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소로고

2017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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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평의 헌신적 삶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가 섬기는 세상
“서서평의 헌신적 삶 보여드리고 싶어요”배우 윤안나

백여 년 전 낯설고 물선 조선 땅에 들어와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헌신한 벽안(碧眼)의 선교사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고아와 과부를 가르치고 한센병 환자를 돌보다 죽어 가면서도, 마지막 남은 육신마저 의학 연구에 바치고 떠난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그린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이하 ‘서서평’)이다. 서 선교사가 강권적인 이끌림으로 조선 땅에 들어와 헌신의 삶을 산 것처럼, 배우 윤안나가 독일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것 또한 우연의 결과는 아니다.
서서평의 출생지인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한국과 한국 배우의 꿈을 품고 공부해 온 윤안나에게 한국은, 연기는, 그리고 서서평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한국어가 술술. 한시름 놓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기과 전문사(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제 막 새 학기가 시작된 한예종 교정을 찾았다.
취재 서진아 사진 정화영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되었고, 어떻게 한국에서 배우가 되었어요?
열다섯인가 열여섯 살 때 독일에서 한국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한국어를 들어보니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역사적인 관심이 생겼어요. 제가 김기덕 감독님과 임권택 감독님 영화를 좋아하는데, 작품을 이해하려면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9년 독일의 한 지역 교회와 영등포구의 교회가 교류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때 처음 한국에 왔어요. 2주 정도 교회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일정이 정말 빡빡했어요.
큰 교회도 가고 작은 교회도 가고, 주일에도 3번씩 예배드리고 수요 예배도 참석하고, 계속 크리스천들 만나서 독일 교회랑 한국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한국 교회가 엄청 뜨겁구나 생각했어요. 깜짝 놀랐어요. 또 경주도 가고 DMZ도 가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3일 동안 홈스테이 하면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독일로 돌아갔는데 한국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시작하고 밤새서 한국어 공부하고…. 그때 엄청 열심히 살았어요.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분명한 동기가 있어서 가능했나 봐요. 5개월 동안 돈 모아서 여름 방학에 다시 한국에 왔어요. 열여섯 살 때 혼자 몸으로.
독일 대학에서 전공은 신문방송학, 부전공으로 한국학을 했어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독일에는 연기 관련 학과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지방 극단에서 엑스트라를 하고 워크숍도 다니면서 연기 경험을 쌓았죠. 전공 공부도 한국 영화만 선택해서 분석하고 논문도 많이 썼어요. 결국 연기의 꿈을 접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국에 와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대학을 여러 군데 다녀보다가, 한예종에 갔는데 딱 느낌이 왔어요. 저는 느낌대로 결정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혼자 엄청 고민하다가 중요할 때 느낌으로 선택해요. 한국이라는 나라에 온 것도 제가 원해서 선택한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 거였어요. 아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닐까 생각해요. 

 


연기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언어나 한국 정서를 이해하는 게 쉽진 많을 텐데…

많이 어려워요. 한예종 연기과 전문사(석사) 과정에서 제가 첫 번째 외국인이에요. 지금 3학년인데 1학년 때는 거의 매일 울었어요. 1학년 때는 계속 실기 수업만 하는데, 발음도 감정 연기도 다 어려웠어요. 첫 외국인 학생으로서 교수님들이 거는 기대가 크실 텐데 거기에 부응을 못하는 것도 괴로웠고요.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 같은 외국 극작가에 대한 연기 수업은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 작품 수업을 할 때는 정서나 작품 배경 등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생소하기 때문에 괜히 주눅 들고 자심감이 생기지 않았어요. 말도 많이 안하고 대사할 때도 작게 중얼거리게 되고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어려운 점은 있어요.
제가 잘 안 되는 발음이 있어요. 제가 쌍문동에 사는데, 독일어에 쌍시옷 발음이 없어요. 처음에 택시 타서 “상문역 가주세요” 했더니 택시 기사님들이 그런 역 모른다고 했어요. 쌍시옷이 너무 어려웠어요. 무조건 ‘쎄게’ 발음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요. (웃음) 아직까지 안 되는 발음이 많은데 적어놓고 계속 반복해서 연습해요. (실제로 안나의 발음은 꽤 정확했다. 그런데 인터뷰 도중 ‘한국이 고쳐야 할 점’을 물었더니 “촌지”라고 답해서 당황했다. 사실 안나가 말한 건 “정치”였다.)
그래도 주변에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서 잘 극복하고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 가족이 큰 힘이 돼요. 한국 엄마도 믿음이 좋으셔서 저를 위해 기도 많이 해주세요.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아는 언니 소개로 이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정말 가족처럼 잘 맞았어요. 그래서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이 집으로 돌아왔고 3년째 한 가족처럼 살고 있어요. 아빠 성이 윤 씨라서 제가 윤 씨가 되었고요. 집에 늦게 들어가면 아빠가 계속 전화하고, 싸우기도 하고 정말 가족 같아요. 엄마는 늘 ‘만남의 축복’이라고 말하세요.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에서
서서평 역할을 맡게 된 과정을 얘기해 주세요.

제가 독일에서 대학 다닐 때 한국학과 조교로 일했어요. 그때 한국 교수님이 계셨는데, 번역도 많이 도와드리고 친하게 교류했던 분이에요. 그 후 한국에 들어오셨고, 제가 한국에 온 뒤에 많이 도와주셨어요. 작년에 세월호 관련한 연극 〈국가 없는 나라: 사라진 기억들〉에 출연했을 때 보러 오셨고, CGNTV에서 서서평 선교사님 관련 영화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지원해 보라고 하셨어요.
교수님께서 CGNTV에 제 프로필을 보내주셨고 연락이 와서 두 번 정도 가서 대본 리딩을 했어요. 제가 역할 이미지에 잘 맞았는지 4~5명의 지원자 가운데 서서평 역으로 결정되었어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작품에 들어갔는데, 작업을 하면서 서서평 선교사님과 공통점이 하나둘 발견되었어요. 저는 처음에 선교사님이 미국 분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원래 독일 사람이더라고요. 저와 같아요. 선교사님 본명이 엘리자베스(Elisabeth)인데, 제 세컨드 네임이 엘리자베스예요. 그리고 선교사님이 림버그(Limburg)에서 오랫동안 지내셨는데, 우리 친오빠가 지금 림버그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해요. 작년에 영화 촬영 팀이 그곳에 가서 인터뷰도 하고 림버그 신문에도 나왔어요.
처음에는 대사 외우고 대사 안에서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전부였는데, 서서평 관련 책을 읽고 나니까 부담감이 너무 크더라고요. 그렇게 훌륭하고 위대한 분의 삶을 내가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두렵고 걱정되었어요. 그래도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고, 작품을 통해서 선교사님의 헌신과 섬김의 삶을 알게 되어서 정말 의미 있고 기뻤어요.

 


인상 깊은 대사나 장면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할아버지가 바닥에 누워 있는데 서서평이 와서 “괜찮아요?”라고 물어보는 장면인데, 그 “괜찮아요”라는 대사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발음 때문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 대사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하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 서서평이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했을지, 그녀의 삶과 그녀의 마음까지 헤아리려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요?”라는 대사가 나오지 않았어요. 굉장히 힘들게 고민하면서 그 장면을 찍었던 것 같아요.
20, 30대 서서평 역을 할 때는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물론 엄마한테 버림받은 상처와 아픔을 품고 또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돕는 그녀의 마음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같은 나이의 사람으로서, 같은 이방인으로서의 고민과 고뇌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아직 40, 50대를 안 살아 봐서 서서평의 그 당시 모습을 재연하는 데는 부족했겠지만, 서서평이라는 한 사람의 역사가 얼마나 고귀하고 숭고한가를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

 


하나님께서 안나를 한국으로 보내고 연기를 하게 하시고
서서평 역을 맡기신 이유를 깨닫게 됐었나요?
아직은 완전하게 모르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 맡겨주신 일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선교사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디서든 언제든 선교사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술을 하잖아요. 그냥 뭐 재밌으니까 하는 것도 있지만, 진짜 예술을 하고 싶으면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믿으세요.” 이런 말 진짜 못해요. 그런데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전도를 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크리스천으로서 모범이 되면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걸 통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선함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선교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살면서 복을 많이 받았고, 많은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 주셨어요. 〈서서평〉이라는 작품을 만난 것도 그렇고요.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말씀을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면 좋겠어요.

 


독일 교회와 한국 교회의 다른 점이 있다면?
독일에서는 어렸을 때 세례를 받고 커서 다시 받아요. 독일은 기독교 국가니까 어릴 때 무조건 세례를 받는데 그건 부모님의 선택이고요. 16세 때 2년 동안 기독교 교육을 받고 난 후에 본인 의지에 따라 다시 선택해요. 요즘 독일 교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많고 젊은 사람들은 많이 안 다녀요. 독일의 신앙생활은 교회 위주가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지만, 사람들이 최근 들어 점점 더 교회에 안 나오는 건 조금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교회 한 번 안 나가면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교회도 엄청 많고요. 처음에 한국에 와보고 교회 십자가 네온사인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엄청 큰 교회, 엄청 작은 교회도 많고요. 독일은 나라에서 세금으로 교회를 운영하도록 하니까 교회가 그렇게 많이 생기지도 않고, 헌금도 개별적으로 내지 않아요.
독일에서건 한국에서건 제가 원하는 신앙생활은 살아 있는 신앙생활이에요. 습관적으로 주일마다 교회 가고, 성경만 보고 그런 거 말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느끼고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있겠지만, 한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니까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지금 시나리오와 소설 공부를 하고 있어요. 직접 글을 써서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을 만들어 가는 배우가 될 거예요. 다른 한국 여자 배우들도 똑같이 힘들잖아요. 큰 영화를 보면 다 남자 배우 위주이고, 여자를 위한 역할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 여자들이 그걸 만들어 나가야죠. 한계가 있어야 그 한계를 넘어갈 수 있고, 도전을 해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와 서서평 선교사

오는 4월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서서평〉은 CGNTV에서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선교사 서서평의 선교적 삶의 궤적을 좇은 이 영화는 CGNTV의 한국교회 나눔 프로젝트의 세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독일 비스바덴과 미국 뉴욕, 전라도 일대와 제주도 등지에서 1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서서평(본명 엘리자베스 쉐핑, 1880~1934) 선교사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간호 교육을 받고 32세에 조선에 왔다. 광주 제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한센병 환자와 걸인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독신의 몸으로 고아 14명을 입양해 길렀고, 한국 최초로 여성 신학교인 이일학교(지금의 한일장신대학교)를 세워 과부와 버려진 소녀들을 교육했다. 22년간 사역을 하다 54세에 영양실조에 걸려 하나님 곁으로 떠났다. 마지막 남은 시신마저 의학용으로 기증했다.
CGNTV는 영화 제작에 앞서 서서평의 행적과 흔적을 찾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녀에겐 후손이 없었고, 가족들의 생사 여부도 확인할 길 없어 행적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고증 자료의 부족함은 재연 드라마로 채웠다. 서서평의 동료였던 스와인하트 선교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서서평의 내면을 드라마화했다.
서서평 역의 배우 윤안나는 독일 출신으로, 독일어와 영어가 모두 가능하고 서서평 선교사의 헌신과 섬김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크리스천이었다.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참신하고 연기도 잘했다. 국내 남도 일대와 제주에서 진행하는 촬영은 태풍의 영향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기도의 힘으로 무사히 완료되었다. 또한 배우 하정우가 내레이션에 참여해 깊고 진실성 있는 목소리로 영화의 감동을 한층 높였다.
많은 이들의 기도와 땀, 눈물로 완성된  〈서서평〉은 낯선 땅에서 헌신한 한 여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랑의 기적을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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