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소로고

2017  OCTOBER

  • HOME
  • LIBRARY
  • SECTION
  • B cut STORY
  • ABOUT
종교개혁 500주년, 교회와 일상을 개혁하다

특집
종교개혁 500주년, 교회와 일상을 개혁하다빛과소금

종교개혁자의 삶 자유로운 영혼, 스스로 매이기를 기뻐하다
글 이정숙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은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내걸면서 면죄부(혹은 면벌부) 판매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목회 실천의 오류에 도전함을 기념한다. 95개조 반박문은 물론 그 이후의 글에서도 루터는 자신의 교황에게 매우 공손했다. 다만 멸망을 재촉하며 표류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주문했을 뿐이다. 교회의 개혁자가 되고 싶었던 루터가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를 계기로 가톨릭교회와는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으니, 1517년을 개신교 원년이라 부르기에는 애매함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사상으로 보면 이 해가 개신교 500주년도 되겠으나 종교개혁 500주년이라 하고 가톨릭교회의 배경에서 개신교 교회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동북아 한자권 나라에서 함께 사용하는 ‘종교개혁(宗敎改革)’은 ‘The Reformation’을 번역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원래의 의미를 제한하는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당시 교회는 전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와 긴밀하다 못해 하나라고 할 수 있었기에 루터의 개혁과 곧이어 진행된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와 요한 칼뱅(1509~1564)의 스위스 교회개혁은 그 파급효과가 독일과 스위스를 넘어 전 유럽으로, 교회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이라 번역하고 교회의 개혁과 함께 삶의 모든 면이 개혁되어짐을 생각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어색함이 있다. 게다가 이미 고착된 특정 용어를 바꾸기는 결코 쉽지 않기에 종교개혁이라고 소통하고, 그것이 가진 총체적인 효과와 영향력으로 유럽 사회와 세계 역사는 종교개혁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게 되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개혁은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교회의 개혁은 성도에 의해 일어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내면서 우리가 괜스레 흥분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교회에 개혁이 일어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누군가 루터처럼 개혁의 물꼬를 터주기를, 누군가 그 개혁을 이어가 교회가 새롭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점에서 올해 초부터 시작된 ‘나부터 개혁’이라는 구호는 사뭇 의미 있고 현실적인 구호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나부터 개혁할 수 있을까? 종교개혁자들이 그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들이 우리에게 준 지혜가 많지만 올해 우리가 특히 곱씹어 볼 지혜는 종교개혁자들이 체득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이해이다. 그들은 ‘복음 안에서의 자유’와 ‘복음을 위한 스스로 매임’의 역설로서 자신을 개혁하고 교회를 개혁한 사람들이다. 마틴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의 삶에서 한결같이 이 역설이 보인다. 올해는 루터의 해이기에 마틴 루터에게 초점을 맞춰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스스로 매임의 역설적 진리와 그 영광된 긴장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마르틴 루터(1483~1546)와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고 그것을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내걸었을 때 그는 십일 후면 34세가 될 청년이었다. 그는 벼락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안전한 자인지에 대해 심한 두려움에 빠졌고, 그 두려움에 이끌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했다. 16세기 수도원의 생활 환경은 상당히 열악했고 수도 생활의 규칙은 여전히 엄격했다. 그러나 루터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도 생활에 임하여, “만일 누가 수도 생활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내가 제일 먼저 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 정도였다. 요즈음 우리가 영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16세기 말로 하면 경건이다. 그는 경건을 추구하는 삶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또한 성경과 신학 공부에 매진해 비텐베르크대학교의 신학 교수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쳤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으로 보인다. 경건의 훈련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에 이를 수 없음을 확인했다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에 다다를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다. 말씀은 그가 매여 있었던 심판의 두려움에서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루터가 가졌던 심판의 두려움은 루터만의 두려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세교회는 교인들에게 그러한 두려움을 가지도록 가르쳤고, 교회 정문과 내부에서 최후 심판을 묘사하는 그림이나 부조를 배치하여 교육용 두려움을 주도했다. 루터는 중세인 중에서 유난스럽다 할 정도로 그 두려움이 컸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사모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 두려움의 장막을 뚫고 나와 새 시대를 향한 위대한 발걸음을 뗀 개혁자가 되었다.
‘두려움’의 반대는 ‘두렵지 않음’ 정도를 지나 ‘자유로움’이 된다. 루터의 두려움이 구원을 얻지 못할 수 있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은 자유가 된다. 마치 새장 안에 갇힌 것을 모르고 창공을 탐하여 날아보다가 이리저리 부딪치던 새가 새장에서 풀려져 하늘로 비상하게 되었을 때 갖는 그 자유로움이다. 그 자유가 바로 루터가 경험한 자유였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아무 것에도,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자유자가 된 루터에게 95개조 반박문과 다른 글에서 주장한 모든 것을 취소하라는 교황의 칙서(Exurge  Domine)가 날아들었지만, 그는 오히려 공개적으로 그 칙서를 불태우는 것으로 자신이 가진 믿음을 내보였다. 루터에게 교황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마 10:28)”에 불과했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반면,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마 10:28)”셨기에 그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했다.
이 어마어마한 사건이 1520년 12월에 일어났는데, 그 일이 있기 한 달 전쯤 루터는 종교개혁 3대 논문의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논문을 출판했다.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첨부한 이 논문을 읽으면 12월의 사건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 논문의 서두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온전히 자유로워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주인(군주)이요,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매여 의무를 가진 종이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보다 더 잘 정리할 수 있을까! 혹자는 루터의 이신칭의(혹 이신득의)가 개신교의 모든 문제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칭의가 강조되면서 성화가 빠졌고, 혹은 충분히 강조되지 못해 개신교인들이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만 믿고 주장하면서 그 삶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루터 당시에도 이미 루터의 칭의 개념을 왜곡하는 소위 반율법주의자(antinomian)들이 있었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루터는 실제로 이 점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다만 성경에 나타난 구원의 진리가 왜곡되고 교권이 그리스도의 자리까지 높아진 시대를 살았던 루터로서는 우리란 존재는 그리스도의 구원에 아무 것도 보탤 것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어야 했으니, 이는 사실상 역사적 자연스러움이다. 성경의 증언을 따른 믿음이 자신을 살렸고 또한 믿는 다른 이들을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엄격한 수도생활로 잘 훈련되고 성경과 신학의 교수였던 그는 거저 받은 은혜로 믿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 덕분에 무한히 자유로워졌음을 알고 나면 보이는 그 높은 세계를 살아가는 원리, 그 원리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원리는 일찍이 바울이 이미 말한 바이지만 루터가 새롭게 하고 있는 ‘스스로 매임’이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기에 신의 성품에 참여하여 영광스럽게도 거룩한 삶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좋은 열매가 열려지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죄성이다. 비록 구원받았지만 유혹과 혼동으로 가득 찬 이 땅에서 여전히 활동성을 가지고 꿈틀거리는 죄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매우 엄연한 현실이 문제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매임이라는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여 ‘스스로 매이는 자유인’이라는 새 사람의 삶을 살게 된다. 이 새 사람의 삶은 분명한 목적, 즉 복음을 위하여 날마다 분초마다 종이 되는 삶이다.   
루터는 다른 동료 종교개혁자들보다 늦게 수녀 출신인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1525년). 그의 첫 번째 매임은 가정 생활이었을 수도 있다. 루터보다 조금 먼저 1524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개혁자로 활동하던 마태우스 젤과 카타리나 쉬츠 젤은 아름다운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서 결혼했는데, 카타리나 젤은 아직 가톨릭교회 수사였던 자신의 남편을 변호하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카타리나는 자신들의 결혼은 자신들의 유익보다 성경이 말하는 결혼에 대한 확증을 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루터 역시 가톨릭교회 사제들에게 금지되었던 결혼을 스스로 결행함으로 가정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야 했다. 그의 제자들이 편집한 「탁상담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루터가 시작한 개신교 운동은 16세기 국제정치의 역학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개신교 교회는 가톨릭교회와의 관계에서, 개신교 안에서 다른 이해를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는 대화와 서로의 입장 조율을 필요로 했다. 또한 루터의 개혁은 중세 신분 사회에서 시민 민주 사회로 옮겨갈 수 있었던 실마리를 제공하였기에 독일 안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저항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농민 전쟁에 참여한 농민들에 대한 혹은 유대인에 대한 루터의 입장과 태도가 다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온전할 수 없고, 역사를 뛰어넘어 일할 수 없고, 그렇기에 인간은 다시 겸손할 수 있지 않은가.
루터가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강조하듯이 인간의 육신은 끊임없이 영을 거스르기에 우리도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을 철저하게 누리는 자유인이면서 동시에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를 모든 사람에게 종으로 묶어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매사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겸손하게 행하되 말씀에 순종하며 바르게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주님이 쓰심에 합당한 그릇(딤후 2:15~21)이 될 것이요, 주님의 마음에 맞는 자(행 13: 22)가 될 것이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고후 6:1)가 될 것이니, 이 아니 고귀한 매임이겠는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이 해에 이 땅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자 철저한 인간의 역사임을 생각한다.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 된 교회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자신의 경륜대로 그 뜻을 세우시지만 인간을 사용하신다. 인간을 필요로 하신다. 그래서 루터도, 츠빙글리도, 칼뱅도 유혹과 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그러나 상당히 고단했던 개혁자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물론, 독자 여러분들도 “개혁되어진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는 종교개혁의 고귀한 가치를 이루는 개혁의 삶에 초청받고 있음을 상기시켜 드린다. 

2017년 10월호의 다른 기사들


  • 빛과소금

    종교개혁 500주년, 교회와 일상을 개혁하다

  • 찬양 사역자 박종호

    은혜 말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 박득훈 목사

    “우리의 관심은 돈에 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가난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 글 나벽수

    기다림, 여행학교의 첫 수업

  • 글 배지영

    엄마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