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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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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찬양하라

특집
주를 찬양하라빛과소금

‘찬양과 경배’ 운동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기
글 박정관

한국교회의 부흥기
한국교회가 빠른 속도로 성장한 때가 있었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교회 내의 장년층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10대와 20대가 교회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종종 이 시기를 한국교회의 성장기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장년들의 수적 증가에만 눈길을 두기 때문이다.
이 기간 전체를 다시 연도별로 나누자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우선 민족 복음화 운동이 시작된 1965년부터 약 15년 동안에는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1973)’, ‘엑스플로74(1974)’, ‘민족복음화성회(1977)’와 같은 전도를 위한 대형 집회가 자주 열린 기간이었다. 이와 함께 이 기간 동안 기도원과 성령의 은사로 대표되는 성령 운동, 체계적인 성경 공부를 강조하는 성경 공부 운동, 그리고 직장에서의 선교를 위한 직장 선교 운동이 일어났다.
다음, ‘세계복음화성회’가 열린 1980년부터 6∼7년간은 교회의 시야가 확장되던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온 세상의 복음화라는 차원에서 세계 선교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삶의 모든 영역의 복음화라는 의미에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일어났다. 그 다음 10년, 즉 1987년부터 1996년까지는 그전의 움직임이 강화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에는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이 촉매 역할을 했는데, 바로 이 해에 시작된 ‘선교한국’은 해외 선교사 동원의 중심적인 통로가 되었고, 그 한 해 전에 시작된 찬양과 경배 운동은 한국교회의 예배 갱신과 함께 본격적인 기독교 문화 발전의 출발선을 그었다. 그리고 마지막 10년, 즉 ‘부흥콘서트’가 시작된 1997년부터 ‘어게인1907’이 끝나는 2007까지는 젊은이들에 의해 새로운 유형의 부흥 운동이 일어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한 나라에서 45년 동안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한 여러 종류의 운동이 일어난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운동 수명이 보통 7∼8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말이다. 그런데 이 45년간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성격의 여러 운동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것을 볼 수 있고, 각 운동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의 복음화 운동은 성령 운동 및 성경 공부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1980년대에 일어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성경 공부 운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상의 삶을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중 일부는 그 다음에 일어나는 찬양과 경배 운동 및 기독교 문화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며, 이 두 운동은 부흥기의 마지막 10년에 일어나는 청년들의 부흥 운동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찬양과 경배 운동이다. 왜냐면 10대와 20대의 젊은이가 주도하여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운동이기 때문이고, 기독교 문화의 동시대화에 대해 눈을 뜨게 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찬양과 경배 운동
찬양과 경배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로 10대와 20대이며, 그 운동을 이끈 사람들은 보통 찬양 사역자라고 불리는 예배 사역자와 음악 사역자였다. 예배 사역자란 교회나 선교회의 예배 모임(당시의 명칭으로는 ‘찬양과경배모임’)을 인도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음악 사역자는 보통 CCM 사역자라고 불리는데 콘서트와 음반 제작을 통해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단체는 ‘두란노 경배와찬양’(‘올네이션스 경배와찬양’의 전신)과 ‘찬양사역자연합모임’(‘찬양사역자연합회’의 전신)이다. 두란노 경배와찬양은 예수전도단 출신의 하스데반 선교사가 1987년에 시작한 ‘목요경배와찬양모임’을 모체로 하여 세워졌다. 그리고 ‘찬양사역자연합모임’은 1989년에 교회 및 선교 단체의 예배팀과 음악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합체로 창립되었다. 두란노 경배와찬양은 예배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하나의 단체였던 반면, 찬양사역자연합모임(이하 찬사연)은 예배 사역자들과 음악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연극, 무용, 디자인, 음반 제작, 공연 기획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연합 단체였다. 매월 진행한 정기 모임과 매년 개최한 연합 수련회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사역자들의 교제와 협력을 위한 구심점이 되었다. 이처럼 성격은 달랐지만, 이 두 단체 모두 한국교회의 예배가 새로운 형태로 전환하는 데에, 그리고 본격적인 기독교 문화가 일어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단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찬양과 경배 운동은 마치 마른 풀에 덮인 들판에 불길이 번지듯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고, 그 결과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의 도시에도 찬양사역자연합모임이 세워졌다. 전국에 걸쳐 이런 반응이 일어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운동의 중심에는 문화적 동시대성이라는, 전국의 젊은이들이 함께 기다리던 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여러 운동을 통해 급성장하면서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거듭남의 확신, 기도의 열심,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가 가득 차 있었지만, 한 가지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자신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예배 모임은 문화적 목마름을 여실히 느끼게 한 자리였다.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마음과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화를 자신들에게 맞게 표현할 방법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현대 문화 매체를 구비한 찬양과 경배 운동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바로 이거야!”라는 환호를 지르게 만들어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 운동의 초기에는 ‘찬양과 경배’ 또는 ‘경배와 찬양’이라고 불리던 새로운 예배 형태에 대한 관심이 컸고, 여기에는 두란노 경배와찬양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러나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많은 교회가 자체적으로 그런 형태의 모임을 가지거나 청년부의 예배 모임이 그런 형식을 띠게 되자, 이번에는 찬사연의 사역자들에 의해 개최된 콘서트가 많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찬양과 경배 운동이 끝나고 청년 부흥 운동기가 시작되는 1997년부터는 콘서트의 형태를 띤 젊은이들의 부흥회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찬양과 경배 운동의 영향
찬양과 경배 운동이 한국교회 안에 일으킨 변화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예배 형식의 변화다. 이와 관련된 찬사연의 활동으로 1990년 4월의 ‘부활절청년연합예배’를 들 수 있다. 이 행사는 해마다 한국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개최된 부활절연합예배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으로서 찬사연이 ‘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와 공동으로 기획하고 주관하게 되었는데, 이때 문제가 된 것이 예배 모임의 형식이었다. 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는 전통적인 예배 형식을 원했고, 찬사연은 찬양과 경배 형식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두 단체 대표들이 오랜 시간 동안 회의를 했고 결국 합의점을 찾았는데, 그것은 ‘1부 찬양과 경배, 2부 예배’라는 이상한 형식이었다. 그 결과에 대해 찬사연 회원 대부분은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이 이상한 결합은 그 이후에 일어나는 한국교회의 예배 형식의 변화에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이 형식이 장년층과 청년층을 함께 수용해야 하는 연합 모임의 공식적인 형태로 한국교회에 받아들여진 뒤에는, 차츰 지역 교회의 주일 저녁 예배, 금요 기도회, 청년부 모임 등에 도입되었고, 그 다음에는 이런 모임에서 찬양과 경배 다음에 바로 설교가 오는 형식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2000년대에 한국교회에 정착한 통합 예배(blended worship), 즉 전통적인 형식과 새롭게 일어난 형식이 결합된 예배 형식을 향해 가는 과정이었다.

둘째,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한 문화 변혁을 강조한 이 운동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선, 이 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은 예배 사역과 음악 사역을 통해 노래와 연주, 홍보물 디자인과 인쇄, 연극과 무용, 음향과 조명과 영상, 무대 제작, 음반 기획, 제작 및 유통 등이 새로운 사역의 영역으로 부각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것에 헌신했다. 다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운동이 젊은이들을 교회로 오게 한 데에는 문화적 동시대성이라는 요인이 작용했다. 말하자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문화적 호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한국교회가 이 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자체 프로그램과 예배당을 포함한 시설에 그것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설의 변화로는 예배실을 집회와 공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꾼 것과 교회 건물 내에 콘서트홀, 체육관, 카페 등을 만든 것을 들 수 있다.

셋째, 선교에 끼친 영향이 있다. 여기에는 두 양상이 있다. 우선, 문화 변혁을 강조한 이 운동을 통해 ‘문화 선교’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미전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부른 것처럼 기독교 문화의 불모지에 이 문화를 세우는 것을 문화 선교라고 부른 것이다. 지금은 이것 대신 ‘문화 사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음, 이 운동이 문화 변혁뿐만이 아니라 해외 선교도 강조했기 때문에 이 운동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 선교에 헌신했다. 뿐만 아니라 해외 선교사 파송 단체의 집회나 해외 선교사 동원을 위한 집회에도 찬양과 경배 운동을 통해 제시된 예배 형식이 채택되고, 예배 사역자나 음악 사역자들이 그 준비와 진행에 참여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찬양과 경배 운동은 청년 부흥 운동으로 이어졌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청년 부흥 운동은 전반기의 부흥콘서트와 후반기의 어게인1907로 나뉘는데, 이 두 운동의 지도자들은 30대와 40대로서 찬양과 경배 운동에 사역자로 참여했거나 그 운동의 영향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

 

예배에서 일상으로
2007년 이후부터 한국교회에는 이렇다 할 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과거의 찬양과 경배 운동의 역동성과 화려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러나 지금의 이런 상태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면 모든 운동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며, 운동이 끝난 다음에는 그 운동의 열매가 조용히 맺혀가는 기간이 따르기 때문이다.

찬양과 경배 운동은 예배의 개혁과 기독교 문화 발전이라는 두 자녀를 잉태했다. 그런데 이 둘이 성장하면서 나아가는 곳이 바로 일상이다. 위로부터 받은 것의 열매가 구체적으로 맺혀야 할 자리가 바로 이 땅이며,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 극적이지도 역동적이지도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때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내린 결단을 기억하면서 그 결단의 연장으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땅에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박정관은 문화연구원 소금향 원장이다. 서울대학교와 대학원, 장신대에서 공부했다.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과 하버드대학교를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학 및 해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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