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삶으로, 말씀으로 지켜낸 시민의 권리

issue 2017년 05월호 투표, 삶으로, 말씀으로 지켜낸 시민의 권리 글 박진영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대통령이 새로 뽑힌다고 해서 모든 혼란이 수습되고 갈등이 봉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시민의 노력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확장되기를 마음 모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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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근거로 예수의 삶을 따르는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일구는 사람들이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 중간 어디쯤 아름다움과 치유, 자유와 해방(이사야 61장)이 실현되는 복음이 지금, 여기에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책임 있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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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대선’을 앞두고, 인류 역사에서 시민으로서 성도, 성도로서의 시민으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왔던 인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이들의 삶은 사회운동가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창 1:27)을 위한 성서 실천자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글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준 사람들, 흑인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차별을 당했던 이들을 위해 두려움에 맞섰던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저항과 맞섬의 의미와 가치를 이어갈 미래 세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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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헌법 제24조).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이 헌법 조항의 시작은 간단하지 않았다. 세계 역사에서 ‘모든 국민’의 참여가 보장된 것은 1백 년 남짓이다. 성별, 피부색, 출신, 나이, 지역 등을 이유로 누구는 배제되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가 이 험난했던 과정을 잘 설명해 준다. 이 영화는 20세기 초 영국에서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제로 하고 있다.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여성이었던 주인공이 생활 속에서 겪었던 차별과 배제를 넘어서기 위한 과정을 그린 영화다. 러닝타임 동안 마음속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놓인 것 같았다. 당시 여성은 목소리를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박탈당한 채, 주어진 한계 속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갇힌 자처럼 보였다. 결국 영화는 서프러제트(suffragette, 여자 여성 참정권론자)의 ‘죽음으로서 외침’으로 마무리된다.

서양에서의 여성 참정권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 내에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으나 좌절됐다. 이후 1893년 뉴질랜드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최초 도입되었고, 서프러제트 운동이 일어났던 영국에서는 1928년이 되어서야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지난 4월 2일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여성 참정권 1백 년을 기념하여 영국의회 광장에 여성 최초로,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밀리센트 포셋(Millicent Fawcett)의 동상이 세워진다고 한다.

 

투표할 권리, 대표할 권리를 위한 노력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로 연결된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의 여성 참정권을 위한 싸움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시 ‘여성’으로 대표되는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위한 싸움이었기에 이 싸움은 2017년 5월 대한민국에도 의미가 있다. 장애인,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미완성으로 규정당하는 청소년들과 ‘쓸모’로 평가받는 어르신 등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 모두를 위한 애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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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눈물이 담긴 목소리로, 워싱턴 D.C.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 ‘꿈’을 연설하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미국 내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이었고, 인종 차별주의자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가 활동하던 미국에서는 피부색을 이유로 버스와 식당, 학교와 거리에서 많은 차별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가 1955년 로자 파크스(Rosa Lee Louise McCauley Parks)의 ‘버스 자리 양보 거부 사건’이 발화점이 되었고, 몽고메리 내의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시작으로 흑인 민권 운동이 확장되었다.

흑인 민권 운동은 1965년 미국 수정 헌법 제15조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 법안은 선거 자격, 투표 필요 요건과 표준, 관행, 절차 요구를 금지시킨 법안이다. 인종이나 출신, 피부색을 이유로 미국 시민의 권리인 선거권을 부정,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사실이 과거 수많은 사람의 일상을 대가로 성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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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권리가 ‘권리’로 확립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생명이 있었다. 폭력과 차별 앞에 두려움을 안고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창세기 1장 27절 말씀이었다고 감히 상상해 본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믿음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싸움을 기꺼이 싸웠던 사람들이다. 이 싸움의 열매가 미국 수정 헌법 15조 아닌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훼손될 수 없는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 덕분에 우리가 오늘 투표를 통해 시민으로서 권리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영국과 미국에서뿐이겠는가? 일제를 견디고 독립을 위해 싸운 나라, 한국 전쟁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나라, 개발 독재에도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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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겨울, 우리 대한국민은 밝고도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은 촛불을 하나 들고, 여럿이 모여,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외쳤다. 온갖 술수와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 침묵하지 않았고, 기꺼이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고 진실을 말했다. 대학생들은 침묵으로 부정 입학에 항거했고, 공직을 이용한 사사로운 이익 추구에 평범한 시민들은 일어섰다. 이념과 지역,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기꺼이 광장을 채웠다. 불의에 대한 평화로운 저항, 작은 빛으로서 어둠을 몰아내는 끈질김이 오늘의 또 다른 서프러제트이고, 또 하나의 몽고메리의 시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성별, 인종, 출신 등을 이유로 묵인되고 배제되었던 사람들을 위하여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질책, 심지어 생명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지켜냈던 이들 덕분이다. 성도이자 시민으로서 말씀을 실천했던 이들 덕분에 투표를 통해 ‘헌법’에서 보호하는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시민의 선거권이 단순히 ‘찍기’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거일이 하루 노는 날에 그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이뤄내야 하는 구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 세대에 감사한다. 자랑스러운 대한국민으로서 헌법 가치를 계승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해 나갈 것을 믿고 감사한다. ‘자율과 조화의 가치를 바탕으로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해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감사한다. 그래서 나는 선거를 앞둔 오늘, 기독 시민으로서 ‘우리와 우리 자손의 안전과 자유, 행복의 영원한 확보’에 대한 다짐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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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 지켜낸 시민의 권리를 확인할 시간이다. 이로써 5월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 박진영은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간사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사는 삶’을 지향하며, 기독 시민으로서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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