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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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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미션의 새 지평을 열다

특집
비즈니스 미션의 새 지평을 열다한국CBMC 중앙회장 이승율

특집 _ 비즈니스 미션과 청년 창업

비즈니스 미션은 비즈니스 자체를 선교로 보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와 활동이 그대로 선교 사역으로 이어짐을 의미한다. “Business is Mission”을 실천하는 기독 실업인들은 사업과 사역을 다른 영역에 두지 않고, 사업의 현장에서 사역하고 사역의 현장을 사업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선교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현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기독 실업인들을 위해 한국CBMC 중앙회장 이승율 장로가 나섰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역사를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을 전심으로 돕기 위함이다.
지난 30여 년간 동북아공동체의 미래와 비즈니스 미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며 달려온 이승율 중앙회장을 만나 그간의 사역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이번 CBMC 대회
상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취재 서진아 사진 김주경


CBMC는 언제 어떤 필요에 의해 생겨난 단체인가요?
CBMC(Connecting Business & Marketplace to Christ/기독인실업인회)는 기독 실업인과 전문인이 중심이 되어 비즈니스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생겨난 사명 공동체입니다. 193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세계경제대공황을 맞아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기도하는 기독 실업인 7명이 중심이 되어서 경제 부흥과 새로운 삶의 가치를 위해서 손잡고 기도운동을 일으킨 것이 CBMC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 기도운동이 미국 전역에 전파되면서 1950년대에 한국에 전해졌죠. 6·25전쟁 이후 피폐해진 한국의 경제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희망과 꿈을 찾아 기도하는 기업인들이 손잡고 일으킨 운동이 한국의 기독 실업인 운동입니다.
올해로 66주년을 맞이하는 한국CBMC는 국내 지회 270여 개, 미국, 중국, 유럽 등 해외 지회가 140여 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7,500여 명의 회원이 각자 일터에서 비즈니스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청지기로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지회별로 매주 조찬 모임 형태로 모여 성경 공부 및 기도회를 진행합니다.

 


기독 실업인들이 사업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창세기 1장 27~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각자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 비즈니스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일터에 적용할 때 비즈니스 원리와 신앙 원리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 따로 비즈니스 따로는 앞 다르고 뒤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전한 마음을 요청하실 뿐만 아니라, 창조적 원리와 일터를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즉 ‘Business is Mission’이라고 할 정도로 비즈니스 자체가 기독 실업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비즈니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전파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세상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기를 원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CBMC가 지향하는 비전은 무엇인가요?
CBMC의 비전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에 근거하여 이 땅에 ‘비즈니스 미션’의 지평을 확대하고 킹덤 컴퍼니(Kingdom Company)의 기반을 확충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기를 맞은 시대사의 흐름을 잘 간파하여 성경적 경영의 토대 위에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을 창출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 일터 사역의 소명과 리더십 개발이야말로 CBMC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입니다.
CBMC 회장이 되기 전부터 된 이후까지 저를 떠나지 않는 생각은 일자리 문제와 미래 진로로 불안해하며 떠도는 젊은 청년들의 영혼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말씀을 되새기며 ‘그의 나라’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다음세대에게 미래 희망, 가능성, 개척의 영역을 열어주고 기회의 사다리를 세워주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꿈꾸고 바라시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세워진 청년들과 함께, 사회 구제와 통일을 위해 동역하며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교회에 요청하시는,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그의 의’라고 생각합니다. 즉 ‘창업 선교’와 ‘통일 선교’의 양 날개로 우리 젊은이들과 함께 민족과 세계의 미래를 준비하며 나가는 길이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임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꽤 늦은 나이에 하나님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내를 고등학교 1학년에 만나 10년 만에 결혼하고 결혼한 지 15년 만에 교회에 나갔는데, 그때가 1990년이에요. 아내와 장모님이 날 위해 기도를 엄청 많이 했는데, 25년 동안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뺑뺑 돌기만 했던 겁니다.
청소년기에는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중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영혼을 팔아서까지 진리를 찾고자 했던 ‘파우스트’를 진리의 화신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는 불교철학을 전공했는데 진리를 탐구한다는 이유로 방황하고 세상 속에서 배회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사업의 길로 접어들어서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며 더욱 더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 1월 1일 아내와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찾은 기도원에서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당시에 제가 담배를 엄청 많이 피웠는데, 기도원에까지 담배를 들고 가기 미안해서 논두렁에 버리고 갔는데, 그날 이후로 완전히 이별했어요. 중3 때부터 피우던 담배였는데 금단 현상도 없이 딱 끊겼어요.
기도원에 머문 둘째 날, 소경이 실로암에서 눈을 씻은 이야기를 듣다가 젊은 날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눈먼 소경이 눈을 씻기 위해 비탈길을 기어서 내려갈 때의 처절한 고통이 내 젊은 날의 방황과 오버랩 되면서 엄청난 울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불교철학을 통해서 체득하려고 했던 해탈, 파우스트가 진리 탐구에 실패하고 그레첸의 손에 이끌려 하늘로 올라가면서 바닥에서 벽공(碧空)으로 내지른 외침, 그리고 기독교의 부활을 동시에 깨달으며 완전히 고꾸라졌어요. 그 다음 주에 바로 교회 등록하고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5년간 나를 위해 기도한 아내와 장모님, 내 아이들의 금식기도와 간구가 저를 하나님 곁으로 이끈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거듭나며 어떠한 기적을 경험하셨나요?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에 속하여 전국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사역을 경험하면서 기독 실업인으로서의 비전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해외선교지원팀에 발탁되어 남미,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 러시아 등 세계를 돌며 글로벌 선교에 눈을 뜨게 되었죠. 중국과 이슬람 국가에서는 성회를 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다 궁리 끝에 비영리기구 ‘굿피플’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1992년에 참석한 CBMC 전도초청 모임에서 김동호(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목사님의 ‘땅을 정복하라’는 제목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서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남 주자, 출세해서 남 주자”는 메시지가 내 마음을 비수처럼 찔렀습니다. 기업인으로서 정당하게 벌어 정당하게 쓰는 것에만 몰두했던 나에게 김동호 목사님의 메시지는 내 인생 후반전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1994년 중국 최초로 연길한인CBMC가 결성되었고 2010년에는 중국 내 한인CBMC가 60여 개나 되었습니다. 한국인과 중국인을 모두 합쳐 중국 전역에 90개 가까운 기독 실업인 단체가 창립되었고, 그 열기는 중앙아시아로 뻗어 나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도 CBMC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터키 이스탄불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그때 “아,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람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군요” 하는 고백이 터져 나왔어요. 연길에서 아시아 대륙을 관통해서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비즈니스 미션 벨트가 형성된 겁니다. 이게 내 간증이에요.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주어지는 대로 하나님의 푯대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렸더니 1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런 궤적이 그려졌어요.

 


기독 실업인으로 사역을 펼치는 과정에서 청년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신 건가요?
나의 청년 사역의 기초는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찾을 수 있어요. 1990년 초 북경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김진경 연변과학기술대 설립자 겸 총장을 만났어요. 그때 그분이 중국 고위층 인사에게 “미국에 있는 재산을 팔아 연길에 기술전문대학을 세우려고 합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중국과 조선족을 위해 봉사하고 싶으니 도와주십시오”라는 말을 하는데 어찌나 놀랍던지요.
당시 하나님을 믿은 지 1년도 안 된 초신자로서 기름을 들이붓는 듯한 감동을 받았어요. 김동호 목사님의 강력한 메시지, 김진경 총장님의 진정성 있는 꿈과 비전이 직통으로 내 마음에 꽂혔어요. 난 또 성격이 아주 심플해요. 싫은 것은 싫지만 마음에 들면 망설이지 않고 행동을 해요. 내가 김 총장님께 혹시 도울 일이 있겠냐고 했더니 당신 같은 건설업자가 조금만 도와주면 큰 힘이 되겠다고 하기에 그때 조금만 돕겠다고 한 게 지금 28년째예요.
그렇게 해서 1992년에 개교한 연변과기대는 현재 학부와 부속 과정을 포함한 졸업생 2만 2천여 명을 배출하며 중국 내에서 명문대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생들은 한국어, 중국어, 영어에 능통하며 컴퓨터를 잘 다루고 국제 감각도 뛰어납니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올라가 소금을 뿌렸더니 쓴물이 단물로 바뀐 것(왕하 2:19~22)처럼 연변과기대 언덕을 올라갈 때마다 죽음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바뀌었음을 실감합니다.
연변과기대의 성공에 힘입어 북한에도 과학기술대학을 건립할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북한의 국제화와 한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남북한 교류 협력의 교육합작특구로 승인된 평양과기대 건립 사업은 복잡한 세계정세와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인해 수많은 난관과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2009년 9월에 17개의 건물을 준공하고 역사적인 개교를 맞게 됩니다. 이후 2010년 4월로 수업 개시가 예정되었으나 그해 3월 26일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으로 개강은 미뤄졌고, 뒤늦게 한국 교수 없이 외국인들로만 교수진을 구성하여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그 학생들이 우수한 실력으로 중국, 유럽, 브라질 등 해외 명문대학에 유학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엘리트 청년들이 국제사회와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미래 진로를 새롭게 모색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그들이 우리의 동역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도록 만든 일은 정말 가슴 벅찬 감동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연변과기대에 이어 평양과기대 건립 및 운영에 이르기까지 대외부총장으로 쓰임을 받으며 보탠 나의 작은 힘과 정성은 내 인생 후반전에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쉼 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나요?
내가 워낙 ‘비열한 사나이’라서 그래요. 비전과 열정의 사나이. 하하. 나는 코앞에 닥친 사안을 외면하지 않고 도전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모할 정도로 질주하는 도전과 추진력은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국제복음주의학생연합회(코스타), 국제학생회(ISF)도 그런 경우입니다. 두 기관은 각각 해외에 나간 한인 유학생들과 국내에 유학 온 외국인 유학생들을 지원하는 기독교 단체예요. 나는 연변과기대 교수 자격으로 코스타에서 강사로 활동했는데, 해외 한인 유학생들에게 연변과기대를 알리고 교수·교직원 인재 발굴, 커리큘럼 개발, 학과 신설 등에 대한 계획을 홍보하고 준비시키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내가 ISF 설립에 참여한 것도 연변과기대 유학생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1992년 개교하고 5년이 지난 1997년부터 연변과기대 졸업생들이 한국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대외부총장이어서 그들과 만나 식사도 하고 상담도 하면서 도와주게 됐죠. 2000년 초에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외교부에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되기까지 8년이나 걸렸습니다. 현재는 외교부에서 ISF를 국제공공외교단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크게 발전했죠.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 사역을 통해 나는 동북아 지역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늦은 나이에 중국중앙민족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동북아 시대와 조선족 사회의 상호 발전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중국과 동북아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동북아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초가 되었죠. 이런 비전과 열정이 나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나이로 만들었나 봅니다.

 


그런 비전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제45차 CBMC대회의 주요 이슈는 무엇인가요?
CBMC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내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창업 선교’를 기치로 내건 이후 많은 단체가 우리의 비전에 뜻을 함께하였고, 이번 CBMC 한국대회에 청년 초청 집회를 별도로 마련했습니다. 지금까지 정회원 가족 2천5백 명가량이 모여 컨퍼런스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는 따로 1천여 명의 청년들을 초대했습니다.
비즈니스 인큐베이터(BI) 르호봇의 박광회 회장, 미국 항공우주국(NASA) 신재원 부국장 등을 주요 강사로 세워 청년들이 창업과 일자리, 인생 진로를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 진로 상담, 멘토링 등을 통해 기회의 사다리를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발전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들과 함께 이루는 ‘창업 선교’의 꿈이 하나님 손에 붙잡혀 ‘비즈니스 미션’의 지평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미래 희망의 기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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