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지 않는다는 것

story 2020년 04월호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 글 백소영

〈이태원 클라쓰〉는 청년 성장 드라마이다. 동명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라는데, 만화 장르가 가진 극적인 표현들이 영상에도 담기며 청년층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새로이’는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하필 전학을 간 첫날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자기소개를 하고 어여쁜 짝 옆에 배정받아 머쓱하게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교실 뒤가 시끄러웠다. 돌아보니 일진인 듯한 학생이 반 친구를 폭력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말리려 일어서는데 방금 짝이 된 아이가 경고한다. “끼어들지 마. 쟤 장가네 포차 회장 장남이야.” 아, 장가네 포차라면 요식업계를 싹쓸이했다는 전설적인 프랜차이즈 전문 업체다. 더구나 새로이의 아버지가 일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이는 약자를 향한 부당한 폭력을 말리기로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주먹이 오고 갔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폭력의 시작이었던 장가네 아들 ‘근원’에게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새로이만 나무라셨다. 

 

어라, 이게 무슨 상황이지?


결국 새로이는 교장실로 불려갔다. 가보니 근원과 그의 아버지인 장 회장, 그리고 새로이 아버지까지 와 계신다. 분명 잘못은 근원이 했는데 장 회장이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말했다. “박 부장하고 인연도 있고 하니 이번엔 특별히 조용히 넘어가겠어요. 새로이가 내 아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면 말이지요.” 새로이는 잠시, 아주 잠시 망설였다. 이 사람은 아버지 직장 상사인데, 아버지가 평생 몸담았던 회사로부터 ‘버려지지 않으려면’ 내가 꿇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 새로이에게 말씀하셨다. “소신 있게 행동해라.” 결국 새로이는 자신의 소신을 따랐고 사과하지 않았다. 이에 대노한 장 회장이 새로이 아버지에게 큰소리를 냈다. 주눅 든 몸짓의 아버지 입에서 조그맣게 말이 흘러나오자 새로이는 긴장했다. “어떻게 제게서 저런 아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아, 순간 ‘버려지는 줄’ 알았다. 새로이를 아예 버리시는 것은 아니더라도, 직장에서 살아남으려 자신의 가르침을 철회하고 아들의 소신도 버리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씀에 울컥 감동이 몰려왔다. “저랑 다르게 너무나 멋진 놈이네요. 제가 사표를 쓰겠습니다.” 결국 새로이도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억울하거나 분하지 않았다. 학교로부터 버려졌다는 느낌보다는 아버지에게 온전히 용납받았다는 기쁨이 더 컸으니까. 사표를 쓴 아버지와 퇴학 처분을 받은 아들이 마주 앉아 처음으로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아들, 술맛이 어떠냐?” “답니다.”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답하셨다. “그건 네가 오늘 하루를 아주 만족스럽게 살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장가네 아들 근원의 치기 어린 음주 운전으로 사고사를 당했다. 돈 많은 장 회장은 운전자를 바꿔치기하고 자기 아들을 빼돌렸고, 이에 격분하여 근원에게 주먹질을 한 새로이를 도리어 폭행죄로 소년원에 집어넣었다. 거기서 2년을 보냈다. “내 계획은 15년짜리야.” 소년원을 나온 새로이는 공소시효 15년 안에 장 회장과 그 아들이 죗값을 받게 하겠다는 각오를 했다. 원양어선을 타고 막노동도 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7년 만에 이태원 장가네 포차 맞은편에 자신의 포차를 열었다. 가게 이름은 ‘단밤,’ 술이 다시 달게 느껴지는 하루를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이름이었다. 하지만 든든한 배경도 화려한 스펙도 없는 새로이가 어떻게 대기업 규모의 장가네 포차를 이길 수 있을까? 이미 계란으로 바위 치기겠지만, 그 목표를 이루려면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치밀하고 치열하고 냉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중졸 고아’ 새로이의 행보가 이윤을 추구하는 다른 장사치들과 달랐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엮여 자기 가게로 들어온 동생들을 요리사로, 서빙 담당으로, 알바생으로 다 감싸 안았다. 새로이의 목표가 그저 먹고 사는 일이었다면 모를까, 그의 상황과 목표를 아는 매니저 ‘이서’는 결국 새로이에게 맞선다. 이런 방식으로는 장가네 포차를 대적하기는커녕 단밤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아이큐 160이 넘는 천재 이서는 빠르게 돌아가는 계산력으로 누구를 해고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첫 번째로 이서의 블랙리스트가 된 사람은 요리 담당 ‘현이’였다. 경쟁력 있는 요리 실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라는 거다. 이서는 신념이나 가치의 문제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이유로 현이의 퇴출을 주장했다. 그러다 소문이라도 난다면 매출에 지장이 있다고 바락바락 대드는 이서에게 새로이는 분명하게 말한다. “난 아무도 버리지 않아.” 그리고 ‘요리사’인 현이의 현재 문제는 그의 성 정체성이 아니라 더 맛있는 요리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그 부분을 짚어 격려했다. 이후 흑인이지만 한국 사람인 토니, 장가네 서자이지만 자기 가게 알바인 근수에게 이서가 배타적인 감정을 보일 때도 새로이는 언제나 그들을 감싸 안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버지 사고사 당시 돈을 받고 증거인멸로 근원을 도왔던 형사 ‘병헌’이 돌이키고 식재료 사업을 하게 되면서, 사죄의 의미로 단밤에 좋은 식재료를 배달하겠다고 하자 그 역시 받아들였다. 어찌 보면 원수 사이인데도 말이다.


끝을 모르는 새로이의 포용력은 천성이 착하고 반듯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서의 소시오패스 성향이 79%라는 것과 대비한다면 그야말로 ‘타고난’ 성품이다. 하지만 나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아들을, 그리고 아들의 소신을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사랑이 그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에서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확신은, 마치 ‘단단한 기반’과도 같기 때문이다. 무너져 내릴 염려가 없는 삶의 반석이기에 그 위에서 무엇이든 내 소신껏 기량을 펼칠 수 있다. 혹은 ‘시루떡’과도 같다. 내 뒤에 폭신폭신 받치고 있어서 내가 행여 뒤로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든든한 안전장치처럼 말이다. 이렇게 새로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그 확신을 갖게 된 아들이다. 그래서 아무도 버리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러고 보면 장 회장의 아들 근원은 악역이나 짠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어쩌면 한 인간을 버릴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존재일 아버지로부터 버려졌으니. “장사란 이익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지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자신의 기업 윤리를 이야기한 장 회장은 결국 이익을 위해 아들을 버렸다. 근원이 10년 전에 음주 뺑소니 운전을 했다는 핵심 증거가 나오자 자신이 나서서 돈으로 해결했던 일이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들의 단독 범행으로 몰아갔다. 발 빠르게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 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후 새로이를 제대로 무릎 꿇리려고 마음먹은 장 회장은 새로이의 사람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단밤에 식재료를 대던 전직 형사 병헌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단밤에 식재료를 대지 않는 조건으로 장가네 포차 프랜차이즈 지점의 모든 식재료를 단독으로 제공하게 해 주겠다는, 그야말로 이익 면에서는 엄청난 조건이었다. 그러나 병헌은 장 회장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정 때문이냐는 장 회장의 비아냥거림에 이렇게 답한다. “한심한 등짝, 한 번이면 족합니다. 회장님. 자식 생각에 더 이상 초라해질 수가 없네요.” 정의로운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 딸에게 당당한 등을 보이고 싶다는 아버지. 그깟 돈 몇 푼에 사람을 버린 10년 전의 초라한 등을 다시는 보여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였다. 그러면서 병헌은 자신이 결코 감상적이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도 결국엔 장사치 아닌가. 그는 미래를 보고 하는 투자라고 했다. 사람을 버리지 않는 새로이의 가게가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그걸 기대하고 믿기에 올인하는 것이라고.


결국 새로이는 이길 것이다. 만화요 드라마니까 결론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허나 현실에서는 모르겠다. 과연 새로이의 방식대로 대기업 수준의 요식업계를 꿇게 만들 만큼 성공하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 하지만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다. 지금 당장 손해인 것 같아도, 서로가 버려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낼 미래를 우리는 결코 계산할 수 없다. 그것이 비록 수량적으로는 크고 멋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충만하고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공동체를 건설하라고 부름 받은, ‘교회로 사는 사람들’이다. 

백소영은 이화여대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강의로, 글쓰기로, 그리고 대중 특강으로 사람을 만나면서 삶을 배우고 삶에 관여하는 구체적인 신학을 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저서로 「드라마틱」,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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