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병들게 하는 사이비 바이러스

story 2020년 05월호 영혼을 병들게 하는 사이비 바이러스 글 신상목

최근 사무실로 같은 시간에 같은 목소리의 독자가 규칙적으로 전화를 하고 있다. 목소리는 8음계 중 ‘솔’이나 ‘라’ 높이 정도 될까. 10대는 아니고 틀림없이 20대 초반 여성쯤 됐다. 당찬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국민일보죠? 저는 신천지 ○○지파에 다니는 청년입니다. 기사 삭제를 요청합니다.”
이렇게 자기소개를 시작한 여성은 독자로서 말도 안 되는 내용이 기사로 나왔다면서 기사를 수정하거나 내려 달라고 했다. 전화 내용은 대략 이렇다. “신천지 이만희 씨는 교주가 아니라 총회장이다”, “요한계시록 666에 대한 해석은 이 총회장뿐 아니라 한기총 소속 아무개 목사들도 똑같이 해석한다”, “신천지가 왜 이단인가”, “이단의 기준이 무엇인가”, “기자라면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이다.

매일 오후 2~3시 사이. 유독 내 자리 전화로만 걸려온다. 처음 한두 번은 사무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시냐. 하지만 신천지는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엄연히 이단으로 규정한 곳이다. (기사) 삭제는 어렵다. 1984년 창립된 신천지는 박태선 전도관과 유재열의 대한기독교장막성전의 영향을 받았다. 이만희 총회장도 거기서 활동하다 신천지를 설립했으니 교주 아니냐. 총회장이라 불리려면 주류 교단에서 이단이 아님을 밝히고 인정을 받으시라”고 답했다.
하지만 여성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신천지의 입장에서 변호하면서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 여성과 얘기를 하고 싶어진 것은 두 번째 전화를 끊으면서다. ‘여성은 왜 이렇게 신천지에 빠졌을까’, ‘도대체 신천지가 추구하는 핵심 교리가 무엇인가’, ‘여성은 누구일까. 누군가의 소중한 딸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전화가 왔고 여성은 또 다른 기사를 거론하면서 “이게 말이 되냐”고 따졌다. 나는 전화상에서 여성이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하도록 했고, 내부에서 한번 얘기해 보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천지의 핵심 교리가 뭐냐, 무엇을 믿는가 등을 물었다. 여성은 성경 말씀을 언급하며 구구절절 설명했다. 나 역시 책상에 있던 성경을 펴고 확인하면서 대화를 했는데, 여성은 뜻밖에 자신은 10년 넘게 장로교회를 다녔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신천지에서 그동안 몰랐던 진리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자기 얘기를 할 때는 목소리 톤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레’나 ‘미’ 정도로 차분해졌다고 할까. 나 역시 “자매님” 하면서 말을 했다.
그녀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언론에 보도됐던 14만 4,000명 해석이나 영생불사론 등 신천지의 핵심 주장을 질문했지만, 그녀는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완강히 부인했다. 다만 그녀가 모든 결론을 요한계시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 신천지 특유의 단어들인 ‘사자’, ‘실상’ 단어의 잦은 사용, 정통 교회 비판 등으로 볼 때 보도된 내용 상당 부분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자매’는 이후로도 두어 차례 더 전화를 했다. 이렇게 길게 통화하는
내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동료 기자는 “신천지 신도가 규칙적으로 전화를 한다면 전도 활동의 일환일 수 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신천지가 한국교회 성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1백여 개의 개인 정보를 체크한다고 하니 그 자매에게 나 역시 많이 노출이 된 셈이다.
여성은 어쩌면 나와의 대화 내용을 분석하면서 신앙 유무, 말씀 관심도, 신앙 유형 등을 세밀히 기록했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천지는 포교 시 상대방을 단계별로 분석한다는데 ‘열매 선별→인간적 신뢰 형성→유형별 상태 진단→신앙 우위 선점→유형별 맞춤 전략→복음방 등록’이 포교 전략의 기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그들에 의해 특정 단계에까지 올라가 있을 수도 있다.

여성과 대여섯 차례의 통화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은 자신이 한때 장로교인이었다고 말했을 때다. 여성은 자신이 교회에 다니고 있을 때 요한계시록에 대한 시원한 교육 한 번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과 함께 불거진 신천지 문제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이단 사이비의 폐해, 영혼을 병들게 하고 마침내 죽게 하는, 사이비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하지만 기독교계를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 교회들 역시 반면교사로 삼아 개선할 점이 많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신천지를 비롯해 이단 사이비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비판으로 끝나선 안 된다. ‘우리는 정통이며 너희는 이단’이라고만 정죄해선 안 된다. 이단들이 끊임없이 지적하는 한국교회 문제를 끊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건강한 교회란 무엇인가. 바른 신학, 바른 신앙에 입각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야 이단에 빠지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기독교 역사는 2천 년이 넘는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단순히 ‘예수 천당, 불신 지옥’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무엇보다 기독교는 성경이라는 책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다. 우리에겐 신구약 성경 66권이라는 불멸의 계시가 있다. 이 말씀을 모르면서 무슨 신앙생활이며 무슨 정통 교회란 말인가.
한국 기독교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경을 읽고 믿은 자생적 신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올 때 그들의 손에는 이미 번역된 한국어 성경이 들려 있었다. 일본에서 이수정이 마가복음을, 중국에서는 존 로스가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을 이미 번역했다. 기독교 신앙은 이렇게 책에, 말씀에 입각한다. 단순히 느낌이나 감정으로가 아니라 철저히 텍스트인 말씀에 기초한다. 이 말씀은 목회자뿐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천지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얘기는 (그들의) 성경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적어도 그 외형만 볼 때 특별한 은사 체험 같은 것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성경만 가지고 젊은 층들에 흥미를 주고 영적 구원이라는 의미까지 안겨 준다. 한국교회는 과연 젊은이들에게 근본적 재미와 영적 충만을 주는가.
한국교회는 또 요한계시록을 잘 가르치며 이해하고 있는가. 아쉬운 것은 한국의 장로교 목사들 중엔 “칼뱅 선생이 요한계시록을 주해하지 않았기에 (우리 목사들도) 요한계시록 풀기는 조심해야 한다”면서 요한계시록 공부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이는 목사의 직무 유기이며 가증스러운 핑계에 불과하다. 차라리 잘 모른다고, 나도 열심히 읽겠다고 말하는 게 솔직해 보인다. 얼마나 많은 관련 주석서와 연구서, 신학 서적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요한계시록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바이다. 

앞서 말한 신천지 여성과의 대화 중에서도 요한계시록은 수없이 튀어나왔다. 무엇을 말해도 요한계시록이었다. ‘기승전-계시록’이랄까.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신천지를 끌어가는 동력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신천지를 설득시키려면 요한계시록을 꽉 잡고 있어야 한다. 많은 신자들이 정통 교회의 바른 해석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위 천년왕국설에만 얽매여 있으면서 해석을 주저해서도 안 된다.
한국 사회에 기생하는 이단 사이비가 어디 신천지뿐인가. 요한계시록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상당수 이단 사이비 단체의 공통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교회들이 바른 신학에 입각한 성경 공부와 요한계시록 공부에 힘쓴다면 신자들이 쉽게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천지 자매는 그 뒤로는 전화를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또다시 전화를 한다면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기회입니다. 가만히 끊고 나오세요.”
4월 9일,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별장으로 알려진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평화연수원’ 앞 정문에는 신천지에게 자녀를 빼앗긴 부모들이 모였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전피연, 신강식 대표) 소속 부모들로 이들은 대구, 진주, 계룡 등 전국에서 올라와 이만희 교주에게 자신들의 자녀를 보내 달라는 면담 요청서와 자녀를 향한 편지를 대문에 붙였다.
화가로 활동 중인 한 피해자 부모가 붓으로 쓴 글이 두고두고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만져보고 싶고, 안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내 딸아, 아들아.”
자매여,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 않은가. 이제 집으로 가자. 부모님이, 그리고 우리 주님이 부르신다. 

신상목은 국민일보 종교부 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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