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불안하다

issue 2017년 11월호 현대 사회는 불안하다 빛과소금

불안이 사회를 잠식할 때
글 양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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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삶의 조건인가? 그래서 결국 그 감정과 화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익혀야 할 사안인가? 아니면 그것은 집요하게 거부되어야 하며 극복하고자 도전해야 할 과제인가? 심리학자나 철학자들은 ‘불안’이란 감정 자체를 해명한다. 그리고 얼마간은 그 불안으로 인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찾아내고, 이를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불안은 외부로부터 압박해 오는 것이며,
그 기원은 자아의 내부에 있지 않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이 어떤 사회적 위협에서 비롯되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없다면 우리가 권할 처방 역시 무책임한 ‘정신 승리’에 머물게 될 공산이 크다.

우리는 먼저 한국 사회의 지배적 정서가 된 ‘불안’이 만연한 풍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만나야 할 것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팽배한 ‘패배주의’적 감수성이다. 몇 년째 회자된 ‘N포세대’란 말이 전하는 청년들의 삶의 풍경은 서글프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가 곧 취업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한 5포세대로, 인간관계와 희망을 포기한 7포세대를 넘어, 건강과 외모 관리까지 접어버린 9포세대로 나아갔다.
이젠 그 내용을 꼽는 것조차 성가시다 해서 N포세대가 되었고, 이런 세상을 일컬어 ‘헬조선’이라고 불렀다. 해도 해도 안 되는 세상을 향해 자포자기하듯 ‘탈조선’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거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따위의 말은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했더라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분별없는 짓이다. 이것은 ‘청춘의 불안’이 아니라 사회적 기원을 갖는 ‘구조적 불안’이다.

자신들이 원치 않는 삶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이를 도저히 피하기 어렵겠다는 낭패감 속에서 나오는 필연적 반응이다.

청년만 불안한 것이 아니다. 중장년들의 삶도 위협적이다. 사회 복지가 미흡한 현실에서는 직장에서 나오거나, 중한 병에 걸리거나, 결혼이 깨지거나, 창업이나 투자를 한번 잘못하거나 하면 회복 불능의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

OECD 국가 중 최대의 자살률이 보여주는 사회적 함의는 그런 것이다. 생활이 아니라 생존이 위협당할 가능성이 멀리 있지 않다. 한국사회가 이런 시대로 넘어오게 된 시작은 1997년 IMF 사태였을 것이다. 일종의 ‘국가 부도’ 사태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구조 조정’이란 용어가 등장했고, 그 실천적 귀결이 중장년의 명예퇴직과 신규 채용 중단으로 인한 청년 실업이었고, 싼값에 필요한 노동력을 부리려고 고안해 낸 것이 ‘비정규직’이었다. 이 모든 것이 IMF 체제가 한 번에 도입한 패키지였다.

김홍중 교수는 「마음의 사회학」(2009)에서 이런 사회적 상황이 특정한 마음의 상태를 형성한다며 우리는 단순한 사회구조적 분석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다룰 수 있는 ‘마음의 사회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속물주의(snobbism)’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고 보았다.

그 이전 시대와는 달리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고, 여기에 성공한 이들은 그 자체를 미덕으로 여기고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성공한 인생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전 시대와는 달라진 시대정신을 실감한다.

특히 이 시기에 청소년·청년기를 보낸 세대들의 심성에 아로새겨진 개인적·사회적 태도는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2007)에서 당시의 젊은이들을 향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선동했다. 과거의 중장년뿐 아니라 386세대들도 지금 청년들을 세대 착취하며 기회를 가로채고 있으니, 청년 세대가 연대하여 맞서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석훈은 훗날 회고하기를, 이 책을 읽고 세대 착취의 실상에 충격을 받은 젊은 세대는 저항을 하기보다, 자신이 88만원 세대로 전락할까 두려워하며 도서관으로 직행했고, 저마다 자기 계발에 몰두했다고 했다.
이들은 또래 그룹과의 연대 경험이 너무나 적고, 청소년기 내내 또래를 경쟁 상대로 인식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 풍경이 만들어낸 파편화된 마음의 귀결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그 시기를 엇비슷한 나이로 지나온 많은 청소년·청년들에게 또 한 번의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국가는 다시 한 번 무기력하게 붕괴되었고,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지 않고 배 안에서 지시를 기다린 이들은 다 죽음을 당했다. 저마다 독자적인 생존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가르쳐준 사건이었다. 이후 수년에 걸친 유가족과 생존자들에 대한 모욕적 배제의 경험은 이 사건을 하나의 시대적 대참사로 만들었다.
김홍중은 「사회학적 파상력」(2016)에서 전작보다 더 나아가 ‘생존주의(survival)’가 시대정신인 현재를 훑어주었다. 청년들이 생존주의를 맞닥뜨리고 내보이는 태도는 몇 가지 양상으로 갈라진다. 독존(獨存), 공존(共存), 탈존(脫存)이 그것이다. 독존은 개인화된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이들은 생존 투쟁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승리했거나, 그런 투쟁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던 이들로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의 형식을 취한다. 이들은 개인을 넘어서는 사회적 요구를 거절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공존은 크고 작은 협력과 연대를 통해 시대의 전횡에 저항하고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노력이다. 이들은 한편 분노와 한편 공감을 강력한 자원으로 삼아 변화를 꿈꾼다. 탈존은 조용히 사그라드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언론에서 ‘달관 세대’라고 소개한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소비를 줄이고, 욕망을 줄이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극소화하는 방식을 택한 경우다. ‘생존주의’ 자체가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를 맞닥뜨리고 사는 삶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불안감을 대면하게 한다.
경쟁의 문법을 온몸으로 체화하며 자기 계발을 한없이 독려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낙오나 패배는 곧 죽음이다. 생존주의 바깥으로 탈주하려는 이들의 전략이 언제나 성공적이지는 않다.

자기의 자원과 조건이 확보되지 않으면 독존은 불가능하다. 공존은 결국 개인들의 연대로 조직과 구조를 맞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때로는 건물주와, 때로는 공권력과, 때로는 집단 이기주의와 싸워야 한다.

생존주의 시대의 우세종들과 벌이는 전투가 결코 쉬울 리가 없다. 탈존은 쉬운가? 소비와 욕망과 생태 훼손에서 탈주하는 삶은 사회적 삶에 대한 실존적 거부에서 시작하고 사회로부터 광범위한 이탈로 귀결된다.

이것은 사회적 불안의 극복인가, 굴복인가? 전반적으로 우리가 알던 지향점과 공감대를 갖고 있는 사회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존재 방식은 유지 가능한 것일까?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불안은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원인을 지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몇 가지 새겨볼 지점이 있다. 많은 경우 교회는 불안을 심리적 문제로 치부해 왔다. 심리적 문제로 간주하는 한 해법은 단순하다. 불안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문제 자체를 부정하고 지워버리는 것이다. 남겨진 당혹스러움은 ‘불안’이란 용어와 개념은 해체했으나, 여전히 남아 있는 그 감정의 실체를 지목할 범주를 잃어버린 탓이다. 우리는 그것을 신앙이 얕기 때문이라거나, 기도가 부족한 탓이거나, 혹은 죄가 많아서라고 자책하는 폐쇄 회로를 돌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불안과 자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교회는 오히려 생존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기 쉽다. ‘경쟁의 승자’가 되라는 내용이 설교나 간증의 주류를 이룬다. ‘불안은 성공으로 극복하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는 생존주의의 패자들에 2차 가해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말로는 사회적 성공을 세속적 욕망이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일관적이지 않다.

사회적 성공은 하나님의 은혜라며 결과적으로 다시 강조되고, 기도의 응답이자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가르쳐진다. 이런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성공에 대해 말로는 얕보는 태도를 보이지만 사실은 성공주의를 조장하는 가르침을 내면세계 깊이 새겨 넣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목회의 영역에서 심리적 불안감만 아니라, 사회적 불안감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와 상담과 실천적 도움은 제공되고 있는가? 생존주의의 탈락자, 패배자, 부적응자(이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는 목회적 돌봄의 우선적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는가? 더 나아가서 우리는 탈 경쟁주의, 탈 생존주의 세상을 그려볼 상상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압도적인 시대정신의 집요한 훼방을 떨쳐내고 전혀 다른 세상을 가까스로 떠올려보기는 하는 것인가?  


양희송은 월간 「복음과상황」 편집장 및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한동대학교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현재 청어람ARMC 대표로 있으면서 인문, 정치, 사회, 예술 등의 분야에서 대중 강좌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다시 프로테스탄트」,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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