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다. 처음으로 동네 보습학원이 아닌 학원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는 수학 전문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 아이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유쾌하고 사교성이 좋은 친구였다.
“숙제했냐? 나 안 했는데. 또 선생님한테 혼나겠네. 그냥 혼나지 뭐!”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나와 달리 자유분방하고 일탈을 일삼는 그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곤 했다. 얼마 뒤 학원을 옮기게 되면서 그 친구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학교에 가니 옆 반 교실에 그 친구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오랜만이라 서먹하기도 했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던 친구인지라 같은 학교에 온 것이 반갑고 좋았다.
학기 초의 어색함이 사라질 무렵, 그 친구가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쟤 진짜 짜증나지 않냐?”, “그러니까. 왜 저렇게 나대?”, “진짜 XX 같아.”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왜 그러지? 재밌고 사교성도 좋은 친구인데? 누구한테 밉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묻고 싶지 않았다. 점점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친구와 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꺼려졌고 조금씩 거리를 두었다. 그와 친한 모습을 보이면 나까지 피해를 입을 것만 같았다. 그 친구가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쁜 행동을 한 것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따돌림에 은근히 동참한 것이다.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것은 어떤 명분에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아주 나쁜 행위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응당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쟤가 뭔가를 잘못했겠지. 왕따 당할 만한 행동을 했겠지. 내 일도 아닌데 뭐!’ 하고 말았다.

그 당시 영어와 수학 과목은 2개 반을 통합하여 성적에 따라 우열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나와 그 친구는 다른 반이었지만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한 번은 수업 조별 과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조를 짜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 친구는 나에게 같이 조를 짜자고 했다. 하지만 난 매몰차게 거절했다.
“난 이미 같이할 친구들이 있어. 그리고 내가 왜 너랑 같은 조를 하냐?”
왜 그렇게 차갑고 못되게 말을 했을까. 굳이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아도 됐는데. 주변에 다른 친구들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 그때 그가 나를 아무 말 없이 3초 정도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 너마저…’ 하는 원망과 슬픔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 당시 잠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과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친구는 그런 대우를 받는 데 익숙할 테니까.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내가 준 상처는 별 것 아닐 테니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그 뒤로 계속 관계가 멀어졌다. 그 친구는 마음을 잡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교에 진학했고, 현재 연락하지는 않지만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면 어엿한 사회인으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때는 혼자서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두려웠다. 무리 지어야, 다수의 부류에 들어가야만 안전하다고 느꼈고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했다. 사회에 나와 보니 다수가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닐 때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친하게 지낼 것을, 그까짓 왕따 당하는 것이 뭐가 두려워 그 친구를 외면했을까. 기회가 생긴다면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린 마음에 두렵고 철이 없었다고.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을 볼 때, 가끔 그 친구가 눈에 아른거린다. 누구보다도 극심한 왕따를 겪으신 예수님. 핍박과 조롱을 당하고 계신 예수님이 “나랑 함께 가자”라고 했을 때, “전 이미 다른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왜 예수님이랑 같이 가요?”라고 말한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으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받고 따돌림당하는 상황에서 요동하지 않는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 3:13).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사회생활을 하면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세상과 혼연일체 되어 살아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진리의 말씀에 따라 옳고 그름의 명확한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때 세상의 시선과 주변의 기대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움받을 용기, 왕따당할 용기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의 철없음이라 치부하기엔 여전히 나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쉽게 비판하고,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미성숙한 사람임을 깨닫는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고 비난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엎드려 도우심을 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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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석은 건축엔지니어다. 지은 책으로는 「집을 짓다 나를 짓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