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는 달린다. 삶이 불가능하다 느꼈을 때, 마치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와 첫 숨을 트듯이 그녀는 달림으로 막혔던 호흡을 다시 내뱉을 수 있었다. 달리기는 치욕을 내포하는 삶도, 수치가 드러나는 삶도 꿋꿋하게 살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비가 내려도, 칼바람을 무섭게 쏟아 놓아 한강을 꽁꽁 얼게 하는 겨울의 날카로운 추위에도, 이울지 않는 바람이 사납게 세상을 뒤집어도 달린 이유다.
그녀는 체대 출신이 아니다. 달리기는 삶의 궤도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종목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달리기 덕후가 되어 달리기 행사를 전문으로 기획하는 ‘굿러너컴퍼니’를 설립, 올바른 러닝 문화 확산을 위해 신나게 달리고 있다.

취재 이승연 사진 정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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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는 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화염’이 그녀를 달리게 했다. 화염은 사춘기 시절 그녀의 마음에 일어났고, 이후 그녀의 마음속에는 삶과 죽음이 만나 끝없이 다투기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크게 아프셨고 오빠는 집을 나갔다. 깨진 가정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그녀는 커터칼로 자신의 몸을 긁었다. 몸에서 피를 흘릴 때 그녀의 화염은 잠시 잦아들었다. 그러나 화염은 다시 그녀의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반복적으로 커터칼을 손에 든 까닭이다.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서울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으나 공허함의 중력은 더욱 그녀를 짓눌렀다. 얼굴과 귀, 코, 혀 곳곳에 20여 개 피어싱을 했다. 타투도 했다. 밤을 물리치고 동이 터 오르는 아침, 잠들었던 만물이 깨어나 생명으로 충만한 그 시각, 그녀는 모든 것이 허망해서 울었다. 헤비메탈과 하드코어 음악에 빠져들었고, 자신의 몸에 켜켜이 쌓인 불길한 기운을 털어내듯 머리를 흔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경제 사정이 어렵다 보니 카지노에서 일하며 공부했지만, 죽음을 향한 갈망은 사위의 공기 속에 머물고 있다가 물살의 여운처럼 그녀의 마음에서 불현듯 철썩거렸다. 그 기운은 우울증 약을 한꺼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 그녀에게 몸은 끔찍한 ‘덩어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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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에게 행운이었다. 아니, 하나님의 섭리였다. 영국에서 ‘언니’를 만난 건. 언니는 영국 유명 발레단에 속해 있던 발레리나였는데,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언니를 따라 그녀도 런던의 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영국까지 와서 교회에 가야 하나! 잠시 갈등이 생겨 주저하며 밖에서 담배를 입에 물던 그녀. 결국 예배당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찬양을 건성으로 부르는 그 순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마음 안에 타오르는 화염을 꺼뜨리는 눈물, 분노와 슬픔으로 뒤범벅이 된 몸과 마음을 쓸고 닦고 수선시키는 눈물…. 눈물이 흐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녀는 다시 교회를 찾았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어김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우물에 고이는 물처럼 끝없이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 안에 서서히 차오르는 따뜻함, 마음을 울리는 부드러운 음성, 지으신 그대로 회복시키시는 창조주의 목소리, “윤주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클럽과 파티를 전전하던 발걸음을 끊고, 피어싱을 빼고, 타투를 지웠다. 지금까지 다니던 길들을 폐지하니 죽음의 갈망은 그녀의 일상에서 휘발되었다. ‘예배’의 감격 속에서 그녀는 젖은 면직물처럼 ‘은혜’에 흠뻑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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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는 ‘아직’ 달리지 않았다. 그녀가 두 다리를 척 뻗고 성큼 뛰기 시작한 건, 이 일이 있고 난 다음이다. 2014년 가을이었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사소한 다툼으로 결혼이 무산되고, 남자친구와 아픈 이별을 겪게 되었다. 가슴을 치며 울다가, 하나님께 불평도 하다가, 문득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천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산을 오를 때도 쉬지 않고 뛰었다. 4개월 동안 달리기에 매달렸다. 이후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코스에 참가했다. 3일 동안 제주를 달렸다. 해안도로와 오름의 풍경, 목마른 입술을 적신 샘물, 자연이 베푸는 향연 속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손길과 호흡을 느꼈다. 마음속 단단하게 응어리져 있던 단단한 무엇이 녹말처럼 풀어졌다. ‘달리면서 느낀 기쁨을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면!’ 이 대회에서 얻은 영감과 동료들은 이후 그녀가 설립한 ‘굿러너컴퍼니’의 사업 밑천이 되었다. 2014년 11월, 그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달리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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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가 달린다. 이제 혼자 달리지 않는다. 러닝 대회를 기획, 주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기의 기쁨을 전하고 있다. 자연을 향해 오감을 활짝 열고 산과 숲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 자연을 아끼기 위해 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플로깅(Plogging)’,  월요병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긍정 강화를 주기 위한 ‘월요 긍정 달리기’ 등 각종 러닝 행사의 장을 열어 사람들을 달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러너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회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다. 굿러너컴퍼니를 통해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이 흘러가는 것은 그녀의 사명이다.   
달리는 사람 이윤주. 이제 달릴 수 있는 자신의 ‘몸’에 감사한다. 그녀는 말한다.
“달리기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인간만이 유일하게 오래 달릴 수 있다고 하죠. 달리면서 내 심장 박동을 느껴보세요. 내 몸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달리기는 내 몸을 더욱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