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소로고

2017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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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 위에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고파

그가 섬기는 세상
삶의 길 위에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고파한인수

선 굵은 연기로 드라마 역사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 연기자 한인수. 70여 년 인생이,
45년 연기 생활이 녹록했을 리 만무하건만, 모든 걸 순리에 맡기고 참 평안을 누리며 왔다고 말한다. 참으로 인자한 눈빛으로, 참으로 온화한 음성으로….
연기 활동은 조금 뜸해졌지만, 한인수 장로는 여전히 바쁘고 갈 길이 멀다. 선교 연극 공연, 교회 사역, 간증, 봉사활동 등 그의 남은 삶에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고픈 열정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나온 삶의 길은 영화로웠으며, 앞으로 걸어갈 길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그 아름다운 길 위에서 오늘 그를 만났다.
취재 서진아 사진 정화영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얼마 전에 ‘오디오 드라마 바이블’ 작업에 참여하셨죠?
근간에 했던 일 중에 가장 스케일이 큰 일이었죠. 성경 66권 전체를 오디오 드라마로 만드는 작업이니까. 녹음에 참가한 연기자만 1백 명이 넘었어요.

처음 제안 받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내가 늘 기도하는 제목이 있어요.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역대상 말씀 있잖아요.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이 말씀이 더 크게 와 닿아요.
아름다운 석양을 볼 때마다 한 사람의 인생도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으니, 이제 나의 삶도 어느덧 석양의 시간에 가까워졌음을 느껴요. 아름다운 빛을 남기는 석양처럼 나 역시도 하나님의 일로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는 인생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도를 하는 중에 오디오 드라마 바이블 섭외가 왔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게다가 하나님 역할이라니. 크게 감격했지.

은혜 가운데 녹음 작업에 임하셨겠네요.
감사의 마음으로 녹음 일을 섬기게 되었는데, 고민이 생기는 거라. 예수님 모습은 영화 같은 데서 보고 어느 정도 형상을 떠올릴 수 있는데, 하나님은 미지수잖아요. 하나님을 어떤 목소리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깊은 고민에 빠졌죠.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은혜롭게, 그리고 감동이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신약성경이라고 하면 예수 시대니까 예수님이 많이 등장할 거다 생각하잖아요. 또 구약성경에는 시편 말씀이 기니까 다윗의 분량이 많을 거다 생각하고요. 근데 하나님 말씀이 가장 많더라고요. 드라마 바이블의 총 분량이 85시간인데, 그중에 하나님 목소리가 15시간이나 돼요. 대사가 적힌 A4 용지가 산더미 같은데, 대사 연구하고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얼마나 은혜로우냐면, 그 긴 대사를 막힘없이 하게 해주시는 겁니다. 지명이나 사람 이름 얼마나 어려워요. 발음이 안 돌아가잖아요. 근데 녹음 시간이 하루 서너 시간씩 이어지는데도 목소리 톤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큰 어려움 없이 마쳤어요. 그게 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고 은혜지.

녹음 완료된 이후 들어보시니 어떠세요?
완성된 드라마 바이블을 좍 들어보니까 회개가 되는 거라. 좀 더 기도하고 녹음할 걸,
이 부분은 목소리를 좀 더 높일 걸, 여기는 억양을 더 분명히 할 걸….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다시 할 수는 없었죠. 연기자가 1백여 명이 출연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깃들더라고요.
부족한 목소리지만 오디오 드라마를 듣는 분들이 저마다 은혜를 경험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감사했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나의 목소리만은 남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고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그 밖의 다른 계획이 있으신가요?
내가 1987년부터 선교 연극을 했어요. 〈일어나 빛을 발하라〉,  〈너는 반석이니라〉, 〈더러운 손〉, 〈유다의 잔〉,  〈퀸 에스더〉 등 수많은 공연을 했어요.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를 그린  〈일사각오〉라는 작품을 공연했는데, 올해 재공연을 하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어요. 또  〈러브스토리〉라고 치매에 대한 내용을 다룬 연극을 작년에 두 달 동안 대학로에서 공연했는데, 50~60대 관객들이 전부 울면서 나가더라고요. 노인 세대를 위한 공연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올해 다시 한 번 공연해 보자는 얘기가 논의되고 있어요.
작년에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이민욱 선교사가 연출한  〈갈릴리로 가요〉라는 뮤지컬을 공연했어요. 2억 5,000만 원 정도 제작비를 들였는데, 이제껏 공연했던 선교 연극 중에 조명이며, 연출이며 수준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작품이었어요. 5일 동안 완전 만원 사례였지. 그런데 앙코르 공연을 못하고 있어요.
문화 사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작품이 단 며칠 만에 자취를 감추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 문화를 뿌리내리자고 말하지만, 실제로 문화 정착을 위해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사명감과 섬김의 마음을 가진 크리스천 기업들이 후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면 좋겠어요. 좋은 컨텐츠의 크리스천 문화가 이 땅에 잘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후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1973년 MBC 공채로 연기자가 되셨죠? 일생의 대부분을 연기자로 사신 거네요.
중학교 때부터 배우가 되는 꿈을 품었는데, 그때는 그냥 배우가 멋져보였어요. 어릴 때 시골에 살았는데, 흰 광목 치고 영사기 돌리는 가설극장이 간혹 마을에 들어왔어요. 그걸 보고 싶은데 돈이 있어야지. 그냥 광목 들추고 고개 들이밀고 몰래 구경하고는 했지. 암튼 그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막상 연기를 해보니, 진짜 매력은 제2의 인물이 되어볼 수 있다는 거였어요. 정치인도 되어 보고, 대통령도 되어 보고, 기업 회장도 되어 보고, 비천한 역할도 해보고…. 한인수가 아닌 제2의 인물로 살아볼 수 있잖아요. 그게 그렇게 멋지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남들한테 기쁨을 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난 연기자이면서 크리스천이니까 하나님께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와 달란트를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그러니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알리는 일을 열심히 해야지.

연기자로서 자신을 내려놔야 하는 경우도 있죠.
연기자는 공인이잖아요. 또 장로라는 직분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불편할 때가 많죠. 몸가짐이라든가, 언행이라든가 제약을 받을 때가 많아요. 사실 인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넥타이 끈을 풀고 골목을 누비고 싶을 때가 있거든. 하하. 30대쯤에는 잠시 방황도 했어요. 넥타이 풀고, 골목도 뛰어다니고, 세상과 타협도 하고….
그런데 신앙 안에 들어오니까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어요. 예수 안에 참 평안이 있고, 참 기쁨과 참 소망이 있고, 자유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교만해졌다가도 금방 회개하고 나를 누르고 그러는 거지. 근데 난 아직도 과정 가운데 있어요. 지금도 운전 예절 안 지키는 사람만 보면 스트레스 받고 불끈하거든. 더 기도하고 더 낮아져야지.

처음 신앙생활 하신 건 언제인가요?
교회에 처음 나간 건 유년 주일 학교부터예요. 그러다 군대에 가고 사회생활 하면서 조금씩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죠. 1969년부터 1980년까지 10여 년 간 방황의 시간이 있었어요. 아까 말했던 30대에 넥타이 풀고 골목 뛰어다니던 그 시절 말이에요. (웃음)

어떻게 돌이키게 되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강효실 씨라고 계세요. 배우 최민수 씨 어머니. 그분이 극단  ‘산하’라는 곳에서 나랑 연극 공연을 많이 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  〈유리동물원〉 같은 작품에서 함께 연기를 했죠. 그분이 나를 교회에 데려가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나보고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믿었는데 왜 안 믿느냐면서. 하도 열심히 전도를 하셔서 결국 강남성결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어요.

교회로 돌아가시자마다 바로 신앙회복을 경험하셨어요?
출석하고 나서도 처음엔 그냥 왔다 갔다 했어요. 집사 직분 받고도 나서도 미적지근했지.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나한테 물으시는 거라. “1·4 후퇴 때 어려운 상황에서 피난시켜 줘. 장티푸스로 하루에 수십 구씩 시체들이 실려 나갈 때 두 번이나 앓았는데도 생명 지켜 줘. 학교 보내 줘. 탤런트 만들어서 명예 축복 줘. 결혼시켜 줘. 가족의 행복 줘. 건강 축복 줘. 그런데 과연 너는 나에게 뭘 주었느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 가슴을 찌를 때 회개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정신 차리고 ‘믿음의 선교단’이라는 걸 조직했어요. 믿지 않는 영혼을 구원하고,
오지 교회에 선교하고, 믿는 분들을 굳건한 반석 위에 세운다는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선교단을 발족해 1984년부터 1986년까지 2년 동안 내가 회장을 맡았어요. 많은 연기자분들의 뜻과 마음을 모아 찬양, 간증, 성극 등을 통해 사역을 펼쳐 나갔어요. 그렇게 하나님 은혜 속에 사로잡히면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어요.

중간에 잠깐 연기에서 벗어난 길을 걸으신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아, 정치! 뼈아픈 이야기죠. 1991년 11월 30일 지방 자치제가 시행된 이후에 시흥시에서 최초의 보궐선거가 있었어요. 최초니까 전국적으로 초점이 되었죠. 내가 시흥청년회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시흥시에서 청소년, 어린이, 노인 분들을 위해 도움도 많이 드리고 했거든요. 내가 전쟁 통에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어려운 분들의 고충을 잘 알죠.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기도 도의원으로 공천을 받았어요.
덜컥 공천을 받고 나니 마음의 부담이 크더라고요. 그때 성경책을 탁 펴는데 이사야 43장 1~2절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하는 말씀이 들어왔어요.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당선이 되어서 4년 동안 경기도 도의원 문화교육위원회에서 활동을 했어요. 여러 가지 공약들을 성실히 수행하고 과업을 달성하고, 도의원으로서 부끄럼 없이 열심히 일했어요.

그 이후에 다시 한 번 도전하셨죠?
2014년에 지방선거가 있었는데, 그때 시흥시장 후보에 나섰어요. 시흥시 인구가 45만 명인데, 변변한 문화 예술 공간이 없었어요. 문화 시장이 되어보자는 큰 비전을 품고 열심히 뛰었죠. 1년 6개월 동안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선거 운동을 했는데 결국 3% 정도 차이로 떨어졌어요. 낙선 당시에는 망연자실했어요. 친구 잃고, 가까운 사람들 잃고, 물질 잃고, 시간 잃고…. 선거에 낙선되고 나니까 작품 섭외도 뚝 끊기더라고.
근데 지금 생각하면 선거에 진 게 참 감사할 일이에요. 우리 아내는 떨어져서 감사하다고 감사 헌금까지 냈어요. 내가 시장에 당선되면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겠느냐면서…. 떨어지고 아내와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여행을 갔어요. 해변에 앉아서 “여보, 내가 시장이 됐다면 당신하고 이런 아름다운 해변에 와서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겠어?” 하면서 서로 격려했지.

사모님과는 어떻게 결혼하셨어요?
아내랑은 7년 사귀고 결혼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얼굴을 딱 보니까 우리 어머니하고 인상이 비슷한 거예요. 순간 “아, 괜찮다!” 하는 느낌이 팍 오대요. 그래서 바로 선물을 줬지. 첫 선물이 뭐였냐면, 육교에서 파는 반짇고리였어요. 오색실하고 바늘 들어 있는 거. 그때 바로 연기자가 되었던 시절이니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천 원 남짓한 반짇고리를 사서 줬어요. 아내는 뭐 이런 걸 줬나 생각했겠지만, 난 깊은 꿍꿍이가 있었죠. 바늘로 실을 꿰듯 서로 꿰매자 이런 의미지. 하하. 그 반짇고리가 아직도 집에 있어요.
아내 집안은 불교를 믿었는데 결혼하고 내가 다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을 때 나를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되었어요. 아이들도 아버지 어머니의 신앙 안에서 주님의 자녀들도 감사히 잘 성장했고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인격이 형성되잖아요. 부모가 착실히 신앙생활 하는 거 보고 자란 아이들이 삐뚤어지기가 쉽지 않지. 가정교육이 따로 필요 없어요. 부모가 좋은 본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성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셨죠?
7년 동안 연극영화과에서 화술을 가르쳤어요. 학생들과 함께하는 동안 나도 다시 젊어지는 것 같고 참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요즘 아이들이 절박함이 없다는 거예요. 등록금이 한 한기에 500~600만 원 하는데도 결석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요즘 학생들 대학 4년 나오면 배우 되겠지,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야. 지금 탤런트 노조에 가입된 사람이 2,500명이에요. 그 외에 연극배우, 영화배우 많잖아요. 아마 만 명 정도는 될 걸. 그럼 경쟁률이 10,000:1이에요.
내가 학생들 앞에서 사극 대사를 한 번 좍 읊으면, 아이들이 다들 “와!” 하고 놀라요. 난 고등학교 때부터 발성 연습을 했어요. 시흥에 미친 사람 하나 있다고 할 정도로. 밤에는 거적때기 쓰고 “한 푼 줍쇼” 하면서 걸인 흉내 내고. 한마디로 그때 난 연기에 미쳤었어. 미치지 않고는 어려워요. 미쳐야 돼. 절박해야 돼. 연기뿐만이 아니야. 어느 분야든지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는 성취하기 어려워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젊음을 불사르길 바라요.

NGO 활동도 많이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월드비전 친선대사로서 수많은 나라에 갔어요. 케냐, 우간다, 말라위, 가나, 에티오피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그리고 평양도 갔죠. 평양에 갔을 때 봉수대교회에 갈 일정이 있었는데 그쪽 사람들이 국민 배우가 왔다고 하면서 “한 선생! 찬양 한 번 하시라우요” 하는 거예요.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북한 찬양대가 노래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중창단도, 60대 바리톤 노인도 정말 노래를 잘 하더라고요. 그쪽 순서가 끝나고 설마 나를 시킬까 싶었는데, 정말로 시키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내 고향은 황해도입니다. 황해도 벽성군 가자면 취하리 351번지가 내 고향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감회가 깊었습니다. 1·4후퇴 때 나와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고는 찬송가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를 불렀죠. 참 은혜로웠지. 그러고 한국에 돌아왔더니 국민일보에서 연락이 왔어요. 북한에서 특송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면서. 그때 국민일보에 그 기사가 났어요.

아프리카에도 여러 차례 다녀오셨죠?
순복음교회 선한사람들과 함께 케냐에 갔는데, 아프리카에는 말라리아 환자하고 에이즈 환자가 많잖아요. 내가 보기에 거기에서 가장 절실한 게 식수예요. 그 다음이 교육, 그 다음이 보건 위생. 이 세 가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틀 동안 그 사람들에게 말라리아 약을 나눠주겠다고 했더니 1천 명이 모였어요. 말라리아 약을 나눠주고, 빵 한 개씩을 주면서 나는 그들의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었어요. “아버지 이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옵소서” 하면서 일일이 기도해 줬지. 이틀 동안 1천 명에게 다 해줬어요.
그리고 에이즈 환자촌에 갔어요. 엄마가 에이즈 환자인데 젖을 먹이면 그 아이도 에이즈에 걸려요. 그래서 우유를 먹여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 먹여요. 우유 한 통에 80원인데, 그거 한 통이면 한 달을 먹일 수 있대요. 근데 그게 없어서 아이들을 에이즈 환자로 만드는 거예요. 참 참담한 노릇이지.


오지 사역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셨나요?
한 번은 스리랑카에 갔는데 고산 지역이라 몹시 추워요. 어느 아낙네가 돌, 백일 지난 아이를 안고 나왔고 남편은 목발을 짚었더라고요. 생활 능력이 없는 거라. 근데 비가 새서 추워 못 살겠다는 거예요. 집을 하나 다시 지었으면 좋겠대요. 얼마냐고 했더니 우리 돈으로 200만 원이래요. 내가 해줄게요. 호언장담하고 왔지.
또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 갔더니 식수 펌프가 하나 있더라고요. 구덩이의 흙탕물을 먹던 사람들이 그 물을 보더니 하늘에서 내려준 축복이라는 거예요. 5㎞, 10㎞ 떨어진 곳에서 물을 뜨러 오더라고요. 펌프 하나 설치하는 데 얼마냐고 했더니 500만 원이래요. 내가 해드리겠습니다. 또 호언장담했지.
한국에 들어왔는데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들어온 지 3일 후에 대구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는 장로님이신데 대뜸, “한 장로, 다름이 아니고 우리 집사람이 고희를 맞았는데 축의금이 500만원 들어왔어. 그런데 집사람이 아프리카에 식수를 해주고 싶다는 거야” 하시는 거예요. 와, 그 전화를 받으니까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이게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한 번은 후배들 만나서 밥 먹는데 “형님 얼굴이 많이 타셨어요. 운동 자주 하세요?” “아냐, 나 스리랑카 다녀왔어. 영상 한 번 봐라”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요?” “그래 집 하나 짓는데 200만 원이란다” “아 그래요? 그러면 저희 둘이 100만원씩 내서 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또 200만 원이 해결되었어요. 하나님의 일은 선포하라! 그러면 이루어진다! 답이 딱 나오죠.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눠주세요.
비전은 지경을 넓히는 것. 하나님 일이든, 세상일이든 양쪽 모든 선한 영향력과 아름다운 자취를 많이 남기고 싶어요. 오늘 「빛과소금」과 만난 것도 나에게는 뜻깊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세상 속에 아름다운 자취를 많이 남기고, 하늘나라에 상급 쌓는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기도 제목은, 건강의 축복 주시고, 주께서 복의 복을 더하사 내 지경을 넓혀 주옵시고, 나를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생활하게 하시고, 언제나 성령 충만 속에 영적인 타락 없이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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