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소로고

2018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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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주님 안에 살리라

그가 섬기는 세상
두려움 없이 주님 안에 살리라김혁건

여러분들에게 봄은 어떤 기억으로 다가오는가. 따뜻한 바람, 하늘거리는 꽃잎, 가벼운 옷차림, 가족과 나선 나들이 길에 울려 퍼지는 행복한 웃음소리, 보통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기 쉽다. 그러나 한 청년에게 봄은 어떤 계절, 어떤 시간보다 잔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6년 전 봄, 자신감과 열정이 넘치던 서른두 살 청년 김혁건에게 교통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라는 고난은 어떤 무게로 다가왔을까.
누구나 인생관이 바뀌는 전환기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눈에 띄게 변화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만큼 내면의 미세한 변화로 그치기도 한다. 때때로 인생이 완전히 뒤집혀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김혁건처럼 말이다.
육체는 강건했지만 하나님을 잘 몰랐던 이전의 김혁건을, 육신은 나약해졌지만 강건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그날의 사고는 그의 인생을 BC와 AD로 가르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인생 BC와 AD,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취재 서진아 사진 정화영

내 인생의 BC - 넘치는 자신감으로 젊음의 시간을 보내다

삼 남매의 막내로 부모님과 형, 누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저는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록음악을 접하고 나서 한 번도 꿈이 바뀌지 않았어요. 사고 이전까지 저에게는 음악이 전부였습니다. 1999년 ‘이시하’라는 친구와 함께 ‘더 크로스’라는 밴드를 결성해 메인보컬로 활동했어요. Mnet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해 대상을 받으면서 널리 이름이 알려지고 정말 분에 넘치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음악적으로 지경을 넓히고자 음악의 이론적 체계나 발성, 호흡법 등에 대해 공부했고 성악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여러 선생님들께 체계적으로 배운 성악 발성과 호흡법이 사고 이후 지금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하는 데 큰 뒷받침이 되었어요.
2003년에 ‘더 크로스’ 1집 앨범이 나오고 타이틀곡인 〈Don’t cry〉가 큰 사랑을 받았어요. 당시 팬 카페 회원이 5만 명이 넘었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알아보는 분들도 많아졌죠. 갑작스럽게 얻은 인기에 얼떨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엔가 MBC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음악대장’이라는 별칭을 가진 하현우 씨가 불러서 다시 화제가 되었죠.
그러면서 조금 교만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아요. 소속사에서 그룹의 인기에 좀 더 박차를 가하고자 3인조 R&B 그룹으로 전향하자는 제의를 거절하고 혼자 나와서 솔로로 활동하게 되었죠. 저는 그때 록음악을 고집했고, 굽실거리며 인기를 구걸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고 미성숙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상황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풀어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암튼 ‘더 크로스’ 내려놓은 뒤 실용음악학원을 열어 학생들에게 보컬 레슨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 강의가 좋다는 소문이 났는지 학생들이 꽤 모였고 학원은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 아이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직접 노래할 때와는 또 다른 보람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무대로 나가 노래를 하고 싶다는 꿈을 다시 한 번 품어보게 되었죠.
그 사이 특전사로 군대를 갔고 군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쳐 더욱 강인한 남자가 되어갔습니다. 제대 후 ‘더 크로스’를 재결성하고 새로운 앨범을 준비했습니다. ‘더 크로스’로 다시 한 번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꿈이 곧 이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 저를 또 한 번 연단시키실 계획을 세우신 것 같았습니다. 2012년 3월 저는 제 삶의 방향이 완전하게 바뀌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날 이후로 나의 삶은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김혁건의 삶이 사고 이전과 사고 이후로 확연하게 나누어지게 된 거죠.


내 인생의 AD -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해요. 2012년 3월 26일.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는 초봄 저녁, 오토바이를 타고 홍릉사거리를 직진하다 예측 출발로 좌회전을 하던 승용차에 부딪혀 하늘로 붕 솟아올랐다 바닥에 추락하였고 그대로 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그대로 응급실로 옮겨졌고, 의사들은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말을 했답니다. 아무튼 수술에 들어갔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3, 4, 5, 6번 경추가 골절되어 신경이 마비되고 평생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보이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고,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끔찍한 기억 때문에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사지는 까딱할 수도 없는데, 정신과 시각, 청각, 후각만 너무 또렷하게 살아 있는 상황이 정말 끔찍하고 치욕스러웠어요.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온 몸이 욕창으로 썩어 가도 느낄 수조차 없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혼자서는 죽을 수도 없는 몸이었죠.
1년 동안 병원에서 욕창 치료를 받고 이후에는 재활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몸에 좋다는 처방과 치료는 다 받았습니다. 줄기세포 시술, 침 치료 등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증상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백방으로 애쓰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보았기에 감사하게 되었고, 그런 부모님의 마음에 실망을 드리기 싫어 더욱 열심히 치료에 매진했습니다. 그런 치료의 효과 때문인지 왼쪽 얼굴에만 나던 땀이 오른쪽에도 흐르게 되었어요. 작은 변화이지만 우리 가족은 크게 기뻐했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 같은 경추 손상 환자들은 폐활량이 일반인의 1/3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물론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폐를 팽창, 수축시키는 훈련을 꾸준히 해줘야 하는데, 하모니카가 적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호흡 훈련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하모니카로 음악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사고 이후 어느 날, 옛 친구인 용우가 찾아왔어요. 용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중간에 용우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거든요. 제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돌아와 제 손과 발이 되어 주었고 저를 위해 울면서 기도해 주었어요. 그리고 주일마다 우리 집에 찾아와 휠체어에 나를 태우고 교회에 데리고 갔어요. 사고 전에도 가끔씩 교회에 나가기는 했지만 주님의 계획보다는 내가 세운 삶의 계획에 맞춰 살아가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런 제가 안타까워 보이셨던 걸까요? 주님은 앞만 보고 달리는 저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친구 용우의 손을 빌려 제 손을 잡으시고 주님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원망과 미움에 가득 찼던 마음이 평온해지고, 제 삶은 더욱 충만해졌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1년 반 동안 일대일 제자양육을 받으며 믿음의 확신이 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똑똑히 들렸습니다.


그리고 미래 - 거저 얻은 삶을 기쁘게 나누다

앞으로의 비전이요? 저는 가수니까 우선적으로 노래를 하는 겁니다. 사고 이후 목소리가 모기 소리만큼 작아져서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배를 눌렀더니 소리가 크게 나오더라고요. 거기에 착안해서 배를 누르면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죠. 아버지가 배를 눌러 주시고 제가 노래를 하면서요. 연습을 할수록 소리가 매끄럽게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손으로 누르는 건 한계가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배를 눌러주는 기계를 고안했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거쳐 ‘복부 압력기’를 만들었고 노래를 부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마다 누군가 옆에서 조정해 주지 않으면 노래 부르는 것이 불가능했고, 호흡을 딱딱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어느 날 온누리교회에 출석하시는 서울대학교 로봇융합연구센터의 방영봉 교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복식호흡을 돕는 로봇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어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물론, 사고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울림이 있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로봇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해 가면서 계속 도움을 주고 계세요. 제가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은인이세요. 그 로봇과 호흡을 맞춰 가면서 부른 노래가 2015년에 ‘더 크로스’ 앨범으로 나왔습니다. 재결성을 앞두고 사고로 무산되었던 재기가 오랜 시간이 흘러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고 감사가 넘칩니다. 지금 또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크로스’라는 그룹명을 처음 지을 때는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는 그룹으로 정체성을 삼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십자가’를 뜻하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 또한 예비하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걸고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할 겁니다.
또한 저 같은 경추 장애인이 자립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장애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 테지만, 경험해 보니 사회적으로 불편하고 불합리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활원에 있을 때 사회 복귀 훈련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있어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는 단순한 일들이 휠체어를 탄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어렵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인지 알게 되었죠. 그런데 그런 일이 어렵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렵다 해서 바깥출입도 않고 사회에 적응하는 일을 포기해 버린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두려워 말고 부끄러워 말고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가야 합니다.
부모님이 제 옆에 계시지 않는 상황을 미리 상상해 보면 두렵고 근심이 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부모님도 친구들도 제 곁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저 혼자 서야 합니다. 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증 장애인들이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도록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제도와 편의 시설을 개선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섬김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또 강연가로서 더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자존심도 강했고 부끄럽고 약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했는데, 사고를 통해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이전의 삶을 드러내는 일에 이제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나의 온전한 드러냄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낮은 곳에 있는 어려운 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복음을 전하고 그분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섬기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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