자이지만, 최근 정원의 숨겨진 배경이 드러나면서 송화조차 두 손을 들어 버렸다. 소아병동 응급 환자 중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어떻게 정보를 그렇게나 빨리 알게 된 건지 수술비를 제공하겠다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정원이란다. 무려 20년을 동고동락한 친구들도 몰랐던 사실이라니, 이건 정말 기염을 토할 노릇이다. 알고 봤더니 정원이 자기들이 다니는 직장의 이사장 아들이다. 더구나 형제자매가 모두 종교에 귀의한 까닭에 병원 상속자는 막내인 정원이 유일하단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귀염 돋게 아양을 떠는 네 친구들은 딱 대학 1학년 때 만난 동기들의 모습 그대로여서,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세상을 다 가진 정원이 언뜻언뜻 어두운 얼굴을 하여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설마, 너도? 아니나 다를까. 정원이 송화에게 ‘키다리 아저씨’ 바통을 이어받으라고 넌지시 말한다. 심중을 헤아린 송화가 물었다. “너, 정말 그렇게 결정한 거야?” 엄마는 불안함으로, 송화는 막연한 지레짐작으로 느끼고 있던 일이었다. 소아병동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데, 이미 책상 서랍 한가득 묵주투성이인 정원은 정말로 만인의 ‘공공재’가 되려 한다. 하긴, 신께 귀의하겠다는 거룩한 각오를 친구라 하여 어찌 막을 수 있으랴. 


그건 정원의 마음을 두드리며 등장한 ‘겨울’도 못 할 일이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외과이다 보니 숙련된 전공의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황에 모든 외과 선생님들이 입 모아 찾는 ‘장겨울’ 선생. 병원과 전장처럼 극도로 긴박하고 절체절명의 상황이 전개되는 곳에서는 무조건 살려야 하고 그거 잘하는 사람이 장땡이다. 성별이나 출신 성분, 성격, 나이 다 중요치 않다. 더구나 절대 인력이 부족한 외과 병동에서 ‘겨울’은 그야말로 인공지능 로봇과도 같은 정확함과 끈기, 성실함으로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는 전공의였다. 그래서 겨울은 여자라기보다는 매우 귀중한 인력이었다. 교수들과 겨울의 관계도 언뜻 보면 누가 선생인지 모를 정도로 겨울 위주로 돌아갔다.


그런 겨울이 유일하게 어려워했던 사람이 정원이다. 다른 교수님들은 아무리 뇌물 공세를 해도 눈 하나 꿈쩍 안 하던 겨울이, 정원이 주도하는 수술에는 자원해서 어시스트를 하겠단다. 사랑에 무슨 이유가 있나. 정원의 얼굴이 그냥 개연성이지. 물론 겨울도 정원을 본 순간 첫눈에 반하기는 했다. 그러나 공부만 했던 사람이 그게 사랑인지는 몰랐다. 그저 그날 첫 끼인 도넛을 한입 가득 베어 무느라 입 주변에 설탕 가루를 잔뜩 묻히고 있다가, 인사를 하는 정원을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 주변을 얼른 닦았다. 하지만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니었다.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대하는 정원의 자세를 보며 어느덧 겨울은 자꾸 그를 따라하고 있었다. 


의사의 덕목은 엄밀성과 사실성이라고 생각해서,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했던 날, 겨울은 처음으로 화를 내는 정원의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장겨울 선생!” 정색을 하고 겨울을 뒤로 물리며 정원은 보호자가 알기 쉬운 언어로, 그리고 희망을 담아 환자의 상태를 알렸다. “그래도, 보호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희망을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잔인할 수 있잖아요.” 좋아하는 선생님께 혼이 난 것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겨울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더랬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정원이 그런다. “우리가 백 퍼센트 완벽하게 진단했다고 자신할 수도 없거니와 그랬더라도 생명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어요.” 의사는 전문 지식을 가지고 의사로서의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 신의 영역에 대한 인정과 소망을 담아 보호자와 함께 간절함을 가지는 것까지가 의사의 몫이라는 그의 말에 반발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겨울은 어느덧 메모지까지 동원하여 알기 쉽게 그림을 그려가며 보호자들에게 설명하고 안심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멀찌감치 그런 겨울을 보며 정원도 미소 짓고 있었다.


“너, 장겨울 좋아해!” 

 

친구의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익준이 정원에게 말했지만, 정원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아니야.” 실은 아니어야 했다. 자신은 곧 ‘하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거룩하게 자신을 성별하고 삶과 시간과 에너지와, 아니 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고자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여자 하나 때문에 ‘거룩한’ 결심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망설여진다. 겨울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아병동의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한순간 꺼질 것 같은 생명이 자신의 의술과 기도로 다시 회복되어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무엇이 거룩함인가를 다시 묵상해 가면서 정원은 자꾸 이곳에 머물려 하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절친 송화는 그걸 알아차리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정원아. 잘 결정했어. 그 마음이 맞아.” 다른 친구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아 달라고, 제일 먼저 이야기해 줄 사람이 있다고 달려 나간 정원에게, 이 사실을 알 길 없는 겨울이 찾아와 부탁했다. 

 

“음, 교수님. 크리스마스 날에, 신부님이 되신다는 교수님께 이런 부탁드리는 거는 정말 면목이 없는데요….” 

 

꼭 쥔 손과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면서도 진심을 다해 자기 곁에, 아이들 곁에 있어 달라는 겨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꺄악, 그 장면에서 바로 이어진 두 사람의 입맞춤에 내가 속해 있는 단톡방 몇 군데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그런데 참 엉뚱하기도 하지. 나는 그 순간에 성(聖)과 속(俗)에 대한 글감이 떠올라 곧바로 메모지를 찾았다. 자신에게로 오는 아이들이 좋고 겨울이 좋은 마음, 그래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제일 행복한 그는 이미 거룩한 사람이었다. 

 

송화가 그랬다. 사람은 세 종류가 있는 거 같다고. 자기가 제일 맛있는 걸 먹어야 행복한 사람, 혼자 조용히 맛있는 걸 먹어야 행복한 사람, 그리고 다른 이가 맛있는 걸 먹는 걸 봐야 행복한 사람. 그런데 정원이는 세 번째 사람이라고. 송화의 말을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 그러니까 정원이 너의 마음은 이미 ‘거룩하다’라고. 물론 전자의 두 범주도 항상은 아니어도 구체적 관계 안에서, 혹은 간간이 거룩을 실천할 수는 있다. 익준이 자기 아들 우주에게, 준완이 자신의 연인 익순에게 보이는 마음이 그런 종류이다. ‘거룩’이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초월하여 너를 위해 흘러가는 구별된 마음과 행동이 아닐까? 그렇다면 성과 속은 공간의 구별도 시간의 구별도 아닌, 관계의 구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 안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거룩할 수 있다. 

 

 


백소영은 이화여대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강의로, 글쓰기로, 그리고 대중 특강으로 사람을 만나면서 삶을 배우고 삶에 관여하는 구체적인 신학을 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저서로 「드라마틱」,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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