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가 됐습니다. 별천지모임 말입니다. 무슨 탈이 나서가 아닙니다. 모임은 오히려 전성기에 가깝습니다. 여덟 명에서 출발했던 식구가 열셋이 됐으니 곱빼기가 머지 않았습니다. 관계는 충분히 가깝고 다정해졌습니다. 어느 댁에서 무슨 고민을 하는지, 무슨 경사가 났는지 다 압니다. 갓 결혼한 새댁 웅연 씨마저 집을 열고 끼니를 대접해 주기로 했으니 모임 장소 걱정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예산이 모자라는 법도 없습니다. 한 달에 직장인 3만 5천원, 학생 1만원씩 받는 회비는 차곡차곡 쌓여 두 군데 선교헌금을 보내고 운영비를 써도 연말이면 어김없이 통장에 백만 원 남짓 되는 거금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제 떠날 때가 됐습니다. 안으로는 한없이 익숙해진 게 문제입니다. 리더가 모임을 준비하는 시간이 확 줄었습니다. 처음엔 일주일 내내 모임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1순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자리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씩은 식구들을 따로 만나 속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어울리며 성장하라고 붙여주신 이들인데 한 점 허투루 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그러기엔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5년 만에 긴장감이 사라졌습니다. 주중에는 새카맣게 잊고 지내다 주말을 코앞에 둔 목요일쯤에야 발동이 걸립니다. 기도시간이 졸아붙은 건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충 준비하고 가도 모임은 착착 잘 돌아갑니다. 그게 더 무섭습니다. 예수님을 들먹일 것도 없이, 금쪽같은 주말을 비워서 멀리는 안양에서까지 달려온 식구들 볼 낯이 없습니다. 무언가 변화와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밖으로는 리더 노릇을 하는 ‘나벽수’라는 인간의 신분이 애매해졌습니다. 실은, 지난해부터 조직교회에 다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싶어져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다행히 맞춤한 식구가 있어서 지난해부터 ‘대행’ 딱지를 달고 한 해 동안 대외적인 얼굴 노릇을 썩 잘 해주었습니다만, 그렇게 계속 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터였습니다. 특정한 교회에 속해 있지 않은 리더가 그 공동체에 기반을 둔 모임을 이끈다는 게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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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데도 절차가 필요합니다. 마음을 다치지 말아야 하고, 뒷일도 도모해야 합니다. 한 가정씩, 또는 한 명씩 따로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합니다. 바통을 받아줄 부부를 시작으로 모든 가족들을 다 만났습니다. 뜻을 전하고, 생각을 듣고, 반응을 살핍니다. 한 달 만에 일대일 만남이 끝났습니다. 처음엔 하나같이 펄쩍 뜁니다. 차근차근 설명하면 논리적으로 반박합니다. 하지만 두어 시간 씨름하고 나면 체념 반, 수긍 반으로 분위기가 바뀝니다. 왜 붙잡으려 하는지 압니다. 헤어진다는 건 이편도, 저편도 불편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본래 빈자리는 더 커 보이는 법인데, 늘 모임을 인도하던 리더가 빠지면 그 자리가 얼마나 휑해 보일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게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모임의 주인은 늘 하나님이시므로 그 사실만 변하지 않는다면 누가 있고 없어서 흔들릴 일도 없을 겁니다. 아무개가 빠져서 모임이 흔들거리면 신앙공동체보다 친목회에 가까웠던 게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다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하기로 합니다.
다들, 다음 행보를 궁금해 합니다. 당분간 조직교회로는 아니 돌아갈 생각입니다. A. J. 제이콥스라는 이가 쓴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이란 책의 아이디어를 빌릴 작정입니다. 무대를 1세기로 바꿔놓고 그 시절 크리스천들을 깜냥이 되는 데까지만 흉내 내보려고요.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일단 그냥 삽니다. 일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성경이 안내하는 생활방식은 어차피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게 마련이므로 그 까닭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나타날 공산이 큽니다. 그럼 그 이유를 말해 주고, 더 관심이 있으면 예수님의 복음도 소개해 주려고요.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으면 하나둘씩 모아 함께 예배하며 사는 모임을 꾸릴 겁니다. 여태 해 왔던 별천지모임의 복제판이 되는 셈이죠.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의 눈에는 위험천만해 보이겠지만, 어찌하겠습니까, 타고난 기질이 ‘저질러놓고 차츰 수습하는’ 쪽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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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냉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밭에, 밭두렁에, 집 옆 빈터에, 집 앞 냇가에 가득입니다. 너무 흔하면 천하게 보이는 법이어서 눈에 띄는 대로 뽑아버립니다. 하지만 번식하는 속도를 당해내기 어렵습니다. 하긴, 웬만한 적응력과 번식력으로는 유라시아가 고향인 애들이 대륙의 동쪽 끝, 우리 땅까지 퍼져올 수 없었을 겁니다. 한 뼘 전진할 때마다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에 다시 씨앗을 퍼트리길 되풀이했겠죠. 사시장철 습한 인디아와 모래바람 날리는 몽골 땅을 그렇게 지나왔습니다. 적절히 습한 땅에 떨어진 놈들은 2미터 넘게 자라지만 물기가 지나치게 많거나 너무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린 녀석들은 30센티미터를 넘지 못합니다. 하지만 생명력 하나 만큼은 한결같습니다. 
새로 시작한 실험의 과정과 결과가 다닥냉이 같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의 생명력은 길고 긴 역사를 통해 이미 검증이 끝났으니 그 복음을 품은 숙주만 건강하면 사방팔방 뿌리를 내리는 게 자연스러운 결과일 겁니다. 과연 그 숙주는 오래도록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여태 살아온 이력에 비춰보면 부정적인데, 성경의 약속에 비춰 보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도 같습니다.
불안감 80퍼센트, 기대감 20퍼센트. 정든 땅을 뒤로 하고 새 땅으로 날아가는
씨앗의 속내가 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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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벽수는 전문 번역가이자 작가, 기자다.
「천로역정」, 「래디컬」, 「닉 부이치치의 허그」 ,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번역했으며,
「벽수 씨의 교회 원정기」, 「까칠한 벽수 씨, 목사에게 묻다」(공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