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망설임 끝에 정선희를 만났다. 망설인 이유? 아직 그녀가 사람들 앞에 선뜻 나서고 싶어 하지 않을까 봐. 혹은 아직 환한 웃음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봐….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기우였는지, 그녀를 만나고 단 몇 분 만에 알아버렸다.
특별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살아온 사십 년 하고 또 몇 년의 시간들을 조용히 들을 뿐. 간간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거나, 진심으로 맞장구치거나, 역시 개그맨 맞구나 감탄하며 깔깔 웃거나… 내가 한 일은 그게 다였다. 세세히 묻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한 권의 책을 써 나가듯 시간의 흐름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유유히 흘려보냈다.
지면 한계 상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싣지 못해 안타깝다. 큰 시련을 겪었던 만큼, 세상의 성공 뒤에 찾아온 실패를 잘 이겨낸 만큼, 하나님 앞에 돌아와 평안과 감사의 날을 보내고 있는 만큼 그녀의 이야기는 알곡이 꽉 차서 단단하고 실했다. 지금처럼 오늘처럼 앞으로도 하나님 옆에서 씩씩한 걸음을 걷길 바라본다.
나와 너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더 마음을 울리는 정선희의 인생 이야기.
글 서진아 사진 정화영

첫 번째 이야기

좌충우돌 젊은 날의 선희 이야기
중고등학교를 미션스쿨에 다녔는데, 그때는 크리스천에 대해 괜한 반발심을 가졌던 거 같아요. 내가 만난 크리스천들이 한 입으로 두 말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로 똑같이 죄 짓는 사람인데, 그땐 어려서 고집불통에다 완고했던 것 같아요.
우리 집이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엄마를 비롯한 우리 가족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변하셨어요. 제가 미션스쿨을 6년 동안 다니면서도 하지 못했던 가족 구원이 의외의 장소에서 터졌어요. 엄마 친구 분들이 오래도록 엄마를 위해 기도해 오셨나 봐요. 엄마는 하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직진하시더니 바로 점프하시더라고요. 새벽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저는 그때까지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 존재라고 여기고 살아왔는데 엄마가 바뀌는 걸 보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중보기도의 힘을 믿게 되었죠. 하나님 만나고 나서 엄마가 가장 열심히 한 기도가 뭐였겠어요? 당연히 저를 위한 기도죠.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 마음이 열리지 않았어요. 일 때문에 바빠 죽을 것 같던 때였거든요.
개그맨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한 오락 프로그램에 나간 것을 계기로 대학에 들어가서 방송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당시 다른 일에 비해 보수가 꽤 셌기 때문에 등록금에 큰 보탬이 되었고, 또 재밌기도 했고요. 그러다 개그맨 콘테스트에 참가하였고 어렵지 않게 개그맨으로 데뷔하게 되었어요. 너무 순탄하니까 크게 절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학 전공은 경제학이고, 또 어학에도 관심이 많았으니까 이 일 아니면 다른 일 하지 뭐,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그 일이 나를 굉장히 흥분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에 욕심을 갖게 되고 절박함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런 일은 술자리가 곧 오디션 자리였기 때문에 그런 자리도 마다하지 못했어요. 밤에도 잠을 못 자고 술 마시고 들어와도 계속 깨어 있으니까 엄마가 새벽기도에 함께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몇 달을 버티다가 한 번 가볼까 하고 갔는데, 기도하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술도 덜 깬 상태에서 새벽에 울고 났더니 개운해지대요.
새벽기도를 나간 지 3주 만에 눈물이 흘러넘치면서 동시에 내 안에서 사랑이 샘솟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랑이 안에서 꿈틀거리고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면서 동시에 죄송하고 황송했어요. 내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도 되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울었던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 교회에 나가면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되는 거예요. 기분 좋은 느낌을 또 느껴보고 싶다 하면서요. 그걸로 하루가 온통 기쁘게 살아지니, 그 열매가 엄청 달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둘씩 하나님 앞에 소원도 이야기하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나님과의 데이트가 시작된 거예요.
저는 엄마의 기도 옆에서 10년을 날로 먹다시피 했어요. 엄마의 기도가 저에게는 엄청난 응원이었고, 유혹에 빠지지 않는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좌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끈이었어요. 그래서 불안하고 돈이 없고 가난해도 엄마의 기도만 생각하면 항상 용기가 생겼어요. 모든 게 잘될 것만 같았고요. 그때 〈TV 동물 농장〉, 〈찾아라! 맛있는 TV〉 같은 프로그램의 MC로 세워주시고…. 정말 손에 담기도 벅찬 많은 것들, 많은 약속들을 이루어 주셨어요.

두 번째 이야기

인생의 큰 파도를 만났던 그 시절 선희 이야기
한없이 잘나갈 것만 같던 그 시절, 예고하지 않은 시련이 나를 덮쳤어요. 그 일이 2008년에 일어났으니까 9년 정도 시간이 흘렀네요. 그 일을 겪으면서 힘든 줄도 모를 만큼 큰 총상을 입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총 맞으면 총 맞은 줄도 모른다면서요. 쇼크가 2~3년 지속되었어요. 그 기간에 내가 무엇을 판단하고 행동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요. 현명하지 못했던 판단도 있고, 감정에 치우쳤던 판단도 있고.
신앙적으로도 많이 흔들렸어요. 내가 왜 신앙생활을 하지? 분명 하나님이 계시는데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내가 벌을 받는 걸까? 교회에서 뜨겁게 기도하면 이단에 미쳐서 가산을 탕진했다는 둥, 내가 진 빚을 남편에게 다 뒤집어 씌웠다는 둥, 온갖 간증을 짜깁기해서 나를 모함하는 둥 온통 잔인하고 잔혹한 이야기들이 주변을 맴돌았어요.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건 내가 그런 일을 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나에게 화살을 돌리던 크리스천들이에요. 한껏 비뚤어진 마음으로 교회는 가지만, “아멘!” 외치고 감사 찬양하는 사람들이 전부 꼴 보기 싫었어요. 그래도 예배는 빠지지 않았죠. 하나님을 만났던 기억과 함께하셨던 기억 때문에 완전히 놓질 못 하겠더라고요.
내가 다니던 교회는 작았기 때문에 사람들 눈을 피해 큰 교회로 도망 다니듯이 예배를 드렸어요.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현악 3중주 연주가 너무 화려한 거예요. 마치 내 신세가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부잣집에 놀러간 고아같이 여겨졌어요. 난 왜 죄인처럼 모자 눌러쓰고 사람들 눈을 피해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나 싶었어요. 분하고 억울하고 슬펐어요. 그때는 매일매일 수없이 내 안에 괴물을 만들어냈어요. 그리곤 어떻게든 죽을 이유만 찾았던 것 같아요.
그랬던 내가 어떻게 다시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됐을까요? 오히려 그 전보다 더 평안해지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햇살에 감사하고 빗소리에도 감사하게 됐을까요? 잘은 모르겠어요. 사실은 그게 제 간증이에요. 간증 섭외가 들어왔을 때 “하나님 저는 세상적인 잣대로 회복된 게 하나도 없어요. 지금 방송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빚도 더 갚아야 하는데 내가 얘기할 게 뭐가 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시대요. “네가 밥 잘 먹고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이빨 보이고 웃는 게 간증이야. 내가 너한테 허락한 간증이야. 많은 말 할 필요 없어. 지금 네가 느끼는 행복과 감사를 전해.” 그래서 두서없이 감사를 전했어요. 그렇게 다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면서 마음에 들끓던 분노가 사라지고, 열이 식고,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아, 그때 하나님이 막아주셨구나, 그때 그렇게 하나님이 보듬어 주셨구나, 그때는 아무것도 안 들리게 귀를 닫아주셨구나. 그때는 아프지만 쳐서 나가서 돌을 맞게 하셨구나, 그렇지만 그때도 옆에 계셨구나” 하며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리게 된 거죠.
그리고 남을 위해 하는 기도가 힘든 만큼 얼마나 값진가를 저를 통해 보여주셨어요. 생판 상관없던 분이 다가와 “내가 선희 씨 위해 얼마나 기도를 했는데. 선희 씨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다시 회복하고 나올 줄 알았어”라고 해주시는데, 아, 나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인기 있을 때 팬으로부터 받았던 사랑과는 조금 다른, 마음에서 우러나서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그런 사랑이요. 그런 사랑을 받고 나니까 저도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저는 보기와 달리 워낙에 차갑고 정이 없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성품과 상관없이 사랑이 넘쳐 견딜 수 없게 되면 남을 위한 기도가 막 흘러넘쳐요.
뒤돌아보면 눈물나도록 고마운 하나님의 호흡들을 보게 돼요. 2008년부터 2010년,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니라, 살면서 가장 뜨겁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울어주시고, 가장 뜨겁게 안아주시고, 하나님이 다급하게 내 삶에 개입하셨던 시기인 것 같아요. 나 하나 살려 보시겠다고 맨발로 내 삶에 뛰어드셔서 가장 바쁘게 일하셨던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 사는 동안 ‘그때만 한 고비가 또 오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요. 근데 확실한 건,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이 또 바삐 움직여 주실 거라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고 붙잡기만 하면, 그 하나님의 바쁜 발걸음을 다 느끼기만 한다면, 그 주파수만 녹슬지 않고 열어놓는다면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 ‘빽’으로 거뜬히 넘길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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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

돌이켜 살아난 지금의 선희 이야기
예전에는 일을 철저하게 구분 지었어요. 방송 일이 아니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을 4~5개 정도 해야 일을 하는 거고, 그 정도로 바빠야 연예인이라는 교만에 빠져 있었어요. 그 사건이 터지고 8~9개 되던 방송을 다 내려놨어요. 제 기준에서 일이 모두 사라진 거죠.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몇 년간 계속되었어요.
2008년 이후로 계속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정신 차려 보니까 사실은 엄청 바쁘게 일하고 있었더라고요. 내가 정의 내린 일이 아니라 그분이 정의 내린 일을 말이죠. 내가 좀 더 유명해지고 뭔가를 보여줘야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존재였어요. 내 마음이 건강해지니까 이곳에 가도 즐거운 기운이 전파되고, 저곳에 가도 즐거운 기운이 전파되고…. 그게 나의 일이에요. 크리스천이 일을 한다는 건 어떤 장소든 어떤 모임이든 찾아가서 즐겁고 행복한 기운을 전파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일과 신앙이 하나로 합쳐지는 경험을 해요. 예전에는 크리스천이 즐겨 보는 방송, 종교적인 색깔이 강한 방송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었어요. 난 그런 걸 할 만한 깜냥도 안 돼, 하면서 멀리했죠. 그건 변명이었고 사실은 하기 싫었어요. 거룩한 이미지가 너무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제 교만이고 건방이었죠.
아직까지는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 일반 방송과 영역을 확실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섞이지 못하는 문화 차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아주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라면 조금은 변화를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기독교 방송을 재미있게 만드는 데 제가 사용된다면 기쁠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라는 존재로 덧입힘을 받았으니까 어디서 무슨 방송을 하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소개하는 시간이 되잖아요. 저는 재밌는 걸 좋아하니까 어떤 일이든 재밌고 즐겁게, 그리고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일에 사용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어마어마하게 거룩한 사명감은 없어요. 저는 그저 ‘행복해지자’는 주의예요.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디 가서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비록 저는 행복하지 않지만 어쨌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이럴 수는 없잖아요. 우선 내가 행복해져야죠. 그래야 하나님이 좋은 장소로 데려다가 저를 쓰시지 않겠어요?
다시 시작하게 된 〈TV 동물농장〉을 통해서도 내가 무엇을 할지, 어떻게 보여야 할지 기도해야겠다는 소명이 생긴 것 같아요. 기독교 방송이든 세상 방송이든 경계 없이 일과 신앙의 거리를 좁혀가는 시간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고 준비해 주고 계시는 것 같아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나서부터는 나의 콘텐츠, 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져 간다는 사실이 그렇게 짜릿할 수 없어요. 유일하게 달라진 건 ‘예수’라는 변압기 하나 탁 끼운 것뿐인데 어쩜 이렇게 든든할 수 있죠? 예를 들어 〈TV 동물농장〉 출연 초기에 “너무 불안해요. 하나님, 내일 〈TV 동물농장〉에 악플 달린대요. 어떡하죠? 저 잘릴지도 몰라요.” 이러면서 안절부절못한 적이 있어요. 옹색하게 눈치 보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 “그걸 누가 줬니?” 하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하하하, 그러게요.” 했어요.
변압기가 탁 장착되면서부터는 겁먹지 않고 나답게, 즐겁게, 내 감정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어요. 그 다음은 하나님께 다 맡기는 거죠. 이 놀라운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하고부터는 바꿀 수 없어요. 예수라는 변압기를 누구에게도 줄 수 없어요. 전 이게 없으면 못 살아요. 정말 하루도 못 살아요.