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따라서 하나님의 복수형 사용(‘우리’)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 또 다른 신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의 교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전통적인 기독교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를 삼위일체 교리의 예증으로 설명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초기 교회 교부들의 신학적 탐구의 결과에서 정립된 중요한 기독교신학 체계이다. ‘하나님의 우리’라는 표현을 삼위일체의 흔적으로 보는 해석은 기독교의 교리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삼위일체 개념은 구약시대에서는 아직은 낯선 개념이다.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는 삼위의 하나님을 각기 구분하여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삼위(三位)에 관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만 알고 있다. 구약성경은 우선적으로 당시의 사상과 문헌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과 구약시대의 상황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약의 맥락에서는 ‘하나님의 우리’라는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가 만들자”(‘나아세’, we make)라는 복수형 히브리 동사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이 표현은 ‘심사숙고의 복수형’(pluralis deliberationis/plural of self-deliberation)으로 볼 수 있다. 심사숙고의 복수형은 무엇인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스스로 숙고하거나 결단할 때 쓰는 화법이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 사람들은 하늘에까지 닿을 정도로 높은 탑을 건축하고(오늘날의 지구라트[Ziggurat]),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스스로 교만함을 드러냈다. 이때 하나님은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창 11:7). 이들이 서로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결국 그들을 흩으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또 다른 신적 존재들과 협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과 협의를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 창조라는 특별한 사건을 앞두고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복수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사숙고는 창세기 3장 22절에서도 나타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선악을 아는 일에 천상의 신적 존재들 중의 하나같이 되었다.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자유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중대한 국면에 직면하여 또 다시 심사숙고하신다. 죄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특권을 감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스스로가 선악을 가르는 판단자가 된다. 선과 악의 궁극적 판단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 고유의 권한이다. 하나님은 범죄 한 인간이 영생하는 길을 제지하여 인간 회복의 때까지 낙원으로 돌아오는 길을 막기로 결단하신다. 이러한 결단은 최초의 인간 창조 활동에 못지않은 중대한 과업이었다.

둘째, 이 표현은 ‘대화의 복수형’(pluralis communicativus/plural of communication)으로 볼 수도 있다. 대화의 복수형은 하나님이 천상의 궁중회의(a heavenly council of angels)에서 천상의 존재들과 자신의 일을 상의하는 공동체적 복수형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대화의 복수형은 다음의 본문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렘 18:18).
하나님이 천상의 궁중회의에서 천상의 존재인 천사들에게 말을 거는 일은 구약성경에서 종종 보고된다. 예를 들면, 이사야의 소명 기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사야가 살던  당시(주전 740~701년) 하나님은 남유다왕국에 당신의 뜻을 전할 메신저를 필요로 했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누구도 듣지 않고 반발만 일으키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아무도 듣지 않을 메시지를 전해야 할 메신저가 필요한 것이다.
당연히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다. 천상의 궁중에서 하나님과 천사들은 누구를 파송할지를 놓고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하나님의 탄식 소리가 이사야에게 들려온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사 6:8).
또한 시편 기자들도 하나님이 천상의 궁중에서 천사들과 함께 회의하고 계심을 여러 차례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시 82:1; 참조. 왕상 22:19; 욥 1:6; 2:1; 시 89:7; 단 7:10 등).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천상의 존재들을 소집하고, 천상의 궁중회의를 개최하셨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 홀로 결단하시고, 말씀으로 창조를 이루셨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창조의 정점인 인간 창조를 앞두고 홀로 결정하지 않으시고 천상의 회의를 통하여 인간 창조를 결단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우리’라는 복수형은
구약의 맥락에서 ‘심사숙고의 복수형’으로도 볼 수 있고,
‘대화의 복수형’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해석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하든 간에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온 우주와 세상을 창조하실 때와는 차별되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치거나, 천상의 존재들을 모아 놓고 진지한 회의를 거쳐서 결행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막내이면서 철없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속을 가장 많이 썩일 것을 미리 아시고 고민하신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사족을 달자면,
아무튼 인간 창조는 창조의 절정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창조의 최종 목적은 아니다. 창조의 최종 목적은 안식일이다.
창조의 왕관은 인간이 아니라 안식일의 몫이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1~3).
안식일이 창조의 완성이요 왕관이다.  

차준희는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 「열두 예언자의 영성」, 「예레미야서 다시보기」, 「최근 구약 예언서 이해」, 「역사서 바로 읽기」, 「시가서 바로 읽기」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