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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JAN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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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의 몸이여!

issue
아름다운 나의 몸이여!몸에 대한 10인의 짧은 묵상

○ 사진 속 모델들은 프뉴마 발레단 소속 무용수들입니다. 프뉴마 발레단은 춤으로 선교하기 위해 2006년 5월 창단되었습니다.
단체 설립자 김형민 단장은 국립 발레단 주역, 조승미 발레단 수석무용수, 하사딤 선교발레단 부단장을 역임했습니다.
○ 사진 김주경

 

 


주일성수와 ‘오른다리’
조민형  작가

약 5년 전,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야간 알바를 했습니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오전 8시쯤 잠이 들어서 오후 3시쯤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죠.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생활이 약 2년간 반복되다 보니까 생체 주기가 평일에 맞춰져서 일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낮에는 졸리고 밤에는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주일이었습니다. 주일 오전 8시가 되면 졸려서 그냥 자버리기 일쑤! 일어나면 오후 3시. “어차피 늦었는데 그냥 교회에 가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주일성수를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 축구 모임이 있어서 한 번 참석했는데, 그날 오른다리가 심하게 부러졌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성수를 하라는 하나님의 징계인가!’
이후 야간 알바를 그만두고, 낮에 일하는 곳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오른다리 약 30㎝ 정도의 수술 자국 흉터를 볼 때면, 당시 느꼈던 고통보다는 ‘주일성수 잘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이시겠지요?

 

 

감추는 ‘손’ 살리는 ‘손’
안효원  농부&작가

내 몸엔 흠이 두 개 있다. 은하수처럼 많은 점과 짧고도 큰 엄지손가락.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늘 감추고 싶었지만 점은 어쩔 수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짝꿍이 물었다. “짜장면 먹고 왔어?”, “아니”라고 했더니 “얼굴에 잔뜩 튀었어!”라며 신나게 웃어댔다. 이런 우정 덕분에 점 콤플렉스는 쉽게(?) 극복되었다.
문제는 엄지손가락이다. 손을 얼굴처럼 내놓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내 손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기에 감추기 쉬웠다. 하지만 엄지손가락이 시야에 드러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발이야?”, “잘린 거야?”, “까르르르” 등등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점점 무뎌졌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뿔뿔이 흩어져 사는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날 때면 이것은 큰 역할을 한다. 변함없이 짧고 큰 엄지손가락을 보며 그들은 어릴 적 소중히 여기던 장난감을 본 것처럼 해맑게 웃는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고, 푸르던 때의 기억을 서로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다. 나 또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로 손을 내민다.
한때는 나에게 이런 손을 물려준 외가의 피를 원망하고, 예쁘게, 아니 조금이나마 덜 못나게 보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농사를 지으며 여전히 못생기고, 더욱 거칠어진 이 손이 좋다. 그 가치는 생김새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을 나는 엄지손가락을 보며 배웠다.
서른 즈음에 희귀난치성 병을 얻어 병원에 두 달가량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많은 의사, 간호사가 이 몸 하나 살리겠다고 밤낮없이 애썼다. 또 가족과 이웃들은 나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때 나는 그들의 손 모양을 보지 못했지만, 그 손에 담긴 사랑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감추고 싶었던 못난 손, 이제는 세상을 살리는 손이 되기를 기도한다.


세월의 흔적 ‘주름’
김경아  작가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볼 때마다 진한 주름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 주름은 이마의 삼분의 일 지점에서 시작되어 눈과 눈 사이를 지나는, 세로로 깊이 팬 선이 되었다. 3㎝ 정도로 꽤 길다. 언제부터 주름이 거기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주름이 내 눈에 띈 계기가 있었나? 그것도 잘 모르겠다. 이 주름이 나의 첫인상을 부정적으로 좌우하지는 않을까, 은근히 신경 쓰인다.
왜 이 주름이 생겼는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있다. 나는 30년 차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이다. 이 병은 관절에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고 관절의 변형을 초래한다. 아이를 낳은 경험과 비교해 보자면 이 병의 통증이 출산의 고통보다 심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래도 요즘은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어서 무조건 통증을 견뎌야 하는 일은 줄었지만, 예전에는 너무 아팠다. 그 통증을 견디느라 나는 얼굴을 찡그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주름이 생겼고 30년이라는 세월이 주름의 깊이를 더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 주름은 내가 어떤 삶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지 함축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그 주름의 역사를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님과 나는 안다.
외출할 때마다 화장을 한다. 화장을 안 하고 나가면 다들 많이 아프냐고 걱정한다. 그 주름을 정성껏 매만지건만 워낙 오래된 주름이라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발상을 해보자. 이 주름을 숨기는 데 공을 들이기보다 다른 주름을 더 깊이 만들어 보면 어떨까. 웃을 때 생기는 눈 밑의 주름을 키워보는 거다. 눈밑 주름을 방지하는 화장품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 주름이 좋다. 웃을 일 없는 세상에 살면서 그래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많이 웃어 보려 한다. 이렇게 하면 30년 후에는 웃음 덕분에 생긴 주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지 않을까? 아이고,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어쩌나. 이 걱정에 또 주름이 늘어나겠구나.


손톱이 없는 나의 ‘왼손가락’
박경희  소설가

“어머! 어쩜 그렇게 손가락이 길고 예쁘세요?”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나의 오른쪽 손가락만 보고 하는 말이다. 사람들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 힘들었다. 세 살 때 사고로 왼쪽 중지 끝이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예쁜 반지며, 희귀한 장신구를 오른쪽 손가락에만 착용했다. 어딜 가도 왼손을 내놓지 않는 습관과 함께.
언제부터인가 나는 손가락이 잘려 나간 것은 내 잘못이 아닌데, 위축되고 감추려 애쓰는 자신이 싫었다. 변화를 시도했다. 남들 앞에 의도적으로 왼손가락을 내보이려 애썼다. 처음에는 창피해서 돌아서서 울었다. 그러나 끝없이 자신과 싸웠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컴퓨터를 배웠고, 자판으로 글쓰기를 생활화했다. 남들 앞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야 할 때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자판을 치며 일을 진행했더니, 사람들은 나의 손가락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만들어 내는 문장이나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 손가락을 못 보았을지도.
혹 누군가 나의 왼손가락을 발견하고 놀라는 표정을 감추려고 하면 내가 먼저 말했다.
“제가 시골에서 자랐는데, 사촌 오빠가 작두에 아기인 내 손가락까지 풀과 함께 잘랐대요. 천만다행이죠. 손목까지 왕창 나가지 않은 게….”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듣는 사람도 빙그레 웃을 뿐, 별 말이 없었다. 나의 결핍을 겉으로 드러내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나와의 싸움을 통해 얻은 선물은 더욱 크다.
그동안 감추느라 급급했던 나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다 보니, 나의 왼손가락이 더욱 사랑스럽다. 지금도 날씨가 추워지면 손톱이 없어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이 많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평생 글쟁이로 살아온 나와 동고동락해 준 왼손가락이 한없이 고맙다. 아픈 자식이 엄마를 성장시키듯, 나의 왼손가락 또한 나를 작가로 키운 일등공신이다.

완벽한 하나님의 솜씨 ‘이(齒)’
이기섭  시나리오 작가

치과는 아직도 무섭습니다. 앞니 하나가 점점 누렇게 변해가는 데도 미루고 미루다가 치과에 들렀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본 치과의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이렇게 되도록 아프지 않으셨어요?”
예전에 신경치료를 받았던 이의 옆 뿌리에 직경 7㎜ 정도의 고름 주머니가 있고 뼈까지 손상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 정도면 얼굴이 붓고 엄청 아프다는데, 이미 신경이 죽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큰 농양이 자리 잡도록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잇몸을 열었습니다. 마취를 해서 고통은 없었지만, 뼈를 긁어내는 소리에 진땀이 흘렀습니다. 아프지 않다는 것이 꼭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픔은 더 큰 상처를 막아주는 고마운 신호이고, 살아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인간의 몸 어느 구석 하나 신비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만, 저는 아이들이 이가 나는 것을 보며 때를 따라, 천천히, 완벽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솜씨에 반했습니다. 젖을 떼고 이유식을 먹을 때면 아기의 잇몸을 가르고 조그만 유치 두 개가 나옵니다. 자라면서 유치 스무 개가 채워지다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는 그 유치가 하나둘씩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지요. 그 시절, 흔들리는 이를 실로 감아 빼던 공포는 어른이 되어서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잇몸 안에 기다리고 있는 새 이가 나오려면 아무리 아파도 아기 때의 이는 빠져야만 합니다. 열두어 살 사춘기 시절을 지나며 영구치가 모두 나옵니다. 잘 씹어 먹고 건강한 어른이 되라는 뜻이지요. 불같은 청춘 시절에는 마지막으로 사랑니가 나옵니다. 보통은 붓고, 아프고, 염증을 일으키니 사랑이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나이가 들면 이가 썩고, 깨지고, 빠집니다. 이제 힘쓸 일 없으니 적게 먹고 천국 갈 준비를 하라는 거지요.          
치료를 마친 제 잇몸은 연분홍색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깎아낸 뼈는 점차 재생되고 더욱 강해진다고 하네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고통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기가 처음 이가 날 때는 이앓이를 하고, 영구치가 다 나오는 사춘기에는 성장통을 겪습니다. 사랑니 날 즈음에는 입시와 취직과 결혼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고통이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만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숙한 인간으로 가는 통과의례라면 고통 이후엔 새로운 길이 열리고 그 길을 헤쳐 나갈 능력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잘려나간 ‘손가락’에서 분명히 보이는 흔적
신민석  건축엔지니어

기계화, 자동화되었다고 하지만 건설 현장은 여전히 몸으로 일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정신적 스트레스보다도 몸이 힘들었던 기억이 참 많다. 콘크리트 배관이 터져 레미콘을 뒤집어쓴 적도 있고, 철근에 걸려 옷이 찢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하루는 건축사업본부 본부장님이 현장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본부장님의 손을 보니 마치 안중근 의사처럼 왼손 약지의 마지막 손마디가 없다. 나중에 선배에게 물어보니 본부장님이 신입사원 때 레미콘 슈트(chute, 물건을 미끄러뜨리듯 이동시키는 장치)에 손가락이 찍히셨단다. 관리자로서 뒷짐 지고 서 있어도 될 일을 굳이 직접 하셨던 것이다. 얼마나 열정이 넘치고 일에 욕심이 많은 청년이었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그 선배는 “본부장 정도 올라가려면 손가락 하나쯤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농담도 곁들였다. 대기업 임원이 되는 것은 그만큼 자기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이리라.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조선인에게 뜨거운 독립의 열망을 불어넣었듯, 그날 본부장님의 왼손은 나로 하여금 엔지니어로서의 열정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했다. 일하면서 많은 기술자들을 만나다 보면, 그가 전문가인지 아닌지는 표정과 말투, 대화 몇 마디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본부장님과 대화해 보면 이분이 얼마나 훌륭한 기술자인지는 손가락이 아니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자연스레 나를 돌아본다. 내게 남겨진 흔적은 무엇일까. 업무로나 인격으로나 타인의 존경을 받을 만한 흔적은 시간이 쌓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손가락이 잘리는 정도의 아픔을 겪으며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내 ‘눈’은 색이 잘 안 보입니다
이요셉  사진작가

전 사진을 찍지만 사실, 색약입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풍경을 다른 사람들도 보면 그렇게 느낄까?’,  ‘내가 아파하는 풍경을 보면 누군가도 똑같이 아파할까?’
전 제가 보고 있는 색을 잘 모릅니다. 빨강, 노랑, 파랑. 색을 조금만 섞어도 대략 난감합니다. 딸 온유가 네 살 때부터 제게 적극적으로 색깔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더 난감합니다. 아빠가 되어서 뭐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할 텐데,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눈치 빠른 온유는 그런 내 앞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엄마에게 쪼르륵 달려갑니다. 색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인지 새로운 카메라가 출시될 때마다 카메라를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했습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할 테니, 신제품일수록 더 정확한 색을 재현해 낼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워낙 고가라 자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몇 년 전에 큰 맘먹고 카메라를 바꾸었습니다. 내친김에 색 재현력이 좋다고 정평 난 모니터까지 새로 장만했죠. 카메라와 모니터를 새것으로 바꾸고 나니 신기하게도 색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얼마 전, 친하게 지내던 디자이너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는 내 모니터를 보고 기가 막힌 듯 웃었습니다.
“이 모니터, 색이 전혀 맞지 않는데요?”
모니터마다 기준 색이라는 게 있는데, 제 모니터는 전혀 엉뚱한 색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문득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진짜 약과 맛, 모양이 비슷한 가짜 약을 먹은 환자들에게 실제 치료 효력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플라시보 효과. 무려 환자의 30%가 정말 나아진 것 같다고 말한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장비들을 바꾸었지만 실제 바뀐 것은 거의 없었던 셈인데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았던 걸 보면 말입니다.여전히 전 색들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사진가인 제가 색약이라는 문제를 풀 방법도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는 않습니다. 불안한 것도, 두려운 것도, 기뻐하는 것도, 감사하는 것도 모두 내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내 마음에 수많은 전쟁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어떤 불안함이나 두려움보다 크신 분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나의 ‘왼발’ 수난기
최유진  작가

열두 살 무렵, 놀러 갔던 집의 녹슨 쇠 대문 문턱에 걸려 넘어지면서 내 왼발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발을 접질리면서 한참 동안 침을 맞으러 다녔는데, 워낙 운동을 싫어했던지라 한참 발랄할 사춘기에 아픈 발을 핑계로 컴컴한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읽어댔었다.
발을 다쳤다는 사실도 잊을 무렵인 고3 때, 학력고사를 두 달 남겨 두고 지하 매점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굴러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친 것이 두 번째 수난이었다. 그날 낮에 마지막 체육시험이었던 줄넘기를, 열심히 연습한 대로 실수 없이 잘 치르고 난 뒤였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 후로도 오랫동안 형편없는 체육 성적 때문에 나의 멍청함을 자책하며 지낼 뻔했다.
막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할 무렵, 그때만 해도 산에서 취사가 가능한 시절이었다. 어설픈 솜씨로 호박고추장찌개도 끓여 먹고, 이웃 등산객들이 나눠 주신 고기까지 맛나게 먹은 것까지는 좋았다. 점심 먹고 하산을 하는데, 이 남자가 너무 빠른 속도로 내려가서 겁이 많은 나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변변한 등산화도 나오기 전이다. 아래쪽 바위로 몸을 날렸는데 그만 발이 미끄러지면서 심하게 삐어, 걸을 수가 없었다. 데이트하던 여자와 보조를 맞추지 않고 날다람쥐처럼 훨훨 날아 혼자 내려가던 남자는 그만 산 중턱부터 만만치 않게 무거운 여자를 업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극구 사양하는 나에게 그는 업히라면서 등을 돌려 대었다. 몇 시간에 걸쳐 거북이걸음으로 하산하느라 청년의 목덜미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 남자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냄새, 참 좋다….’ 황망 중에 업혀 내려가며 한 생각이었다.
관악산에서 고생한 그 남자는 2년 후 나와 결혼했다. 지금도 가끔 내 친구들은 그때 일로 나를 놀리고는 한다. “솔직히 말해봐. 너 그때 일부러 그런 거지? 기집애, 심보가 아주 음흉해.”

인생을 바꿔준 ‘귀’
최병호  교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바로 들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바로 귀 기울여 잘 들어서 예수님을 만난 장본인입니다. 불교 집안에서 불공을 드려 태어난 귀한 아들인 저는 부산에 가장 큰 절인 범어사가 세운 불교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불교에 본격적으로 심취하게 되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교 불교학생회장까지 되어 전체 조례 시간에 목탁을 두드리며 찬불가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가 미션 스쿨인 브니엘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양손에 커다란 염주 두 개를 차고 다녔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방송으로 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찬양을 부르고 전도사님께서 5분 메시지를 전하고 기도하셨는데, 그것이 끝나면 담임선생님의 조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찬양, 말씀,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기독교 종교 시간 전도사님의 ‘죽음’의 정의에 대한 말씀을 듣고 제 마음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죽음의 정의는 크게 세상적 죽음과 성경적 죽음으로 나눌 수 있어요. 세상적 죽음의 정의는 어찌 죽든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것이에요. 그럼 의사 선생님이 사망 진단을 하게 되고 그제야 그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화장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죽음의 정의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육체와 영혼이 붙어 있는데 죽는 순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첫 번째 죽음입니다. 분리된 육체는 썩어서 흙이 되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은 영혼은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되고 믿지 않는 영혼은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게 되지요. 예수님 믿고 주의 자녀가 되어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을 기독교에서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나의 귀로 듣는 순간 내 속에 모든 것들이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만약 그때 종교 시간에 죽음의 정의에 대해 듣지 못했다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복음을, 말씀을 듣게 해주는 귀는 얼마나 소중한지요. 예수님의 진리 말씀을 귀로 듣는 것! 귀를 잘 쓰면 인생이 바뀝니다.


‘다리’ 통증을 멎게 한 부모님의 기도
전희훈  수필가

꿈에 부풀어 북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좋은 일에는 앞뒤 안 가리고 흥분을 잘하는 나는 처음 가보는 북유럽에 대한 기대로 아주 많이 들떠 있었다.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해 호텔에서 하룻밤 여장을 풀고 이튿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왼쪽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어? 내 다리가 왜 이러지?’ 왼쪽 다리 아킬레스건에 심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걸을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여행이 시작되었는데,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갑자기 두 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삼십 년 가까이 된 일이다. 우리 부부가 한 달간 성지 순례를 할 때 고국에 계신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는 비행기 소리가 귓전에 들릴 때마다 허약한 몸으로 여행 중에 있는 며느리와 딸이 못 견디고 도중에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하여 노심초사하며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셨단다. 귀국해 보니 두 분 어머니는 자석요가 허약 체질을 건강 체질로 바꾸어 준다는 광고를 믿고 약속이나 한 듯 자석요를 사놓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 어머니! 두 분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하늘로 가셨다. 불현듯 아버지가 보고 싶어 국제 전화를 했다. 올해로 백수(白壽)이신 아버지는 북유럽 지도를 펴 놓고 우리가 방문하는 나라를 손으로 짚어가며 자식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 아, 기도! 그 위대한 힘!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만이 다리의 통증을 멎게 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 모든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 후 보름 가까운 여행 기간 내내, 아픈 다리에 기적이 밀려왔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곁에 언제나 갚을 길 없는 부모님의 사랑이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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