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소로고

2018  JAN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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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거룩한 영으로 주를 찬미하는

그가 섬기는 세상
맑고 거룩한 영으로 주를 찬미하는성악가  김영미

조그마한 체구에서 어찌 그렇게 폭발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을까. 폭발적일 뿐만 아니라 맑고 거룩한 울림까지 전해준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맑은 영을 간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악가 김영미 교수.
평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왔다.
매 순간 “나를 지으신 이도, 나를 부르신 이도,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임을 선포하는 삶이었다. 삶의 대부분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잘할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다며 한길 노래 인생을 걸었다. 25년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 가르치는 것도 행복한 일임을 깨닫는 삶이었다.
남은 생은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른 새벽이라도, 거친 광야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주저 없이 달려갈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고 또 살아갈 김영미 교수의 인생 스토리를 이제 시작한다.

 

취재 서진아 사진 정화영

노래하는 사람, 김영미

언제나 열정적으로 노래하시고 공연하시고, 먼 곳으로의 연주 여행에도 지치지 않으시는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되나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저는 언제나 이 말씀을 기억해요. 내 힘의 원천이 여호와이기 때문이죠. 며칠 전에 <메시아> 공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젊은 사람보다 더 청아한 목소리가 나오냐고, 나이 가늠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감사하다며 웃었지만, 그 물음에 대한 저의 답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악기인 나의 목소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믿음이 있으면 행복하고 평화로워요. 마음에 평화로움이 없으면 목소리의 밸런스가 깨져버려요. 평화롭고 행복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두려울 게 없어요. 제 힘은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거예요.

음악적으로는 거의 다 이루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더 이루고 싶다, 더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실 때가 있나요?
제가 믿음이 연약할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극장이
라 스칼라하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에요. 두 곳에 다 발탁되어서 공연을 하려고 했는데 자꾸 일이 생겨서 불발이 되더라고요. 베네치아 오페라단이 불이 나거나, 나를 소개해 준 사람이 에이즈로 죽거나 하는 일들이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기가 막힌 건, 매번 공연 연습 직전에 제가 스폰서가 없다는 이유로 역을 맡지 못하게 된 거예요.
다음 시즌에 보자고 하면서요. 그때 내 마음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하나님 제 실력 아시잖아요? 저를 쫓아올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근데 저한테 왜 이러세요?” 하면서요. 음악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슬프고 억울했어요.
그게 20, 30년 전 일이에요. 이제 나이 들고 보니 제 성격상 세상 속에서 살았다면 저는 세상 물이 들어서 견디지 못하고 제 명대로 못 살았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너는 그걸로 족하다. 이제 네가 돌아올 곳은 내 곁이다. 나 하나만 보고 노래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그 끔찍한 욕심과 절망의 구덩이를 헤매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세상 것과 비교할 수 없어요. 어떤 대단한 오페라 무대하고도 견줄 수 없어요. 정말 희한한 일은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무대, 나를 필요로 하는 무대에는 반드시 세워주신다는 거예요.
제가 찬양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고마워서예요. 나는 드릴 게 목소리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노래합니다. 어떤 무대라도, 관객이 한두 명밖에 없는 곳이라도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 김영미

신앙적으로 방황을 겪은 경험은 없으신가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진짜 믿음은 갖지 못한 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녔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는데 어린 나이에 낯선 곳에서 혼자 공부하다 보니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고등학교 갓 졸업한 아이가 뭘 알겠어요? 제가 고집을 부려서 부모님을 이기고 간 유학길이라 쉽게 포기도 못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나도 안 했어요. 그렇게 살다가 잠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어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다보니까 건강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믿음이 없으니까 혼자 지탱하기 힘들어서 신경쇠약증에 걸렸어요. 신경이 약해지니까 잠이 안 오고 밥맛도 없어지대요. 길을 걸어가다가 땅이 뒤집히는 것 같아서 주저앉기도 하고 그랬어요.
인생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 좋을지 몰라, 불안증에 공황장애까지 생겼어요. 공황장애는 거의 고문이에요. 멀쩡하다가도 예측 못할 상황이 닥치면 숨이 안 쉬어져요.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이탈리아에 오셨다가 저를 보고 깜짝 놀라셨어요. 아침에 어머니의 기도소리에 깨고 밤에는 기도소리 들으면서 잠이 들 정도로 기도를 열심히 하는 권사님이셨는데, 어머니가 저더러 ‘너 도대체 기도생활은 하냐’ 그러더라고요. 성경에 먼지가 쌓인 걸 보더니 어머니가 우셨어요. 노래만 잘하면 뭐하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노래를 하는 거지 뭐하려고 그렇게 사냐고 하시면서요. 어머니가 우시면서 생명을 건 사람처럼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데, 저는 왜 저렇게 기도하시지? 하는 생각만 들 뿐 마음이 바로 돌이켜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돌이키게 되셨나요?
나가는 콩쿠르마다 거의 1등하고 한국에도 제 이름이 알려지면서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김영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는데, 그 상황에 저는 오히려 허탈감이 느껴졌어요. 세상에서 난리를 치는데 내 속에는 기쁨이 없어요. 기쁨은 없고 슬프고 우울하고 공포심만 자꾸 몰려왔어요. 로마에서 집에 가려고 길을 걸어가는데 성당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어요.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들어갔어요. 무릎을 꿇고 앞을 딱 보는데 십자가가 보였어요. 십자가 바라보며 기도하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기도하다 말고 깜짝 놀라 멈췄는데, 또다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가 땅 위에서 장수하리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너무 놀라서 집으로 달려왔어요. 어머니한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우시면서 “하나님이 널 붙잡고 계신 거야.” 하시더라고요.
그런 가운데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앞두고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시청자 투표에서 밀려 이탈리아 사람에게 우승을 넘겨주었어요. 그 전까지는 저의 우승이 거의 확실했었는데, 마지막 투표에서 팔이 안으로 굽은 거죠. 그때 교수님들이 저를 안으면서 “너는 어디를 가든 세계 1인자야”라고 하셨지만 위로가 안 됐어요.
이탈리아에서 느낀 민족 차별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미국행을 선택했어요. 언니가 사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살게 되었는데, 한번은 그곳에 있는 한인장로교회의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했어요. 거기서 방석 깔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데, 기도가 안 나오더라고요.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그냥 “하나님, 제가 아파요. 고쳐주세요” 하면서 기도했어요. 그때 목사님이 나에게 오셔서 머리를 만지며 안수를 하시는데 입에서 이상한 말이 막 튀어나오는 거예요. 입을 막아도 주체할 수 없이 나오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지며 그동안 마음속에 얹혀 있던 것들이 전부 풀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동안 맺혔던 원한과 괴로움과 아픔 같은 것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게 느껴졌어요. 새벽 5시까지 기도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고 멀쩡했어요.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분명 어제 봤던 꽃이었는데 더 예뻐 보이고, 어제 봤던 길, 어제 봤던 하늘이 다 새롭게 보이는 거예요. 언니가 저더러 “너 이제 고침 받은 거야” 하는 거예요. 먼 곳에서 혼자 낑낑대던 나를 품어주고 받아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때 ‘난 앞으로 찬양을 할 거야’라는 마음을 먹었어요.

 

 

 

섬기는 사람, 김영미

일본 문화 전도 집회인 ‘러브소나타’를 10년 동안 섬겨 오셨어요. 어떤 계기로 러브소나타에 참여하시게 된 건가요?
처음 ‘러브소나타’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했어요. 10년 전에 하용조 목사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저기 말이야, 혹시 일본에 가서 찬양해 줄 수 있어요?” 하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일본 상황이 아주 안 좋은데 같이 가서 하자고 하시기에, 두말 않고 “네, 목사님 감사합니다. 찬양하는 것에 마음의 소명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겠습니다.” 했어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처음에 러브소나타에 참여할 때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내에서 내게 주어진 사역을 다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더 분명하게 가지게 되었어요. 제 신앙도 더욱 뜨거워졌고요. 러브소나타 무대에 서기 전에 항상 “찬양을 통해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세요. 아픈 영혼들을 치유하는 데 나의 목소리를 사용해 주세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여는
찬양 사역자가 되게 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해요. 그런 마음으로 그곳에서 노래하면 일본 사람들이 펑펑 울어요. 그러면 저도 같이 울어요. 그런 것을 체험하면서 내가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지만 주님의 도구로서 어디든 가야 한다는 사명을 철저하게 깨닫게 됩니다.

지난 10년간의 사역을 통해 일본 교회의 변화를 느끼시나요?
그동안 뿔뿔이 흩어졌던 일본 교회들이 지금 하나둘씩 뭉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현지에서 전해 들었어요. 러브소나타를 통해 모여서 기도하고, 이제는 일본 자체적으로 러브소나타를 진행해요. 처음에 “예수가 누구예요?”라고 했던 사람들이 러브소나타에 참가하면서 그 자리에서 기뻐 춤추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예수가 누구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기뻐하고 은혜 충만할까’ 생각하게 되었대요. 일본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거죠. 그들이 쉽게 마음을 연 데는 음악의 힘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사울 왕이 악신이 와서 괴롭히는데 다윗에게 악기를 켜라고 하잖아요. 그 찬양이 마음을 열고 악령을 쫓아요. 그러니 얼마나 주님하고 가까이 있어야 해요. 그런 능력을 가지려면 하나님하고 가까이 있어야 해요. 그런 기적을 목도하면서 찬양 사역자가 거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가르치는 사람, 김영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된 지 25년이 되셨어요. 직접 연주를 하시는 것과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연주자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런 계획을 어떻게 제가 세우겠어요? 1992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성악과 교수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자신이 없어서 “저는 연주자인데요.” 했더니 “본인의 연주도 중요하지만, 후배 양성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라는 말이 돌아왔어요.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요란다 마뇨니라는 좋은 선생님 덕분에 배움의 설렘과 기쁨을 알게 되었죠.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기쁘고 보람되었어요. 25년 동안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깨달은 것은, 잘 가르치는 것은 제 능력이 아니라는 거예요. 기도를 통해 영성이 깊어지면 아이들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요. 아이들이 노래할 때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돼요. 하나님이 저에게 촉감을 주시고 가르치는 능력을 주시고 동시에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거죠. 노래를 배우는 아이가 영이 맑으면 제가 지도하는 내용을 잘 받아들여요. 가끔씩 핑계를 대면서 클래스를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염려 안 해요. 서로 안 맞을 수도 있죠. 그런데 저한테 예민한 귀를 주시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주셔서 마스터 클래스를 충분히 지도하고 있어요.
가르치는 기쁨에 대해 점점 더 크게 깨달아 가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르치는 것 또한 노래하는 것 못지않게 행복한 일이랍니다.

 

학생들과 준비하고 계신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은 성탄절 찬양 예배 공연 준비로 학생들과 매일 연습을 하고 있어요. 12월 17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공연이 있어서 14일 출국하고 LA 들렀다 22일에 귀국해서 23일 총연습하고 24일에 온누리교회 양재 성전에서 공연을 합니다.
제자들이 다 착해요. 연주 봉사에 함께하자고 하면 다들 순종적으로 따라요. 함께 기도하면서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 위해 기꺼이 재능 기부를 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저는 늘 복 받을 거라고 말해 준답니다. 제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세상을 향해 노래하면서 얻은 은혜를 이제는 제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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