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독일의 목사, 신학자다. 1906년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1927년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30년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초창기부터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에 가담했다. ‘고백교회’가 세운 목사 후보생 교육기관 책임자로 섬기던 그는 잠시 미국에 갔는데, 주위의 강력한 망명 권유를 뿌리치고 귀국, 히틀러 정권 전복 단체에 합류했다. 1943년 체포, 1945년 4월 9일 나치정권 붕괴 직전에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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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그는 누구인가?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는 어떤 분이었을까요? 본회퍼가 세운 핑켄발데 신학교에서 제자로 만나서 조카사위가 되었고 생애를 마치기까지 가장 절친한 친구로 지냈던 에버하르드 베트게(Eberhard Bethge, 1909~2000)는 1천 페이지가 넘는 본회퍼 전기(「디트리히 본회퍼」, 복있는사람, 2014)에서 본회퍼를 “신학자, 그리스도인, 동시대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본회퍼는 21세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통과된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가 당시 세기의 신학자였던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에 의하여 “신학의 기적”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천재적 신학자였습니다. 둘째, 본회퍼는 ‘산상수훈’을 통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체험하고 고백한 후에 죽을 때까지 그 뒤를 따름으로써 제자도의 모범을 보여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셋째, 본회퍼는 히틀러와 나치에 저항하는 일을 통하여 고통받는 자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시대의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회퍼를 이렇게 위대한 인물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는 본회퍼를 영웅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이 작고 연약한 사람은 본회퍼가 걸어간 신앙과 신학의 길을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회퍼 자신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44년 7월 감옥에서 적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타자의 시선이 바라보는 본회퍼와 본회퍼 자신이 바라보는 본회퍼를 그리고 있습니다. 타자의 시선에 비친 본회퍼는 “감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고”, “간수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죄수인 본회퍼가 명령하는 것 같이 보이고”,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싱글벙글하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본회퍼는 정말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본회퍼가 자신을 바라볼 때에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입니다. 그래서 본회퍼 자신의 눈에 보인 본회퍼는 지극히 연약하고 나약한 사람이고, 바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염려하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본회퍼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 제자가 되었듯이 동일하게 연약한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본회퍼 신학의 알파와 오메가

1.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본회퍼 신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본회퍼가 꿈꾸었던 것은 현학적 이론으로서의 기독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독론의 질문은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와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시는가?”로 요약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본회퍼에게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과 예수의 제자로서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회퍼의 신학적 이론으로서 기독론은 항상 그에 상응하는 윤리적 실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에 대한 논의에서 잘 드러납니다.

2.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본회퍼는 “교회는 모든 가현설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는 그저 살과 피를 가진 것처럼 보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과 피를 입으시므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특히 본회퍼는 「윤리학」에서 윤리 사상의 기초를 성육신 사건(Menschwerdung)에 두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현실(reality)이 이 세상의 현실 속으로 들어오셨다”고 선언합니다. 이와 같은 성육신 사상은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윤리적 의미를 가집니다.
첫 번째는 ‘존재론적(ontological)’ 의미입니다. 이것은 화해의 사건을 말합니다. 인간이 되셔서 세상에 오시므로, 하나님은 세상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되지 않은 세상의 현실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본회퍼는 신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대립시키는 ‘두 영역 사고(two-realms thinking)’를 거부하면서, 하나님은 교회뿐 아니라 세상의 주권자도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본회퍼에게 있어 교회와 세상의 이원론이나 믿음과 삶의 이원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본회퍼의 성육신 사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상을 즐기라.”는 교훈을 제공합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일상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보여줍니다. 본회퍼의 성육신 사상이 내포하는 교훈 역시 하루하루 일상을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옥중서간」에서 본회퍼는 참 신앙인은 세속적인(worldly)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옷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삶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회퍼는 일상에서 주어지는 좋은 것들을 즐기라고 교훈합니다. 사랑, 우정, 신체적 즐거움과 같은 좋은 것들을 온전하게 향유하는 일이 행복한 삶에 필수불가결하고, 참 인간이 되는 근본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본회퍼의 성육신 사상은 ‘인간학적인(anthropological)’ 혹은 ‘실존적인(existential)’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이 참 인간이 되셨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간학적인 요청을 내포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한 사람일지라도 그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죄악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누군가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헌신한다면 우리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현실에 참여하는 일이 됩니다.

3.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본회퍼 따르면 인간이 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당하신 끝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과 죽음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죄인들을 대신하여 당하신 대리적 고통이자 죽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타자를 위한 존재라는 사실과 “고통당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십자가 신학 역시 몇 가지 신학적, 윤리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보편적 사랑을 요구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특정 민족이나 인종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 된 모든 인간을 위해 고통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모든 인간을 향한 보편적 사랑,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향한 사랑을 요구합니다. 본회퍼는 원수를 향한 이 사랑을 비범한(extraordinary)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그러나 동시에 본회퍼에게 십자가는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우선성, 즉 유명한 “아래로부터의 관점(view from the below)”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요청합니다. 「옥중서간」에서 본회퍼는 우리에게 “세계사의 거대한 사건들을 아래로부터, 즉 사회로부터 배제당한 자들, 혐의 받고 있는 자들, 학대 받는 자들, 권력이 없는 자들, 억압당한 자들, 멸시당하는 자들, 간단히 말해서 고난당하는 자들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셋째, 본회퍼의 십자가 신학은 “교회가 오직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다”라고 천명합니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죽으시기까지 철저하게 타자를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의 공동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아갈 때 참된 교회 공동체가 됩니다.

오늘 한국교회를 위한 디트리히 본회퍼

국정 농단의 사태로 우리나라가 너무도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국정 농단의 주역들 가운데 여럿이 교인들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교회가 이번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오늘의 교회 현실 때문에 본회퍼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됩니다. 두 가지만 적어 봅니다.
첫째, 본회퍼의 성육신 신학은 한국교회가 교회에서만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을 양육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많은 한국교회는 교회를 위한, 교회 안에서의 신앙을 강조해 왔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러한 신앙의 초점은 예수 믿고 구원받고 축복받자는 메시지에 놓여 있습니다. 교회적 차원에서는 목회자와 성도의 사역이 물리적 부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세상 한 가운데 나아가 어떻게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교회 안과 교회 밖이 다르고 믿음과 삶이 불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므로, 세상의 염려와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일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교훈하는 본회퍼의 성육신 신학은 이런 모순적 신앙을 극복하기 위한 신학적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본회퍼의 십자가 신학은 한국교회가 낮은 자리로 나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본회퍼는 히틀러와 나치를 지지한 독일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기독교가 힘을 숭배는 종교가 되었다고 한탄했습니다. 양적 성장과 성공의 신화에 매달려온 한국교회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본회퍼의 십자가 신학은 한국교회가 진짜로 찾아야 할 자리는 고통당하는 자가 있는 낮은 곳임을 알려줍니다.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받는 자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으십니까? 그러려면 고통받는 자들의 자리로 가십시오.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라는 본회퍼의 말을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 오늘 우리를 위한 디트리히 본회퍼의 출현을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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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는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철학을, 장로회신학대학과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현재 숭실교회 담임 목회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